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헤이룽장성 농촌 대법제자 심자(心慈)
【명혜망 2007년 1월 18일】 이 원고를 쓰기 이틀 전에 우리는 우리 마을에서 15리 정도 떨어진 이웃 마을에 가서 진상을 일리기로 결정했다. 저녁 식사 후 내가 두 수련생을 찾아갔을 때 그들은 이미 떠난 지 반시간이 더 넘었기에 나는 다급히 뒤쫓아 갔다. 전날 눈이 온데다 또 산길인지라 눈길을 달리자니 울퉁불퉁하고 발이 빠져 여간 힘들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것을 돌볼 사이도 없이 달리면서 발정념을 했다. 15리 산길을 70분 만에야 도착했다. 마을에 들어서자 얼마 안 되어 한 수련생을 찾았는데 그는 아직 자료를 다 배포하지 못했다. 나는 생각했다. ‘오직 한 부의 진상 자료를 배부하여 중생을 단 한 사람이라도 구도할 수 있다면 오늘 나는 헛걸음을 한 것이 아니다.’ 우리 둘은 함께 가지고 있던 자료를 모두 배포한 후 마을 밖에서 다른 한 수련생을 기다렸다. 아주 오래 걸려서야 그가 나왔다. 원래 그는 미행당했지만 나중에 미행을 겨우 따돌리고 순조롭게 위험에서 벗어난 후에야 우리를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
비록 큰일은 없었지만 우리는 안을 향해 찾아보는 가운데서 인식하게 되었다. 미행당한 수련생은 갓 이혼한 젊은이로 외지에서 품팔이를 하다가 막 돌아왔다. 몇 달 동안 법공부도, 연공도 하지 않았는데 속인의 이 큰 염색 항아리에서 수련인과의 차이가 갈수록 커졌지만 우리는 도리어 그를 도와주지 않았다. 단지 뒤에서 그를 말하며 비웃었다. 우리의 과시심이 얼마나 강한지 볼 수 있었다. 동시에 우리는 일을 할 때 협조하지 않았고 법공부도 잘하지 않았으며 정체적 협력도 잘 이뤄지지 못했다는 것을 찾아냈다. 우리는 대법제자이며 하나의 정체이다. 사악에게 우리를 박해할 그 어떤 조그마한 구실이라도 남겨 주어서는 안 된다. 반드시 원용불파(圓容不破)에 도달해야만 확고하여 무너뜨릴 수 없다. 반드시 법공부를 많이 하고 잘하며 발정념을 많이 하고, 정체 협조 관념을 강화해야만 비로소 세 가지 일을 더욱 잘할 수 있으며 최후 정법 수련의 길을 더욱 잘 걸어 갈 수 있다 .
집에 돌아오자 쾌청했던 날씨가 큰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우리의 몹시 뚜렷했던 발자국을 종적 없이 메워 버렸다. 이튿날은 또 날씨가 잠잠했다. 나는 그것은 눈 위에 우리 세 사람의 발자국만 있었기에 사부님께서 우리의 안전을 위해 우리를 도와 수련의 길에서의 일체 어려움을 쓸어주신 것임을 깨달았다. 사부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너무나도 많은 일을 하셨다. 우리가 걸어가는 매 한 발자국마다 모두 사부님의 알뜰한 보살핌 속에서 걸어온 것이다. 사부님의 자비하신 보호가 없다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또 무엇을 이뤄낼 수 있겠는가 ?
나는 농촌 대법제자로서 99년 초반에 운좋게 법을 얻었다. 7월 20일 대법이 박해를 당할 때 나는 두려운 마음으로 인해 수련을 중단했고 5년이란 시간을 그냥 흘려보냈다. 2005년 초반 사부님의 배치에 의해 대법 속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께서는 우리처럼 떨어지지도 않고 그렇다고 정진하지도 않는 동수들에게 무수한 기회를 주셨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셨다. 우리는 이 만고의 기연(機緣)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나는 시간이 아주 긴박하다는 것을 느꼈고 단숨에 전심전력을 다해 대법 속에 뛰어들었다. 나는 우리 마을의 수련생을 찾았고 또 모든 대법서적을 찾았다.
동수의 도움하에 나는 재빨리 제고되었다. 나는 그와 하나의 정체가 되어 진상을 알리든, 3퇴를 권유하든, 법공부 연공을 하든지 막론하고 우리는 언제나 함께 있었다. 우리는 즐겁게 3가지 일을 했고 정법 수련의 길을 확고하게 걸었다. 농촌에는 대법제자가 적은데 또 일부는 정진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집에 앉아 기다리고 의지할 것이 아니라 주동적이며 이지적으로 도시의 동수들, 협조인들과 연계를 맺어 자료를 얻어왔으며 도시와 농촌이 일체가 되었다. 만약 조건이 된다면 가장 좋기는 스스로 진상 자료를 만들어 농촌에서 곳곳에 꽃이 피게 하는 것을 실현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운반비용을 절약할 수 있고 사악의 교란도 덜 수 있다. 농촌에서 진상 자료를 만들고 배포하면 농촌 동수들은 도시 동수들보다 조건이 좋다. 우리는 주변 마을에 대해 비교적 익숙하며, 각 지역의 지리 환경과 풍토, 인정을 알고 있기에 하기 쉽고 중생도 놓치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옷차림도 눈에 띄지 않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주의도 일으키지 않을 것이며 차를 탈 필요도 없이 한 번에 두 사람이 나가면 족하니 빠르고 안전하다. 도시 동수들에게는 이런 장점이 없다. 그들이 농촌으로 한번 오자면 어쨌든 4,5명은 돼야 하고 차를 몰고 오지 않으면 차를 불러야 하니 목표가 크고 낭비다. 또 지리 환경에 익숙하지 못하여 보기만 하면 낯선 사람인 것이 드러나고 큰 짐을 지고 길을 가야 하니 그다지 안전하지 못하다, 물론 도시 동수들도 도시의 장점이 있다. 많은 농촌 사람들은 도시 사람들이 식견이 넓다고 여기기에 아마 그들이 말하는 진상을 더욱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자료를 배포할 때 보통 막 어둑어둑해 질 때를 선택하여 마을로 들어가는데, 눈에 뜨이지 않는 옷을 입으면 속인들이 보고도 별로 주의하지 않는다. 어떤 때는 아는 체를 하고 문안을 하고는 곧 간다. 물론 마을로 들어가는 것은 그때그때 현지 상황에 따라 결정해야지 똑같은 방법으로는 안 된다. 영활하게 응용하여 사악이 틈탈 기회를 주지 말아야 한다. 마을에 들어가기 전에 반드시 먼저 발정념을 하여 사부님의 가지를 청 한다. 오직 우리의 염두(念頭)가 순정하기만 하다면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악인에게 제보 당할지라도 길이 익숙하기에 얼마든지 안전하게 옮길 수 있다. 하지만 반드시 정체적으로 협조를 잘해야 한다.
한번은 이웃 마을에 가서 9평을 배포하기 위해 나는 다른 한 동수와 함께 해 지기 전에 출발하여 도착했을 때는 아직 날이 저물지 않아 마을 변두리에서 쉬고 있었다. 이때는 내가 두 번째로 자료를 배포하던 때라 좀 긴장한 상태였다(두려운 마음이 있었음). 때는 이른 봄이라 나는 낫을 가지고 갔는데 마치 땔나무를 하러 가는 모양 같아서 주의하는 사람이 없었다. 수련생은 나더러 마을 주위에 표어를 쓰라고 했고 그는 마을에 들어가 《9평》을 배포했다. 내가 표어를 다 쓰고 아무리 오래 기다려도 그가 나오지 않기에 나는 마을로 들어가 그를 찾았다. 사전에 모일 지점과 시간을 정하지 않았기에 결국 우리 둘은 서로 찾느라고 두 시간을 헤맸다. 마을에는 4미터 깊이의 큰 도랑이 있었는데 우리는 두 번이나 건너 뛰어다니느라 몸과 발에 온통 진흙 투성이였다. 나중에 사부님의 점화로 만날 수 있었다. 당시 수련생은 심하게 나를 비평했고 나의 부족점을 제출했지만 나는 화를 내지 않았고 평온한 마음으로 그와 교류 하면서 이번 실책의 원인을 찾고 또 내심 깊이 숨어 있던 일하려는 마음, 환희심과 두려워하는 마음 등을 찾아냈다. 아울러 법으로 가늠하고 그것을 바로잡아 명확히 해야만 중생구도를 더욱 잘할 수 있으며 사부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을 잘 걸어갈 수 있다.
지난 2년 동안 우리 주변 농촌 마을의 모든 길에는 우리가 중생을 구도하며 어렵게 수련한 발자취가 남겨진 것이 한번에 불과한 것이 아니며 몇 번인지 기억할 수도 없을 정도이다. 우리는 비바람을 무릅쓰고 땡볕을 이고, 찬바람을 맞으면서 한 장 한 장, 한부 한부씩 모든 대법제자들의 심혈을 포함한 축복을 가가호호에 보내주어 모든 사람들이 다 진상을 명백히 알고 모두에게 아름다운 미래가 있게 하였다. ‘3퇴’를 말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법공부를 많이 하고, 발정념을 많이 했으며 서로 협력하여 했다. 사부님의 가지와 대법의 지도하에 동수들과 경험을 교류하는데 계발 받으며 우리는 할수록 말을 더 잘했으며 두려운 마음도 적어졌고 ‘3퇴’하는 사람도 아주 많아졌다.
문장발표 : 2007년 1월 18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minghui.org/mh/articles/2007/1/18/147097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