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대만 대법제자
【명혜망 2006년 12월 18일】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 하십니까 ! 동수 여러분 안녕 하십니까 !
나는 2000년 초반에 법을 얻었다. 그때 나는 대법을 무척 소중히 여기고 자신의 수련을 다그치리라 생각했다. 그러므로 수련 중의 일부 기초는 바로 그 두 해 동안에 닦은 것이다. 나는 2002년에 입대하게 되었다. 그때 나는 병역에 복무하는 것에 대해 아주 달갑지 않게 여겼다. 자신이 동수들과 함께 대법을 실증하는 홍류 속에서 끌려나온 듯 한 느낌이 들었다. 지금와서 다시 되돌아보니 그 중에는 정법 시간에 대한 나의 집착, 그리고 자기 스스로 자신의 수련의 길을 배치하려는 마음이 감춰져 있었던 것이다.
1. 사명에 대한 점화(點化)
입대 첫 달은 신병 훈련 기간이었다. 알다시피 신병에게는 자기 개인 시간이 없다. 나는 오직 저녁 시간에 전등을 끄고 잠자리에 든 후에야, 이불을 뒤집어쓰고 손전등을 켠 채 엎드려 법공부를 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서야 비로소 나는 법공부 할 수 있는 환경의 소중함을 깊이 감수할 수 있었다. 이전에 집에서 편안하게 법공부 할 때는 이런 날이 있으리라곤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군대에서 매주마다 ‘쥐광 작문책(莒光作文簿)’에다 심득을 한 편씩 써야 했다. 한 번은 느끼는 바가 있어 내 생각을 글로 썼다. 바로 군대 교관이 강제로 사람의 행위를 속박하는데 오직 마음속으로부터 우러나와 승화된 도덕만이 진정으로 사람을 훌륭하게 변하게 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공교롭게 그 심득이 사나운 우리 소대장의 손에 들어갈 줄이야. 사람들은 그를 아주 무서워했다. 그때 그는 아주 조롱하는 어투로 나에게 다음과 같은 평어를 써 주었다. “당신이 세계를 감화시켜 전 인류의 도덕을 승화시키길 바라네. 뛰어난 수양과 정념을 전체 은하계에 널리 뿌려주게나. 간청하건데 부탁드립니다!”
수련인을 놓고 말할 때 이것은 그야말로 말할 나위없는 명백한 점화였다. 나는 이것이 내가 여기에 오게 된 사명임을 소대장이 무심결에 한 말을 통해 알게 되었다. 동시에 나도 안을 향해 찾아보았는데 자신의 문장 가운데 남이 이해할 수 있는 관점과 실제 상황에 비추어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조소를 자아냈던 것이다.
몇 분 후에 조용한 곳에서 그 소대장은 내 앞에 앉았다. 담배를 꺼내들고 다리를 꼰 채 아주 오만한 기색으로 나에게 물었다. “내 평어를 본 소감이 어떤가?” 나는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고 솔직하게 도덕에 대한 나의 생각을 그에게 말했다. 뜻밖에 몇 분 사이에 그의 태도는 180도 개변을 가져왔다. 그는 담배를 버렸고 다리도 내려놓았으며 공손히 들어보려는 표정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는 나에게 물었다. “이것은 네 스스로 생각해 낸 것인가?” 나는 말했다. “아닙니다. 이것은 제가 파룬궁을 배웠기 때문에 비로소 알게 된 것입니다.” 그 후로 그는 늘 나를 찾아 왔고 음료 같은 것을 사들고 와서는 나에게 주었다. 훈련이 끝날 즈음 그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나를 가리키면서 “전 중대에서 내가 가장 신뢰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 일에서 나는 진상을 알림에 상대방의 표면적인 선악, 혹은 계급에 장애 받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계급은 군대 내에서는 아주 절대적이지만 우리 수련인은 이 층의 두려운 마음을 돌파해야 한다. 나중에 나는 소대장과 중대장에게 《전법륜》을 보내 주었다.
2. 준엄한 수련 환경
신병 훈련이 끝나자 나는 ‘공포교관’으로 소문난 중대에 배치되었다. 중대원은 모두 백 명뿐이었는데 사람들은 모두 ‘지옥의 중대’라고 불렀다. 이 중대에는 소대가 3개 있는데 이전에 거의 모든 사람이 고참들에게 시달려 자살을 기도하거나 도망치려 했으며 한밤 중이면 이불속에서 울기가 일쑤였다. 내가 부대에 들어갔을 때는 위에 있던 한패의 고참들은 대부분 마피아처럼 공갈, 협박, 매춘, 마약 흡입 등 안해 본 짓이 없었고 사람을 괴롭히는 수단도 아주 많았다. 그 외에 내가 가기 전에 반년이 넘도록 신병이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가자 많은 사람들이 흥분했고, 어떤 사람은 심지어 나를 자살하게 만들거나 못 살게 할 거라고 떠벌렸다. 이러한 배경은 나의 특수한 수련환경을 구성했다.
육체적인 감당에 있어서 나는 계급이 가장 낮았기에 날마다 일찍 일어나 열 몇 명 고참들의 이불을 개고 침상의 일체를 잘 정돈해야 했으며 낮에는 땡볕에서 여러 사람 몫의 일을 해야 했다. 그러므로 나의 정신은 늘 팽팽히 긴장된 상태에 있었으며 행군을 하는 외에 나는 무슨 일을 하든지 뛰어다녀야 했다. 날마다 두, 세 차례 교대로 보초를 서는데 그 중 한 교대는 새벽 두세 시여서 수면시간이 아주 적었다. 밤에 보초를 설 때면 늘 머리가 어지러워 길을 바로 걸을 수도 없었다. 한 번은 고참을 도와 일을 하다가 끓는 물에 손가락을 뎄는데 살이 벗겨져서 그날 저녁 어찌나 아프던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이런 경력은 나로 하여금 대륙 동수들이 혹형에 시달리며 하루 종일 일을 하고 잠을 자지 못하게 하는 고통에 대해 조금이나마 느껴볼 수 있게 했다. 사람의 정상적인 의지는 아주 쉽게 약화될 수 있는 것이다.
심성(心性)고험에 있어서 당시 나는 ‘신체적인 고생은 고생이 아니고 마음을 닦음이 제일 어려운’ 이 점을 완전히 체험하였다. 고참들의 험상궂은 태도에 비교하면 육체노동이 아무리 힘들지라도 정신적으로는 그나마 잠시 편안하고 쾌적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나는 혼자 단독으로 이 부대에 배치 받아 왔지만 많은 후임병들은 반년 후에나 들어왔다. 때문에 나는 한동안 줄곧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는 초점이 되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모두 나를 불렀고 언제 어디서나 눈을 부릅뜨고 성을 내면서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는 이전에 사람들 속에서 숨어 있기를 즐기던 나를 더 이상 숨지 못하게 만들었다.
구체적으로 일을 하는 방면에서, 나는 평소에 목소리가 크지 않았다. 하지만 매일 백여 명 사람들이 행진을 하면서 군가를 부르는 속에서 고참들은 내 목소리가 다른 백여 명 사람보다 커야 한다고 요구했다. 고참들은 나더러 산 위에서 노래를 부르게 하여 전화로 산 아래 사람들에게 내 목소리가 들리는지 묻곤 했다. 기계수리 및 보수 등에 대해 나는 원래 숙달하지 못했지만 모두들 기계를 배운 적이 있는 부대에 배치되었으니 그 가운데서 나의 미숙함이 더 뚜렷이 나타났다. 나는 나의 기능적인 약점이나 혹은 집착심이 모두 첨예한 장소를 이용해 폭로되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체면을 잃게 하고 넘어지게 한다는 것을 발견했으며, 이를 통해 자신에게 드러난 부족점, 부끄러움을 보게하는 동시에 남들의 욕설, 조소를 감당하게 하여 스스로 옳다고 여기는 마음, 허영심, 그리고 두려운 마음을 버리게 했다.
그 외에도 내가 어디를 가거나, 바쁘거나 바쁘지 않거나 막론하고 고참들이 명령을 내리기만 하면 두말없이 즉각 가서 해야 했다. 이렇게 강제적인 작풍 가운데 나는 나의 이전의 아주 큰 집착을 하나 발견했는데 바로 곤난이 올 때면 말재주, 논리 등의 방식으로 회피하거나 시간을 끌었다는 것이다. 수련 가운데서도 마찬가지로 집착을 버릴 때면 나는 마땅히 결단을 내려 용맹정진 해야 하며 무조건적으로 표준에 도달하도록 자신에게 요구해야 하며 대충대충 할 수는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을 속이는 것이 된다.
또 한 가지는 이러한 환경에서 내가 어떠한 것을 배우던 간에 단번에 기억해야 했다. 다른 사람은 일주일 동안 동작을 배울 수 있어도 나는 한 시간 안에 배워야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고참들이 욕설을 퍼부으면서 얼차려를 주었다. 나는 전념하면 확실히 효율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사실 ‘약삭 빠르게’ 속인의 사업을 잘하는 것은 나의 부족한 점이다. 속인 사업뿐만 아니라 자신의 법공부, 수련도 이러한 높은 표준으로 전념하고 열심히 해야만 비로소 되는 것이다.
3. 중생구도의 기점을 바로 놓아야
2002년은 대륙의 사악이 창궐했던 한 해이다. 명혜망에서 나는 대륙 동수의 몸에 나타난 일부 증상을 보았는데 내게서도 나타났다. 나는 모든 대법제자들은 하나의 정체라는 것을 의식하였다. 하지만 나는 오랫동안 법공부를 할 방법이 없었고, 게다가 바쁘고 피곤하여 나의 상태는 아주 나쁘게 변했다. 많은 법을 잊어버렸고 자신에 대한 요구도 점점 더 낮아져 전체적으로 아주 피동적인 상태에 빠졌다.
나는 다만 사상속에서 낡은 세력의 억지로 가한 박해를 부정하는 한편 가급적 자신에게 알려 주었다. “나는 수련인이다. 나는 중생을 구도하러 왔다. 절대로 내가 잘하지 못한 것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에게 대법이 나쁘다는 편견이 생기게 해서는 안 되며, 이 때문에 구도될 인연을 잃게 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남이 나에게 아무리 악하게 굴지라도 내 마음속에는 미워하는 생각이 종래로 생기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그들을 모두 중생으로 대했고, 매 사람을 모두 구도해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에 그들을 대하는 태도가 비교적 성실했고, 일을 할 때면 가급적 그들을 배려해 주었다.
어떤 간부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매번 볼 때마다 웃는 모습이라 참 보기가 좋구나.” 여러 차례 압력이 있을 때면 나는 머릿속으로 “대각자는 고생을 두려워하지 않거늘 의지는 금강으로 만들었구나.”(《홍음(2)―정념정행》), 그리고 “백가지 고생이 함께 내리거니 어떻게 살아갈지 볼 지어이다.”(《홍음―마음고생》) 이 두 구절의 시가 언제나 나타나곤 했다.
몇 달 후 많은 고참들의 나에 대한 태도가 변하기 시작했다. 어딴 사람은 나의 일을 도와주었고 나를 두둔하는 말을 해 주었으며, 또 어떤 사람은 내가 군대에서 자신의 유일한 친구라고 말했다. 실제로 나는 별로 많이 한 것이 없다. 다만 사상 속으로 자신은 대법제자가 되어야 한다고 일깨워주었을 뿐이다. 업력이 없어지는 동시에 사부님께서 나를 도와 일체를 선해 시켜 주셨던 것이다.
4. 자기의 길을 걷다
어느 날 고참들이 모두 제대했다. 하지만 그들의 그 ‘수단이 악독할수록 강자’라는 변이된 관념은 일찍부터 사람마음속에 깊이 박혔다. 나는 이렇게 후임병들을 대하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어떻게 새로운 길을 개척할 것인지가 나를 번민하게 했다.
사색을 통해 나는 그들의 입장에 서서 그들과 마음을 나눔으로써 선임병과 후임병 사이의 대립을 풀어주었고, 그들이 자신의 이익에서 벗어나 단체를 중히 여기는 데로 인도했다. 서서히 그들의 마음이 넓어졌고, 점점 더 남을 포용할 줄 알게 되었으며 그들 사이의 이익충돌도 완화되었다. 얼마 안 가 우리는 한 가지 임무를 맡게 되었다. 우리는 누구나 할 것 없이 서로 돕고 협력하면서 이전보다 더욱 좋은 성적을 냈다.
소대장은 여러 사람들이 모두 아주 열심히 했다고 느끼면서 포상휴가를 누구에게 줬으면 좋을지 망설이고 있었다. 과거 예에 따르면 가장 선임병은 일을 하지 않고도 포상휴가를 받았다. 이번에는 선임병이 후임병들에게 양보했고 후임병들은 선임병에게 양보했다. 우리는 병사들이 군 복무 중에 가장 중하게 여기는 이익이 휴가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도리어 이렇게 서로 양보하는 것을 보고 나는 아주 감동되어 이 변화를 작문 노트에 써 넣었다.
중대장이 내 글을 본 다음 전 중대를 소집하여 내 문장을 읽고 여러 사람들에게 박수를 쳐주라고 했다. 그는 “이것은 내가 군대에 이렇게 오래 있으면서 본 것 중 가장 감동적인 일이다!”라고 말했다. 또 포상금을 주어 우리를 축하했다. 사실 몇 년 동안 이곳에 근무했던 고참 간부들은 우리의 표현에 대해 아주 이상하게 여겼다. 이전에는 소대원들이 서로 적대시 하고 말도 별로 하지 않았으며 물건을 훔치는 일이 흔했었는데 지금은 화목하여 말도 하고 웃기도 하면서 고생과 즐거움을 함께 하는 모습이 나타났다. 한 후임병은 간부에게 내가 이전에 겪은 마난을 듣고는 아주 놀라워했다. 그러나 내가 무엇 때문에 그들을 이렇게 대할 수 있었는가를 말해주었을 때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그가 파룬궁을 연마했기 때문이에요!”
《뉴욕 좌담회의에서의 설법》 중에 다음과 같은 한 단락이 있다.
“문: 수련은 능히 외부 환경, 자연 환경, 사회환경 혹은 수련자 본인의 교제환경과 생활환경이 양성(良性)을 향한, 眞善忍(쩐싼런)을 향한 이 방향에로 발전하게끔 이끌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스승: 이 역할을 하고 있다. 다만 아주 미묘하며 관찰하기 쉽지 않다. 당신과 관계가 있는 일체가 모두 미묘하게 변화를 발생하고 있다. 두개 면의 변화이다. 즉 하나는 갈수록 당신과 더욱 멀어지고 하나는 갈수록 당신과 더욱 가까워진다. 변할수록 더욱 좋다. 어떤 것은 아예 당신과 갈라지고 안 되는 것은 갈라지게 되는데 그는 이럴 수 있다. 변화가 아주 미묘하다.”
하루는 한 간부가 이렇게 말하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지금은 왜 라이터도 빌릴 수 없는 거야! 전에는 거의 다 담배를 피웠는데 지금은 왜 담배 피우는 사람이 없어?” 나는 정말로 그렇다는 것을 갑자기 발견했다. 후에 새로 들어온 사람들의 소질은 점점 더 단정해졌다. 나는 한 병사가 원래 담배를 피웠었는데 나중에 담배 피우는 것이 별로 재미가 없다는 것을 알고 피우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또 주위를 살펴보았다. 비교적 악했던 일부 간부들이 다른 곳으로 전근했고 새로 전근되어 온 사람들은 모두 비교적 선량했다. 이전에 화초와 나무들은 모두 마구 자랐었는데 우리가 많은 품을 들여 정리하자 지금은 생기가 넘치면서도 규칙적이다. 전에는 사람들이 늘 “이 문에 들어서기만 하면 숨쉬기도 불편해.”라는 말을 들었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없다. 수도관도 설치하여 물을 쓸 수 있으며 더는 화장실에 분변이 쌓이지 않게 되었고 위생 환경도 전에 비해 많이 좋아졌다.
우리 소대의 표현은 곧 중대 전체에 영향을 주었다. 한번은 대대장이 우리 중대에 시찰와서 감개하며 말했다. “이곳은 이미 이전의 바르지 않던 곳으로부터 가장 인간적인 곳으로 변했다.”
5. 느슨한 환경에서의 심성 고험
준엄했던 환경에서 내가 대법에 대해 견정한가를 고험 할 수 있었다면 환경이 서서히 느슨해짐에 따라 안일을 구하는 등 다른 집착심들이 폭로되어 나왔다.
군대에서 제일 좋은 이야기 거리는 음담패설이다. 나는 언제나 교묘하게 회피하거나 화제를 바꾸곤 했다. 점차 그들은 내 앞에서 그런 말을 하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뿌리를 뽑아 버리지 않아 어떤 때는 허튼 생각을 하기도 했다.
어느 날 내가 보초를 서고 있는데 누렁이 한 마리가 달려 왔다. 백주 대낮에 내 앞에서 네 마리의 암캐와 그 짓을 하는 것이아닌가. 나는 보초를 서면서 볼수록 화가 치밀어 교대할 때 돌멩이를 던져 개들을 쫓아버렸다. 하지만 나는 마음속으로 그것은 특별히 나에게 보여주기 우해 배치된 것임을 알고 있었다. 만약 내가 이성(異性)에 대한 생각을 내려놓지 못하거나, 색욕에 대하여 집착 한다면 이 더러운 행위와 무슨 구별이 있겠는가?
그 외에 전에는 음식을 먹을 때 아무렇게나 대충 먹고 일하러 가곤 하여 무슨 맛인지도 모르고 지냈는데 환경이 좋아지자 저녁에 배가 고프지 않아도 뭘 좀 먹은 후에야 잠이 들었다. 그 결과 어느 날 밤에 잠을 자다가 갑자기 귀가 아파 머리를 돌려 보고는 깜짝 놀랐다. 글쎄 커다란 쥐 한 마리가 내 귀를 물은 것이다! 그 때 내가 라면을 먹기만 하면 물렸는데 먹지 않으면 물리지 않았다. 이 역시 내가 먹는 것을 탐하는 이 마음을 겨냥하여 온 것이다.
이와 비슷한 고험과 점화가 아주 많았다. 나는 수련인의 일사일념(一思一念)에 대한 요구가 모두 엄격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만약 어떤 일을 하는 심태와 표준이 일단 속인과 혼동되면 안 되는데 곧바로 시끄러움을 가져오게 된다. 군복무 하던 전반 과정에서 나는 자신에게 줄곧 안일을 바라는 마음이 있었으며 어느 부대로 전근하고 언제 휴가를 가고 임무는 언제쯤 끝날 것인가, 아직도 얼마나 있어야 제대하는가, 말년에는 자유롭다는 등등을 기대하는 마음이 있었다는 것을 보아 냈다. 매번 일하기 전이면 나에게 끊임없이 좋은 소식이 있다고 알려 주는 사람이 있었는데 나는 좋은 소식에 대해 언제나 잘 믿곤 한다. 하지만 결과는 언제나 나를 크게 실망시켰다.
예를 든다면, 내가 아주 고생스런 임무를 맡아 아주 오랜 시간을 지키고 나서 다른 사람의 휴가도 모두 끝나 내 차례가 된 그날 갑자기 사스가 발생해 휴가가 전면 금지되었다. 그런데 사스는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또 있다. 매번 나에게 정해진 휴가는 방금 전까지도 원래대로 있다가 변경되곤 했다. 내 마음에 제일 걸렸던 것은 정부에서 새롭게 복무 기한을 두 달 단축하기로 정한 것이었다. 나는 바로 이전에 병역에 복무하여 새로 군에 입대하는 사람에 비해 두 달을 더 복무했던 것이다. 많고 많은 일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내게는 늘 재수 없는 일만 닥친다는 느낌을 주었다. 하지만 나는 이것이 모두 내 마음이 조성한 것이란 것을 알고 있다. 나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일이 하나 있는데 이전에는 말년에 보초를 서는 일이 아주 적었는데 나는 도리어 군인으로서 마지막 일분조차도 여전히 초소에서 보냈다. 그야말로 최후의 일각도 늦추어서는 안 된다.
이 7년 동안의 수련을 회상해 보면 군대 생활은 하나의 축소판과 같았고 일체는 모두 세심하고도 질서 있게 배치되어 있었다. 이 과정에서 나는 대법의 요구와는 아직도 거리가 상당히 멀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외부 환경이 아무리 열악하거나 느슨하거나 상관없이 수련인의 길은 모두 집착을 내려놓으면서 한걸음 한 걸음씩 걸어가는 것이지 환경이 느슨하다고 하여 수련인의 요구 표준을 낮추는 것은 전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끝으로 나는 이토록 위대하고 성스러운 정법시기에 모든 동수들과 함께 원만에 이를 때까지 공동 정진할 것을 희망한다.
사부님 감사 합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2006년 대만 파룬따파 수련심득교류회 발언 원고)
문장발표 : 2006년 12월 18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minghui.ca/mh/articles/2006/12/18/14493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