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루난(陸南해외)
【명혜망 2007년 3월 7일】정법 수련은 이미 마무리에 달했고 우리는 속인 중에서 생활하고 일하고 박해에 반대하고 진상을 알린 지 거의 8년이 되어간다. 비록 수련의 정도는 낡은 세력의 각 방면의 교란을 받아 법의 요구에 진정하게 도달하지 못했고, 정진하는 때에도 아주 많이는 낡은 세력의 배치에서 정진하면서 줄곧 법속에서 정진하지 못했기 때문에 전반 시간에서 보면 우리는 박해에 반대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중에 잘 하지 못했고 더욱이 뜻대로 하지 못했다. 그러나 수련인은 도대체 속인과 무슨 구별이 있는가? 우리는 법의 기본요구에 따라 했는가?
대법제자가 문제를 봄에 있어 먼저 법의 요구와 사부님 정법의 수요를 고려해야 한다. 어떠한 일이 발생하든지 어떠한 곤난이 있든지, 모두 머뭇거림 없이 사부님과 같은 편에 서는 것을 선택해야 한다. 특히 老수련생은 이를 해낼 수 있어야 한다. 만약 우리가 개인의 다른 수요와 속인 중의 것을 사부님의 정법의 수요보다 더욱 중하게 본다면, 만약 우리가 곤난 앞에서 먼저 곤난과 개인의 흥미를 가늠하고서 다시 사부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을 해야겠다고 결정하거나 혹은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신 한 가지 일을 할 때 곤난이 있거나 혹은 개인의 흥미 때문에 개인 관점 때문에 우리가 망설이며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것으로 간주하며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것을 한 켠에 놓는다면 종종 인위적으로 각종 교란을 초래할 수 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구별이 있는데 속인이 문제를 볼 때는 표면을 보고 표상을 보고 외부적인 표현과 득실을 중요시한다. 그러나 대법제자가 문제를 봄에 있어서는 실질을 보고 세간의 표상을 꿰뚫어보며 본질을 보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 모순과 저지력에 부딪힐 때 반드시 자신의 부족점을 찾고 자신의 불순함을 제거하고 자신의 관념을 내려놓는다면 매 모순과 고통은 천국세계로 돌아가는 하나의 계단으로 변한다. 세간의 짐과 혼탁함을 버리고 속인이 얻지 못하는 것을 얻으며 속인이 얻고자 해도 구할 수 없는 것을 달성하게 된다. 만약 정말로 해낼 수 있다면 대법 속에서 수련하면서 한 걸음에 어디 한 층 하늘뿐이겠는가! 만약 오늘날까지 수련하면서 여전히 속인의 사유방식으로 사물을 인식하고 세간의 향락, 득실, 명리, 고락, 난이도를 보는데 습관이 되어 있다면 하나 또 하나의 모순 속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매 모순 속에서 모두 오랫동안 지체되어 앞으로 나가지 못한다. 근본적으로 말하자면 이는 자신이 잘 수련하지 못해서 조성된 것이고 다른 사람과 외부의 요소에 의해 조성된 것이 아니다.
세번째는 더욱 깨어 있어야 하고 사(私)가 없어야 한다. 속인이 문제를 볼 때는 모두 자아, 자사(自私)의 기점에서 출발하지만 사부님께서는 대법제자가 ‘무사무아, 선타후아의 정각’을 수련해내길 요구하신다. 개인의 체험인데 무사무아(無私無我)는 개인의 득실과 보답을 따지지 않고 개인의 어느 단계에서의 인식과 관념에 집착하지 않음을 포함한다. 그리고 시시각각 정법의 큰 국면에서 시작하여 수련의 본질에서 문제를 고려하는 등등이다.
수련인들이 모두 알다시피 신과 사람은 문제를 봄에 있어 완전히 다르다. 그러나 수련한 지 오래되고 법을 실증하는 아주 많은 일을 한 동수들이 지금에 이르기까지 자신을 속인과 혼동하지 않을 수 있는가? 곳곳마다 자신을 책임지고 자기 세계의 중생을 위해 책임지며 사부님께서 구도하시려는 중생을 책임졌는가? 아니면 어차피 낡은 세력이 우리의 수련을 교란하니 우리로 하여금 신체 표면은 수련 층차와 함께 변화하지 못하게 하고 우리로 하여금 공능의 존재와 신통의 위력을 느끼지 못하게 하고 육안 밖의 진실을 보지 못하게 하니 오랫동안 일부 면에서 자신을 속인과 혼동하지는 않았는가? 법으로 엄격하게 자신을 요구했는가?
사부님의 신경문 《삼계 내에서 정법을 교란하는 데 참여한 일체 난잡한 신들을 전면적으로 해체시키자》를 읽으면서 많은 것을 생각해본다. 위에서 말한 이런 것들은 생각해 낸 일부분이다. 대법제자 속에서 늘 보는 현상이고 또한 자신의 수련에서 일상 중의 일부분이다. 자신의 정법 수련의 길을 되돌아보면 거의 8년간 걸어온 한 걸음 한 걸음 중에서 안정적인 제고와 본질적인 변화가 있었던 동시에 또 낡은 세력의 교란과 배치를 돌파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그리고 사부님의 요구에 도달하지 못한 때가 많았다. 근본적으로 말해서 자신을 줄곧 수련인으로 여기고 끝까지 나아가고 끝까지 정진하고 매 한 걸음 모두 정진을 선택하며 매 일마다 법속에서 수련하려고 선택하려고 했는가 하는 문제이다. 자신과 보다 많은 대법제자 동수들이 사부님의 신경문 《삼계 내에서 정법을 교란하는 데 참여한 일체 난잡한 신들을 전면적으로 해체시키자》의 위력을 빌려 더욱 이지적이고 청성하게 우리 수련에 대한 낡은 세력의 교란과 파괴를 돌파해야 한다. 중생을 구도하는 중에서 되돌아가는 신의 사상과 행위를 체현하야 하고 법의 위력을 체현해야 하며 진정으로 법속에서 정진하면서 이 방면에서 대법을 실증하는 것을 더 잘 해야 한다.
문장발표:2007년 3월 7일
문장분류:【수련마당】
원문위치: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7/3/7/150310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