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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수와 한차례 교류한 후의 몇 가지 체득

글/허난(河南) 정행(正行)

【명혜망 2006년 12월 2일】 며칠 전 동수와 교류한 후 감촉이 매우 깊었다. 본래 조금이라도 글로 쓰고자 했으나 이것저것 고려하는 마음에 장애를 받아 써내지 못하고 있었다. 오늘 명혜망에 발표된 동수의 문장 《북경대법제자와 도처에 꽃을 피우는데 영향 주는 요소에 대해 교류하다(与北京的大法弟子交流影响遍地开花的因素)》라는 문장을 보고 대법을 위해 책임지려는 동수의 마음이 너무나 좋은 것을 보고 나도 우리 지역의 정황을 겨냥하여 자신의 인식을 한번 말해보고자 한다. 문장 중에 언급된 사람이나 사건은 단지 문제를 설명하기 위한 것일 뿐 질책하려는 뜻은 없으니 양해하기 바란다.

우리 지역에서는 한동안 법리상에서 문제를 교류하는 것이 부족했다. 사실 단지 교류 층면(層面)에서만 보자면 현재 우리 수련환경 하에서 교류 기회는 여전히 많고 우리는 늘 서너 명의 수련생이 모이면 함께 자신의 수련심득을 토론하지 않는가? 또한 다양한 법학습 소조는 모두 우리가 공동으로 제고하는 환경이 아닌가?

이외에도 또 매주 발행되는 《명혜주간》은 시의적절 하게 동수들의 손에 전달되며 그 속에서 우리는 세계 각 지역 동수들과 배움을 비기고 수련을 비길 수 있고 정법노정을 파악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제자절차 문장은 바로 법리를 교류한 것이다. 내 생각에 몇 년 전과 비교해보면 우리 수련 중에서 법리상에서 교류하고 제고하는 기회는 감소한 것이 아니며 반대로 이런 교류기회는 일종 보다 성숙하고 보다 이지적인 상태로 진입했다. 그렇다면 왜 어떤 동수들은 아직도 원망하거나 심지어 협조인 역할을 하는 동수마저도 원망하는 이런 문제가 존재하는가? 그들은 몇 년 전에 몇 십 명이 교류회를 여는 그런 형식이 제고하는데 보다 빠르다고 여긴다. 그러나 최근에는 마치 모두 자신의 일에 바빠 얼굴을 맞대고 교류할 기회가 적어졌으며 마치 이렇게 하면 제고가 느린 것처럼 여긴다.

나는 이것 역시 정법노정을 따라가지 못하는 표현의 일종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사부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어떤 사람은 감각에 의해 연공(練功)하는데 당신의 감각이 다 무엇인가? 아무것도 아니다.”(《전법륜》)
“당신들이 가장 위대한 것은 당신들이 능히 법을 바로잡는 데(正法) 따라갈 수 있다는 점이다.”(《도항-미국 대호구 법회에서의 설법》)

내가 이해하기로 사부님의 법속에는 우리로 하여금 과거의 일부 인식이나 감각에 집착하지 말라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과거 우리 자신이 제고하는데 빠르다고 여겼던 어떤 일종의 수련방식에 미련을 가져서는 안 된다. 사부님의 정법노정 중에서 대륙 대법제자들도 역시 끊임없이 우리의 과거 일부 생각과 방법을 조정하여 보다 효과적으로 사악을 해체하고 사악의 독소를 깨끗이 제거하며 보다 많은 중생들을 구도하여 사부님의 정법노정에 따라갈 수 있어야 한다. 현재 자료점이 도처에 꽃을 피우는 상황 하에서 조건이 가능한 우리 모든 동수들은 모두 스스로 명혜망과 소통할 수 있어야 하며 이렇게 해야만 보다 큰 폭으로 매 한 동수의 작용을 발휘할 수 있다. 하지만 각 자료점에는 비슷한 일을 하고 있고 또한 바로 대도무형의 정체를 이루게 된다.

자료점이 도처에 꽃을 피우는 것과 정법노정의 문제를 언급하게 되니 이 방면에서 있었던 일부 논쟁과 관련된다. 한편으로 어떤 동수들은 각종 객관적인 원인을 대면서 최후의 결론은 자신은 가정 자료점을 하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한다. 이것은 낡은 세력이 우리의 사유를 이끌어 얻게 한 결론이다. 왜냐하면 자료점이 도처에 꽃을 피운다면 그런 낡고 사악한 생명과 요소들은 곧 순식간에 제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우리 매 정법시기 대법제자는 오로지 자신이 이 칭호에 적합한지 적합하지 않은지를 생각해보아야 하며 최후의 결론은 바로 여러 형식의 자료점을 도처에 꽃피우는 것인데 이것이야말로 자신의 사명이며 악을 제거하는 가장 효과적이며 지속적인 방식이다. 오로지 우리가 정념이 더 많아지고 두려움이 좀 적어지기만 한다면 무슨 적합하고 적합하지 않은 문제가 없으며 오직 우리가 자신의 수련에서 정진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만이 있을 뿐이며 자신에 대한 요구가 엄격한가의 문제일 뿐이다.

사실 사악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인가? 현재 사악한 당은 그것에게 기만당한 세인들이 각성하여 마음속으로부터 그것을 버리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럼 대법과 대법제자를 박해하는데 참가한 그런 사악한 생명과 요소들은 어떠한가? 만약 우리 매 대법제자가 마음속으로부터 그것을 철저히 인식하고 그것에 대한 두려움을 제거한다면 그 사악은 우리 마당의 범위 내에서는 아예 존재할 수 없다. 다시 말해 우리 자신이 어떻게 해야만 정법노정을 따라갈 수 있다고 여기는지에 상관없이, 낡은 세력과 요소가 강화시킨 우리의 정진을 가로막는 사람마음을 버리고 법속에서 수련해낸 정념으로 대신할 수만 있다면 그럼 우리는 곧 정법노정을 따라갈 수 있다.

자료점이 도처에 꽃을 피우게 되면 필연적으로 기술을 널리 보급하는 문제와 관련이 된다. 지금까지 명혜망의 협조와 지지 하에 인터넷 봉쇄를 돌파하는 기술, 인쇄기술, CD 복사기술 또 시스템 안전에 관련된 기술적인 문제들을 막론하고 모두 제때에 상응하는 학습 자료와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얻을 수 있었다. 이미 성숙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이다. 이것 역시 자료점을 도처에 꽃피울 수 있는 기술적인 기초이자 보장이다. 현재 각지에서 나오는 진상 VCD 중에는 모두 인터넷 봉쇄를 돌파하는 프로그램이 실려 있고 간단하게 마우스를 몇 번 클릭하기만 하면 명혜망에 접속할 수 있다. 그 외에 각종 봉쇄돌파 프로그램은 아주 빨리 업데이트 되어 예전 버전을 제대로 익히기도 전에 새로운 버전이 출시되는 경우도 많다. 나는 정말로 백화제방(百花齊放)임을 보게 되는데 우리 대법제자들이 정체적으로 두려운 마음을 버린다면 철저하게 사악을 제거할 기회가 눈앞에 닥칠 것이다. 그러므로 매 동수마다 오로지 약간이라도 조건이 된다면 (가정 자료점을) 한번 시험해 볼 수 있다. 당신은 자신이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기술을 널리 보급하는 문제에 관해 토론할 때 한 수련생이 아주 잘 이야기했다.
“우리 法輪大法(파룬따파)의 수련은 일맥이 백맥을 이끄는 이런 형식을 피하여, 시작부터 백맥을 이끌어 동시에 열며, 백맥을 동시에 운행할 것을 요구한다.”(《전법륜》)

우리가 곧 한두 명의 동수들이 가르치는 것을 기다린다면 너무 느리며 동수들이 기술을 배우는 주동성(主動性)이 충분하지 못하다. 그렇다, 우리는 모두 대법 중의 한 입자가 아닌가. 우리는 모두 마땅히 주동적으로 가서 배워야 하며 기술과 관련된 수첩이나 소책자를 가져다 배울 수 있다. 동수에 대해 의지하려는 마음을 버려야 하는데 만약 이렇게 한다면 우리 전반 지역의 형세 역시 같지 않을 것이다. 생각해보라. 많은 동수들이 심지어 마우스를 만져본 적도 없고 일부 수련생은 아무것도 몰랐기에 기술을 배우려 하자 다른 수련생이 무엇이나 다 가르쳐 주어야 했다. 한번 만졌다하면 7-8시간이고 어떤 때는 더 많은 시간이 걸렸는데 그럼에도 수련생이 가기만 하면 다 잊어버렸다. 이에 관해서는 많은 심득체험 중에 수련생이 스스로 기술을 배운 감수가 있고 모두 아주 좋은 실제 사례들이다. 동수들이 그들이 어떻게 심태를 바로잡고 신속하게 기술을 장악했는지 보는 것도 무방하다.

또 한 가지 문제는 바로 동수의 책임문제이다. 사실 많은 동수들은 줄곧 사악의 박해를 폭로하는 것을 중시하지 못하고 있으며 더욱이 대법과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악인과 관련된 자료를 수집하는 것을 중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것들을 우리 동수들은 자신의 책임으로 여기기 않았다. 심지어 협조를 책임진 동수들도 이런 것을 동수들과 교류하지 않고 있으며 실제로 이런 협조인들 역시 근본적으로 우리 자신의 책임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올 여름 박해로 사망한 한 동수의 가족들이 현지 풍습에 따라 집에 위패를 모시고 죽은 수련생을 추모하며 밤을 샜다. 사망한 동수의 주변에 있던 동수들도 몇 사람 갔지만 그곳에 가서 속인과 마찬가지로 돈을 좀 부주하고 허리를 굽혀 절을 하고는 곧 떠났다. 동수 가족들에게 유체(遺體)가 강제로 화장되는 과정 중에 있었던 사악의 망나니 행동에 대해서는 아예 묻지 않았고 더욱이 유체가 화장된 후 사악한 무리들이 어떻게 진일보로 박해했는지 등은 묻지도 않았다. 사망한 동수의 가족과 접촉한 수련생이 한 사람도 없었기 때문에 그 결과 지금까지도 이 사건과 관련된 내용은 여전히 공백이다.

사실 당시 환경 하에서 여러 수련생이 갈 문제는 아니며 한 사람이면 충분했다. 만약 우리의 책임을 인식하지 못했다면 아무리 많이 간다한들 역시 형식에 불과하며 아무 작용도 일으키지 못한다. 이 사건은 우리 현지 동수들에게 존재하는 한 가지 문제를 폭로했는바 바로 현지 사악을 폭로하는 중요성과 긴박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사부님의 설법을 보면 곧 아주 명백해질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법을 잘 학습하지 못했기 때문에 비로소 많은 일들이 뜻대로 되지 못한 것이다.

또 자료점에 관한 사실이나 및 자료점을 알고 있는 동수들의 수구(修口) 문제가 있다. 우리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사람마음이나 불평불만으로 동수의 안전에 아주 큰 위험을 조성한 것은 아닌가. 이것과 관련된 내용은 《북경대법제자와 도처에 꽃을 피우는데 영향 주는 요소에 대해 교류하다》라는 문장 중에 아주 똑똑히 논술했다. 여기서 사족을 달 필요는 없으니 동수들이 이 문장을 읽어본 후 자신과 주변 동수들에게 동일한 문제가 존재하지는 않는지 한번 생각해보고 손실을 감소시키기 바란다.

문장발표 : 2006년 12월 2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06/12/2/143619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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