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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정성명을 쓰는 것은 결코 ‘퇴로(退路)’를 남기는 것이 아니다》를 읽은 후의 생각

글/ 후베이(湖北) 셴닝(咸宁)대법수련자 신전(信全)

【명혜망 2007년 1월 23일】 수련생이 명혜주간 261호에 쓴 《엄정성명을 쓰는 것은 결코 ‘퇴로(退路)’를 남기는 것이 아니다》 라는 인식에 대해 나 역시 동감이다. 나는 줄곧 이 방면의 인식을 쓰려고 했었지만 어떻게 써야할 지 몰랐다. 매 주 명혜주간에서 그렇게 많은 동수들이 엄정성명을 발표하는 것을 보고 나는 솔직히 말해 정말로 괴롭고 울고 싶다. 왜냐하면 나 역시 잘못을 겪어봤던 사람이기에 특별한 감수가 있기 때문이다.

동수여, 사부님께서 자비하지 않으시다면 우리처럼 ‘엄정성명’을 발표한 동수들은 과거 어느 법문(法門)에서 수련한다 해도 두 번 다시는 수련의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때문에 사부님께서 다시 주신 수련의 기연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엄정성명’을 자신이 수련하면서 넘지 못한 고비, 난, 내려놓지 못한 집착의 ‘퇴로’로 여겨서는 안 된다. 무릇 ‘엄정성명’을 발표한 동수들은 정말로 원인을 잘 찾아야 한다. 사부님의 설법은 너무나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그러나 관건적인 시기에 왜 여전히 사악에게 타협하는가? 만약 근본적인 집착을 찾지 않고 그것을 제거하지 않으며 제고해 올라오지 않는다면 사악은 당신을 소홀히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사악이 이 몇 년 동안 박해하면서 왜 일부 동수들은 여러 차례 박해를 당했는가? 아마 이것도 주요한 하나의 원인일 것이다. 물론 나는 동수들이 ‘엄정성명’을 발표한다고 하여 이것이 나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엄정성명’ 역시 낡은 세력의 배치를 부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관건적인 것은 우리가 엄숙하게 대해야 하며 계속 낡은 세력에게 끌려가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엄정성명’은 수련을 대신할 수 없다. 우리 어떤 동수들은 바로 이런 정황이 나타나고 있다. 즉, 사악에게 박해를 당하고 잘하지 못하면 ‘엄정성명’을 발표하는데 이러면 만사가 끝이라고 여긴다. 또 박해를 당하고 또 잘하지 못하면 다시 ‘엄정성명’을 발표한다…. 동수여, 이것은 수련이 아니다. 어찌 이리도 엄숙하지 못하단 말인가? 잘못을 했을 때면 반드시 집착과 박해 당한 뿌리를 찾아 그것을 뽑아내고 진정하게 법리에서 제고해 올라와 굳은 결심을 내리고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수련의 길을 걸어가기만 한다면 낡은 세력은 당신에 대해 아무런 방법도 없을 것이다.

당시 내가 후베이(湖北)성 세뇌반에서 박해를 받을 때 두려운 마음이 있었는데 노동교양 당할까 봐 두려워했고 또 법리적으로 뚜렷하지 못해 일부 구체적인 일에서 법으로 인식하지 못했다. 예를 들면 사악에게 소위 약점을 잡히면 박해를 받는다고 여겨 사악의 박해를 승인하고 사악에게 틈을 타게 했으며 잘하지 못해 사악이 원하는 ‘결별서’를 썼다. 동수여, 당신은 이 ‘결별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는가? 그것은 거의 한 수련자의 천만년의 기다림을 훼멸시키고 내려올 때의 사전의 큰 소원을 훼멸한 것이며 자신과 대응된 천체의 중생들을 훼멸시킨 것이다. 나는 ‘결별서’에 자신의 이름을 썼을 때 갑자기 통곡하면서 크게 울었다. 억누르려 해도 억누를 수 없었고 이전에는 있어본 적이 없는 통곡(그때 세뇌반에서 ‘전향’을 했던 사람이라면 95% 이상 모두 이런 상태였다)이었다.

나중에야 나는 알게 되었다. 내가 자신과 대응된 천체 중생들의 기대를 저버렸기에 그들의 울음소리가 이곳에서 반영되어 나왔다는 것을. 내가 그들을 훼멸시켰으니 그들이 울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자신이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꿈에 아무 것도 없는 빈 공간의 천체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그런 공포는 사람의 언어로는 표현할 방법이 없으며 너무나 두려운 것이다. 절망 중에서 나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사부님’을 외쳤고 그제야 비로소 아래로 떨어지는 것을 멈출 수 있었다. 내가 이것을 이야기하는 것은 동수들에게 사악의 굴복을 받아들인 후의 두려운 후과(後果)는 차라리 천 번 만 번 죽더라도 이렇게 두려운 후과는 없다는 것을 일깨워주려는 것이다!

정말로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하고 대법의 표준에 따라 하며 일체 사람 마음을 내려놓는다면 사악은 당신을 어찌할 방법이 없다. 내가 사악에게 박해 당할 때를 돌이켜보면 자신의 사람 마음이 너무 심했고 법으로 문제를 인식하지 못했다. 만약 수련생이 사악 그곳에서 자백한 후 철저하게 낡은 세력의 배치를 부정하고 안으로 자신의 어디에 누락이 있는지 찾지 않고, 사람 마음으로 인식하고 자신을 배반한 사람을 원망한다면 이로써 사악이 박해할 새로운 핑계를 찾아 주게 된다. 마치 두려운 마음처럼, 만약 수련 중에서 착실하게 명리정에 대한 집착을 제거한다면 두려울 것이 무엇이 있는가? 두려움은, 자신이 일자리를 잃을까 두렵고 가족이 피해를 입을까 두렵고 감옥에서의 고생이 두렵고 생사를 내려놓지 못해 두려운 것이 아닌가? 이것은 바로 낡은 세력이 일찍이 배치한 것이 아닌가? 말하자면 일사일념(一思一念) 중에서 무의식중에서 낡은 세력이 배치한 길을 걸은 것이다. 수련은 엄숙하며 조금이라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사부님의 말씀에 따라 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바로 낡은 세력이 하려는 것이다.

동수여, ‘엄정성명’을 발표한 이상 자신의 잘못을 알아야 하고 잘못된 원인을 철저히 찾아야한다. 이 문제에서 재차 잘못하면 안 된다. 그것은 자신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 것으로 심하게 말하자면 그것은 사부님과 대법에 대한 불경(不敬)이다. 모두들 수련 시간에는 확실히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이 최후의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소중히 여기기 바란다. 절대로 세간의 가상(假相)에 미혹되지 말아야 하며 절대로 다시는 굽은 길을 걷지 말아야 하고 절대로 사부님께서 자비로 주신 ‘엄정성명’을 발표한 후에 계속 수련할 수 있는 기회를 소중히 여겨야 하며 절대로 ‘엄정성명’을 ‘퇴로’로 여겨선 안 된다. 왜냐하면 사악은 바로 온갖 방법을 다 써서 여전히 집착을 내려놓지 못한 대법제자를 훼멸시키려 하기 때문이다.

무릇 ‘엄정성명’을 발표한 동수들은 동수 사이에 교류할 때 자신의 문제, 집착을 폭로하고 자신이 나중에 어떻게 법속으로 돌아와 잘못을 고쳤는지 이야기할 것을 건의한다.

잘못된 곳이 있다면 동수들이 지적해주기 바란다.

문장발표: 2007년 1월 23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minghui.ca/mh/articles/2007/1/23/147405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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