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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더 분발해야 하며 더 이상 사부님께 걱정을 끼치지 말아야 한다

글 /북경 대법제자

【명혜망 2007년 5월 3일】 최근 『2007년 뉴욕 법회 설법』을 보고 나서 적지 않은 동수들이 제기한 문제가 의미가 별로 크지 않다는 느낌이 들자 마음속으로 약간 실망감이 들었다. 이번 『2007년 뉴욕 법회 설법』 맨 마지막에 다음과 같은 문의가 있었다. “제자: 저는 법을 얻은 지 일 년이 되지 못했지만 줄곧 세 가지 일을 잘하여 정법의 거센 흐름을 따라가려고 노력했습니다. 당신께서는 최근에 막 법을 얻은 제자에 대해 어떤 건의가 있으십니까?” 사부님께서는 “이 문제를 아주 잘 제기했다.” 라고 말씀하셨다.

대조해 보는 가운데 나는 아주 많은 동수들은 자신을 위해 문의했지만 어떤 동수들은 개인문제를 정체적인 각도 가운데 놓고 문의했고, 정체를 위해 문의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사부님을 뵐 기회가 있는 동수들, 당신들이 문제를 제출할 때 얼마나 많은 동수들이 당신들을 주시하고 있는지 얼마나 많은 동수들이 가슴에 중생을 품고 전체 동수들이 당신들의 문제가 그들을 대표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았는가?

내 기억에 7.20 이전 사부님께서 북경에서 고급 지식인들을 소집해 좌담회를 여시고 그들에게 과학 방면의 문제에 대해 해답하시고 이를 겨냥해 설법하셨다. 하지만 수련생들은 도리어 잘하지 못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나는 북경과학기술계의 대학 교수와 과학연구를 하는 이러한 수련생들, 또 일부 대법책임자를 소집하여 내가 과학 면의 것을 그들에게 자세히 말하겠다고 말했다. 결국 하려던 일이 그리 원만하게 되지 못했다. 그렇다면 많은 기타 수련생이 왔는데 제출한 문제와 내가 말하고자 한 내용이 겨냥성이 없었기 때문에 말하기가 힘들었다.”(『미국서부법회에서의 설법』)

우리 분발하지 못하는 이런 제자들은, 자신을 잘 닦지 못하고 잘하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가 정법에 얼마나 많은 손실과 영원한 유감을 조성했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사실 대법제자로서 우리는 끊임없이 사부님의 고무와 찬양을 들어왔다. 그러나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대했는가? 우리는 정말이지 자신에게 한번 물어봐야 한다. 우리가 한 것이 어떠했는가, 정말로 아주 잘 하여 사부님께서 많이 걱정하지 않으시게 했는가?

어떤 동수의 한 말이 아주 좋은데, 우리는 의지할 수 없으며 사부님의 칭찬과 고무격려에 누워있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진정으로 마땅히 자신의 부족함, 자비하신 사부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은 부족함을 똑똑히 알아야 한다. 우리는 2천만 탈당을 보고 아주 잘했다고 여긴다. 하지만 우리는 또 생각해 보아야 한다. 대법제자도 몇 천 만인데 만약 한 사람이 일 년에 한 명만 탈퇴시켜도 얼마나 되겠는가? 우리가 제대로 했는가? 아주 많은 제자들은 이렇게 여러 해를 수련했음에도 아직도 법을 실증하는 사업 가운데서 명리를 놓지 못하고, 심지어 서로 다투고 질투하며, 사람 마음과 개인의 구하고자 하는 마음이 그렇듯 강렬하며, 어떤 사람은 시종 아주 저급한 집착을 없애지 못했을 뿐더러 더러운 마음, 색욕심, 과시심, 돈을 탐내고 물건을 저장하려는 마음(나를 포함)을 버리지 못했고, 협조인 사이에도 서로 모순이 쌓여 있음에도 선해(善解)하려 하지 않기에 자신에게 영향을 미쳐 마음이 변했고 진정한 협력을 이룰 수 없다.

탄압 이전 정상시기의 일이 생각나는데 수련이 잘된 한 수련생이 내가 명을 따지고 공명심이 있으며 개인의 영웅적인 심태를 보고 다른 사람과 담화하는 중에 측면으로 언급했다. “어떤 수련생은 수련을 잘한 사람을 모두 리더(領頭羊 역주: 양떼 중에서 맨 앞에 가는 양을 말한다)로 여기는데 사실 그는 늘 받침돌이다.” 나는 마음속으로 놀랐다. ‘그렇다, 나는 바로 늘 ‘리더’가 되려고 하지 않았는가. 이런 의식이 깔려 있는 것이 아닌가, 아이고! 정말로 너무나 부끄럽구나.’ 나는 마음속으로 깊이 자문해 보았다.

‘너는 도대체 마음속으로 무엇을 구하고 있는가???’

나는 자신에게 아직도 아주 깊은 명리심이 법을 실증하는 일 중에 섞여 있음을 발견했다. 대법 일을 좀 잘했거니 좀 순조로우면 아주 기뻐했고, 좌절당하거나 사람들이 인정하지 않으면 곧 아주 실망했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말씀하셨다.

“당신은 병을 고쳤다고 여기는데 다른 사람이 당신을 기공사라고 부르면, 당신은 기뻐서 득의양양해하며 어찌할 바를 모른다. 이것은 집착심이 아닌가? 병을 잘 고치지 못하면 풀이 죽어 의기소침해지는데, 이것은 명리심이 작용을 일으킨 것이 아닌가?”

나는 지금 어떤 동수들이 “나는 몇 사람을 탈퇴시켰다”, “나는 (대법 일을)얼마나 했다”라고 말하면서 아주 만족해하고 몹시 기뻐하는 모양을 보았다. 어떤 사람들은 탈퇴를 권한 것이 순조롭지 않으면 괴로워하는 것을 보았다. 그러면 우리는 곧 자신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도대체 무엇 때문인가? 우리는 누구를 위해 기뻐하고 기뻐하지 않는가? 중생이 구원되어 기쁜 것인가, 중생이 구도될 기회를 잃었기 때문에 괴로운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득실을 위해서 인가, 자신의 성취감 때문인가, 자신에게 자본이 있고 없고 따라 기뻐하거나 근심한 것은 아닌가?

사부님께서는 줄곧 우리더러 “대단하다, 위대하다”고 고무해주셨다. 하지만 우리는 자신의 “대단하고 위대한” 것만 보았을 뿐, 동시에 우주 괴멸(壞滅) 시기에 중생들의 몹시 좋지 않은 수많은 문제들이 우리 생명 중에도 존재할 뿐만 아니라 정법 중에서 파괴 작용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에 대해 망각한 것은 아닌가!

이번 『2007년 뉴욕 법회 설법』에서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수련 중에서 사람 마음이 제거되지 않은 가장 두드러진 표현이 바로 일을 함에 대법을 실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을 실증하는 것이다! 그것이 일으키는 것은 파괴 작용이다.”

우리 많은 동수들은 그 부패한 요소를 지녔기에 그 어떤 상황에 부딪히기만 하면 그것이 곧바로 작용을 일으키는데 부지불식간에 이미 교란과 파괴 작용을 일으키는 일로 되어 버린다. 더구나 협조인 사이에 우리 생각해 보자. 많고 많은 고비에서 우리의 바르지 못한 심태로 우리가 그렇게 말하고 그렇게 했다면 이미 아주 많은 일을 방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자신이 협조인으로서 치른 대가와 성적을 아주 크게 보고 자신을 대단하게 여기며 이렇게 자처하면서 자신의 문제에 대해서는 도리어 진정으로 엄숙하게 대하지 못한다.

사부님께서는 이번에 신당인 신년 스펙태큘러에 대해 말씀하실 때에야 비로소 우리가 알지 못하던 상황에 대해 언급하셨다. 하지만 그 전까지만 해도 사부님께서는 줄곧 칭찬하고 격려해주셨다! 동수들이여, 우리는 무엇 때문에 깊이 찾아보지 않는가? 도대체 무슨 원인인가? 우리의 능력이 정말로 도달하지 못했는가. 아니면 우리가 잘 수련하지 못했고 잘하지 못해서인가! 사부님께서는 우리를 고무해주시는데 제자로서 우리는 사부님의 고무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우리는 정말로 사부님을 기쁘게 해드렸는가? 사부님께서는 『정법시기 대법제자』에서 말씀하셨다.

“내가 당신들이 원만의 표준에 도달했다는 말을 듣기만 하면 마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것처럼 자신을 방임하며 무엇을 하려고 하지 않을 뿐더러 사부가 당신들에게 이처럼 신성한 일을 이야기한 것을 더욱 정진하는 동력으로 삼지 않고 있다.”

우리에게 이런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사부님께서 우리를 고무해주시면 우리는 마땅히 정념(正念)정신(正信)을 강화해야 함에도 도리어 사람 마음 가운데 부정적인 일면을 보존하고 심지어 자양(滋養)한 것이 아닌가. 대법제자들이여, 우리는 정말로 청성해져야 하고 분발해야 한다!

국외 동수들은 사부님께서 매년 신년 스펙태큘러를 잘 꾸리지 못하는 것을 보시고 몸소 이끄실 수밖에 없었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부님께선 정말로 너무나 노심초사하셨는데 당신은 상상조차 하지 못할 겁니다!” 또 국내외 동수 사이에 사람 마음이 혼잡하여 분발해서 일을 잘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나는 이것을 보고 울고 싶었으며 말할 수 없이 괴로웠다. 우리 제자들은 정말 잘해야 하지 않는가, 사부님께서 감당하신 것과 그래도 좀 더 상응해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아주 오래 전에 한 수련생이 꾼 꿈이 생각났다. 사부님께서는 그에게 대궁(大穹) 말겁의 현세에 사람을 구도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나타내 보이셨다. 그는 사부님께서 법을 전하기 시작했을 때 한번은 그가 사부님을 따라 설법장에 갔는데 법을 들으려는 사람들이 많이는 호기심으로 유명인을 보려 하거나, 구경하려는 마음을 품었고 좀 괜찮다는 사람들도 사부님 앞에 가까이 가려고 서로 다투어 앞으로 밀치는 것을 보았다. 사람들은 격렬하게 밀치면서 사부님마저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게 되셨다 사부님께서는 묵묵히 이 모든 것을 보고 계셨는데 그는 당시 마음이 몹시 괴로웠다. 갑자기 앞으로 확 밀리는 힘에 쏠려 사부님께서 넘어지셨다. 사부님께서는 여전히 묵묵한 태도로 천천히 일어나셨다. 그때 그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울음을 터뜨리면서 땅에 쓰러져 사부님한테 기어가 사부님을 부축해드리려 했다.

나는 사부님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나는 당신들만 위해서가 아니라, 나는 모든 생명을 위하여 온갖 걱정을 다하였으며 나는 모든 생명을 위하여 거의 나의 일체를 소모하였다.”(『스위스 법회에서의 설법』)

“이 천지개벽에도 다 없었던 가없이 넓고 큰 자비와 부처의 은혜(佛恩浩蕩) 하에서도 잘 하지 못한다면 어찌 또 다음 한 차례 기회가 있을 수 있겠는가?”(『정법시기 대법제자』)

여기까지 생각하자 나는 무릎을 꿇고 싶어졌다. 분발하지 못하고 충분히 잘하지 못한 우리 모두를 대신해서, 심지어 스스로 괜찮다고 여기고 있는 모든 동수들을 대신해 사부님께 참회 드리고 싶다. “사부님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저희를 용서해 주십시오. 저희는 다시 정진할 것이며 진정으로 자신을 순정(純正)하게 하여 반드시 이 대법제자란 칭호에 부합되게 하여 사부님을 기쁘게 해드리겠습니다!”

문장발표 : 2007년5월3일
분장분류 : 【수련마당】
문장위치 : http://minghui.org/mh/articles/2007/5/3/15398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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