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대륙대법제자 심정(心静)
【명혜망 2007년 4월 4일】 동수 및 협조인과의 교류 가운데서 ‘7.20’ 이전에 법을 얻은 일부 수련생들이 ‘병업’ 상태에 처해 있는데 대해 말했다. 그들 중 어떤 이들은 집에서 견지하고 있고 어떤 이들은 병원에 가며 어떤 이들은 인신(人身)을 잃었다. 이에 우리 지역에서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일에 심각한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더욱 한심한 것은 그들의 작법이 일부 동수들 가운데 시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가슴 아픈 가운데 갑자기 놀라 깨어났다. 이것은 바로 자신이 최근에 정진하지 못하는 상태가 발전하여 내려간 결과가 아닌가? 그리하여 이 문장을 써서 자신과 또 ‘병업’속에서 허덕이고 있는 동수들에게 주고자 한다.
최근 한 시기 자신에게 소침(消沉)한 상태가 나타났다. 우선 법공부로부터 시작했다. 질과 양을 보장하지 못하던 데로부터 시간을 보장하지 못하게 되었으며 마음속에 법이 없는 그런 마비와 나태가 앞길을 가로 막았다. 닦아버리지 못한 집착과 후천적으로 형성된 관념이 사령, 난잡한 신, 썩은 귀신에 의해 강화된 후 자신의 주의식은 강하지 못했고 정념이 부족했다. 자신을 반성해 보면 아주 많은 일에 대한 인식에서 정념도 있고 법에 있었지만 관건은 정행(正行)과 꾸준한 견지가 없었다. 사람의 타성과 안일을 추구하는 마음, 일을 하려는 마음, 과시심, 두려운 마음, 색욕에 대한 마음 등이 자신의 사상을 교란하여 최후일수록 더욱 정진함을 해내지 못했다. 문제의 근원은 법공부를 늦춘데 있었다. 고층차에서 법의 지도가 없이 어찌 정행이 있을 수 있으며, 정법노정을 따라갈 수 있겠는가. 더욱이 수련환경이 느슨한 조건하에서 자신에 대한 요구를 늦추자 사악한 생명은 자신이 닦아 버리지 않은 타성, 색욕 등 가장 더러운 물질과 집착을 커지게 했는데 목적은 대법제자의 정진하려는 의지를 훼멸하려는 것이다.
만약 세 가지 일을 사업으로 여기고 완성하려 하거나 또는 여전히 개인의 수련상태로 여기고 수련한다면 더욱 위험하며 정법시기 대법제자의 사명과 책임과는 현격한 격차가 있는 것이니 어찌 교란과 박해를 받지 않을 수 있겠는가. 수련생이 ‘병업’ 고비에서 끊임없이 ‘수련’하지만 세 가지 일은 잘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세 가지 일을 하지 않는 것을 보면 참으로 조급하다. 사악한 생명이 법 인식이 부족한 동수들의 빈틈을 타는 것을 허락할 수 없다. 낡은 세력은 바로 정법을 돕는다는 구실로 그것들이 보기에 불합격한 대법제자를 도태시키고 있지 않는가? 그런데 ‘병업’이 엄중한 동수들에게는 정도는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아래와 같은 문제들이 존재한다.
1) 사람마음이 중하고 사람마음으로 수련중의 일을 대하고 처리하며 법에서 법을 인식하지 못한다.
2) 법공부를 적게 하여 기초가 부실하다. 특히 정법 수련의 법리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
3) 안을 향해 닦음이 적고 표면적으로는 아주 많은 일을 하지만 자신을 닦지 않으며 제때에 씬씽을 제고하지 않는다.
4) 수련이 성숙되지 못했다. 외부 및 사회 환경의 좋고 나쁨에 따라 파동이 일어난다.
5) 사부님과 법에 대해 확고하지 못하며 박해에 직면하면 관을 넘기는 것으로 여기면서 낡은 세력이 배치한 길로 간다.
정법은 이미 최후에 이르렀고 우리에 대한 법의 요구는 전면적이고도 엄숙하며 갈수록 높다. 또한 수련하자면 갈수록 간단한데 즉, 모든 것이 다 세 가지 일 가운데 있다. 오직 마음속에 법을 간직하고 우리의 일사일념을 모두 법으로 가늠하고 사고하며 일하면서, 법속에 완전히 용해된 생명이 되며 또한 속인사회 상태에 부합한다면 그야말로 신이 세상에 있는 것으로 하지 못할 일이 없을 것이다. 현재 정법을 교란하고 있으나 아직 도태되지 않은 모든 생명, 썩은 귀신, 사령은 모두 표면 공간으로 도망갔다. 그것들은 이곳에 원래 있었던 낡은 요소와 사악한 생명과 함께 박해하면서 최후의 발악을 하고 있다. 겉으로는 미친 날뛰고 사악하지만 내심으로는 극도로 두려워하며 절망을 느끼고 있다. 그것들은 대법제자의 신념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다. 금빛 찬란한 대법제자 앞에서 그것들은 이미 도망갈 곳이 없게 되었으며 남은 것은 오직 훼멸뿐이다. 이것이 바로 대법제자의 책임이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각종 집착심을 품고 내려놓지 못하며 커다란 보따리를 끌고 가면서 사람마음으로 법과 수련을 대하는 대법제자들은 그것들이 존재할 공간과 구실을 제공해 주고 있으며 또한 그것들이 박해할 구실을 주었다. 이것은 대법제자에 대한 박해일 뿐만 아니라 또한 세인과 중생에 대한 박해이다. 그런데 이 일체를 조성한 것은 확실히 우리 자신에게 원인이 있으며 여기에는 개인적인 것도 있고 정체적인 것도 있다. 우리가 매번 사상 속에서 법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일념을 놓쳐버릴 때 그 일념이 대응하는 공간 층차 중의 생명이 우리의 느슨함으로 인해 도태됨을 생각해 보았는가? 우리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닌가?
우리가 돌아갈 때 어떻게 이 일체를 대하겠는가! 사부님의 정법지세는 손만 내밀면 닿을 정도로 아주 가까이 다가왔다. 우리 모든 대법제자들이 신의 정념으로 매 하나의 일을 잘하고 원만하여 사부님을 따라 돌아가길 바란다.
문장발표 : 2007년 4월 4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minghui.org/mh/articles/2007/4/4/15215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