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대륙 대법제자 츠왠
【명혜망 2007년 3월17일】나는 사당(邪党) 악경들에게 여러차례 박해를 받은 한 노(老年) 대법제자이다. 나는 자신이 진상한 경험 몇 가지를 이야기하려 한다. 희망하건대 기타 동수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부당한 곳이 있으면 지적해주기 바란다.
1. 정정당당하게 경찰서에 가 진상을 하고 호적을 올리다
2001년 초여름, 나는 북경에 가서 대법을 실증하다가 불법(不法)적으로 노동교양소에서 박해를 받았다. 나온 후, 남편은 나를 도와 호적을 옮기려고 하였다. 경찰서에서는 본인의 신분증이 있어야 하며 또한 본인이 신청을 제기해야 하고 또 단위(单位)의 도장 등등을 요구하였다. 남편은 아주 조급해 하였다. 나는 말하였다. “조급해 하지 말아요. 내가 가서 호적을 올릴께요.” 나는 이것은 바로 내가 진상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였다. 나는 나의 호적을 올리는 일을 하는 경찰과 많은 사람들에게 대법이 박해 받은 진상을 말하며 그들에게 호적을 올려달라고 하였다. 그 경찰은 나의 말을 들은 후에 말하였다. “무슨 증명이 필요하면 경찰서에 와서 하세요. 파룬궁이 좋고 나쁨은 우리는 평론하지 않아요.”
나는 다시 경찰서로 갔는데, 또 본인의 신분증을 요구하고 본인이 신청하고 단위의 도장이 있어야 했다. 나는 또 단위로 가서 나의 정황을 말하니 그들은 모두 나를 위하여 괴로워하였다. 그것은 나는 단위에서 공인하는 좋은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신청서를 잘 작성하여 사무원에게 도장을 찍어달라고 하였다. 그는 내가 쓴, ‘진선인(眞善忍)을 신앙하여 파룬궁을 수련하여 노동교양을 받았고 지금은 풀려나와 생활을 위해 호적을 올리려 한다.’는 요구 사항을 보고 웃으면서 말하였다. “당신이 이렇게 작성하면 올릴 수가 없어요. 제가 당신을 도와 하나 써 드릴께요.” 나는 감사하다고 하면서 말하였다. “내가 쓴 것은 모두 사실이예요,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그는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나를 도와 예비로 하나를 써 주었다. 나는 다시 경찰서로 와서 신청서와 사진을 한 여경에게 주었다. 그는 신청서를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나의 사진을 보고 화를 내기 시작하였다. 왜 경찰서에 와 찍지 않았느냐고 하면서 밖에서 찍으면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나는 인내심을 가지고 그에게 말하였다. “사진은 말도 말아. 나는 밥 먹을 돈도 없어. 파룬궁을 수련하기 때문에 좋은 사람이 되었는데 지금까지 계속하여 직장에서는 나의 퇴직금을 지급하지도 않았어.” 그의 태도는 즉시 좋아지더니 나에게 소장 반공실로 가 나의 정황을 설명하라고 하였다. 나는 진상을 하여 그를 구도하려는 마음으로 소장 반공실에 갔다. 나는 그들에게 공산당 관원들의 탐오 부패, 역사이래 사람을 괴롭혔는 운동들, 문화대혁명에서부터 파룬궁박해, 천안문 분신자살 가짜사건에 이르기까지 그는 모두 열심히 듣고 있었다. 어떤때는 문제를 제기하였다. 나는 묻기만 하면 대답을 하였다. 사부님께서 나에게 지혜를 가지해 주시어 전면적이고도 성공적으로 말하였다. 마지막에 소장은 말하였다. “큰어머니, 어머니는 손실도 보았고 고통도 당하였으니 꼭 건강에 주의하세요.”
소장은 친히 내려와 나를 위해 호적을 올려 주었다. 몇 명의 젊은 여경찰들은 소장이 나를 위해 친히 호적을 올리는 것을 보고 나에게 특별히 친절하게 대한다고 하면서 또 묻기도 하였다. “큰어머니, 파룬궁 수련하는 사람들은 배안에 파룬이 있다는데 정말인가요?” 나는 진짜라고 말하였다. “파룬(法輪)은 영성이 있고 또한 살아있으며 그가 정면으로 아홉번 돌때는 우주 중의 에네지를 흡수하고 또 반대로 9번 돌때는 신체 안의 페기물을 내보내고 사람의 몸을 조절하여 준다. 나는 원래 오랫동안 병자였는데 연공한 후 약 한 알도 먹지 않았는데 병이 다 낳았다. 우리 연공은 비용을 받지 않고 이름도 적지 않으며 당신이 오직 수련인의 표준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면 곧 이러한 정도에 도달할 수 있다.” 그들은 모두 열심히 들으며 매우 신기해하였다. 소장은 나를 도와 처리한 후 수속비도 받지 않고 50전의 원가비만 받았다. 갈 때 그는 나에게 주소를 물어보았으며 나는 그들에게 그들이 우리 집에 손님으로 오는 것을 환영한다고 알려주었다.
여기에서 나는 이와 유사한 정황이 있는 수련생은 현지의 정황에 따라 이지적으로 호적을 올리는 기회를 이용하여 진상을 알려 더욱 많은 인연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진상을 똑똑히 알 수 있도록 하기를 바란다.
2. 정념정행으로 봉급을 달라고 하였으며 진상을 알려 세인을 구도하다
이것은 2년 전에 있었던 일이다. 내가 박해를 받아 다섯 번째로 불법(不法)적인 노동교양을 받게 되어 간수소를 나올 때 나는 여전히 경찰에게 진상을 말했고, 그들의 신체건강과 가정의 행복을 축원했다. 후에는 또 나를 노동교양소로 보낸 국보인원들에게 “우리들은 진선인(眞善忍)을 신앙하고 파룬궁을 수련하며 신체를 건강히 하는데, 왜 죄없는 우리가 노동교양 판결을 받아야 하는가?”라고 하였다. 그들은 그저 웃기만 하였다. 의미는 당신이 아무리 뭐라고 해도 이미 판결을 받아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것이다. 노동교양소 문앞에 이르렀을 때 나는 사인(sign)을 하지 않았다. 나는 사람을 죽이지 않았고, 불을 지른 적도 없으며 아무런 나쁜 일을 한 적이 없고, 나는 오로지 진선인(眞善忍)의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당신들이 여러 번 나를 박해하고 불법적으로 집을 수색하고 불법적으로 노동교양을 시키고, 나를 집이 있어도 가지 못하게 했지만 나는 여전히 아무런 원망과 증오도 없이 당신들을 친인(親人)으로 여기는데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을 제외하고 누가 이렇게 할 수 있겠는가?
노동교양소의 경찰은 들은 후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나도 사인을 하지 않았다. 신체검사를 할 때 나는 노동교양소는 내가 있을 곳이 아니며, 얼마나 되는 중생들이 내가 제도하기를 기다리겠는가 하고 생각하였다. 나는 발정념을 하면서 사부님께서 가지해달라고 하였다. 검사 결과 생명에 위험이 있어 노동교양소에서는 받을 수 없고, 후에 노동교양소외 집행이라고 하였다.
당시 몇 달치 월급을 나에게 지급하지 않았다. 나는 이번 기회를 이용하여 단위의 인원들에게 진상을 알렸다. 나는 먼저 본 공장에 가서 주요한 책임자들을 찾아 말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수위는 그들이 없으니 나더러 신방(信访) 반공실을 찾아가라고 하였다. 나는 거기로 가서 몇 사람을 찾았다. 처음에는 말하면서 나와 쟁론이 있었다. 마지막에 그들은 나에게 말하기를 우리가 고발하지 않겠으니 당신은 다른 곳으로 가서 물어보라고 하였다. 며칠동안 나는 분공장, 차간, 공회, 여공퇴직관리처, 각과실, 공안국, 변호사 사무소, 또 내가 아는 친구, 동료들, 친척들을 찾아가 진상을 알렸다. 퇴직금을 받는게 목적이 아니고 이 기회를 빌어 박해를 폭로하고 전면적으로 강마두의 경제상의 박해를 부정하는 것이었다.
장시간 동안 진상을 알리고 세인을 구도한기 시작한 지 반 년이 지난 후, 나는 1전도 부족하지 않게 봉급을 모두 받게 되었다. 알리는 과정은 그렇게 순풍에 돛단 듯이 순조로왔던 것만은 아니었다. 알린 후 어떤 때는 두려운 마음이 생겼고 또 박해를 받을까바 무서웠다. 염두가 나오면 즉시 부정해 버렸다. 이와 유사한 정황에서 동수들은 두려워하지 말고 더욱 힘써 진상을 알리고 기층으로부터 성(省)과 시(市)에도 서면자료로 각급 부문에 해결해줄 것을 요구할 수 있다. 내가 아는 한 동수도 성(省), 시(市) 공안국, 부녀연합회에 진상을 알릴 때 서면자료를 써서 직접 박해하는 유관 책임자를 보게 되면 전해주었는데, 효과가 아주 좋았다.
3. 중생을 구도할 때 빈부, 등급, 직위의 높고 낮음과 성시향촌(省市鄕寸)을 따지지 않는다
몇 년 동안 나는 내가 만나는 사람이면 모두 응당 구도해야 할 중생이라고 생각하였다. 박해를 받을 때, 나는 나를 박해하는 경찰들에게 진상을 하였다. 나를 강제적으로 세뇌 전화할 때, 나는 각급 지도자들 및 유관부문에 진상을 하였다. 매번 명절날이나 어느 집에 잔치가 있거나 평소에 물건을 구매할 때에도, 채소를 살 때에도 모두 진상을 하는 좋은 기회였다. 어떤 알지 못하는 사람들, 예를 들면, 노무자, 폐지를 회수하는 사람, 쓰레기를 줍는 사람, 동냥을 하는 사람, 돈을 구걸하는 사람, 특수한 정황을 제외하고는 나는 모두 말했으며 어떤 한 명의 중생이라도 구도할 기회를 놓지 않았다.
진상을 알릴 때 수위에게 가서 자신을 소개하면서, 나는 파룬궁을 수련하는데 몇 달 동안 퇴직금을 받지 못하여 지도자를 찾아가 해결하려고 한다고 하였다. 나는 일반적으로 출근시간 한 시간 먼저 지도자가 출근하지 않은 틈을 타 수위에게 단독적으로 세심하게 알렸는데, 효과가 더욱 좋았다.
한 번은 공안국에 갔는데, 한 수위가 나에게 누구를 찾아왔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에게 나는 파룬궁을 하는데 일이 있어 국가 보안대대의 지도자를 찾는다고 하였다. 그는 나에게 아주 예의있게 경례를 하였다. 여러 번 가니 나는 그들과 친구가 되었다. 당연히 어떤 수위는 당신이 그에게 파룬궁을 한다고 알려줄 때 그는 겁나서 우물거린다. 틀림없이 배후의 사악 요소가 그를 제압하고 있는 것이다. 그에게 발정념을 하였더니 나갈 때는 공손하였다. 그리고 집에 있는, 농촌에 있는 동수들은 시간을 다그치어 당신들의 농촌 사람, 고향 사람들을 구도해야 한다. 농촌 사람들은 단순하고 선량하고 소박하며 아주 많은 사람들이 신불(神佛)을 믿는다. 그러나 아주 많은 사람들은 시간과 기회가 없어 외부를 접촉하지 못하여 소식을 알지 못한다. 우리 농촌에 있는 동수들은 책임있고 의무감 있는 자세로 그들을 구해야 하며 사존의 중대한 부탁, 중생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말아야 한다.
이상은 나의 수련과정 중에서의 경력과 인식이지만 사부님의 요구와는 아직도 거리가 멀다.
원문위치 : http://search.minghui.org/mh/articles/2007/3/17/15096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