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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환경에 대한 사색

글/산시(陝西) 대법제자

【명혜망 2007년 12월 15일】 사부님께서는 『2006년 캐나다설법』에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셨다.
“당신이 접촉하는 직장환경, 가정환경 그건 모두 당신의 수련환경이며 대면해야 하고 모두 반드시 당신이 걸어야 할 길이다. 반드시 정확히 대면해야 한다. 어느 한 가지도 대충 얼버무릴 수 없다.”

아래에서 나는 어떻게 가정환경을 대하고 자신의 길을 잘 걸어갈 것인지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피력해보겠다.

1. 가정 환경을 원용(圓容)하고 소중히 여기자

한 사람에 대한 가정의 중요성은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대법제자에 대해 말하자면 그것은 단지 우리의 생활환경 일뿐만 아니라 중요한 수련환경이기도 하다.

우선 가정은 자신의 수련환경이다. 우리는 가정에서 법공부, 연공을 하며 대륙대법제자에 대해 말하자면 가정은 거의 유일한 법공부, 연공 환경이다. 가정 중의 매 사람은 자신의 개성, 품격을 가질 뿐만 아니라 또 사회인(社會人)의 보편적인 습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가정은 바로 작은 사회이며 각종 모순과 씬씽의 충돌이 늘 발생하는 곳이다. 아울러 대법제자는 가족 앞에서 각종 집착(특히 親情에 대한 집착)이 가장 철저하게 폭로되어 나오며 씬씽이 가장 진실하게 표현된다. 때문에 사람마음, 이익, 관념의 충돌 속에서 가족은 우리를 도와 업력을 제거하고 집착을 제거하며 씬씽을 제거하는 정도가 종종 가장 크다. 어떤 의미에서 말하자면 가정은 우리가 씬씽을 수련하는 제일의 환경이다.

동시에 가정은 또한 법을 실증하는 환경이기도 하다. 집안의 친인(親人)은 우리와 가장 인연이 있는 중생으로 그들은 우리가 마땅히 홍법하고 진상을 알리며 구도할 제 1의 대상이다. 때문에 법을 실증하는 것은 마땅히 가정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사실상 친인의 이해와 지지는 우리가 사회적으로 진상을 알리고 ‘3퇴’를 촉진하며 세인을 구도하는 것을 돕는 중요한 보장이다.

때문에 양호(良好)한 가정의 수련환경은 우리가 ‘3가지 일’을 잘하는데 있어 아주 중요하다. 그러나 이 환경의 형성은 결코 하루아침에 순풍에 돛 단 듯이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대법이 박해를 받고 대법제자의 가정도 모두 준엄한 고험을 받는 정황 하에서 매 가정의 양호한 환경은 동수들이 법을 스승으로 삼고 정념으로 마(魔)를 제거하며 끊임없이 씬씽을 수련하고 끊임없이 가정을 원용하게 하며, 원용하는 중에서 수련하고 수련하는 중에서 원용하면서 점차적으로 형성한 것이다.

대법에 의해 원용된 가정은 바로 대법을 널리 알리는 창구이다. 가족 구성원은 모두 자신의 친지이며 매 가정은 모두 친정(親情)으로 연결된 인적 네트워크이다. 네트워크 중의 친지들은 대법제자의 가정이란 이 창구를 통해 대법의 자비와 아름다움을 보게 되며 우리의 수련환경은 곧 이 네트워크를 통해 가정에서 밖으로 뻗어나가 연장된다. 물론 이 네트워크를 연계하는 기점은 더 이상 ‘정의 인연[情緣]’이 아닌 ‘법의 인연[法緣]’이다. 사실 도시에 거주하는 동수들은 많은 농촌 친지들이 있으며 곧 이 네트워크를 통해 농촌까지 연결해 하나의 광활하고 안전하며 효과적으로 법을 실증하는 새로운 환경을 개척할 수 있다. 수많은 동수들은 이미 이렇게 하고 있다.

2. 자비로 친정(親情)을 대체

“속인은 바로 정을 위해 산다.” 때문에 친정(親情)은 또한 속인이 가장 중시하는 情이며 소위 가정의 아름답고 원만한 조화는 사실 친정 속에 잠겨 있는 것이다. 정은 늘 이기적인 것으로 무사무아(無私無我)를 수련해야 하는 대법도(大法徒)에 대해 말하자면 친정이란 반드시 닦아버려야 할 집착이다. 명리는 버리기 쉬어도 친정은 없애기 어렵다. 우리가 친정으로 충만한 한 가정에 직면하여 친정을 닦아버려야 함을 분명히 한다는 것은 사실 아주 어렵고 힘들뿐만 아니라 또 고통스런 과정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는 반드시 직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가 이런 가정에서 생활하는 것은 정을 위해서가 아니며 인연을 위해 온 것이다. 가족 중의 친인은 모두 대법을 위해 우리와 특수한 연분이 있는 것이다. 때문에 가족이 법을 얻고 구도 받게 하려면 우리는 반드시 친정을 뛰어 넘어 대법의 자비로 대체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가 가정을 원용하는 원칙은 마땅히 ‘眞善忍’ 법리를 따라야 하는 것으로 자비로 친정을 대체하고 진상을 알려 가족을 구도해야 한다.

그러자면 가장 우선적으로 가족들에게 우리가 사부님의 가르침에 따르는 좋은 사람임을 보여주어야 한다. 우리는 최대한 자식 역할, 아내 역할, 남편 역할, 부모의 책임을 다 해야 하며 가족들에게 대법제자의 진실하고 선량하며 사심 없고 바른 모습을 느끼게 하여 대법의 바름을 볼 수 있게 해야 한다. 이 기초 위에서 진상 알림을 통해 가족들에게 파룬궁이 무엇인지와 대법이 세인을 구도하는 위대하고 신성함을 이해할 수 있게 해야 하며, ‘9평’를 보게 하여 공산당이 무엇인지 알게 하며, 사악한 당의 죄악의 본질을 알게 하여 ‘3퇴’의 도리를 분명히 알려야 한다. 물론 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법학습을 통해 대법 수련의 길을 걷도록 돕는 것이다.

우리가 정말로 법에서 정념정행(正念正行) 할 수 있다면 가정은 곧 점차적으로 하나의 대법 마당을 형성하게 될 것이다. 이 마당은 가족들로 하여금 대법을 공경하게 하며 사람 마음을 바로 잡게 할 것이다. 우리의 친정 역시 점차적으로 담담해져 보다 고상한 자비를 닦아 내게 하여 가정은 곧 하나의 바른 수련환경을 원용해 낼 것이다.

우리 지역에서 많은 동수들의 가정은 이미 여러 가족이 수련하고 있고 사람마다 대법을 학습하며 가족들이 주동적으로 대법 일을 하는 형세에 도달했다. 아울러 많은 감동적인 이야기들이 있다. 어떤 동수의 딸은 모(某) 학교의 교사인데 학교 간부가 입당하라고 하자 “우리 어머님은 연공해서 좋은 사람이 되었지만 노동교양을 당했는데 내가 이 당에 들어가서 무엇 하겠습니까?”라고 대답했다. 또 다른 한 수련생은 일찍이 사악한 당에 의해 불법으로 구금된 적이 있는데 그 아들이 성(省) 정부에서 일하고 있었다. 상사가 그를 간부로 발탁하려 하면서 그에게 어머니에 대한 태도를 표시하고 (파룬궁에 대한) 경계선을 그으라고 하자 그는 솔직하게 “나는 어머님이 파룬궁을 수련하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라고 대답했다.

3. ‘안을 향해 찾는’ 법리 준수

가정에서 나타나는 모순은 수련인에 대해 마땅히 씬씽을 제고하는 기회이자 좋은 일로 여겨야 한다. 늘 자신이 수련인이라고 생각하고, ‘안을 향해 찾는’ 법리를 준수하며 자신의 부족을 깨달을 수 있고 자신의 집착을 볼 수 있으며 가족들을 위해 많이 생각한다면 모순은 곧 해소될 것이다. 모순의 해결과정이 바로 우리의 씬씽과 가정환경이 승화되는 과정이다.

그러나 일부 동수들의 가정은 아직도 양호한 수련환경을 이루지 못했다. 어떤 수련생은 가족들과의 관계가 긴장되거나 심지어 가정이 파괴되었고, 어떤 가족은 대법제자에 대해 오해하고 지지하지 않아 대법제자가 집에서 법공부와 연공을 하는 것마저 정정당당하게 할 방법이 없게 했다. 어떤 가족은 ‘9평’을 전하는 것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데 ‘3퇴’는 더 말할 것도 없다. 또 어떤 수련생은 여전히 속인의 친정과 가정의 번잡한 일 속에 매몰되어 수련에서 정진하지 못한다. 이 일체의 책임은 가족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 있다. 문제의 근원은 바로 법학습이 깊지 못하고 정념이 부족하여 말을 하거나 일을 함에 종종 법에 있지 않고, 일에 부닥치면 안을 향해 찾지 않으며, 늘 집안에서도 마땅히 수련인이어야 함을 망각하기 때문이다.

어떤 수련생은 단지 자신의 수련만 생각하고 마땅히 감당해야 할 가정의 책임은 다하지 않는다. 어떤 수련생은 대법제자에게 마땅히 있어야 할 관용과 자비가 부족해 일을 함에 자신이 옳다고 여기며 가족들을 비난한다. 어떤 수련생은 여전히 친정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지 못하고 가족들을 단지 가족으로만 여길 뿐 중생으로 여겨 대하지 못하며 진상을 알리는 것이 부족하다. ‘3퇴’를 권할 때도 인내심을 갖고 진지하게 대하지 못하고 도리어 가족들을 원망한다. 그 결과 사악한 마에게 틈을 타 집착이 더욱 커지고 확대되어 가정환경이 오랫동안 호전되지 못하게 했다. 해결 방법은 오직 진지한 법학습과 법을 스승으로 삼고 안을 향해 찾으며 자신을 잘 닦는 것이다.

가정환경을 정확하게 대하는 것은 우리가 반드시 걸어가야 할 길이다. 이 길은 또한 아주 좁지만 반드시 잘 걷고 바르게 걸어야 한다. 가정 문제에서 반드시 사부님께서 『취중(取中)』에서 경고하신 ‘극단’과 ‘과격’을 방지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면 자신의 수련과 친인의 구도에 영향을 끼칠 뿐만 아니라 대법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초래할 수 있다. 한 젊은 수련생이 있었는데 외지에서 법을 얻어 반년 후 집에 돌아왔다. 아내는 아주 기뻐하며 그를 맞이했지만 그날 밤 잠자리에 들 때 그는 다른 곳에 자리를 깔고 아내를 피했다. 말로는 색욕을 단절한다는 것인데 아내는 이해하지 못하여 화가 단단히 났고 이후 집안이 편할 날이 없었다. 또 어떤 여자 수련생은 박해를 당한 후 부친이 노교소에 찾아와 대화를 나누던 중 수련을 그만두라고 권했다. 그러자 그녀는 부친에게 아무런 설명도 없이 자신이 단호하게 친정을 끊은 것을 표시하기 위해 “내 부모님은 천상에 계시며 당신은 나의 진정한 부친이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노인은 아주 슬프고 분노하여 떠나갔다.

이 문장을 쓴 목적은 정확하게 가정환경을 대하고 직장환경을 대하는 것의 중요성을 설명하려는 것이다. 이는 모두 사부님께서 우리를 위해 안배하신 ‘반드시 걸어가야 할 길’이며, ‘어느 한 가지도 얼버무릴 수 없다.’ 담 안에 꽃이 피면 향기가 담 밖까지 나간다는 속담을 예로 들어, 가정환경을 잘 원용하지 못하는 동수들에게 우리 대법제자의 자비의 꽃은 담 밖에서만 향기가 나고 안에서는 향기가 나지 않아서는 안 되며 담 안팎에서 모두 향기가 나고 도처에 향기가 퍼져야한다고 일깨워주고자 한다.

본문에서 쓴 깨달음은 주로 자신에 대한 교훈과 반성에서 나온 것이다. 부당한 곳이 있다면 동수들이 삼가 바로잡아주기 바란다.

문장발표 : 2006년 12월 15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06/12/15/144643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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