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대법제자
[명혜망2006년12월1일] “법공부를 잘해야 한다”는데 대한 인식을 하고 있으면서도, 아주 많은 동수들은 줄곧 장애를 느끼고 있다. 그러다 보니 많은 동수들은 법공부 방면에서 아주 많은 의문이 있다. 어떤 동수들은 능히 법을 외울 수 있고, 어떤 동수들은 하루에 몇 강의씩 볼 수 있지만 씬씽상의 표현은 아주 나쁘다. 그로 인하여 어떤 동수들은 곤혹을 느끼면서 주변의 동수들에게 우리가 하는 법공부가 도대체 어디서 틀린 것인지 묻기도 한다. 이런 문제에 직면하여 내가 인식하고 있는 약간의 것을 말하고자 하므로 바르지 못한 곳이 있으면 동수께서 자비로 바로 잡아 주기 바란다.
어떤 마음으로 법을 대하는가 하는 문제
나는 어떠한 심태로 법을 대하는가 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본다. 사부님이 우리에게 전한 것은 우주의 근본 대법이다. 아주 많은 동수들은 사부님께서 인간에게 이렇게 큰 법을 전하는 것은 우리 대법제자의 수련만을 위해서가 아니라는 것을 모두 알고 있다. 그럼에도 만약 우리 대법제자가 법에 대한 인식이 다만 개인 수련에만 머물러 있고 더욱 광활한 사유로 “사부님의 법 전수”를 이해하지 못할 때 법이 우리에게 현현해 보이는 것은 다만 개인 수련 중의 “법” 뿐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우리 대법제자들이 만약 사유 방식을 바꾸어 다른 일종의 사유 방식으로 “사부님의 법 전수”를 이해 한다면, 그렇다면 아마 다른 하나의 수확이 있을 것이며 그때는 아마 전반 정법에 대한 인식에 다른 일종의 상태가 있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만약 우리 대법제자가 정법시기의 대법제자의 개념과 책임에 대한 인식이 명확해 졌을 때 법이 우리에게 펼쳐 보이는 것은 아마 다른 일종 경계 중의 상태일 것이다. 그때에 우리보고 법공부 하지 말라고 해도 법공부를 할 것이다. 왜냐면 각오된 생명으로 놓고 볼 때 법공부의 중요성과 그의 귀중함은 말하지 않아도 자연히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을 가급적 법속에 용해 시켜야 한다
초기에 법공부를 하면서 법리를 깨우치지 못한 상태라면, 아마 법공부할 때 연공할 때처럼 그렇게 직감적인 많은 인식이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법리를 깨우친 것이 많든 적든 그래도 모두 속인이 알 수 있거나, 알고 있는 층차를 훨씬 초과 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오직 법을 배웠다면 비록 조금만 알게 되었다 할지라도 일에 부딪혔을 때는 가급적 대법으로 가늠하게 될 것이다. 일에 부딪혔을 경우 그 일을 법으로 가늠하여 보고 자신을 닦아 나갈 때 서서히 법속에 용해되고 서서히 수련의 층차를 제고할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수련하면서 노력하는 정도가 증가됨에 따라, 사부님께서는 우리가 법공부 할 때 계속 제고하여 응당 알아야 할 더욱 많은 법리를 우리에게 보여 주실 것이다. 우리 많은 동수들은 모두 이런 체험이 있다.
만약 우리가 법공부를 중시하지 않고 수련에 힘쓰지 않는다면 흔히 문제에 부딪혔을 때 자신도 모르게 늘 밖을 향해 찾아보게 되고, 밖을 향해 구하게 되며 속인의 마음으로 대하게 된다. 그럴 때 우리의 마음은 이미 법속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늘 자신이 제고되지 못한다고 생각될 뿐만 아니라 언제나 일이 어렵다고 느껴지게 된다. 항상 일이 어렵다고 느껴지거나 혹은 속인의 사상이 아주 활발할 때면 바로 자신의 마음을 내려 놓고 법공부를 해야 할 때이다. 법 가운데서 자기의 사상을 순정시키고, 대법에 비추어 자신의 집착을 찾아내어 집착을 내려 놓아야만 비로소 법으로부터 지혜를 얻을 수 있고 자신을 잘 수련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응당 해야할 일을 잘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모두가 상부상성 하는 것이다.
“법공부를 잘하다”는 표면적으로 공부를 잘하여 남에게 보이는 것이 아니며, 형식에 치우쳐 자아위안을 하는 것도 아니다. 얼마를 외웠고, 얼마만큼 시간을 들여 법을 읽었다고 하더라도 문제를 만났을 때 여전히 관념에 따르고 속인의 마음을 표준으로 한다면 안 된다. 진정으로 “법공부를 잘한”수련자일수록 무사적이며, 일에 부딪혔을 때 자연히 다른 사람을 많이 배려하고, 무엇을 하든지 효력이 더욱 높을 것이다. 그리고 개인 관념에 집착하지 않으며, 외래 교란에도 쉽게 움직이지 않을 수 있으며, 일에 부딪혀도 먼저 정념, 신념이 나오지 사람의 의념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문장발표 : 2006년12월1일
문장위치 : http://search.minghui.org/mh/articles/2006/12/1/143611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