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대륙 대법제자 위안밍(元明)
[명혜망 2007년 3월22일] 나는 법을 실증하는 초기의 한 시기 동안, 동수들이 간고한 환경에서 가져온 ‘명혜주간’을 거의 받지도 않았고 보지도 않았다. 잘못된 인식으로 인하여, 집에서 몰래 책을 보면 된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많은 동수들이 걸어나와 법을 실증하고, 진상을 알리는 위대한 역사 장거에 대해 이해하기 힘들었고, 사부님의 정법 노정에 따른다고는 더욱 말할 수가 없었다.
근처에 사는 한 노년수련생은 내가 꾸물거리면서 정진하지 못하는 장애를 보고 마음속으로 조급해 하면서 여러 번 나를 찾아와 교류했으며 또 매 기의 명혜주간도 가져왔다. 이렇게 주간을 읽고 전세계 대법제자와 용해하는 교류중에서, 나는 눈앞이 넓어졌고 씬씽(心性)도 제고되었다. 북경으로 가 법을 실증하는 것에서부터 나중에 세 가지 일을 하기에 이르기까지 모두 주동적으로, 이지적으로, 청성하게 하게 되었다.
내가 매 기의 명혜주간을 읽으려고 갈망하고 있을 때, 계속 나에게 주간을 전해주던 수련생이 갑자기 사악의 마귀 소굴에 떨어지게 되었다. 이리하여 주간을 보던 경로가 단번에 사악으로 인해 끊어지게 되었다. 이때 나는 철저히 깨우쳤다. 사부님께서는 일찍이 자료점이 도처에 꽃이 피게 하라고 요구하셨는데, 나는 했는가? 법에서 우리에게 정체적으로 제고하고 정체적으로 승화하라고 하셨는데, 나는 얼마나 했는가? 동수들이 박해당한 것이 자신의 정진하지 못한 것과 관계가 없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사부님의 정법 노정에 따라가지 못하고 방해했는데, 어찌 사부님을 도와 정법을 한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나는 오랫동안 마음속에 깊이 숨어있는 방관, 냉담, 마비, 이기적인 마음, 두려운 마음, 그리고 안일한 마음을 한 손에 잡은 것 같았다.
사부님의 자비하신 보호 하에 자료점은 아주 빨리 세워졌고 동수들은 또 주간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주간을 전혀보지 않던 것에서부터 주간을 읽고, 주간을 제작하게 되는 전체 과정에서 깊은 체험이 있다. 아래 그 중 몇 가지에 대하여 동수들과(특히는 신수련생들과) 교류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나는 아직도 어떤 동수들이 주간에 대하여 중시하지 않는 것을 보았기 때문인데, 마음이 아주 조급하다.
1. 수련인의 심태로 ‘명혜주간’을 정시하자. ‘명혜주간’ 이 네 글자는 사부님께서 친필로 제목을 지으셨다. 이것은 정법의 특수한 시기에 사부님께서 자비로 창립하시고 우리에게 남겨주신 중요한 교류 형식이라고 볼 수 있다. 대법제자 지금 단계에서 어떻게 굽은 길을 적게 걷고, 손실을 덜을 수 있고 세 가지 일을 더욱 잘할 수 있는가에 대하여 우리는 명혜주간이 이끄는 작용을 홀시할 수 없고 낮게 평가할 수 없다. 게다가 사부님께서는 일찍이 중대한 문제는 명혜망의 태도를 보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정법시기 대법제자로서 정법 노정에 따라가야 하고, 이에 대해 경시하거나 마비되지 말야야 하며, 심지어 명혜주간을 받지도 않고 보지도 않으면 안 된다.
2. 매 주기 ‘명혜주간’의 문장들은 모두 편집부 동수들이 사부님의 정법 노정에 바짝 따라가면서 세계 각 지역 명혜에서 수집해 온 대량의 원고 중에서 적시적절하고도 전체적으로 파악하고 장악하여 선정한 것이다. 그들은 법에 대한 책임, 동수에 대한 책임, 자신의 심태에 책임지는 것에 입각하여 부동한 방면에서 부동한 각도에서 심혈을 기울여 하나 하나의 부동한 내포의 문장을 추려 편집한 것이다. 몇 년 동안, 형식에서부터 내용까지 명혜주간의 완전함과 정연성은 동수들이 이미 모두 인정하였으며 또한 깊은 체험도 있다.
3. 사악이 함부로 잔학한 짓을 자행하는 중국 대륙에서 ‘명혜주간’은 편집에서부터 제작까지(설비, 필요한 재료, 다운로드, 인쇄, 복사 등)의 과정에서 대법제자들이 똑같이 사심없이 지불한 대량의 심혈을 응집하여 제작된다. 많은 동수들은 이에 의해 납치되고, 구타당하고, 판결 받고, 벌금을 내고, 유리실소되고, 심지어는 생명까지 잃게 되었다. 사악은 명혜망에 대해 극도로 두려워하고 파괴하면서 ‘명혜주간’의 인쇄와 돌려 읽는 것을 가로막고 있다. ‘명혜주간’은 우주 정법에서 대법제자들이 정법 수련의 방방면면에서 더욱더 광범위하고 심각하고 거대한 정면적인 영향을 일으켰다고 볼 수 있다.
4. ‘명혜주간’을 읽는 것은 우리의 현재 수련 환경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부분이 되었다. 매 주기 ‘명혜주간’을 읽는 과정은 실질적으로 바로 동수들을 대면하지 않는 상태에서 진행되는 ‘대법제자 교류회’이다. 나는 주간을 읽을 때, 그 중에서 여러 번 체험한 바, 동수들의 사심없는 심득으로부터 부동한 경지의 법리에 대한 인식이 펼쳐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또한 그 중에서 자신의 정법 수련 중의 부족한 부분과 격차를 찾게 되었고, 배움을 비기고 수련을 비기는 중에서 정진하게끔 했으며 되도록 빨리 자신의 부족함을 바로잡게끔 했다. 변이는 바로잡힐 수 있었고, 법리에 대한 인식도 제고되었고, 경지도 승화되었다.
물론, 만약 조건이 있다면 직접 명혜망을 보는 것이 가장 좋다. 왜냐하면 주간의 편폭은 아주 한계가 있고 수록한 내용은 단지 ‘매일명혜’와 ‘매주명혜’ 중에서 아주 적은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개인의 약간의 인식이니 동수들이 자비로 지적해주기 바란다.
문장완성 : 2007년 3월20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minghui.ca/mh/articles/2007/3/22/15119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