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헤이룽장성 대법제자
【명혜망 2006년 12월 18일】 나는 의료계에 종사하며 금년 68세이다. 1997년부터 대법 수련을 시작했으며 당시 몸에 7가지 중병을 앓고 있었고 2가지는 암으로 의심되었으나 대법을 수련한 이후 오래되지 않아 모두 좋아졌다. 지금은 청년처럼 높은 언덕도 잘 올라가고 먼 거리를 걸어도 가뿐하여 나는 대법의 무한한 아름다움과 사부님의 홍대한 자비를 깊이 느낀다. 아래에서 나는 주로 주변에 있던 몇 십 명 동수들을 일깨워 걸어 나오게 한 경험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1999년 7.20이후 사악이 대법을 박해하기 시작했을 때 수많은 동수들이 사악한 당의 박해가 두려워 집에 숨어서 연공하거나 사악에 의해 간격이 생겨 서서히 일부 동수들이 교란을 받아 뒤떨어졌고 감히 나와 진상을 알리지 못했다. 이 때문에 나는 마음이 몹시 아팠으며 또 아주 조급했다. 사부님께서는 이미 우리에게 천만년의 기다림은 오로지 오늘을 위해서이며 만약 이번에 사부님을 따라 돌아가지 못한다면 다시는 기회가 없다고 알려주셨다. 아울러 우리 대법제자는 사명이 있는 것으로 우리가 대응하는 천체의 무량(無量)한 중생들은 여전히 우리가 구도해주길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만일 수련하여 되돌아가지 못한다면 그들은 곧 훼멸될 것이다. 때문에 나는 사부님의 말씀에 따라 걸어 나와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며 3가지 일을 잘하기 위해 노력했다. 최근 2년 동안 나는 모든 시간을 이용하여 예전에 수련했었던 동수들을 하나하나 찾아가 법에서 토론하며 그들이 걸어 나오지 못하는 각종 장애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이 기간에 나 역시 수많은 어려움에 봉착했다. 처음에는 남편이 가로막았다. 남편은 “당신은 어째 늘 나가려고만 하는가.” 등을 말했다. 내가 홍법을 해도 듣지 않았다. 나는 차라리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라고 크게 외쳤다! 몇 차례 이렇게 한 후에 그는 더 이상 나를 상관하지 않았다. 분명 남편 배후에 있던 사악이 해체된 것이다. 그러나 엄마가 위험하다고 걱정하면서 딸이 또 가로막았다. 그 때 조급했던 나는 베란다에 나가 하늘을 바라보며 큰 소리로 외쳤다.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몇 차례 이렇게 외치자 딸은 아주 큰 진동을 받았고 작은 소리로 내게 말했다. “엄마 나도 간섭하지 않을래요. 걱정돼서 그런 거잖아요.”
사실 사부님께서는 시시각각 나를 돌봐주셨다. 내가 집에 없을 때 사악이 우리 집에 와서 2차례에 걸쳐 수색을 했지만 대법 관련 물품을 집안 깊숙한 곳에 잘 감춰놓았기 때문에 그것들은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했다. 나는 이것이 사부님께서 나를 도와 해결해주신 것임을 안다. 나는 시련 속에서도 확고하게 내가 해야 할 일을 했다.
처음에 나는 동수들과 함께 법학습을 하면서 고무 격려해 주었다. 모두 6개의 법학습 팀을 만들었는데 각 팀은 많은 곳은 7명, 적은 곳은 3명 정도였다. 80%의 동수들이 단체 법학습에 참가했다. 나는 매일 하나의 법학습 팀에 참가하면서 2시간 정도 법학습을 한 후 어떻게 걸어 나와 3가지 일을 잘할 것인가를 교류했다. 이렇게 하자 곧 일부 동수들은 걸어 나올 수 있었지만 개별적인 동수들은 내가 인내심을 갖고 다시 찾아가야 했다.
한 노인 여자 수련생은 집에서 장애가 몹시 컸다. 그녀의 남편은 아들이 북경에 가서 법을 실증하다 불법으로 구류와 벌금을 당한 후 몹시 분개하면서 늘 그녀를 욕하고 연공하지 못하게 했으며 대법서적도 훼손시켰다. 그녀는 할 수 없이 남편에게 책을 되돌려달라고 간청하여 베개 밑에 깊숙이 감춘 후 남편이 외출할 때에야 책을 꺼내 읽을 수 있었고 남편이 밤에 깊은 잠에 들었을 때 몰래 일어나 연공을 해야 했다. 그러니 진상을 알리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었다. 이에 대해 나는 자비로운 마음을 품고 몇 차례 그녀의 남편을 만나 대화를 나눴다. 나는 그에게 대법이 좋다는 것과 마땅히 아내의 수련을 지지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러자 그는 더 이상 그렇게 심하게 굴지 않았고 나는 그녀와 밖에서 만날 수 있도록 약속을 잡을 수 있었다. 사실 약속한 시간과 장소에서 우리는 단체법학습을 하고 진상을 알렸으며 그녀의 남편이 의심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도록 하고 그녀의 가족들에게 변화할 시간을 주기위해 전화는 걸지 않았다. 이렇게 2년의 시간을 견지해오자 지금 그녀의 남편은 안정되었으며 대법제자를 공경하며 더 이상 이전처럼 아내를 대하지 않게 되었다.
또 한 명은 60여 세의 여자 동수로 시력이 나빠서 줄곧 밖에 나가 진상을 알릴 엄두를 내지 못했다. 처음에 《구평》을 전할 때도 더욱 저촉했다. 2005년 봄 나는 그녀와 약속을 하고 함께 농촌에 갔다. 가면서 《홍음(2)》를 외웠다. 동시에 나는 걸어가면서 한편으로는 현수막을 걸고 스티커를 붙이면서 또 여러 종류의 진상자료를 가져다 농민들의 집 앞에 놓았다. 이 수련생은 나를 따라다니면서 발정념을 했다. 돌아오는 길에는 그녀 역시 진상자료를 배포했으며 그리 두려워하지 않았다. 왕복 20리가 넘는 여정을 우리는 매우 가뿐하게 돌아올 수 있었다. 이후 나는 또 그녀를 몇 차례 이끌어주었고 그녀는 곧 스스로 주동적으로 걸어 나올 수 있었다. 지금 그녀는 아주 정진하며 주동적으로 각종 진상을 알리고 있고 직접 얼굴을 맞대고 하는 3퇴도 알리고 있다. 원래 동수들이 그녀의 집을 방문하면 두려워서 오지 못하게 했었지만 지금은 그녀의 집이 바로 법학습 장소가 되었다.
또 한 명은 60세의 남자 동수이다. 사악한 당이 탄압을 시작한 이후 그는 줄곧 집에 숨어서 연공을 했고 나와서 진상을 알리지 못했다. 그러자 서서히 몸에 병업 증상이 나타났고 2004년 말부터 시작하여 늘 혼절하거나 경련을 일으켰다. 한번은 밖에서 쓰러져 온 얼굴이 피투성이가 되었다. 사람들이 보고 110에 신고하여 병원에 가서 응급치료를 받게 했다. 주변 사람들이 모두 살기 힘들겠다고 여겼고 병원에서도 ‘뇌종양’으로 진단을 내렸으며 수술을 하려면 10여만 위안이 필요하다고 했다. 또 꼭 수술을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라서 가족들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나는 이에 그를 찾아가 함께 법학습과 연공을 하고 그가 바른 믿음을 확고히 하도록 도와주었다. 오로지 대법과 사부님만이 도와줄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처음 법학습을 할 때 그는 동수들이 읽는 것을 따라가지 못했다. 나는 매일 따로 시간을 짜내어 그 동수 옆에 앉아 같이 책을 보면서 한 줄씩 짚어가면서 통독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그는 어느 줄인지 찾지 못했다. 이렇게 1년을 견지한 후에야 그는 스스로 독립적으로 법학습을 할 수 있게 되었으며 더 이상 떨리거나 혼절하지 않았다. 그의 아내도 다시 한 번 대법의 신기함을 견증하고는 다시 정진하기 시작했다. 그녀도 뒤떨어져 있던 동수였다. 이에 그녀도 걸어 나와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대법이 좋다고 알렸고 자기 남편이 대법을 수련하여 기사회생했으니 빨리 연공을 하고 악당의 거짓말을 듣지 말라면서 3퇴를 권하는 일을 아주 잘하고 있다. 그 자신도 파출소에 가서 진상을 알릴 수 있게 되었으며 파출소 경찰들도 그가 중병에 걸렸다가 파룬궁을 연마한 후 좋아진 것을 알기에 누구도 말을 하지 못했다.
지금 내가 있는 작은 지역에서는 몇 십 명의 동수들이 모두 걸어 나왔고 그들은 내가 이렇게 많은 나이에도 계속해서 자신들을 이끌어 모두들 진상을 알리고 3퇴를 권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하면서 감격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그랬다. 법학습을 통해 깨달은 본성은 자연히 어떻게 해야 하는 가를 안다. 지금 나는 또 다른 지역에서 아직까지 걸어 나오지 못한 동수들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또 그들을 찾아갔는데 이것은 나의 사명이자 책임이다. 나는 내가 마땅히 해야 할 것을 해야 하며 사부님이 계시고 법이 있기 때문에 반드시 예전의 동수들을 전부 일깨워 모두 걸어 나오게 할 수 있으며 한 사람도 낙오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개인의 깨달음이니 부당한 곳이 있다면 자비롭게 지적해주기 바란다.
문장발표 : 2006년 12월 18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06/12/18/144930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