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가정에서 자신을 바로 잡아 중생구도를 더욱 잘하자

―아들의 컴퓨터 게임에서 생각한 것

글/대륙대법제자

【명혜망 2006년 1월 13일】 나는 97년에 법을 얻은 제자로 직업은 교사이다. 당시 대법 속으로 들어와 심정이 너무나 격동되었고 늘 법을 늦게 얻은 것 때문에 눈물을 흘리곤 했다. 사부님의 설법에서 나중에 들어온 사람도 뒤떨어지지 않을 거라는 말씀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평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수련 중에서 나는 늘 자신에 대해 아주 엄격히 요구했으며 아무리 일이 바빠도 시간을 짜내 법학습을 했고, 집안 일이 아무리 많아도 시간을 짜내 법학습과 연공을 했다. 새벽이면 아주 일찍 일어났다. 가정에서 오는 교란이 아무리 커도 그때마다 늘 아주 냉정해질 수 있었고 연공인의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했다. 홍법(洪法) 일을 할 때도 적극적이며 주동적으로 나서서 했고 농촌에 가서 홍법을 했으며 매 차례 교류회에도 거의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당시 모든 사람들이 대법에 용해되어 정말로 비할 바 없이 아름답고 행복함을 느꼈다.

99년 7.20 사악한 장(江)씨 집단이 파룬궁에 대한 박해를 시작하자 단체적인 큰 환경이 단번에 사라졌지만 수련하려는 나의 마음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나는 법을 실증하기 위해 4차례 체포된 적이 있다. 물론 자신의 법리(法理)가 깊지 못한 것이 체포된 원인이긴 하지만 수련의 길에서 나는 단 한순간도 느슨히 하지 않았다. 자신을 정법의 거센 흐름 속에 용해시켰고 현지 동수들과 함께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3가지 일을 잘 하기 위해 노력했다. 서로 협조하고 협력하면서 출근하는 한편 대법 일을 해야 했다. 그러면서도 또 집을 잘 돌봐야 했기에 늘 시간이 빠듯했고 잠시도 쉴 틈이 없었다. 모두들 공동으로 노력하는 가운데 우리 현지 대법제자들은 정체적으로 제고되었고 안정적으로 3가지 일을 잘했다.

그러나 제때에 수련과 가정의 관계를 바로 잡지 못했기 때문에, 특히 정법시기 대법 일이 바쁜 관계로 집안에 있을 시간이 상대적으로 적어졌기 때문에, 늘 남편의 원망을 들어야 했고 때로는 아이가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제때에 발정념으로 교란을 배제하고 계속해서 대법 일을 했다.

장기간 가정에 대해 느슨히 하다 보니 사악의 틈을 타 가정모순이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아들이 컴퓨터 게임에 집착하게 된 것이다. 나도 이 게임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아무리 권고해도 아이는 말을 듣지 않았다. 점점 더 심해져 갈수록 심각해졌고 게임을 한 후에는 정서가 격동되었다. 아들은 어른이 무슨 말을 해도 참지 못했고 심지어 욕을 하면서 어른을 존중하지 않았다. 어른의 태도가 좀 엄격하면 아빠에게 좋지 않은 말을 했고 늘 아빠와 충돌했다. 또한 아이는 공부도 하려 하지 않았고 늘 게임만 생각했다.

나는 근본적으로 자신의 문제를 찾지 못했기에 발정념을 해도 그리 큰 효과가 없었다. 1년 가까이 남편은 친척이나 친지, 선생님을 통해 좋은 말로 아이를 권고했고 나도 이에 반대하진 않았지만 어떤 방법을 써도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선생님과 학교 친구들도 아이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말을 했다. 이런 시간이 약 1년 정도 되자 남편은 거의 매일 아이 때문에 말다툼을 하거나 욕을 했다. 사실 그도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고는 있었지만 아무리 해도 방법이 없었다. 특히 설날 아침 일가족 3명이 모이자마자 언쟁이 시작되는 것을 보고서야 나는 비로소 문제의 심각성을 진정으로 인식할 수 있었다. 이것은 나 자신의 수련 중에 나타난 문제임이 분명했다.

2006년 설을 쇤 후 나는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학습을 했고 도대체 자신의 어디에 문제가 나타났는지 찾아보았고 자신의 근본적인 집착을 찾아보았다. 법학습을 통해 나는 점차 명백해졌다. 장기간의 모순은 자신이 안을 향해 찾지 않고 제때에 법리상에서 제고하지 못했으며 외부적인 힘을 빌려 밖을 향해 구하고 속인의 힘을 빌려 문제를 해결하려 했기 때문이었다. 이 어찌 수련인의 행동이란 말인가? 모순이 나타난 것은 내게 제고할 요소가 그 안에 있기 때문이며, 원래 나는 가정방면에 대해 수련 중에 과격한 인식이 있었다.

1. 가정 역시 수련장소

법을 얻은 후부터 대법 일을 가장 중요한 일로 여겼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가정은 부차적인 것으로 여겼고 모든 것은 대법을 위해 왔으며 일체 저애력을 모두 돌파해야 한다고 여겼다. 그러나 바로 이 때문에 수련을 소홀히 했고 가정 역시 수련장소이며 착실히 닦아 내야 한다는 것을 소홀히 했다. 장기간 이런 치우친 인식이 존재하다보니 자신을 느슨히 했고 자신을 수련하는 사람으로 완전히 간주하지 못했다. 집에서 표현되는 것은 타성으로 늘 구실을 찾았다. 정법 일에 바쁘다는 핑계로 연공을 적게 해도 되었고 늘 자신을 용서하면서 연공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발정념을 끝내고 피곤하면 잠시 자고 싶어지는데 ‘이 잠시’가 늘 반시간에서 1시간에 달했다. 늘 이렇게 시간을 보냈고 제때에 나를 피곤하게 하는 마의 교란을 제거하지 못했다. 법학습, 연공은 수련인이 반드시 해내야 하는 것으로 법학습만 하고 연공을 하지 않아서도 안 된다. 번티(本體)가 전화되지 않은면 안 되기 때문이다. 분명히 느낄 수 있던 것은 연공을 적게 하면 발정념도 늘 더 피곤하다는 것이다.

2. 가족에 대한 정이 너무나 커

가족에 대해 나는 늘 그들은 내 친인이고 아들이며 남편이라고 여겨왔다. 즉, 그들을 내가 구도할 중생으로 간주하지 못했다. 모순에 부딪치면 자신을 찾지 않았고 늘 모순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어떤 때는 수구(修口)를 하지 못해 가족들에게 상처를 주었고 모순의 충돌 속에서 자신을 파악하지 못하여 속인과 혼동하고 충동하고 인내하지 못했다. 늘 대법 일을 하는 것은 속인이 이해하지 못하기에 교란한다고 생각했고 일종 원망하는 심리가 존재했다. 마음이 틀어지니 당연히 이 마당이 좋지 못했다. 남편이 대법에 대해 이해하지 못할 때 늘 논쟁을 벌였는데 그나마도 완전히 다른 사람을 위해 선의(善意)적으로 해석하지 못했다. 의견이 통일되지 않을 때면 늘 속인의 방법으로 대했고 아예 대화를 하지 않았으며 냉전에 돌입했다. 혹은 상대방이 “당신은 너무 중독이 심하고 관념이 너무 완고해”라는 등을 말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속인에게 결정을 내리고 함부로 정의를 내렸다. 근본적으로 가족들로 하여금 대법의 아름다움을 보고 느낄 수 있게 하지 못했으며 속인 중의 일언일행, 일거일동에서 수련인의 표현을 체현해내지 못했다. 아무리 말이 많아도 해내지 못한다면 역시 안 되는 것으로 해내야만 비로소 수련이다.

3. 마음을 써서 발생한 모순을 대하다

아들의 행동이 좋지 않은 것을 볼 때 나는 아들의 행동을 바로 잡기 위해 속인의 도리를 말하고 설교했지만 아들은 도리어 화를 내면서 우리가 잘하지 못했다고 했다. 이때 나는 여전히 밖을 향해 찾으며 아이에게 도덕을 중시하지 않고 부모를 존중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말투가 선량하지 못했다. 아이는 당장 불복했다. 자신의 속인 마음도 튀어나와 나는 아들이 너무나 고집스럽고 사상이 변이되었다고 느꼈다. 나중에 마음을 조용히 하고 생각해보니 아이를 교육하는 데는 마땅히 방법이 있어야 했다. 왜냐하면 아들은 나를 따라 함께 법을 얻었지만 나중에 내가 4차례 체포된 관계로 집에 돌아온 후에도 아이와 함께 있어줄 시간이 부족했기에 법학습을 적게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속인 사회에 오염되어 일부 행동이 좋지 않게 변한 것이다.

나는 늘 바쁘다는 이유로 아들이나 남편과 그리 많은 시간 교류하지 못했다. 늘 아주 늦게 귀가했기에 몇 마디 하면 곧 피곤해져서 더 이상 말을 하고 싶지 않았으며 어떤 때는 집안일도 하고 싶지 않아 뒤로 미루기 일쑤였다. 남편 역시 “당신 이게 어디 수련인 다운 모습이야, 우리 속인만도 못하잖아. 나는 앞으로 절대 수련하지 않겠어. 당신들은 너무 이기적이고 집안일은 아예 돌보지 않으면서 자신만 생각해.” 이런 말을 듣고 나서도 나는 엄격하게 자신을 요구하지 않았고 도리어 대법으로 덮어 감췄다. 속으로는 ‘당신들이 뭘 알겠어? 그저 하찮은 집안일이나 알뿐이지. 우리 대법제자들은 사람을 구하느라 바쁜데, 당신들은 우리를 이해할 수 없어.’

이런 식으로 밖을 향해 구하고 안을 향해 찾지 못해 어떤 때는 남편이 많은 말을 하면 맞받아치면서 상대방이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관념이 다르며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등의 말을 했다. 자신의 행위가 가족들을 깊이 해치고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내가 마음을 조용히 하고 자신의 부족을 찾아보자 정말로 두려울 정도였다.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려서야 비로소 철저히 인식할 수 있었는데 사실 가정에서 나타나는 모순은 바로 자신에게 누락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그럼에도 나는 줄곧 밖을 향해 구해왔구나.’ 나는 가슴에 손을 얹고 자문해보았다. ‘나는 과연 사부님의 진수(眞修)제자인가? 수련인은 어디에서든 모두 같아야 하는데 나는 어떠했는가? 밖에서와 집안에서 완전히 달랐다. 장기간 이렇게 내려간다면 너무나….’ 나는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분발해야 하며 새로 시작해야 하고 자신의 과격한 행위를 바로 잡아야 한다. 법에서 제고해 올라와 착실하고 착실하게 수련해야 하며 나의 실제행동으로 대법을 실증해야 한다.

요 며칠 나는 진지하게 법을 학습했고 발정념을 많이 했으며 친지들의 배후에 있는 일체 사악을 깨끗이 제거하고 일체 흑수와 썩은 귀신, 공산사령의 일체 요소를 해체했다. 자신을 엄격히 요구했고 가족들에게 선하게 대했다. 그들을 구도할 중생으로 여겼고 자신의 남편, 아들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평상시 그들과 많은 교류를 했고 자비로운 마음과 온화한 심태를 유지했다. 곳곳에서 그들을 위해 배려했고 대법 일을 함에도 너무 집착하지 않으며 자연스럽게 되어가는 대로 따랐다. 무엇을 해야 하면 무엇을 했으며 솔직하게 자신의 부족을 말했고 수련 중에서 자신의 좋지 못한 사상을 반드시 제거했다. 그 외에 며칠 동안 나는 철저히 집안 환경을 청리했으며 공산사령의 것을 찾아내 제때에 소각했다. 생각지도 못하게 자신이 평소에 그렇게 진지하게 대했음에도 여전히 깨끗이 청리하지 못한 것들이 있었다. 나는 또 아들이 즐겨보는 책이나 게임기 등도 전부 처리했고 그것의 배후에 있는 일체 사악한 요소들을 제거했다. 처음에는 남편도 나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내가 선의적으로 도리를 말해주고 이런 것들은 사람을 해치는 아주 좋지 않은 것으로 아이를 교란하고 있다고 알려주자 나중에는 남편도 나를 지지했다.

겨우 며칠 만에 나쁜 일이 좋은 일로 변했다. 나의 관념이 철저히 개변되고 완전히 안을 향해 찾자 가족들의 태도도 개변되었으며 환경도 좋아졌다. 아들은 다시 나를 따라 설법을 들었고 진상 동영상을 보았다(전에는 교란이 있어서 사부님의 설법만 틀면 가지고 나가 속인의 노래를 틀곤 했다. 또 진상 동영상은 잘 보지 않았다). 아이에게 게임을 하지 말라고 했을 때 아이는 아주 충동되어 일부 과격한 말을 했지만 나는 이것은 그가 하는 말이 아니라 그의 관념이 하는 말임을 알기에 속지 않았다. 내가 정념으로 아들의 배후에 있는 사악한 요소를 깨끗이 제거하자 아들은 변하기 시작했고 나는 아들이 제고하도록 도와주었다. 또 남편도 대법을 수련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나더러 당장 연공을 가르쳐달라고 했으며 아들과 함께 법공부하는 것에 동의했다.

여기서 잠시 주제에서 벗어난 말을 하자면, 지금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마수쟁패(魔獸爭覇)’와 같은 게임은 아주 좋지 않아 아이들을 미혹시켜 중독되게 만든다. 뿐만 아니라 지닌 정보도 좋지 않다. 이외에도 무슨 ‘마수세계’ 및 다른 게임도 모두 좋지 않다. 여기서 대법제자들에게 아이가 집에서 게임을 하지 못하게 할 것을 건의한다. 왜냐하면 아주 많은 대법제자의 아이들은 모두 대법 꼬마제자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게임에 빠지고 중독될 때면 그럼 집착이 아닌가? 자신의 집착을 확대한다면 수련의 길에서 아주 위험한 것으로 우리의 방임으로 인해 아이들에게 영향을 끼쳐서는 안 된다. 지금 사회적으로 무슨 비정상적인 현상이 있는데 바로 어른이요 아이들 할 것 없이 모두 컴퓨터에 빠져있다. 특히 거의 모든 아이들이 게임을 하는데 우리 대법제자들이 결코 시류에 따라 흘러갈 수는 없지 않겠는가!

사부님께서는 『2005년 샌프란시스코 설법』에서 말씀하셨다.
“대법제자가 수련하는 이 한 갈래 길은 바로 세속을 이탈하지 않고 수련하는 것으로 바로 이러한 길이다. 그렇다면 속인사회 중에서 수련하면서, 속인사회에 물드는 것이 아니라 바로 속인이 당신에 의해 개변되는 것인데, 긍정하고 이러하다.”

나는 이 단락 법의 내포를 깊이 체험했고 또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 가정에서 모순이 있는 그런 동수들에게 빨리 안을 향해 찾아보기 바란다. 자신이 어느 방면에서 느슨히 하진 않았는가? 우리가 가족을 정으로 대하고 관념이 너무 중하지는 않았는가? 우리의 근본 집착을 아직 찾아내지 못한 것은 아닌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고 더 이상 미룰 수도 없다. 정법시기 대법제자의 사명은 바로 중생 구도인데 그럼 우리 친지들이야말로 가장 우선적으로 구도해야 할 대상이 아니겠는가! 그들은 우리와 접촉하는 기회가 가장 많고 진상을 알 기회가 더욱 많으니 우리가 대법 중에서 수련해낸 선(善)으로 그들을 개변시키자.

나와 비슷한 인식을 가진 동수들이 있다면 각성하기 바라며 동수들이 자기 집안의 아이에 대해 중시할 것을 희망한다. 그들도 대법과 인연이 있는 것으로 바쁘다고 하여 그들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특히 컴퓨터 게임에 미련을 가진 아이들은 더욱 그렇다.

이상은 개인의 체득이니 부당한 곳이 있다면 삼가 동수들의 자비로운 지적을 바란다.

문장발표 : 2006년 1월 13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06/1/13/118549p.html

ⓒ 2025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