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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세력의 안배와 박해 형식을 간파하자

글/ 대륙 대법제자

【명혜망 2007년 6월 16일】 낡은 세력(舊勢力)이 안배한 이번의 거대한 난 속에서 낡은 세력은 대법과 대법제자를 고험하며 고험하는 동시에 정법을 좌우지하고 그것들의 이기적인 목적에 도달하기 위해 그것들은 매 대법제자에 대해 일련의 체계적이며 장기적인 안배를 했다. 그것들은 한편으로는 대법제자의 생명 과정 중에서나 혹은 금생의 성장 과정 중에 아주 많은 영향요소(예를 들면 처지)를 안배했고 이로부터 모종의 관념을 촉성하고 강화하였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심지어 당신이 사색하는 하나의 문제마저 모두 간단한 것이 아니다. 장래에 당신들이 본다면 모두 상당히 세밀하게 배치된 것으로 내가 배치한 것이 아니며 이는 이러한 낡은 세력이 배치한 것이다.”(『미국 플로리다법회에서의 설법』)

다른 한편 이 거대한 난 중에서 그것들은 또 대법제자에게 모종의 환경을 안배했다. 이렇게 안과 밖의 안배를 결합하여 대법제자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른바 고험 중에서 낡은 세력에게 좌우지되었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피동적으로 모종의 상태에 처해 헤어 나오기가 아주 어렵게 했다.

한 수련생은 어릴 때 금방 유치원을 졸업한 후 아직 학교에 다니지 않을 때의 일인데 이웃집 아이가 그를 찾아 와 소꿉놀이를 하면서 좋지 못한 행위를 했을 뿐만 아니라 아주 어릴 때부터 그에게 성적 흥분이 생기게 했다(그는 당시에 그것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바로 이렇게 다양한 단계마다 모두 안배했으며 색욕에 대한 집착을 강화하고 유도하는 요소를 묻어 주었다. 하여 이 몇 년 동안의 수련 중에서 색욕은 하나의 거대한 교란이 되었고 더욱이 낡은 세력이 안배한 모종의 처지까지 겹쳐 그를 반복적으로 견제하다보니 심신의 상태에도 매우 큰 영향을 받았다.(이것은 금생에 낡은 세력의 배치로부터 본 것에 불과하다).

지금에 와서 보면 이 모두는 박해였다. 우리 많은 동수들은 잡히거나 매를 맞고 판결 받는 것을 박해라고 여긴다. 더 넓은 의미에서 핍박으로 집을 떠나 떠돌거나 경제적인 곤란을 박해라고 여기는데 사실 일체는 강제로 더해진 것으로 정법의 수요에 위배된 것이다. 대법제자의 조사정법(助師正法)을 계통적으로 교란하는 일체 안배는 모두 박해인 것이다.

정법 중에서 우리는 단순히 개인 수련의 표준으로 자신의 상태를 가늠해선 안 되며 단순히 개인 집착의 각도로부터 자신의 문제와 장애를 보거나 해결하려 해서는 안 된다. 낡은 세력이 안배한 박해를 부정하고 제거하는 것을 명확히 한 전제하에서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일체를 성취해야 하는데 여기에는 개인수련과 집착을 제거하는 것을 포함한다.

그런데 이런 낡은 세력의 박해가 나타내는 형식은 각양각색이고 각종 방면이다. 이상의 형식 외에도 또 사업이 특별히 바쁘고 바쁘다 못해 피곤하고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만회할 시간조차 없다. 어떤 사람은 가정의 장애가 커서 제한을 받는다. 어떤 사람은 두려운 마음이 중하고, 어떤 사람은 집착을 내려놓지 못하여 빗나가게 깨닫고 장시간 자신을 그르치고 있다. 어떤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늘 구실을 찾아 자신을 덮어 감춤으로써 진수(眞修)하기가 아주 어렵다. 어떤 사람은 친정(親情)에 대한 집착에 뒤엉켜 내려놓기 어려워하며, 어떤 사람은 색욕에 얽매어 있고, 어떤 사람은 병업에 방해 받고 있으며. 어떤 사람은 개인의 모종 애호에 끌려가고 있으며, 어떤 사람은 “먼저 법공부를 잘하여 조절한 다음 다시 걸어 나오겠다”는 구실을 댄다. 결국 눈 깜짝할 사이에 몇 달, 심지어 더욱 긴 시간을 흘려보낸다.

이렇게 말하면 동수들도 박해임을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일부 동수들은 자신은 원하는 대로 잘되고 있다고 여기면서 생활도 아주 좋고 또한 체포된 적도 아주 적으며, 세 가지 일도 얼마간 했기에 스스로 매우 만족해한다. 또 어떤 사람은 부지불식중에 정법 일과 멀어지고 대법제자들과 서로 독촉하고 교류하는 것을 멀리 피하는데 공동으로 일하는 환경이 점점 더 흩어지고 마비된다.

마음을 조용히 하고 찾아보면 사실 모두 안일을 구하는 마음에 이용당하여 다그치지 못하고 스스로 ‘속인상태에 부합’한다고 여기는 것이다. 사부님께서 “가장 뚜렷한 것은 허다한 수련생들이 박해를 엄중하게 받는 것 역시 자신의 사람마음이 너무 중하며, 정념이 부족하여 조성된 것이다.”(『사람 마음을 제거하자』)라고 제출하신 후 어떤 동수들은 또 다른 극단으로 나갔다. 즉, 체포된 사람들은 모두 문제가 있으며 반대로 이에 비해 체포되지 않고 박해 받지 않은 사람이 잘했다거나 별로 문제가 없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여긴다.

이런 인식은 이미 아주 많은 대법제자들의 사상 가운데 점차적으로 형성되고 있다. 그러면 안일을 추구하는데 이끌린 동수들은 스스로 괜찮다고 여기면서 일을 조금 하고는 아주 만족해 할 것이며 또한 자신의 안일에 만족해하는 상태를 조장하고 있지만 여전히 느끼지 못한다. 이런 동수들 중에는 생활조건이 아주 좋고 자유로우며 심지어 아주 한가하다. 어떤 사람은 속인과 다만 약간의 차이점이 있을 뿐인데 바로 법을 조금 배웠고 가끔 진상을 알릴 뿐이다. 하지만 마음을 쓰는 정도를 보면 이미 대법을 실증하고 중생구도를 위해 걱정하며 역사적 중임(重任)을 짊어지려는 심태에서 멀리 벗어났다.

아울러 이런 동수들 중 어떤 사람은 흔히 모든 정력을 대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데 쏟는 동수들로부터 많은 흠집을 골라내고는, “일을 하려는 마음, 기세 드높음을 추구”한다는 등의 구실을 틀어쥐고 내려놓지 않으면서 수련생을 부정하거나 심지어 그가 종사하는 법을 실증하는 사업마저 부정함으로써, 바른 일면으로 선의(善意)적으로 가늠하고 시정하도록 도와주며 원용할 수 없게 한다. 그 실질은 정체에 대한 부면적인 작용이 정면 작용보다 크다.

또 일부 동수들은 내심으로 아마 모두 “자신도 세 가지 일을 하고 있다”는 이런 말을 할 것이며, 마음속으로 착실하다고 여길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단지 속인의 마음을 위로하는 것일 뿐, 우리가 올 때의 홍대한 소원은 도리어 위로할 수 없으며, 홍대한 소원을 위해 갖은 고생을 다 겪은 우리의 생명노정을 위로할 수는 없다.

낡은 세력은 그것의 목적에 도달하기 위해 동시에 매 대법제자의 부동한 문제와 집착을 겨냥하여 부동한 안배를 한다. 속인의 안일 상태에 이끌린 그런 동수들은 한번 생각해 보기 바란다. 당신은 지금 바로 낡은 세력의 또 다른 일종의 박해 형식 가운데 처한 것이 아닌가, 당신의 사람 일면을 만족시켜주고는 도리어 당신 자신의 본래 소원을 잃게 하고, 당신의 진정한 생명과 당신의 사명을 조용히 손해 보게 한다. 당신이 돌아갈 때 당신은 마치 맛 좋은 술에 취한 후 깨어난 것처럼 황당하고 허전한 걸음을 걸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자신이 일찍이 한 그 약간의 것을 진정한 대법제자와 비교해 볼 때, 당신 자신의 소원과 비교해 볼 때 그야말로 너무도 차이가 멀다. 그 제서야 일찍이 걸었던 길은 낡은 세력이 안배한 것이지 사부님께서 안배한 것이 아님을 보아낼 것이다. 그때에 가서야 일찍이 안일에 만족한 것은 바로 낡은 세력이 안배한 심각한 박해와 거대한 난이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이번 박해 중에서 사실 독해를 가장 심하게 받은 것은 세인들이다.”(『대 뉴욕 지역 법회에서의 설법과 해법』) 표면적으로는 그들이 사는 것이 아주 좋아 보이고 아무런 재난도 없는 것 같지만 도리어 독해 속에서, 미혹 속에서, 가장 고귀한 생명의 근본을 잃어버렸다. 이는 장애에 미혹되어 정법 중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지 못하고 사명을 완성하는 작용을 진정으로 발휘하지 못하는 대법제자와 아주 비슷하지 않는가? 사실상 역시 심각하게 박해 받은 것으로 실질적인 박해이다.

어떤 수련생은 속인에게 억제되고 방해받으며 사람을 내려놓지 못하면서도 도리어 늘 “속인 상태에 부합하고”, “어디에서나 좋은 사람이 되며”, “ 자연스럽게 따르며 억지로 하지 않는다”, “남을 배려하고 잘 원용한다”는 등의 설법으로 자신을 위로하며 심지어 남을 설복하기까지 하는데 표면상으로 하는 말은 모두 사부님 말씀이지만 사실 많은 때는 이미 구실이 되었다. 우리는 참으로 자신이 얼마나 열심히 법을 위해 책임지고 중생구도와 정법 중의 사명을 첫 자리에 놓았는지 봐야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내심으로 마땅히 명확해야 한다. 우리는 “속인 상태에 부합하여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온 것이 아니며, 우리는 “조사정법”하러 온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마땅히 속인 상태에 부합되게 해야 하며 이러면 더욱 잘하고 더욱 바르게 할 수 있다. 이 근본적인 관계를 반드시 명확히 해야 하며 바로 잡아야 한다.

우리가 집착을 내려놓지 못하고, 낡은 세력이 우리 내심에 안배한 일사일념을 똑똑히 보아내고 부정하지 못했기 때문에, 낡은 세력이 안배한 외적 환경 하에서 필연적으로 모종의 상태에 처하게 된다. 혹은 심혈을 기울이지 못하거나 혹은 정진하지 못하거나 혹은 그 어떤 집착에 얽매이거나 혹은 안일한 만족에 미혹될 수 있다. 어떤 수련생은 역경에 저애될 수 있으며, 어떤 사람은 도리어 순조로운 환경에 미혹 될 수 있다. 전체적으로 사람에서 걸어 나오지 못하며, 자신의 책임과 사명을 대처하고 완수하지 못한다.

한 대법제자 부부가 있었다. 일찍이 마난 속에서 견정하게 걸어 나왔고, 사악한 노교소에서도 괜찮게 했었다. 나중에 그들이 회사를 차렸는데 성과가 날로 좋아져 결국 현지에서 가장 수익이 좋은 10대 회사 중 하나가 되었으며, 큰 은행에서 서로 투자하려고 다투는 대상이 되었다. 이치대로 말하자면 이는 아주 좋은 일이다. 하지만 이와 함께 다른 일종의 상황이 나타났는데 그 회사에 출근하는 모든 동수들에게 부동한 정도로 단속되어 아주 정진하기 어려운 상태가 나타났으며 심지어 음주까지 했다. 갈수록 더 속인처럼 되었고 법을 실증하는 일도 상대적으로 적어졌다. 그리고 이 부부 중 한 사람은 점점 더 속인의 생활을 추구하고 회사를 혼자 움켜졌으며 또 뜻밖에도 바람을 피우며 이혼을 요구했다.

돌이켜 보면 이것이 바로 박해가 아닌가, 부동한 사람 마음의 틈을 비집고 들어와 박해함으로써 대법제자로 하여금 서서히 미혹되게 하여 자신의 사명을 잊게 한 것이다. 회사를 꾸린 자체는 문제가 없다. 그러나 그 중에서 우리가 반드시 청성해야 할 것은 낡은 세력이 그 속에 숨겨놓은 박해의 안배를 똑똑히 보아내고 부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여자 수련생이 있었는데 그녀의 속인 남편은 그녀를 아주 사랑하고 관심을 가졌으며, 심지어 겉으로 그녀의 수련을 지지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 몇 년간 줄곧 그녀를 지켜보고 끌어당기며 그녀가 진상을 알리고 법을 실증하는 일에 참여하는 것을 아주 작은 범위 내로 제한시켰다. 시간이 길어지자 그녀도 이에 습관이 되어 버렸다. 바로 그녀가 자신에 대한 남편의 ‘사랑’과 ‘이해’를 느꼈고, 심지어 어떤 때는 약간의 지지도 해주었기 때문에 그녀로 하여금 늘 이 장애를 분별하지 못하게 하고 가정의 표면적으로 따스한 화목을 건드리기 싫어했다. 사실상 이렇게 제한하는 박해를 받아들인 것이다.

이상에서 말한 것은 여전히 동수 자신의 각도로부터 말한 것이다. 그런데 더욱 중요한 한 방면이 있는데 낡은 세력은 동수 개인에 대해 안배한 이런 박해를 통해 그로부터 그 주위의 동수와 환경에 영향을 주는데 이것은 정법을 마음대로 교란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우리가 잘하지 못하여 낡은 세력이 안배한 대로 따라가는 것은 개인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곧바로 정체의 상태를 교란하게 되며, 정법 형세에 대한 낡은 세력의 통제와 지배를 성사시켜 준다. 그러므로 법 속에서 자신과 동수의 상태를 청성하게 대해야 하며, 낡은 세력이 우리 내심의 관념과 외재적인 처지에 대한 세밀한 안배와 박해 요소를 똑똑히 간파해야 한다. 이것은 낡은 세력의 박해를 철저히 부정하는 데 대하여 아주 중요한 것이다.

이상은 개인의 일부 깨달음이니 부족한 곳이 있다면 동수들이 함께 제출하여 토론하기 바란다.

문장발표 : 2007년 6월 16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minghui.org/mh/articles/2007/6/16/15698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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