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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적으로 쩐싼런(真善忍)에 동화

글/미국 세이트루이스 대법제자

【명혜망2006년12월5일】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여러 동수분 안녕하십니까?

몇 주전 우연히 인터넷에서 한편의 고대 수련이야기──왕선인의 ‘부처수련'(修佛)이란 글을 읽었다. 내용은 왕선인이 한마음으로 부처님을 향해 공손하게 수련하여 삼석육말 (三石六斗)의 향을 태운 재를 모아 서천으로 부처님을 만나기 위해 떠났다. 가는 길에 아주 시끄럽게 구는 노인을 만났는데 그를 아주 귀찮게 했다. 왕선인은 참을성 있게 그를 도왔다. 그러나 노인의 계속해서 같은 질문을 반복하는 바람에 그는 결국 참지 못하고 노발대발했다. 알고보니 노인은 부처님께서 변장하여 그를 고험한 것이었다. 왕선인은 뒤늦게 만분의 후회를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예전에 이 이야기를 읽었을 때 아주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읽으니 감각이 예전과는 또 달랐다. 왜냐하면 나는 왕선인의 몸에서 나자신의 그림자를 똑똑하게 발견했기 때문이다. 여러 방면에서 표현되는데, 예를 들자면 나는 회사에서 기술공작을 책임지고 있다. 그러다보니 소조에서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나에게 가져왔다. 나는 내 주위에서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려 주었고 파룬궁은 쩐싼런을 수련한다고 소개했다. 평소 사람들에게 우호적이었으며 쩐싼런을 표현하려고 애를 써 여러 사람들이 대법을 좋다고 느끼도록 하였다. 그런데 요즘 들어서 법을 실증하는 나의 임무가 중하여 매일 고밀도와 고강도로 일을 해야 했기 때문에 압력도 컸다. 그런데 회사 일도 많아져 다 해내지 못하는 형편인데, 동료들이 나에게 문제를 제기했을 때 그들이 능히 처리할 수 있는 것을 물으니 나는 기쁘지 않았다. 동료들이 조심스럽게 묻는 표정을 보면 거울에 비추어 보지 않아도 나의 얼굴에 나타난 표정은 귀찮아 하는 표정일 것이었다. 그렇다면 나의 이러한 표현이 왕선인과 다를게 무엇인가?

왜 이럴까? 전에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이야기의 주인공이 한 번 참았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수련이 깊어지면서 나의 인식도 개변되었다. 사부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돌덩이 하나를 당신이 어디에다 놓아도 그것은 여전히 돌이며, 금덩이 하나를 당신이 어디에다 놓아도 그것은 다 금이지 않은가”(《2004년 시카고법회에서의 설법》)

왕선인이 고험을 통과하지 못한 것은 그가 본질적으로 표준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인내심에 한도가 있었던 것이다. 일단 그의 감당능력을 초월했기에 곧 안 되는 것이었다. 나도 마찬가지인데, 그렇듯 압력을 느꼈다고 표현이 좋지 못했던 것은, 본질적으로 쩐싼런에 동화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쩐싼런을 실현하여 사람들이 대법제자가 좋다는 것을 알 수 있도록 희망했기 때문에 평소에도 쩐싼런을 표현하고 혹은 쩐싼런인 것처럼 가장했다. 그러나 나는 본질적으로 동화되지 못했고 표준에 도달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정황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초월했을 때 나의 수련 되지 못한 부분이 그대로 폭로된 것이었다.

물론 우리의 수련의 길은 과거 수련과는 같지 않다. 신과 부처님도 변장하여 우리를 고험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어깨에 짋어진 책임은 더욱 중대하다. 우리가 표준에 도달해야 하는 목적은 자신의 원만을 위하는 외에 미래의 우주가 영원히 불멸하기 위해서이다. 말하자면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관건시기에 표현이 좋을 뿐만아니라 평소에도 가장 평범한 사소한 것에서부터 진실한 체현이 더욱 중요한 것이다.

이 한 점을 진일보 인식한 후 나는 그 당시 심태를 조절하여 동료들과 부딪친 문제에 대해 내심에서 우러나오는 선의로 그들을 도왔다. 그리고 이전처럼 의도적으로 나의 선의를 표현하지 않았다. 매우 재미있는 것은 당시 동료 몇 명이 많은 문제에 부딪힌 것이 아무리 어렵거나 간단한 것이라도 나의 손에 와서는 아주 짦은 시간에 순리롭게 해결되는 것이었다. 동료들은 모두 아주 놀랍게 여기면서 나에게 무슨 마법이라도 있는가라고 묻는 것이었다. 나는 이것은 마법이 아니라 불법(佛法)의 위력임을 잘 알고 있다. 심성과 법리의 인식에서 조금 제고되니 대법은 나에게 새로운 천지를 표현해주고 계속 정진하도록 고무해 주는 것이었다.

당연히 나는 지금까지 많은 일들을 잘 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정확한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을 나는 믿고 있다. 현재 나는 일상생활 중에서 부딪친 일과 모순을 고험으로 생각하고 더욱 나를 깨우치는 것으로 삼고 자신의 부족한 점이 어디에 있다는 것을 알면 빨리 고치기에 힘쓴다.

내가 교류하고자 하는 다른 한 점은 책임감과 동수들과의 협조이다. 수련하기 전에 나는 마음대로 하면서 남과 거래하는 것을 싫어했으며 책임지기 싫어했다. 수련 후 알게 된 것인데, 매 개인에게 무슨 결점이 있으면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떤 환경을 창조해 주어 우리의 집착심을 버리게 하고 모자라는 부분은 수련해 내도록 하시는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의 오성이 너무 낮아 사부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러한 환경과 곤난을 시끄러움으로 생각하고 두려워하는 정서가 생겨 자신의 제고에 영향을 받는다.

나는 어릴 때부터 도를 닦으려 했기 때문에 속세를 멀리하고 조용히 무위적인 것을 희망했다. 대법을 수련한 후 나는 이전의 사상 중에서 게으름과 도피하려는 심태가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어 심령을 건드리는 일들은 회피했다. 말하자면 책임을 지기 싫어하는 것 역시 같았다. 나는 압력이 너무 크다고 여기면서 자질구레한 일들은 번거롭다고 생각했고, 구체적인 일들을 하기 좋아했다. 고생은 두려워하지 않았지만 신경 쓰는 것은 싫어했다. 또 남과의 교제를 잘하지 못하여 창의적인 견해도 없었다. 일들을 비관적인 각도에서 문제를 보았으며, 일하기 전부터 이런 곤란 저런 곤란을 먼저 생각했다. 나보고 협동 조정하는 것을 하라고 하면 일들을 망칠 것 같았다. 심지어 당초에 사부님께서 우리가 수련 성취한 후에 많은 중생들을 관계하고 마음을 쓴다고 하니 나는 그럼 얼마나 시끄러울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매 번 협조할 항목을 접하면 나는 인상을 찡그렸다. 만약 항목의 진전이 순리롭지 못하면 나는 포기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다른 방면으로 이것은 사부님께서 주신 나의 수련 환경인 것을 알고 있다. 왜냐하면 나는 이 방면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정체에서 법을 실증하는 동시에 자신의 수련을 원만히 하는 것으로 대법은 어떤 것이든지 다 할 수 있다.

우리가 수련인의 표준으로 한다면 속인 중에서 불가능한 일도 대법수련중에서는 될 수 있는 것이다. 기억하건데 한 번은 《전법륜》중의 “살생문제” 때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어린 제자보고 목욕통을 청소하라는 것을 보고 나의 깨달음은 기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정말로 어린제자가 그목욕통을 청소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제자에게 한 번 기회를 주어 불법을 체험하도록 한 것이다. 우리가 현재 앞에 놓인 각개 항목역시 그렇지 않는가? 물론 보기에는 아무리 간고하고 힘든 일이든, 자신이 원하든지 원하지 않든지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 혹은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 합작하는 일들은 실제로는 우리 자신을 제고시키기 위한 것이다. 다만 우리는 비할바 없는 행운에 처해 있는데 제고하는 동시에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법을 실증하는 영광을 주신 것이다.

합작에 대하여 한가지 예만 들겠는데 지난 주일에 이틀간 뉴욕에 가서 티켓을 판 체험이 있다. 우리는 당시에 학교에 찾아갔다. 단체티켓을 팔면서 우대정책을 실시하여 학생들도 도와서 티켓을 팔게 할 계획이었다. 수련생 두 명이 한조가 되어 학교의 교장을 찾아갔다. 나는 이전에 알고 있는 서양수련생과 한조가 되였다. 이 수련생은 정진하면서 아주 우호적인 동수였다. 첫날 우리의 협조는 매우 순리롭고 효과도 좋았다. 그러나 우리 둘은 특징이 완전히 같지 않은 점이었다. 그는 하나의 지극히 낙관적인 사람으로 좋은 일면만 보고, 나는 또 비관적인 견해로 일을 보아 언제나 문제가 있는 곳만 주의력을 돌렸다. 그러니 학교마다 우리 둘 사이의 관점이 차이가 컸다. 저녁에 여러분들의 견해를 종합할 때 이 서양수련생이 우리 소조의 정황을 이야기하면서 특별히 좋다고 했다. 사람들의 반응도 어떻게 정면적이고 격동되고 형세는 아주 좋다고 했다. 나는 말하지 않았지만 이런 관점을 동의하지 않았다. 그녀가 말한 것이 모두 진심이고 그녀는 확실히 그런 감각인데 나의 마음 속에는 사실과 부합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 이튿날 우리는 역시 또 같이 갔는데 효과는 좋지 못했다. 많은 학교들은 방학전의 마지막 날로써 전혀 우리와 대화할 시간이 없었다. 몇 개 학교를 다닌 후 수련생은 나에게 말하기를 “모두 당신이 효과가 좋지 않다고 하니 일이 갈수록 엉망입니다. 당신이 보세요. 누구도 우리와 말하기 싫어하지 않습니까?” 그녀가 농담으로 말했지만 나는 마음이 아주 좋지 않았다. 연극의 티켓을 파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가 그렇게도 큰 정력을 들여 정체로운 제목을 준비했는데 곧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서이다. 그들을 도와 사상 중의 나쁜 물질을 제거하기 위한 것이다. 학교가 아무리 바빠도 마땅히 우리의 말을 들을 시간은 있어야 했다. 현재 이러한 정황은 긍정적으로 비정상적인 것으로 꼭 사악이 우리의 틈을 타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나자신의 마음에 거리가 있는 것이 큰 문제란 것을 알았다. 표면상은 아무 것도 없었고 우리에게 모순도 없었던 것이었지만, 그러나 조금이라도 뒤틀려도 우리는 협조하지 못하고, 중간에 조금의 틈도 다른 공간의 사악이 틈을 탈수 있는 큰 구멍인 것이다. 우리는 걸어면서 한면으로는 심리상의 이면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했다. 미래의 우주는 비할바없이 번영하고 매 생명마다 같지 않은데 왜 하필 모두 같은 관점을 가져야 하는가? 또한 어느 각도에서 보면 속인의 반응이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다 .

우리가 최대의 노력으로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면 되는 것이다. 나는 꼭 나의 관점을 집착하지 않는다.내가 나의 정확하지 않던 생각을 고치니 그 후부터는 일이 몹시 순조로왔다. 사람들의 태도는 갈수록 좋아지고 마지막 학교에 도착한 다음 원래 거기에 없었던 교장이 갑자기 돌아왔다. 아주 흥미롭게 공연 CD를 보고서 아주 재밌다고 했다. 나와 수련생은 역시 기분이 좋았다.

이것은 하나의 작은 일이다.그렇지만 나의 체험은 아주 깊었다. 마침 한 동수에서 전화가 와서 나에게 그 자신의 생각을 교류하니 그도 동감을 표시했다. 그가 금방 법을 실증하는 데 관계있는 소송을 했는데 이겼지만 우리가 요구하는 효과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했다.그의 체험은, 전반 과정은 매우 간고했고 잘 했지만 마지막에 잘하지 못한 원인은 바로 두 당사자인 수련생들이 서로 눈에 거슬려 즉시 고치지 못한 것이라고 했다. 몇 년 동안의 노력이 진정한 효과에 도달하지 못해 아주 유감스럽고 더욱 애석한 것은 법을 실증하는 기회가 손실되어 보완할 시간이 없다는 것이었다.

나의 체험은 생생세세의 윤회에서 우리 매 사람마다 이런 저런 특점을 가지고 있어 사람사이에도 이런 저런 연원(淵源)이 있다. 그 중의 상당부분은 낡은 세력의 배치인 즉 조금이라도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우리는 이러한 것에 교란을 받는다. 자기는 그래도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 . 대법제자는 수련길을 잘 걸으려면 이런 일체에서 나와야 한다. 작은 간격이라도 소홀히 대하면 안 된다. 사람들이 보기에 중요하지 않다고 하는 것도 모두 우리 전체가 제고하는 것을 방해하는 큰 문제인 것이다.

교류할 일들은 많지만 시간상 관계로 여기까지 말한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2006년미국 세인트루이스 법회 교류원고)

문장성립:2006년 12월 04일
문장위치: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6/12/5/143860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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