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대륙 대법제자
[명혜망 2007년 1월19일] 내가 아는 두 수련생이 있는데, 한 수련생은 남편이 수련을 반대하여 어떤 때는 때리기까지 한다. 다른 한 수련생은 아내가 반대하는데, 늘 다툰다. 이 두 동수와 가족 사이에는 일상적인 교류나 소통이 극히 드물다. 실제로 이것은 이미 하나의 간격을 이루게 되었는데, 이런 간격은 우리가 이 구체적인 모순 앞에서 자신을 진정한 수련인으로 여기고 심성을 제고함이 없이 인위적으로 조성한 것이다.
예를들어 말한다면, 이 여 수련생은 남편의 방해는 어떠어떠한 것이라고 말하며, 그 남자 수련생은 그의 아내의 성질이 어떻게 포악하며 성격이 어떻게 괴팍하다고 말한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상대방에게 진상을 말한다는 것은 벽을 사이에 두고 말하는 것과 다름이 없는 것이니 어찌 좋은 효과가 있을 수 있겠는가? 진정으로 사람에게 자비로울 때면 절대로 속으로 따지지 않는다. 당신의 성질은 왜 고쳐지지 않느냐고?
무조건 안을 향해 찾아 보라. 우리 수련인 본인이 강철을 녹일 수 있는 자비를 갖추었을 때, 가족과의 간격은 곧 종적없이 사라질 것이다.
우리는 바로 속인의 복잡한 환경 속에서 수련하는 동시에 중생을 구도하고 있다. 만약 우리가 모두 절에 가서 수련한다면 더욱 많은 세인들을 구도할 수 없게 된다. 우리가 가족과 며칠 동안이나 한 마디 대화도 나누지 못했을 때, 자신을 ‘절’에 가두어 놓은 것이 아닌가?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매 대법제자마다 모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상화롭고 자비로운 에너지 마당에 용해된다면 누구나 그 어떤 나쁜 생각도 다 없을 것이며 나온 다음에는 환골탈태한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하셨다. 우리는 중생들과 교류할 때 이러한 상화함과 자비로움이 있어야 한다. ‘불광이 널리 비추니 예의가 원명하도다.’ (《홍음》 중)
개인 체험을 동수들과 교류하오니 동수들께서도 이 방면의 심득을 써내어 공동히 제고했으면 한다.
문장발표 : 2007년 1월19일
문장위치 : http://minghui.ca/mh/articles/2007/1/19/14713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