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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일을 하는 것과 수면(睡眠)

글 / 대륙 대법제자 후이쩐(慧眞)

[명혜망 2006년 12월10일] 지금 대법제자들은 모두 매우 바쁘며 시간이 매우 촉박한 바 어떤 때에는 아주 많은 일들을 돌 볼 겨를이 없다. 더욱 법학습과 연공을 해야 하는데 법공부와 연공함이 적어지고 일하는 데로만 바쁘게 돌아다니게 된다. 만약 정말로 매우 많은 일을 해야 한다면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하나의 매우 유효한 방법인 즉 수면을 감소시키고 수면 시간 중에서 시간을 찾아야 한다. 많은 동수들은 연공을 적게 하는데 이는 수면이 부족할까봐 두려워서이다. 나는 이것은 법에서 인식하지 못하여 조성된 것으로 이 상태를 장기적으로 끌면서 줄곧 이 곤경에서 걸어나오지 못하는 동수들이 많다고 생각된다.

사부님께서는 ‘연공은 제일 좋은 휴식이다.’ 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사부님을 믿지 않는가? 그러나 어떤 동수들은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나 역시 연공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효과가 좋지 않는가?” 문제는 어디에 있는가? 내가 생각하건대 근본적으로 이런 관념을 돌려 세우지 못하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연공하느라 잠이 부족하다고 여기고 있는데 줄곧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사악은 이 상황을 보고는 곧 우리들에게 가상을 연화해주게 될 것이다. 만약 사부님께서 하신 말씀을 완전히 믿지 못한다면 더욱 이러한 가상의 미혹을 받게 될 것이다. 또 우리가 연공할 때에도, 정말로 자신이 연공하고 있는가? 청성한가? 만약 청성하지 않은 상태에서 연공한다면 어찌 연공의 목적에 도달할 수 있겠는가? 자기 자신을 제고해야 하는 문제가 아닌가? 만약 의지가 견정하지 못하다면 잠을 많이 잔다 해도 여전히 힘들고 피곤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 때에는 우리들이 꼭 조금이라도 더 자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잠을 잘 잤는데 지금은 오직 우리들이 어떻게 의지를 강하게 하고 견정히 하는가가 문제인 것이다.

매우 많은 동수들은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으려고 꾀를 부리는데 안일을 구하는 마음 이외에 또 하나의 매우 큰 원인이 있는데 그것은 곧 연공과 수면을 선택하는 사이의 투쟁인 것이다. 만약 주의식이 강하지 못하고 법리에 있어서 똑똑하지 못하다면 사람의 일면이 우세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여기에서 나는 결코 우리 대법제자들이 잠을 자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아마 어떤 동수들은 이미 이 상태에 도달했을 수 있는데 그 역시 이 일보까지 수련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휴식은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수마(睡魔)를 자양하지 말아야 하며 안일을 구하는 마음을 방임하는가 아니면 우리의 의지를 강하게 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그렇다면 어느정도 자는 것이 적합한가? 여기에는 절대적인 것이 없으며 천편일률적인 표준도 없다. 오직 세 가지 일을 하는데 영향을 주지 않고 수련의 길을 똑바로 걸을 수 있기만 하다면 얼마나 잠을 자든지 모두 과분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말로 이 한 점에 도달했다 하더라도 잠으로 인해 자신을 방임할 수 없으며 절제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생각하건대 하루에 5~6시간 자면 충분하며 3~4시간 역시 되는데 다만 자신의 수련상태가 허락하기만 하면 될 것이다. 매우 많은 동수들은 저녁 12시 전에는 자지 않는다. 대법을 실증해야할 일들이 매우 많고 또 법공부, 연공, 발정념 시간을 보증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침 6시 발정념 하기 전과 후에 법공부도 하고 연공도 한다. 그러나 발정념을 한 후 절대로 다시 잠들지 말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 정념을 발한 후에 또 잠을 좀 자겠다는 생각을 가지면 발정념할 때 곧 청성하지 못한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만약 발정념할 때 매우 청성하다면 발정념한 후 더 잘 필요가 없다. 나에게는 이런 체험이 있다. 발정념 전 혹은 후에 조금만 자려고 했으나 눕기만 하면 1시간 혹은 더욱 길게 자게 되어 시간을 지체시키고 일을 지체하게 되는 바 잃는 것이 얻는 것보다도 많았다. 때로는 사악이 우리들을 교란할 때, 그 틈은 아마 우리 자신이 감지하지 못하여 중시하지 못하게 되고 의식적으로 쉽게 방임하기 시작하는 부분부터 시작하여 기어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지금 어떤 동수들은 아직도 낮잠을 자는 습관이 있다. 아마 선잠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동수들은 잠이 들었다 하면 한 두 시간을 그냥 자버리는데 이 부분에 대하여 잘 깨달아야 하는바 능히 수면을 줄이고 억제시켜야 하는 것이다. 자신의 정황에 근거하여 해야하며 역시 억지로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어떤 때 나는 이러한 한 가지 문제를 생각한다. 책을 들고 법공부 할 때 만약 머리가 맑지 못하거나 잠을 자고 싶어 한다면 이 상태는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것인가? 사부님께서 어찌 내가 법공부할 때 졸리게 안배하실 수 있겠는가? 또 당시 무엇 때문에 컴퓨터를 하거나 혹은 기타 일을 하면 정신이 나게 되는가? 이것은 바로 사악이 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 사악의 존재하는 곳을 보게된 이상 어떻게 하는 것이 비로소 정진하는 표현이겠는가?

우리 함께 다시 한번 사부님께서 《법륜불법 장춘보도원 법회에서의 설법》에서 해석하신 두 개의 문제를 학습하기로 하자.

문 : 나는 몇 년간 연공을 하였지만 나는 가부좌를 할 때 잠들어 버리는 일이 자주 나타나는데 이것이 줄곧 나를 곤혹케 합니다.

사부 : 여러분들은 고생해야함을 다 알고 있다. 그렇다면 당신의 혼침(昏寢) 그것은 역시 당신을 괴롭히고 당신더러 수련하지 못하게 함을 생각하지 못했는가? 이것 역시 당신의 의지가 마땅히 역할을 해야 할 때가 아닌가? 당신이 눈을 뜨고서도 자야만 한다는 것을 나는 믿지 않는다! 안 되면 눈을 뜨고 연공하라. 이 관을 넘지 않으면 안 된다!

문 : 법공부할 때 어떤 사람들은 늘 자려고 합니다.

사부 : 법공부할 때 자고 책을 읽을 때 자고 연공할 때도 당신은 자는데 어찌됐든 이런 가장 초기의 것조차도 모두 돌파하지 못했다. 그것은 의지에 달렸다! 여러분 알다시피 당신이 수련 중에서 인간으로 구성된 어떠한 요소도 모두 당신으로 하여금 인간을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 뿐만 아니라 인간으로 구성된 어떠한 환경의 것도 모두 당신으로 하여금 떠나지 못하게 하지만, 당신은 무엇이든지 모두 돌파해야 하고 어떠한 마난도 모두 넘겨야 한다. 가장 크게 표현되는 것은 그들이 당신에게 고통을 조성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고통은 부동한 형식이 있는바 잠자는 것도 그 일종이다. 수련할 수 없고 정진하지 못하는 사람은 오히려 이것이 고생이라는 것을 모른다. 당신이 법을 얻지 못하고 당신으로 하여금 법을 배우지 못하게 하는데 당신은 아직도 그것이 마난이라고 느끼지 못하는가? 당신의 마음이 법에 있지 않고 수련하고 싶지 않은 것을 제외하고 말이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그것을 극복하지 않는가? 당신의 의지를 강화시켜라. 사람이 만약 자신의 잠을 억제시켜서 성불할 수 있다면 나는 너무나 쉽다고 말한다. 이 작은 관도 당신은 넘어가지 못하는데 그럼 어떻게 수련하겠는가?

사부님께서는 또 《2005년 샌프란시스코 설법》에서 이 문제를 해답하셨다.

제자문의 : 극소수 노수련생들은 장기적으로 대법 일을 하고 있지만 또 장기적으로 법공부와 연공을 하지 않는데 줄곧 이렇게 나아가도 수련입니까?

사부 : 이런 문제가 있다. 아주 많은 대법제자들은 여러 가지 대법 일을 겸해서 하고 있다. 법을 실증하는 일을 해야 하기에 법공부할 시간이 없고 연공시간도 적은데 줄곧 이렇게 나아가서는 안된다. 우리 여러분도 모두 알고 있듯이, 특히 중국 대륙의 수련생들은, 어느 수련생이 능히 바르게 걷고 잘 걸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은 그러한 환경하에서 전적으로 법공부에 의지했기 때문이다. 당신이 법을 공부하지 않으면 당신의 정념은 곧 부족해지며 법공부를 하지 않으면 당신 표면상의 개변이 느려져서 당신이 사회중에서 일으키는 사(邪)를 제약하는 작용도 약해진다.

개인의 깨달음이다. 부족한 곳은 동수들이 자비롭게 지적해주기 바란다.

문장완성 : 2006년 12월9일
원문위치 : http://search.minghui.org/mh/articles/2006/12/10/144325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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