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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다른 곳에서도 길이 열린다 (柳暗花明又一村)”

글 / 중국대륙 대법수련생

[명혜망] 나의 수련이야기를 모든 사람들과 교류하라는 동수들의 제안을 받았고 나 역시 그렇게 하고 싶었다. 나는 중국 남부의 아주 빈곤한 외진 마을에서 살았다. 세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가족은 끼니조차 잇기 어려워, 나는 구걸을 해야 했다. 학교라고는 단 3개월 다닌 것이 전부여서, 이 글을 쓰는데도 어려움을 겪었다. 그래서 테이프에 수련이야기를 녹음했고, 이것을 다른 수련생들이 글로 옮겼다. 나의 수련에 분명히 누락이 있을 터이니, 법에 근거해서 동수들이 그것들을 친절하게 지적해 주길 바란다.

1. 위대한 스승이 계시며 法輪大法 (파룬따파)는 정법이라고 한 도인이 말해주다

나는 귀가 먹고 말을 하지 못한 적이 두 번 있었는데, 매번 이것은 일주일 정도 지속되었지만 치료를 받지 않고도 회복되었다.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것은 단순한 병이 아니라 오히려 대법과 직접 관련이 있는 것이었다.

사부님께서는 《홍음 II, “신의 길은 어려우니라 (神路難)”》에서 말씀하셨다.
“유유한 만세의 인연을 대법이 한 줄로 이끈 것이네…”

다음의 두 이야기는 사부님의 시를 견증해 주는 것이다.

1969년 여름, 폭우 속에서 일을 하고 난 후 나는 심한 감기에 걸렸다. 매우 추웠고 또 고열이 나기도 했다. 나는 오랫동안 잠을 자고 다음날 아침 아주 늦게 일어났다. 아침식사도 거른 채 나는 이미 밭에서 김을 매고 있을 마을 사람들을 따라잡으려고 급하게 서둘렀다.
내가 흙으로 만든 다리 곁을 지날 때, 백발동안(白发童颜)의 도인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 손에는 “푸천” 또는 먼지 터는 깃을 들고, 바로 내 앞으로 내려왔다. 나는 어안이 벙벙하여 혼자 말했다. “이게 꿈이야?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어? 도대체 신이야 귀신이야?”
길이 좁았기 때문에, 나는 그가 지나가도록 옆으로 비켜섰다.
두렵지 않았다. 그가 바로 내 앞에 서더니, 내 머리를 세 번 만지고 호주머니에서 작고 흰 세 개의 알약을 꺼냈다. 그는 내게 입을 벌리라고 하더니 말했다. “좀 불편한 느낌이 있겠지만 괜찮다. 일단 세 알약을 먹은 다음에는 일체가 좋아질 것이다.”
내가 알약을 삼키고, 그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하기도 전에 그가 사라져버렸다. 둘러보았지만 어디에도 그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가 온 쪽을 향해 세 번 절을 한 다음, 걷기를 계속했다.
마치 무한한 에너지를 가진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신체가 매우 가벼웠고 극히 편안한 감을 느꼈다. 밭에 가자, 나는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않고 늦은 것을 만회하느라 곧바로 일로 들어갔다.
점심시간이 되었을 때, 어머니와 아내가 울고 있었고 다른 사람들이 나를 가리키는 것이 보였다. 나는 그들이 입을 벌려 뭐라고 하는 것을 보았지만 한 마디도 들리지 않았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나는 이상하게 느꼈다. 속으로 혼자 말했다.
“걱정하지 않겠어, 우선 점심이나 먹어야지.”
두 끼나 굶었기 때문에 나는 거의 여러 사람 분의 음식을 먹었다. 점심을 먹은 후, 나는 다시 일을 시작했다.
오후에 다른 사람들과 수매소로 목재를 운반했다. 내가 길을 걷고 있을 때, 누군가가 나를 옆으로 밀었다. 돌아보니 트럭이 오고 있었다. 그제야 나는 내가 귀가 먹고 벙어리가 된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것은 그 도인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에 대해 다른 사람들에게 말을 할 수 없었다. 가족은 매우 걱정을 했다. 그래서 그들은 나를 이끌어 침 치료를 받게 하고 여러 신들에게 빌기도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며칠이 지나자, 가족은 내 기분이 좋고 모든 것이 정상인 것을 보고는 침착해지기 시작했다. 7일째 되는 날 저녁, 도인이 다시 내게로 왔다. 이번에는 하늘에 머물러 있었다. 그는 자기의 먼지떨이 깃을 흔들어 나를 집 복도에서 문밖의 마당으로 불러냈다. 나는 “사부님” 이라 부르며 그에게 꿇어 앉았다. 그는 자기의 깃을 흔들며 내게 일어나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가 말했다, “나는 자네의 사부가 아니네. 자네에게는 위대한 사부가 계셔. 장래에 그분이 오실 것이네.”
가족이 내가 “사부님”하고 소리치는 것을 듣고 모두 나왔다. 그들은 내가 다시 듣고 말할 수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이후로, 나는 열심히 나의 사부님 뵙기를 기다렸다.

18년이 지난 후, 1987년 가을 어느 날, 나는 채소밭에서 양배추를 싸고 있었다. 좀 피곤함을 느껴 나는 잠시 쉬었다. 내가 몸을 쭉 펴며 주위를 둘러보고 있을 때, 멀리서부터 오색찬란한 구름이 재빠르게 내게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나는 완전히 황홀해졌다. 오색찬란한 구름은 갑자기 멈추더니, 나를 그 안으로 옮겼다. 붉은 카펫과 같은 구름 위에, 잘 생긴 한 청년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가 한 손으로 나를 잡았다. 그의 선량하고, 자비롭고 자상한 얼굴은 나를 아주 포근하고 즐겁게 만들었는데, 그는 내가 오래전 어디선가 보았던 것처럼 느껴졌다. 그가 내게 말했다, “내가 당신을 데리고 다니며 보여주겠다. 당신은 바라볼 수는 있지만, 말을 하지 말고 질문도 하지 말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려다보니, 나의 육체는 여전히 정원에서 양배추를 싸고 있었다. 한쪽을 가리키면서, 그가 내게 물었다, “저것이 무엇인가?” 내가 안개라고 대답했다. 그가, “아니, 그것은 안개가 아니라 검은 气(치)다. 누군가가 그곳에 사악한 기공을 전파하고 있어. 당신은 이것을 배워서는 안 돼. 나중에 파룬궁이 전해질 것인데, 그것이 진정한 정법수련이다.”
그는 나를 데리고 다니며 중국 각 시대의 황제들, 각개 국가의 명산대천, 그 내면의 산 속에서 수련하고 있는 각종 복장, 피부색깔의 수련인들, 그리고 고층에서 보면 석보살 같이 보이는 후난성의 장자제산을 보여주었다. 최후에 그는 내게 法輪世界(파룬쓰제)를 보여 주었는데, 나는 그곳에서 거대한 파룬이 시계바늘 방향으로 또 반시계 방향으로 도는 것을 보았다. 그는 나를 궁전으로 데리고 가서 5장 공법을 보여주었다. 또 나는 내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많고 많은 것들을 보았다.
그런 다음 그는 나를 데리고 왔다. 당시 나의 육체는 방안에 누워 있었고 문은 닫혀 있었다. 다만 자색빛이 비쳤으며, 나는 내 집 앞마당 위로 운반되었다. 그러자 내 영혼이 나의 육체와 합쳐졌다. 그가 내게 말했다. “당신은 이곳을 여러 날 떠나 있었다. 만약 사람들이 당신에게 묻거든, 당신은 그들에게 두 마디로 말해 주어라.”
“만사만물은 바른 것을 공으로 하고, 선을 근본으로 한다(万事万物以正为功,以善为本)”
내가 그에게 그것이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그는 이것이 무슨 뜻인지 걱정하지 말라. 사람들은 이것을 이해할 것이고, 당신도 언젠가 이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나의 육신은 영혼이 없이 인간세상에서 7일을 보냈다. 그 7일 동안, 나의 육신은 귀머거리에다 벙어리였지만 그 외는 정상이었다. 그 이후, 나는 그 청년이 나의 사부인지, 미래에 내가 파룬궁을 배워야 하는 것인지 그리고 그가 왜 그처럼 성급하게 떠났는지 궁금했다.

2. 내가 법을 얻은 후, 나의 전 가족이 혜택을 받다

1996년 2월, 나의 친구, 장씨가 내게 말했다. “내가 들으니 완씨가 좋은 기공을 배웠다는데.” 내가 그에게 그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는 파룬궁이라고 말했다. 그가 파룬궁이라고 언급하자, 나는 당장 완씨 집으로 달려갔다.
완씨는 집에 없었다. 그의 아내에게 그가 파룬궁을 수련하냐고 물었다. 그녀가 그렇다고 말했다. 나는 그녀에게, “당신한테 사부의 사진과 자료가 있느냐?”라고 물어보았다. 그녀가 “네, 사부님의 사진은 우리방 벽에 걸려 있어요.”라고 했다.
나는 사진을 보려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나를 천상으로 데리고 갔던 바로 그 사부님이셨다. 파룬도형도 내가 그날 보았던 무한히 거대한 파룬과 똑같았다. 연공 사진은 사부님께서 천상에서 내게 보여주셨던 5장 공법과 똑같았다. 20년여를 기다린 후, 나는 마침내 사부님과 파룬궁을 보게 되었다. 나는 너무나 흥분되어서 눈물이 흘렀다.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부디 완씨에게 내가 파룬궁을 수련하고 싶어 한다고 말해주세요. 부디 그에게 우리 집에 와서 내게 가르쳐달라고 해주세요.”
이틀 후 완씨가 내 집에 와서 파룬궁에 대해 자세히 말해 주었다. 내가 그에게 말했다.
“자료 값이 얼마나 들던지 상관하지 말고, 부디 내게 한 부를 복사해 주게.”
열흘 후 저녁, 완씨와 장씨가 내 집으로 자료를 가지고 왔고 연공을 가르쳐 주었다. 나는 그날 밤으로 5장 공법을 전부 배웠다. 나중에 내가 잠을 자려고 침대에 누웠을 때 복부가 몹시 아팠다. 나는 온밤 아파서 뒹굴었고 마침내 아침이 되었다. 나는 지팡이를 짚고 보건소로 갔다. 의사 후가 문을 열자, 나는 안으로 들어가 큰 의자에 온 가부좌를 하고 앉았다. 갑자기 복통이 사라졌다. 나는 의사 후에게 물었다.
“당신의 의자에 무슨 마력이라도 있습니까? 여기에 앉자마자 복통이 사라지네요?”
그가 말했다.
“의자에 마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어떤 강력한 기공을 배웠나보지요.”
‘그랬구나.’
내가 방금 파룬궁을 배웠기 때문이었다. 나는 혼자서 말했다.
“이 대답은 어쩐지 의사 후의 말처럼 들리지 않고 사부님께서 그의 입을 빌려 내게 점화해 주시는 것 같은데…….”
내가 아직 법공부를 시작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부님께서 이런 방법으로 나를 가르쳐 주셨던 것이다. 나는 당장 집으로 돌아왔다.
밤에 연공을 하고 있을 때면, 항상 귀에 아름다운 음악이 들렸다. 그 이후로, 아침 4시면 같은 음악이 수련을 위해 일어나라고 나를 깨웠다. 겨울이나 여름이나, 나는 한 번도 연공을 뺀 적이 없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잠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연공을 했다. 그래도 한 번도 춥지 않았고, 대신에, 나는 항상 나의 신체가 안으로부터 따뜻함을 느꼈고 극히 편안했다.
내가 법을 얻고 2주 되었을 때, 장모한테 심장마비가 왔다. 나의 에너지 장의 영향으로, 그녀의 신체가 어느 정도 청리되었고 그녀의 병도 나아지기 시작했다.
바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한 사람이 연공하면, 온 식구가 혜택을 본다.” 《오스트레일리아 법회에서의 설법》 그녀는 점차 무엇인가에 의지해서 걸을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그녀에게 지팡이를 만들어 주고자 했다. 나는 그녀가 쉽게 잡을 수 있도록 하려고 새 모양의 손잡이를 만들어 주고 싶었다. 발로 지팡이를 잡고 톱질하기가 어려워서, 나는 발가락으로 이것을 눌렀다. 내가 거의 완성단계에 들어갔을 때, 너무 힘을 써서 내 발가락을 잘랐는데, 단지 약간의 살가죽에 달려있었다.
당시 나는 내가 수련하고 있는 무변대법(無邊大法)이 무엇을 할 수 있다고는 인식하지 못했다. 나는 발가락을 다시 제자리에 붙인 다음 아내에게 이를 감쌀 헝겊 한 조각을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피도 전혀 흐르지 않았다. 그런 다음 나는 들에 나가 풀을 뽑고 내 상처에 대해서는 완전히 잊어버렸다. 내가 일을 끝냈을 때, 헝겊이 없어진 것을 보았고, 발을 씻을 때 발가락이 완전히 나은 것을 발견했다. 아무도 내 발가락이 잘라진 것을 보지 못했고, 내 아내마저도 상처가 얼마나 심했는지를 알지 못했다. 내가 그들에게 실제로 일어났던 것을 말해주자 그들은 믿을 수 없어 했다. 사부님과 대법에 대한 믿음이 더욱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대법은 더욱 큰 위력을 가졌다.

그해 겨울, 우리 마을의 다른 농민과 나는 20마일 떨어진 후난성 웨양시로 우리가 추수한 씨앗을 살 사람을 찾아 갔다. 그날 낮에 눈이 와서 눈 덮인 산길은 걷기가 무척 힘들었다. 우리가 아침에 떠났는데 오후 4시까지도 그곳에 도착하지 못했다. 살 사람이 우리를 위해 저녁을 준비했고, 우리가 식사를 마쳤을 때는 다섯 시가 넘었다. 나는 살 사람에게, “나는 집에서 할 일이 있어 지금 떠나야겠다.” 그들은 내가 농담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내가 그들에게, “아니오, 지금 가야 합니다. 제발 내게 돈을 주십시오.” 살 사람이 말했다.
“돈은 있는데, 당신이 요구하는 것보다는 좀 적소.”
내가 그에게 왜냐고 물었다, 그가 말했다.
“나는 새 씨앗은 1파운드 당 9원에 사서 10원에 팝니다. 그래서 내게 단 1원이 남습니다. 오래된 씨앗도 한 파운드 당 10원에 파는데 나의 이익은 바로 여기에서 남습니다. 당신의 것은 오래된 씨앗이기 때문에, 1파운드에 당신이 원하는 6원이 아닌 5원을 드리겠습니다.” 나는 완전히 놀랐고 이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런 다음 혼자 생각했다, “어쩌면 내가 수련자이기 때문에, 이것은 내 심성(心性)을 고험하는 것인지도 몰라. 내게 돈에 대한 집착심을 제거하라는 것인가 보다.”
그런 다음 사부님께서 《전법륜》에서 하신 말씀을 기억했다.

“속인이 얻으려고 하는 것은 자신의 이익이며 어떻게 잘 살고 편안히 지내겠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 연공인은 오히려 이런 것이 아니라 정반대로서, 우리는 속인이 얻으려고 하는 것을 추구하려 하지 않으며, 우리가 얻는 것은 속인이 얻으려 해도 수련을 하지 않고서는 얻지 못하는 것이다.”

갑자기 마음이 확 트이는 것을 느꼈다. 내가 그에게 조용히 말했다.
“좋아요. 당신이 말한대로 합시다.”
내 친구는 그곳에 남아 있고 나는 서둘러 집을 향했다. 나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고, 단지 걷기만 했다. 내가 집에 도착했을 때는, 정각 7시였다. 나는 20마일의 눈 덮인 산길을 80분 만에 걸어온 것이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것은 사부님의 자비가 나를 도운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수련에 더욱 확고해졌다.

3. “마난 중에서 암흑 속을 걷다가, 7일 후에 빛을 본다”

1999년 7월 20일, 사당 마두 장쩌민이 광폭하게 대법을 파괴하고, 사부님에 대해 모욕과 대법제자들에 대한 잔혹한 박해를 시작했다. 한 대법제자로서, 나는 가만있을 수 없었고 사악이 그처럼 미쳐 날뛰는 것을 바라만 보고 있을 수 없었다. 나는 중앙정부가 있는 베이징에 가서 파룬궁에 대해 청원하려고 했다. 그러나 내게는 여행비가 없었다. 나는 다른 현에 사는 수련생 리씨를 만났다. 그는 나와 함께 베이징에 가겠다며 비용을 전부 부담하겠다고 했다. 다음날 나는 10마일을 걸어 그의 집에 갔다. 가는 길에서 나는 언덕 꼭대기 돌 위에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빨리 달려라” 라고 쓰여 있는 것을 보았다.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걷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것은 사부님께서 나를 점화해 주시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다른 돌 위에 “위덕으로 걸어 나오면 숭고하다.” 라는 글을 보았다. 사부님께서 나를 고무 격려하시고 계시는구나! 내가 파룬궁을 청원하려는 것은 바른 일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원래 확신이 없었던 마음이 차분해지면서 좀 더 착실하게 좀 더 단호하게 걸었다. 리씨의 집에서, 우리는 여행의 세부적인 것을 논의하고 그곳에서 밤을 지냈다. 다음날 떠날 예정이었는데, 교란이 와서 리씨가 나와 함께 여행을 떠날 수 없게 되었다. 돈이 없자 나는 갈 수 없었다. 집에 돌아오자, 나는 매우 화가 나 먹지도 자지도 못했다. 나는 혼자 말했다.
“정부의 최하층부터 일을 시작하자. 그리고 한 층씩 올라가자.”
나는 우선 우리 마을 지도자들을 만나러 가서 그들에게 진상했다. 그들은 나를 이해했고 내가 하는 말에 동의했다. 그들은 중공이 조작하는 그런 큰 정치운동에 무력함을 느꼈다. 그들은 계속 내게 계란으로 벽을 치지 말라고 말했다.
다음날은 현 정부로 갈 예정이었다. 내가 저녁식사를 마쳤을 때, 지역 파출소 소장 천이 두 명의 경찰들을 데리고 내 집으로 왔다. 소장 천은 나와 이야기를 좀 하자고 했다. 내가 그에게 무엇 때문이냐고 물었다. 그는 내게 이를 논의하자면 파출소로 가자고 했다. 내가 그와 차에 앉자, 그가 말했다.
“당신은 이 지역 파룬궁 조직자이다. 당신은 당신 조직 내의 세부적인 것을 우리에게 모두 고백해야 한다.” 내가 말했다.
“우리는 조직이 없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이란 건강한 신체를 가지며 의 원리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전부입니다. 정부가 우리에게서 자유를 빼앗아가서는 안 됩니다.”
파출소에서, 소장 천은 나를 두 명의 다른 경찰들에게 맡겼다. 한 사람이 내게 사악하게 말했다.
“당신의 조직에 대해 우리에게 전부 말하시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당신을 더는 잘 대하지 않을 것이오.” 내가 대답했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 조직단체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닌데, 당신에게 무엇을 말하라는 것이오?”
그러자 그가 내게 욕을 시작하며, “말할 것인가 아닌가?”라고 말했다.
내가 말했다, “정말 할 말이 없소.” 그가 다른 경찰에게 말했다.
“그의 옷을 벗겨요.” 다른 경찰이 내의까지 다 벗겼다. 나는 생각했다.
“나를 얼려 죽이려고 하는 것인가? 그렇게 하지 못할 걸.” 나는 방 가운데 앉아 혼자 생각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법을 얻음이 곧 부처로다” 《홍음, “중생을 널리 제도 (廣度衆生)”》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이미 신인데, 내가 추위를 두려워하겠는가?” 나는 한 시간 동안 그곳에 앉아 있었다. 경찰 펑이 들어와서 나의 가슴을 발로 차서, 나를 바닥에 쓰러뜨렸다. 내가 일어나자, 그는 두 주먹으로 나의 관자놀이를 쳤다. 나는 아찔하면서 눈에서 빛이 번쩍했다. 잠시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여전히 괜찮았다.
경찰 펑은 나를 때리고는 가버렸다. 소장 천이 다시 들어왔다. 그는 아무 죄가 없는 것처럼 가장하며, “이 추운 겨울에 왜 옷을 입지 않고 있는 것이오?” 내가 그에게 말했다.
“모른 척하지 마십시오, 이것이 인민의 경찰들이 하는 짓입니다.”
그가 말했다. “오, 미안합니다. 어서 옷을 입으세요. 그 젊은 사람들이 사람을 잘 대할 줄 모르는군요.” 그런 다음 그들은 나를 위층 빈방에 가두었다. 창문에 유리가 하나도 없어 추운 바람이 방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나는 온 밤을 그곳에서 지냈다. 다음날 경찰 펑이 우유, 차, 담배와 사탕을 내게로 가져와서는 나를 유혹하려고 애썼다. 나는 아무것도 마시지도, 말하지도 않았다. 오후 다섯 시경, 나는 안마당으로 끌려나와, 나는 수갑으로 채워진 채, 한 나무에 묶이게 되었다.
저녁이 되자, 한 경찰이 와서 소리 질렀다. “이런 고집스런 사람은 여기에 서 있게 하는 것이 아니라 꿇어 앉혀야 한다.” 그는 나의 무릎 뒤쪽을 발로 찼지만, 나를 꿇어 앉히지는 못했다. 그러고 나서 나의 어깨를 밀었지만 그것도 잘 되지 않았다. 그는 더욱 사나워지면서 화를 내기 시작했다. 그가 나무 위로 올라갔는데, 나는 무엇인가 정말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나는 사부님께 가지해달라고 요청했다. 나는 또 사부님의 말씀, “참기 어려운 것도 참을 수 있고 행하기 어려운 것도 행할 수 있다”를 계속 암송했다. 그는 손으로 나무를 잡더니 내 손목 위로 뛰어내렸다. 뼈가 골절되어, 극심하게 아팠다. 나는 혼자 생각했다. “나는 신이다 내게 통증이란 없다.” 그는 몇 번 더 내 손목 위로 뛰어내려 수갑이 살 속으로 깊이 패어 들어가게 했지만, 나는 더는 통증을 느끼지 않았다. 그런 다음 그가 떠났다.
얼마 안 있어, 현 무장부장이 왔다. 그는 내 앞에 서더니, “무슨 일이 일어났나?”
그는 다른 사람에게 수갑을 열게 했지만 수갑이 살 속으로 깊이 박혀 있었기 때문에 수갑에 열쇠를 넣을 수 없었다. 나를 수갑에서 풀려나게 하는데 한 동안 시간이 걸렸다. 그런 다음 한 패의 다른 사악한 자들이 왔다. 그들이 계속 내게 발길질을 했다. 한 사람이 말했다. “좀 똑똑해져! 우리에게 말해, 당신은 파룬궁을 앞으로도 수련할 거야?” 내가 대답했다. “그런 좋은 수련을 왜 그만 하겠소?” 그들은 나를 둘러싸고 또 다시 구타했다. “앞으로 수련할 거야?” “수련! 수련! 수련!” 이라고 내가 대답했다. 한 경찰이 소리를 질렀다. “내가 당신을 두들겨 포기하게 하지 못한다고는 믿지 않아.” 그는 큰 나무 몽둥이를 찾아내서 나의 등을 여러 번 때렸다. 그런 다음 그는 이를 던져버리고, 손을 흔들면서 내게 욕을 하며 나갔다. “당신은 나를 미쳐버리게 하는군! 나를 미치게 만들어!”
부장 리가 대야에 물을 갖고 와서 나의 얼굴과 손을 씻게 했다. 나는 그가 매우 놀라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수갑이 그의 살 속을 파고들어갔었는데, 어떻게 해서 그의 살갗에 상처가 안 보이지?” 수갑을 풀었을 때, 나는 상처가 치유된 것을 알았다. 이것은 우리의 위대하고 자비하신 사부님께서 나를 위해 고생을 겪으신 것이다. 나는 울고 싶었지만 사악한 자들 앞에서 그렇게 하지 않았다. 부장 리가 내게 물었다. “아프죠?” 내가 대답했다. “아픈지 안 아픈지 이것이 당신들한테 상관이 있습니까?” 내가 아프다고 하면 그들이 잔혹한 고문을 중지할 겁니까? 선은 선의 보답이 있고 악은 악의 응보를 받을 겁니다. 만약 그들이 사악한 행동을 바꾸지 않는다면 그들은 훼멸될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할 겁니다.” 그날 저녁, 나의 아들이 벌금을 물고 나를 빼냈다.
그 날 밤 나는 꿈을 꾸었다. 나는 나의 문설주에 2행 댓구를 보았다, “마난 중에서 암흑 속을 걷다가, 7일 후에 빛을 보다.” 다음날 아침, 나의 손녀딸이 내게로 와서 일어나라고 했다. 나는 아직 어둡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녀가 말했다. “해가 뜬지 오래되었어요. 보이지 않아요?” 나는 내가 시력을 잃었다는 것을 알았다. 아침식사 후, 아들과 나는 내가 당한 부당함을 호소하기 위해 현 정부로 갔다. 그러나 누가 나를 도울 수 있겠는가? 모든 사람들이 우리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숨거나 또는 우리에게 다른 사람들을 대신 보냈다. 우리는 아무런 소득 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사부님의 도움으로, 나는 7일 후에 시력을 되찾았다.

2000년 1월 13일, 나의 아내가 내게 돼지새끼를 사오라며 100원을 주었다. 나는 돈을 한 수련생의 집으로 가지고 갔다. 우리는 다른 두 수련생들과 함께 파룬궁을 청원하기 위해 베이징을 갈 계획을 세웠다.
그들 중 한 명이 수천 원으로 우리 모두의 비용을 대겠다고 했다. 기차가 허난성 정저우역에 도착했을 때, 나는 누군가가 스피커로 말하는 것을 들었다.
“베이징에 가려는 수련생들은 부디 주의해서 들으시오. 당신들의 사상준비를 하시오. 답안을 잘 준비하시오.” 나는 기차가 베이징에 접근하고 있을 때 다시 이것을 들었다. 나는 동수들 세 명을 깨우고 나서 그들에게 내가 들은 것을 말해주었다. 그들은 매우 놀라워 했다. 기차에서 그런 메시지를 방송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사악한 중공이 베이징에서 수련생들을 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다른 공간에서 이를 들었던 것이다. 사부님께서 우리를 격려해 주고 계셨다. 우리는 당시 우리의 위대하신 사부님께서 우리를 보호해 주고 계시다는 것을 알고 매우 흥분했다. 기분이 대단히 좋은 상태에서, 우리는 베이징에 도착했다. 기차에서 내렸을 때는 아침이었다. 아침식사를 한 후, 우리는 톈안먼 광장으로 갔다. 트럭 한 대가 우리 앞에 서더니, 여러 사복경찰들이 우리에게 물었다.
“파룬궁 수련생들이오?” 우리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들이 말했다.
“트럭에 타시오.”
내가 물었다.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려는 겁니까?”
그들이 말했다. “한 장소로.”
그런 다음 그들은 우리와 다른 수련생들을 트럭 안으로 밀었다.
내가 등록 데스크에서 30피트 정도 떨어져 있을 때, 누군가가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돌아보니 두 명의 경찰이었는데, 한 사람은 키가 컸고 또 한 사람은 작았다. 키가 큰 경찰이 내게 그와 함께 가자는 신호를 보냈다. 그는 나를 화장실 옆방으로 데리고 들어가더니 안에서 문을 잠갔다. 그곳에는 바닥에 나무 널빤지 하나가 놓여있었다. 키 큰 경찰이 낮은 소리로 내게 물었다.
“당신은 이미 아주 늙었는데, 베이징은 왜 왔소?”
내가 그에게 큰 소리로 대답했다. “정법하러 왔소!” 그가 말했다.
“알아, 목소리를 낮추시오, 당신이 정법 하러 왔다면 이것은 장난이 아닐 텐데, 당신은 죽음이 두렵지 않소?”
내가 말했다.
“내가 두려워했다면 이곳이 있지 않을 것이오.”
“좋아요. 당신이 죽음을 두려워 하지는 않지만, 통증은 두려워합니까?” 내가 대답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데, 내가 통증은 왜 두려워하겠소?” 그가 말했다.
“좋아. 신발을 벗고 이 널빤지에 서시오.”
내가 신발을 벗고 왼발을 널빤지에 올려놓았다. 작은 경찰이 10센티 길이의 여러 개의 못을 가지고 그 중 세 개를 내 발에 망치질했다. 나는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그러자 그들은 내게 오른발을 널빤지 위에 올려놓으라고 하고는 또 세 개의 못을 박았다. 더는 발을 움직이지 못했다. 두 경찰은 서로 바라보더니, 작은 남자가 엄지손가락을 내밀며 말했다.
“당신은 정말로 대단하군!” 키 큰 남자가 내 신발을 가져오더니 내가 신 신는 것을 도왔다. 그런 다음 다시 나를 다른 수련생들이 있는 곳으로 데려갔다. 나는 내 고향의 구치소로 보내졌고 28일간 그곳에 구류되었다가 풀려났다.

4. 하나의 잘못된 생각 때문에 5년 동안 듣지 못하고 말 못하는 벙어리가 되다 – 정념정행으로 회복되다

구치소에서 돌아온 후, 나는 매 사람에게 대법에 대해 진상하고 대법제자들이 감옥에서 어떻게 고문을 받는가를 말해주었다. 나의 아들은 두려워 내게 다시는 이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는 또 일부 나쁜 말을 했다. 그래서 나는 혼자 말했다. “귀머거리에 벙어리였더라면, 내가 이런 문제에 더는 부딪히지 않았을 텐데.” 이 생각이 바로 현실이 되어, 나는 당장에 말하지 못하고 듣지 못하게 되었다. 아무도 더 이상 나를 상관하러 오지 않았다.
5년이 지났다. 그 기간에, 많은 수련생들이 나와 글로 교류하며, 이것은 사부님께서 내게 주신 것이 아니라고 말해주었다. 대법수련생들은 내게 그런 상황에 놓여 있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중생을 구도해야하기 때문에, 어떻게 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것은 분명히 낡은 세력으로부터 오는 교란이다. 그들의 말이 옳았지만, 나는 다만 나의 상황이 특별해서 사부님께서 막으신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래서 나는 낡은 세력이 내게 과한 격리에 동의했고 사악으로 하여금 나를 오랫동안 속박하게 했다.
2005년 상반기에, 한 수련생이 후난성 마자룽 강제수용소에서 굽은 길을 걸은 후 집으로 풀려났다. 그녀를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는 그녀의 집을 찾아갔다. 그러나 그녀와 교류하기 위해서는 글을 종이 위에 써서 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몇 줄을 쓰면, 그 다음 내가 몇 줄을 썼다. 노트 한 권을 우리가 대화하는데 썼다. 내가 받은 교육이 제한되어 있었으므로, 종종 글자를 잘못 썼지만, 우리는 그런대로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는 울면서 그녀가 사부님과 대법을 욕하는 크나큰 죄를 지었다고 말했다. 나는 그녀를 진정시키고 그녀에게 다시 대법으로 돌아오도록 설득했다. 그녀는 다시 수련을 시작하고 세 가지 일을 잘 하겠다고 말했다. 내가 떠날 때, 그녀는 우리가 대화한 노트를 태워버렸다. 한 수련생이 그 중 몇 페이지를 건졌다. 그가 이를 보더니 대화가 법에 근거한 것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는 즉시 나를 돕기 위해 다른 수련생들을 불렀다.
어느 날 저녁, 정진하는 대여섯 명의 수련생들이 함께 모였다. 그들은 내게 우리의 대화가 들어가 있는 페이지를 보여주었다. 앞 뒤 페이지가 없었기 때문에, 뜻이 변경되었다. 하지만, 나는 이야기할 수 없었고 써서 설명하자니 어려웠다. 나는 나 자신을 설명하려는데 아주 열심이었다. 여러 수련생들이 법공부를 하고 나서 그들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 바로 낡은 세력이 내게 과한 고립을 해결하는 것이라고 인식했다.
사부님께서는 《정진요지, “교란을 배제하자 (排除干擾)”》에서 말씀하셨다. “法은 일체 집착을 타파(破)할 수 있고, 法은 일체 사악한 것을 타파(破)할 수 있으며, 法은 일체 거짓말을 제거(破除)해 버릴 수 있고, 法은 정념(正念)을 확고(堅定)하게 할 수 있다.”
그런 다음 우리는 《전법륜》 “수구(修口)”를 공부했는데, 사부님께서는 “또한 우리는 법을 이야기하고 법을 선전해야 하므로 말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 사부님의 법은 내 마음에 있던 매듭을 풀어주셨다. 우리는 앉아서 20분간 발정념을 했다. 그리고 다음날 8시와 9시에 다시 발정념을 하기로 계획했다. 우리는 내가 말을 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나 역시 밤에 자기 전에 발정념을 했다.
다음날 아침, 나는 말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들을 수도 있었다! 낡은 세력은 5년 동안 문제를 회피하려는 나의 집착심을 이용해 나를 고립시켰다. 이것은 그처럼 고통스러운 교훈이었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말씀하셨다,
“바로 당신의 사상이 일종의 외래 영체에 통제당한 것이다. 당신은 그래도 아주 좋다고 느낀다. 당신은 가지기를 좋아하며 당신은 기뻐하는데, 당신이 기뻐할수록 그것이 당신을 더욱 단단히 통제한다.”
맞다. 한 나쁜 생각으로, 나는 중생구도를 위해 진상하려던 나의 사전 약속 중 5년을 잃었다. 나는 바로 낡은 세력의 염원에 부합되어 그들에 의해 그처럼 오랫동안 통제당했다.
수련이란 얼마나 엄숙한 것인가! 한 나쁜 생각이 우리에게 그처럼 끔찍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니. 우리는 항상 마음을 법에 두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낡은 세력은 우리를 이용할 기회가 없게 될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이미 《전법륜》에서 말씀하셨다,

“그 밖에 당신은 뒷근심이 없어지고 당신에게 어떤 번거로움도 다 없다면 당신은 또 무엇을 수련하겠는가? 편안하고도 편안하게 거기서 연공을 한다고? 어디 그런 일이 있는가? 그것은 당신이 속인의 각도에서 생각한 것이다.”

이 교훈은 내게 법을 더 한 층 이해하게 해주었다. 나는 법을 세밀하게 공부해야 하고, 법을 잘 이해해야 하고 법에 동화되어야 한다.
내가 다시 말할 수 있게 된 것은 속인들에게는 하나의 충격이었다. 나는 사부님께서 이 방법으로 내 마음에 있는 매듭을 풀어주신 것에 감사드린다. 나는 수련생들이 정체로 도움을 준 것에 감사한다. 중생을 구도하기 위해 나는 진상하는 다른 수련생들과 합류했다.
수련 중에서, 사부님과 대법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갖고, 사부님의 보호와 도움 아래, 나는 마난을 하나하나 극복해 나갈 수 있었다. 사부님께서 《전법륜》에서 말씀하셨다,

“내가 과거에 수련할 적에 많은 고인(高人)은 나에게 이런 말을 해 주었다. 그는 “참기 어려운 것도 참을 수 있고 행하기 어려운 것도 행할 수 있다(難忍能忍, 難行能行).” 사실 바로 이러한데 여러분이 돌아가서 한 번 시험해 보는 것도 무방하다. 진정한 겁난(劫難) 속에서나 또는 관(關)을 넘기는 속에서 당신은 시험해 보라. 참기 어려운 것을 당신은 참아 보라. 보기에 안 되고 행하기 어렵다고 말하는 것을, 그러면 당신이 한 번 시험해 보라. 도대체 행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 만약 당신이 정말로 할 수 있다면, 당신은 정말로 막다른 곳에서도 길이 열린다(柳暗花明又一村)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오직 우리가 집착심을 내려놓고 법을 항상 사부로 모신다면, 세 가지 일을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발표일자: 2006년 12월 20일
원문일자: 2006년 12월 20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중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6/12/1/143639.html
영문위치: http://www.clearwisdom.net/emh/articles/2006/12/20/8100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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