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엄정성명을 쓰는 것은 결코 ‘퇴로(退路)’를 남기는 것이 아니다

글/청두(成都) 대법제자

【명혜망 2007년 1월 9일】

청두(成都)사악이 최근 미친 듯이 발광하는데 관해서는 이미 다른 수련생이 1월 3일 명혜망에 일부 의견과 건의를 말했다. 여기에서는 자신이 막 발견한 사상 깊은 곳의 아주 바르지 못한 염두(念頭)에 대해 한번 말해보고자 한다. 주위의 일부 동수들과 교류할 때 아직도 일부 동수들의 사상 속에 많건 적건 이런 사상이 남아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때문에 여기서 제출하여 여러분들이 주의할 것을 희망한다. 이 염두란 바로 정말로 안 되면 엄정성명을 발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염두는 몹시 은폐되고 교활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평상시에는 아예 의식조차 할 수 없다. 그러나 잠재의식 중에서 엄정성명은 마치 자신에게 한 갈래 퇴로처럼 보인다. 자신의 사상 깊은 곳에 대법에 대한 견정(堅定)한 의식이 느슨한 그런 것이 존재한다. 문자적인 유희나 구두로 하는 보증 등 ‘거짓 전화’ 형식에 마비되는 것으로 표현되거나 이 방면 문제의 엄숙성에 대한 인식이 그리 뚜렷하지 않은바 2003년 이전의 그런 명확하고 또렷한 인식에 비하면 많이 부족하다.

개인적인 이해로 이렇게 된 원인에는 현재 우리가 세인을 구도하는 방면에서 교류를 많이 하다 보니 견정한 문제에 대해서는 비교적 적게 제출하는 외에 또 한 가지 오류가 있다. 바로 정법노정의 추진에 따라 사부님의 설법이 끊임없이 발표되면서 우리는 모두 다음을 명확히 알게 되었다. 바로 우리는 박해를 감당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며 우리는 마땅히 불법으로 감금되지 말아야 하는바 그것은 바로 낡은 세력의 배치라는 것이다. 우리는 마땅히 낡은 세력의 배치를 부정하고 중생을 구도해야 한다. 이런 인식은 물론 옳은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어떻게 타파하는 가에 있다. 어떻게 해야만 (사악을) 타파할 수 있는가? 더욱이 세뇌반에서 그것들이 전향하지 않으면 줄곧 감금하고 전향하면 풀어준다고 말하는데, 어떤 동수들은 곧 이런 생각을 갖게 된다. ‘여기에 남아 있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밖에 나가면 그래도 할 일이 많이 있는데 하필 이곳에서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있겠는가? 일단 나간 후에 다시 성명을 발표하자!’

사실 《사부님께서 해외전화회의 상에서의 설법》에서는
“전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는가? 사실 신(神)이 본 것은, 나와서 박해를 폭로한다는 것은 견디지 못해서이다.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이야말로 진정으로 내려놓지 못한 집착이다. 대법제자들은 어떠한 정황 하에서 모두 절대로 사악을 향하여 전향할 수 없다. 비록 박해를 폭로하기 위해서 일지라도 안 된다. 그 박해를 폭로하는 자체도 대법제자가 수련하는 최종 목적이 아니다.”
《북미 대호구 법회에서의 설법》에서는 말한다.
“또 하나는 이 神, 그는 사람과 같지 않을 것이다. 예컨대 어떤 수련생이 잡혀 들어가 혹형의 고문 속에서 견뎌내지 못하여, 회개서(悔改書)를 썼다. 그러나 그는 마음속으로, 나 이것은 모두 그들을 속이는 것인데, 나온 다음 나는 여전히 연마할 것이고, 나는 또 나가서 법을 바로 잡으며 또 천안문에 나가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안 된다. 왜냐하면 이런 관념은 사람 여기에서마저도 패괴(敗壞)된 후에 비로소 형성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神, 그는 이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이러한 사상이 없으며, 그가 단정한 길은 반드시 걸어가고야 말 것이다.”

물론 우리는 마땅히 낡은 세력을 부정해야 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견정함에 의한 것으로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사악을 해체하고 중생을 구도하여 도달한 것이다. 문자유희로는 절대 낡은 세력을 부정할 수 없으며 이는 낡은 세력을 승인하는 것이다. 사실 어떤 환경 하에서도 우리는 모두 자신을 수련하고 사악을 해체하며 중생을 구도해야 한다. 물론 우리가 정말로 잘할 때는 정말로 사악을 타파하고 낡은 세력을 부정할 수 있다. (물론 여기서 마난을 요구하거나 노교소에 들어가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

여기서 제출한 것은 여러분들의 주의를 일깨워주려는 것이다. 청두의 세뇌반이 장기적으로 존재하며 줄곧 해체되지 않는 데에는 법학습, 발정념, 현지 민중들에게 현지 사악을 폭로하는 것이 부족한 것 외에도 우리의 사상 중에 모호하거나 견정하지 못한 곳이 있는 것과 큰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닌가? 바로 우리가 의식하지 못한 이런 바르지 못한 염두가 사악이 생존할 공간을 제공하거나 심지어 사악을 자양한 것은 아닌가? 청두의 모든 동수들이 모두 안을 향해 찾아보고 그리 뚜렷하지 않은 그런 일부 좋지 못한 염두를 포함하여 진정하게 이 문제의 엄숙성을 의식하고 자신을 보다 견정히 하고 사악에게 잔존할 그 어떤 공간도 주지 않기를 희망한다.

문장발표 : 2007년 1월 9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07/1/9/146455p.html

ⓒ 2024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