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후허호터대법제자
【명혜망 2007년 1월 5일】동수들과 함께 있을 때 늘 일부 수련 중의 체험을 이야기하게 되는데, 어떤 제자의 경우 관(过关)을 넘는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한다. 어떤 이는 가족들이 그에게 어떻게 했으며, 누구누구가 한 말이 어떠하고, 자기가 어떠어떠하게 상처를 입었다고 하는가 하면, 혹은 여타의 일들이 자신의 생활과 수련상태에 아주 좋지 않게 영향을 미쳤다고도 한다.
나는 한 수련자로서 그들의 괴로움을 하소연하는 식의, 동정과 이해를 구하는 말을 들으면, 마음 속에는 오히려 다른 일종의 심정이 된다. 문제의 본신으로 우리가 깊이 파보면 기실 모두 자신의 집착을 찾을 수 있다. 한 수련자로서 이런 저런 집착이 있거나 혹은 어떤 사람은 많이 집착하고 어떤 사람은 적게 집착하는데, 이는 원래 크게 비난할 것이 못된다. 그러나 모순이 나타나 당신의 집착을 버리려고 할 때, 법으로 가늠하여 자신을 요구하지 못하고 속인 중에서 습관된 관념에 빠져들어가 사유하고 대한다. 그러다보니 모순속에서 속인식의 정서에 이끌리게 되면서 모순이 진일보 커지면서 사상투쟁도 아주 심하게 된다.
사람의 일면과 신으로 향하는 일면이 부딪혔을 때, 사람의 관념을 잡고 놓지 않으면서 또 대법속에서 답안을 찾으니 엄중할 때는 법을 곡해하면서 자신의 집착에 부합시키기까지 한다. 이런 상태에서는 자신의 집착을 버리기가 아주 어려우며, 왕왕 수련자로 하여금 장기적으로 일종의 곤혹속에 처하게 한다. 한 수련자로서 사람의 사상을 좌우지하는 이런 관념을 돌파하지 못하고, 사람의 껍데기를 벗어버리지 못한다면 전진의 길에서 거대한 장애가 된다.
속인이 사람의 일체에 집착할 경우, 집착인지 집착이 아닌지 아주 적게 고려하고 또 똑똑히 알지도 못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집착때문에 가져온 고통임을 똑똑히 의식하지도 못한다. 수련자의 경우 표면의 법리는 알지만, 자신의 집착을 내려놓을 수 없을 때는 많은 고통을 느끼게 된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속인의 마음을 놓을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이것은 진정으로 속인을 초월한 데로 향해 나아가는 반드시 넘겨야 할 고비이다. 진수제자는 사람마다 모두 넘겨야 하는 것으로 이것은 수련자와 속인의 계선이다.”
(《진수(真修)》)
수련자로서 법공부를 많이 하고 자신을 엄격하게 요구해야 한다. 그리고 진정으로 자신을 하나의 대법제자로 대하여, 법속에 용해되고, 문제에 부딪혔을 때 우선 대법의 각도에서 법의 표준에 따라 어떻게 하겠는가를 가늠해야만 더욱 빨리 속인의 이 한층의 법리 및 속인중에서 양성된 여러 가지 후천관념을 타파할 수 있다.
문제에 부딪혔을 경우 처리할 때 출발하는 기점이 어디에 있는가는, 한 대법제자로 놓고 말한다면 하나의 명확한 인식이 수요된다. 집착을 버리는 과정의 느낌은 고통스럽다. 그러나 그것은 집착을 내려놓으려 하지 않기때문에 조성된 것으로, 빨리 내려놓을수록 고통스럽지 않다. 법속에서 자신을 요구하며 집착과 후천적인 사람의 관념을 제거한 후의 체험은 미묘한 것이다. 그것은 더욱 넓고 홍대(洪大)한 경계이기 때문이다.
수련자는 오직 끊임없이 간고한 수련을 거쳐야만 생명이 비로소 강대한 정념과 자비한 심태 및 금강의 의지 등 속인을 초월하는 상태를 체현해 낼 수 있다. 속인의 이 한층의 이치를 벗어나 그것에 속박당하지 않아야 하는 것은, 우리는 법속의 생명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명으로 하여금 법속에서 승화되게 하자!
이상은 개인의 천박한 인식이므로 부당한 점이 있으면 많이 지적해 주시기 바랍니다.
문자완성:2007년01월04일
문장발표:2007년01월05월
문장갱신:2007년01월05일 00:00:10
문장분류:[수련마당]
문장위치: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7/1/5/146163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