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사(私)를 제거하고 원만으로 나가자

글/대륙대법제자

【명혜망 2007년 4월 12일】 낡은 세력은 왜 나타났는가? 사악의 박해는 왜 발생했고 또한 지금까지 7년이 넘도록 끝나지 않고 있는가? 우리 매 대법제자들은 모두 진지하게 마음을 조용히 하고 그 근본적인 원인을 생각해보았는가?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사(私)를 위하는 것은 과거 우주의 근본속성 이었는바, 성주괴멸(成住壞滅) 생로병사(生老病死)도 이 속성이 가져 온 필연성이었다. 장래의 법은 원용(圓容)한 것이고 공(公)을 위하는 것으로, 우주의 근본속성이 개변됨으로써, 우주의 과정생명의 특징(特点)으로 하여금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게 했다.”(『2004년 미국서부법회에서의 설법』)

‘사를 위한[爲私]’ 이 근본속성의 작용으로 인해 낡은 우주는 필연적으로 일정한 시기에 멸(滅)로 나가고 해체로 나가게 된다. 그러나 우주 중생은 모두 살고자 하는 본능이 있고 모두 복멸(覆滅)을 원하지 않는다. 이에 낡은 세력과 낡은 세력이 안배한 이번 마난(魔難)이 나타났고 이것이 소위 자구(自救)방법이었다. 그러나 ‘사를 위한’ 이 근본 속성은 매 하나의 생명의 일체 속에 스며들어 있고 낡은 세력도 예외가 아니다. 낡은 세력이 사심(私心)의 작용 하에서 생각해낸 방법은 우주를 원용(圓容)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우주 궁체(穹體)의 해체를 가속화시켰다. 특히 한 생명이 생사존망(生死存亡)에 자신을 구하려 할 때 이 사(私)는 더욱 철저하고 자세하게 표현된다. 낡은 세력은 그것들 자신을 구하고 그것들이 남기려고 하는 것을 남기기 위해, 대법제자들의 제고를 돕는다는 구실로 대법제자들에 대해 물샐 틈 없이 전면적인 고험을 진행했다. 나중에는 심지어 낡은 우주의 법마저도 준수하지 않게 되었고 대법제자들에 대한 학살을 진행했다. 낡은 최후의 요소 역시 자신의 관념 때문에 이 소위 고험을 유지하고 있다. 이런 생명과 요소들은 모두 정법과 전체 우주 중생을 구도한다는 기점에 서서 자신의 행위를 가늠하지 않았다.

이 ‘사를 위한’ 속성은 속인 중에서도 다양하게 표현되며 시시각각 도처에서 표현된다. 사적인 이익을 위해서라면 육친도 몰라보고 친인이나 친지를 속이며 쟁투가 끊이지 않는다. 심지어 살인방화, 돈으로 목숨을 사며 온갖 악한 짓을 저지지 않는 것이 없다. 인류의 일체 추악함은 모두 이 사(私)에서 내원한 것이다.

대법제자의 수련은 낡은 우주 중에서 탈피해 나오는 것이기에 층층의 신체 속에도 모두 이런 ‘사를 위한’ 속성이 스며들어가 있고 수련 중에서도 늘 사상과 행위 중에 표현되어 나온다. 아울러 낡은 세력이 안배한 수많은 고험도 사상 중에 강제로 더해져 대법제자로 하여금 사상 중에서 이번 박해를 승인하게 하며, 이를 통해 낡은 세력이 안배한 길로 걸어가게 한다. ‘사를 위한’ 이런 표현의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1999년 ‘7.20’ 이후 일부 수련생들은 자신의 원만을 위해 북경에 가서 상방했다.
▶간수소, 노교소에서 사악의 박해를 승인하고 자신이 감당했다고 여기며 자신의 층차가 제고되었다고 여기고 대단하다고 여기며 희희낙락했다.
▶감당하지 못한 사람은 고개를 숙이고 의기소침해진다.
▶박해받는 것이 두려워 나와서 진상을 알리지 못한다.
▶일에 부딪히면 당신이 옳은지 내가 옳은지 다투길 좋아한다(쟁투심).
▶다른 사람이 수련을 잘한 것을 부러워하거나 질투한다.
▶자신은 수련을 잘했고 두려움이 없다고 여기면서 자신의 안전을 고려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의 안전도 고려하지 않는다.
▶혹은 다른 사람의 수련 층차와 정황을 고려하지 않고 강제로 다른 사람에게 자신과 똑같이 행동하기를 요구한다.
▶자신의 의견을 고집하고 다른 사람의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일을 하느라 바쁘고 일을 하려는 마음이 아주 강한데, 자신이 한 일은 공헌이 커서 원만할 수 있다고 여기며, 일을 하는 것과 법공부, 마음수련을 하나로 연계하지 않는다. 대법제자는 마음을 닦아 원만 하는 것이지 일을 해서 원만 하는 것이 아님을 망각했다.
▶안일을 구하고 귀찮은 일을 두려워하며 무슨 일을 할 때 늘 지름길로 가려고 한다.
▶이번 박해가 언제 끝날지 집착하는 등등이다.

이런 집착들을 깊이 파보면 모두 이 ‘사를 위하는’ 속성에서 내원한다. 이 사를 제때에 주의하여 닦아버리지 않으면 낡은 세력이 틈을 타게 하여 수많은 참혹하고 침통한 손실을 조성하게 된다.

사부님께서는 최근 설법 중에서 우리더러 안을 향해 찾고 각종 부족한 곳을 찾을 것을 강조하셨다. 근본 상에서 보자면 곧 우리는 ‘사를 위한’ 이런 것을 닦아 버려야 하며 무사무아(無私無我) 선타후아(先他後我)의 정각(正覺)을 수련 성취해야 하지 않겠는가? 만약 우리가 모두 사심(私心)이 없다면 우리 동수들 사이에 또는 속인과의 사이에 아무런 모순도 없지 않겠는가?

중국에는 ‘사심잡념(私心雜念)’이란 명사가 있다. 이전에 이 명사의 내포에 대해 자세히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이 말의 함의가 아주 깊다. 사심이 있게 되면 필연적으로 잡념이 생기게 마련이며 잡념이 있으면 필연적으로 또 사심이 생기기 마련이다. 이 ‘사’는 우리 일사일념 중에 섞여 들어가 만약 우리가 수련에서 자신의 일사일념이 바른지 바르지 않은지, 대법에 부합하는지 부합하지 않는지 주의하지 않는다면 곧 제때에 이 사(私)를 제거하기란 아주 어렵다. 최근 몇몇 대법제자들이 쓴 문장에서도 자신의 일사일념을 수련하는데 주의하라고 했다. 나도 최근에 이런 문제와 이런 현상을 발견했는데, 자신의 일사일념 중에서 좋지 않은 염두의 그 근본 뿌리는 바로 이 ‘사’였다. 정법은 곧 결속에 이르게 되며, 다시 말해 우리가 마땅히 철저하게 ‘사’를 닦아버릴 때가 되었다.

이 ‘사’는 우리에게 용관(容貫)되어 있고 우리가 여전히 매 한 층의 신체, 매 하나의 세포, 매 하나의 일사일념 중에서 잘 수련하지 못하고, 만약 우리가 매일 진지하게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공부를 하지 못한다면 순식간에 지나가버리는 사념(私念)을 잡아내기란 아주 어렵다. 그러나 그렇다고 너무 극단으로 가지는 말아야 하며 지나치게 자신의 일사일념에 주의하여 지나치게 긴장해서도 안 된다. 단지 자신이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을 학습하기만 하면 사부님의 법신께서 자연히 점화해주실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오스트레일리아 법회에게』에서 특히 법학습의 중요성을 지적하셨다.

한 대법제자가 천목으로 본 것에 의하면 모두들 진지하게 법학습을 잘하고 인식이 제고되기만 하면 뭇 정신(正神)들이 순식간에 대응되는 사악을 없애버린다고 한다. 법학습 제고의 중요성을 볼 수 있다.

만약 대법제자들이 모두 자신의 사심을 제때에 닦아버리고 정념을 발하면 사상이 곧 청정(淸淨)해지고 위력이 아주 클 것이다. 私를 닦아버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가히 알 수 있다.

문장발표 : 2007년 4월 12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7/4/12/152539p.html

ⓒ 2024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