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대륙 대법 어린제자 산산
[명혜망 2006년 10월 31일]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 하십니까 !
저는 사부님의 어린 제자입니다. 저를 이렇게 훌륭한 가정에 전생시켜 수련할 수 있게 해 주심에 사부님께 감사 드립니다. 제가 수련한 지도 어언 7년이 되었습니다. 저는 7년 동안의 정법 수련의 길에서 행한 일부 자그마한 일들에 대해 사부님과 동수들에게 회보 하고자 합니다.
저의 가정 환경은 비교적 훌륭합니다. 아빠 엄마 모두가 수련을 하므로 우리 집에는 늘상 교류하는 수련생이 있고, 또 법공부 팀도 있습니다. 저는 학교에서 공부하는 외, 집에 돌아오면 듣고 보는 것 모두가 법속의 일입니다. 저는 우리 집에 오는 동수들이 저에게 고무 격려해 주며, 도움을 주는 것에 매우 감사합니다. 이러한 환경이 저를 줄곧 법속에서 용련하게 합니다.
사악이 미친듯이 박해하고 있는 날들에도 저는 줄곧 엄마를 따라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길에서 매 한 걸음을 걸어 왔으며, 늘 엄마와 함께 진상 자료를 배포하고, 현수막을 걸거나 층집 계단이나 전봇대에 “파룬따파 하오”라고 써 놓았습니다. 한 번은 엄마와 함께 시골에 가서 자료를 배포하려고 길을 떠났는데 절반정도 갔을 때 비가 내렸어요. 고작 4시경이 갓 지났기에 마을에는 아직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저는 엄마에게 6시 발정념을 마친 다음 날이 어두워지면 다시 배포 하자고 했어요. 발정념을 하여 비를 멈추게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진상자료가 다 젖고 말텐데, 우리가 이렇게 멀리까지 왔는데 헛걸음이 되잖아요. (그때는 비닐 봉투가 없어서 붉은 종이로 쌌어요) 저와 엄마는 나무 밑에 앉아서 발정념을 하기 시작 했어요. 6시 발정념을 끝내자 과연 비가 멎었어요. 그 마을은 아주 컸는데 저와 엄마는 갖고 갔던 2백여 부의 진상 자료와 시디롬을 전부 배포하고, 그리고 10여 개의 현수막도 몽땅 걸었어요.
사악의 미친듯한 탄압환경으로 인해 어떤 때는 아주 긴장되었어요. 동수간에 서로 연락 하기가 불편할 경우에는 제가 나이가 어리고 사악의 주의를 별로 불러 일으키지 않으므로, 몇 년간 줄곧 동수들에게 자료를 전해주고, 무슨 일이 있으면 제가 집집마다 다니면서 통지를 했어요.
2004년 어느 날 엄마는 특별한 일이 있다면서 저녁에 돌아 오시지 않았어요. 그 뒷 날은 토요일이라 명혜주간과 진상자료가 나와야 했어요. 이전에 제가 수업을 마치고 집에 오면 늘 엄마의 조수가 되었어요. 그랬는데 엄마가 돌아 오시지 않자 저는 조급해 졌어요. 속으로 생각 했어요. 엄마가 언제 돌아 오실지 모르겠구나, 엄마가 돌아 오시면 또 진상 자료를 만들어야 할 텐데 얼마나 고생스러우실까! 만약 늦게 돌아 오신다면 주간, 진상자료를 만들 수 없을 텐데, 동수들이 자료를 가지러 왔다가 헛탕을 칠거고 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명혜주간을 보는데 영향을 줄 것이다. 하루 늦게 진상자료를 주면 곧 사람을 구하는 일이 하루 늦어질 것이다.
그래서 저는 오늘 제가 자료를 만들어 보려고 생각했어요. 나는 정법시기 대법제자이다. 못해낼 일이 없다. 사부님께서 저를 도와 주실 거야. 저는 기계를 옮겨다 놓은 후 일체 준비를 마치고는 주간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20여 부를 찍은 다음 정정을 마치고 그 다음에는 주보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백 여부 만들고 나니 종이가 떨어져 저는 이만큼 하면 될 것이라 생각 했어요. 점심조차 먹지 못했는데 저 역시 힘을 다해 했거든요.
그런데 다시 생각을 해보니 평소 엄마가 만든 자료는 이보다 아주 많았던 것 같았어요. 수련생이 와서 자료를 가져 갈 때 한 번만 가져 가는데 이렇게 적게 가져 가면 이건 제가 사람을 구하는데 영향주는게 아니겠어요? 저는 곧 생각해 봤어요. 종이 두 묶음을 더 사다가 다시 더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저는 50원을 가지고 컴퓨터 가게에 가서 종이를 사다가 계속하여 자료를 만들었어요.
저녁에 엄마가 돌아 오셔서 말씀하시는 것이었어요. “오늘 일이 지체되어 자료도 못 만들었구나. “ 저는 기뻐서 말했어요. “모모 이모가 자료를 몽땅 가져 갔어요” 엄마는 모르겠다는 듯이 “너 뭐라구 했지?”라고 묻길래 제가 말했어요 “제가 자료를 다 만든 것을 모모 이모가 모두 가져 갔어요” 엄마가 말했어요. “주간을 만들었어?” “네” “주보는?” “그것도 만들었어요, 평소에 만든 것 만큼 만들었어요, 제가 하루 종일 만들었어요.“ 엄마는 기뻐하면서 말씀 하셨어요. “넌 참으로 사부님의 꼬마 제자이구나” 전 웃으면서 말했어요. “엄마, 엄만 틀리게 말씀 하셨어요, 전 지금 노 제자인데요.”
엄마와 동수들은 늘 도시와 시골에서 대법을 실증 하시는데 저도 매 번마다 빠지지 않아요. 한 번은 동수들과 같이 본지의 감옥으로 진상 자료를 배포하러 갔어요, 큰 아버지 한 분이 (남자 동수) 저에게 말씀하시는 것이었어요. “이번에도 역시 우리 둘이 한팀을 묶자구나. 우리 둘은 몇 차례나 아주 배합을 잘 하였지” 제가 말했어요. “그렇게 해요” 자료를 배포하는 도중에 한 팀의 동수들이 보초망루의 초병을 놀라게 하여 삽시간에 감옥안이 들끊었어요, 드르릉 감옥 앞 뒤의 대문들이 모두다 열리고 병사들이 진을 치고 몇 갈래로 나뉘어 대법제자를 수색하기 시작 하였어요, 저는 마음속에 조금도 두려움이 없었으며 엄마에 대한 걱정도 생기지 않았어요. 줄곧 발정념을 하여 마지막까지 사악들은 아무 것도 찾아 내지 못하였어요.
2004년 9월 저는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갔어요. 새 학교 대청은 아주 컸는데 대청에 진상 자료를 붙이려면 반드시 아침에 학교 갈때라야 대청으로 걸어 갈 수 있고 평소에는 측문으로 다녀요, 저는 월요일 아침 7시부터 7시 10분 사이(왜냐면 매주 월요일은 악당의 승기 의식이 있기 때문임)에 하려고 준비 했어요. 이 시간 외에는 대청으로 갈수가 없어요. 그런데 이 시간은 전교 학생들이 학교로 가장 많이 오는 시간인데 저는 사부님께 가지해 주실 것을 바라는 일념을 발했어요. 다음 주 월요일에 난 꼭 진상 자료를 대청 벽에 붙일테야. 그날 아침 엄마는 한 동수와 함께 집에서 저를 도와 발정념을 하구요, 사람들이 그칠사이 없이 오가는 가운데 사부님께서는 저에게 사람이 없는 한 순간의 시간을 배치해 주셨어요. 저는 기회를 틀어 쥐고 사부님의 가지하에, 동수의 도움하에 드디어 진상 자료를 순리롭게 대청 위에 붙였는데 유별나게 눈에 잘 띄었어요.
이 몇 년, 비록 제가 그리 잘하지 못했지만 그러나 저는 회귀의 길에서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 갈 수 있을 겁니다.
(제3기 대륙 대법제자 수련 심득 서면 교류 대회 교류 원고)
문장발표 : 2006년10월31일
문장위치 : http://search.minghui.org/mh/articles/2006/10/31/14123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