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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별하는 마음과 정체제고

글 / 다롄시 대법수련생 룽신

[명혜망] 최근 나는 나 자신이 부동(不同)한 수련생들에게 부동한 태도를 갖는, 구별하는 마음이 강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일부 수련생들은 사명감이 아주 강해 항상 자신의 心性(씬씽)을 수련하고 인간 집착심을 제거하며 정념이 아주 강하다. 이런 수련생들과 함께 있으면 나는 그들에게서 혜택을 받는 느낌이 들며, 그들은 항상 다른 사람을 고려하기 때문에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된다. 반대로 일부 수련생들은 그들의 기점이 아직도 속인 중에 있기 때문에 항상 자기 자신을 생각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면서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처음에는 이것을 참고 견딜 수 있었지만 여러 차례 되어도 그들의 태도가 시정되지 않자 나는 그들에 대해 냉담해졌고 그들에 대한 인내심이 없어지게 되었다.

법공부와 내면을 향해 찾으면서 나는 우리의 心性(씬씽) 층차가 모두 다르고 법에 대한 인식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나의 인식을 강요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마음이 평형을 잃을 때면 아직도 나 자신에게 집착심이 없는지 내면을 향해 찾아야 한다. 논쟁할 필요가 없으며 더구나 내가 전에 하던 것처럼 그들과의 접촉을 꺼리거나 적합한 말을 찾아 해주지 않고 자비심을 잊어버리는 그런 행동들은 더욱 좋지 않은 것이다.

정진하는 수련생들을 대할 때와 ‘정진하지 않는’ 수련생들을 대할 때 왜 나에게 그렇게 큰 차이점이 존재하는가? 나의 내면에 여전히 구하려는 마음, 이익을 얻으려는 마음, 사심(私心)이 숨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정진하는 수련생들과 만날 때는 법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수련생들을 만날 때는 시간과 에너지 그리고 인내심을 빼앗기게 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늘 그들이 나에게 문제를 만들어 주고 나에게 손상을 주며 나에게 인간 집착심을 불러일으키게 한다고 느꼈다.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내가 원했던 것은 전부가 무엇인가를 얻으려는 것이었다. 나는 얻으면 행복했고 잃으면 고통스러웠다.

사부님께서는 《북미 제1기 법회에서의 설법》에서 말씀하셨다.

‘그럼 어떻게 곳곳에서 다른 사람을 위하여 생각해야 하는가? 내가 최대한도로 속인 사회 중에 부합되게 수련할 것을 이야기하였기 때문에 당신은 사람과 만나야 하는 것으로, 그렇다면 곧 이익적인 것이 존재하게 된다. 그런데 당신이 아직도 그렇게 이기적이고 무슨 일이 있으면 당신은 모두 우선 자신을 생각하고 다른 사람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나는 그것은 곧 안 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당신이 필경 아직도 사회의 많은 사람과 만나야 하기 때문이다.’

사부님께서는 대법수련생들 사이의 관계를 포함해서 사람들과의 모든 관계에는 이익적인 것이 존재하게 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셨다. 얕은 층에서 보게 되면 개인의 실과 득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고 더욱 깊은 층차에서 본다면 항상 다른 사람들을 돕고 무사무아(無私無我) 그리고 남을 먼저 생각하는 심태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대법수련생들은 오늘날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가운데 함께 일하게 되는 기연을 가지고 있으며 서로 협조하고 소통하는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어떤 수련생이 법에 용해될 수 있는, 정진을 돕는 환경을 추구한다고 해서 우리는 그것을 잘못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정법 과정 중에서는 사부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에 원용하는 정체제고 정체원용이 최고의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자신을 대각자로서 성취시키려면 우리는 매 층차에서 ‘私’를 제거해야만 한다.

발표일자 : 2006년 11월14일
원문일자 : 2006년 11월14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중문위치 : http://minghui.ca/mh/articles/2006/11/7/141761.html
영문위치 : http://www.clearwisdom.net/emh/articles/2006/11/14/7990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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