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대륙대법제자
【명혜망 2006년 9월 4일】나는 유리실소 하던 기간에 사악한 국가안전부 특무에게 납치되었고 이후 불법으로 노동교양 처분을 받았다. 납치된 첫날부터 나는 사악에게 협력하지 않고 단식으로 박해에 항의했다. 악인(惡人)들은 나에게 강제로 음식물과 약물을 주입하는 고문을 가했다. 나는 박해를 승인하지 않았으며 사부님께서 나에게 이런 배치를 해주신 것이 아니라 이는 자신의 누락이 낡은 세력의 흑수(黑手)와 사령(邪靈)에게 구실을 잡혀 비로소 마귀굴에 떨어졌다는 것을 깊이 알았다.
노교소(勞敎所)에서 나는 매일 법암송, 발정념을 견지하는 동시에 사부님의 말씀에 따라 자신의 사람마음을 찾아보았다. 찾아보고 찾아보니 나 자신도 무척 놀랐다. 예전에 ‘대법을 확고히 수련’하고, ‘금강부동(金剛不動)’하며, ‘수련을 꽤 괜찮게 했다’고 여겼던 나였지만 안을 향해 찾고 착실히 수련하는 방면에서 이렇게 큰 차이가 있었다니! 가령 자아를 실증하는 명(名)을 구하는 마음, 일을 하려는 마음, 쟁투심, 특수한 속인의 마음, 시간에 대해 집착하는 마음, 육친정에 집착하는 마음, 게다가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악인을 증오하는 마음 등등이 있었다. 찾아낸 이런 집착심에 대해 나는 단호히 발정념을 하여 그것들을 제거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당신이 정념을 확고히 할 때, 당신이 그것을 배척할 수 있을 때, 나는 조금 조금씩 당신에게서 떼어 내 준다. 당신이 얼마만큼 해낼 수 있으면, 나는 당신에게 그만큼 떼어 내고 당신에게 그만큼 제거해 준다.”(《2004년 시카고법회에서의 설법》)
나는 이런 집착심들이 갈수록 담담해지고 갈수록 약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당시 특수한 환경 하에서 사부님께서는 나로 하여금 특수한 상태에 처하게 하셨다. 즉 내가 어떤 집착심을 찾아내어 정념으로 그것을 제거할 때면 그것이 머리 어느 부위에 집중되어 격렬하게 반항하다가 한동안(어떤 때는 하나의 마음을 청리하는데 십여 시간이 걸렸다) 청리한 후에 서서히 약해지면서 소실되거나 뒤통수 부위에서 조금씩 내려가서 결국은 소실되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해주셨다.
불법으로 감금된 지 반년이 지난 어느 날 사부님의 점화 하에 나는 갑자기 자신에게 그동안 소홀히 해왔던 색욕지심(色慾之心)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나는 발견한 후 즉각 결가부좌를 틀고 그것을 제거했다. 이때 이 색욕이란 마는 격렬하게 반항하여 나로 하여금 이 더러운 마음이 이렇게 컸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했다. 나 자신도 좀 의외였다. 나는 《2004년 미국서부법회에서의 설법》 중에서 사부님께서 하신 한 단락이 생각났다.
“대법제자들이여, 색욕은 수련인에 있어서 반드시 넘어야 할 관(死關)이라고 나는 벌써 말하였는데, 속인의 이 정에 너무 지나치게ㆍ너무 심하게 이끌린 것이다. 요만한 일마저 스스로 벗어나지 못하는데, 보아하니 낡은 세력이 애당초 이런 이들을 대륙의 감옥 속에 배치했어야만 비로소 고칠 수 있는 것인가, 그런가? 그런 엄혹(嚴酷)한 환경 하에 당신은 또 어떠할까. 너무 안일해서 이렇게 된 것이 아닌가? 이 마음을 제거하지 않고 구실을 찾은 그런 이들은 모두 스스로를 속이고 남을 속이고 있는데, 나는 당신에게 무슨 특별한 배치를 한 적이 없다.”
설마 내가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낡은 세력에 의해 “대륙의 감옥 속에 배치되어야만 비로소 고칠 수 있는” 그런 사람이란 말인가? 내가 어찌 그런 사람일 수 있겠는가?! 나는 또 그런 정당하지 않은 남녀관계의 일을 한 적도 없지 않은가! 나는 스스로 내심으로부터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줄곧 자신이 남녀관계의 문제에 있어 아주 근엄(謹嚴)하다고 여겨왔다. 철이 든 이후 나는 지금까지 다른 이성과 문란한 성관계를 해본 적이 없다. 수련을 시작한 이후 부부생활 방면에서도 수련하기 전과 비하면 많이 담담했으며 스스로 사부님께서 《전법륜》에서 말씀하신 “그것을 담담히 보아야 한다”는 요구에 부합한다고 여겼다. 사부님께서 《대뉴욕지구 법회에서의 설법과 해법》을 발표하신 후에도 나는 여전히 내가 사부님께서 가슴 아프게 말씀하신 “심지어 ‘인(人)’마저도 자격이 없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에 한동안 다행으로 여기기도 했다. 더욱이 평상시 동수들은 늘 나더러 아주 ‘바르다(正)’고 칭찬했고 최근 몇 년 동안 주변 동수들 사이에 남녀관계의 일이 발생할 때면 어떤 동수들은 나를 데려다 당사자와 함께 교류하게 했다.
이에 나는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더러운 색욕지심은, 나에 대해 말하자면 별것 아니며 이 방면에서 나는 괜찮게 수련했고 약간 남은 요만큼은 최후에 원만할 때 사부님께서 없애주실 것이라고 여겼다. 때문에 마귀굴에서 안을 향해 찾은 반년 동안 도리어 이 문제를 소홀히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일단 관찰하여 발견한 후 그것은 상상 밖으로 너무나 심각했다! 이것이 어찌된 일일까? 나는 안을 향해 깊이 찾아보았고 서서히 스스로 어느 정도 명백해졌다.
근본에서부터 말하자면 사람이 인간세간에 오게 되면 색욕(色慾)이란 이것은 사람 생명의 한 부분으로 체내에 주입된다. 어린이를 제외하면 이 마음은 거의 모든 사람에게 다 있다고 할 수 있으며 단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나는 60년대에 농촌에서 출생했으며 어려서부터 정신이 공허한 느낌이 들어 책보기를 좋아했다. 책에서 정신적인 위로를 찾았던 것이다. 구할 수만 있다면 나는 무슨 책이든 보았다. 특히 소설과 같은 종류는 더욱 손에서 놓기가 아쉬워 몇 부의 ‘명작’은 여러 번 읽기도 했다. 이렇게 하자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었다. 좋은 점이란 오랜 전통문화를 받아들이면서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으로 자신의 비교적 바른 인생관을 만들 수 있었다. 나쁜 점이라면 일부 색정(色情)적인 것들을 접촉하게 되었고 이런 것들이 모두 대뇌 속에 아주 깊은 낙인을 남겼다는 것이다.
어떤 책에서는 아예 노골적으로 성관계를 묘사한 것들이 있는데 처음에는 아주 혐오스럽고 잠재의식 속에서 이것을 보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지만 손에서 내려놓기가 쉽지 않았고 더욱이 청소년기 특유의 호기심 때문에 곧 보게 되었다. 그때 대뇌는 거의 백지 상태라 이런 것들이 얼마나 심한 해독을 끼쳤을지 짐작할 수 있다. 심지어 이후 한동안 나는 여전히 그런 책들이 때로 생각났다. 그때 이런 ‘업(業)’이 바로 내 머릿속에 아주 깊은 뿌리를 내렸던 것이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나는 불가피하게 일부 색정적인 것을 접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말씀하셨다.
“사람이 속인 속에 미혹됨으로써 때때로 사상 중에 일종 명(名)‧리(利)‧색(色)‧기(氣) 등을 위해 내보내는 의념(意念)이 생기는데 오래 오래 되면 곧 하나의 강대한 사상업력을 형성하게 된다.”
세상 기풍이 날로 하락하는 말세의 혼탁한 시류 속에서 이런 더러운 관념은 단지 깨끗이 씻거나 정화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더욱 견고하게 하여 이런 ‘사상업력’은 더욱 심각하다.
“일종 관념이 형성된 후 당신의 일생을 통제할 수 있으며 이 사람의 사상을 좌우지하는데 이 사람의 희노애락(喜怒哀樂)에 이르기까지이다.”
“형성된 관념은 당신의 일생을 저애하고 통제할 수 있다.”
“이 업력은 몇 년 전 하나의 어떤 상태 하에서와 어떤 도덕표준의 상태 하에서 형성된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곧 이런 표준으로 사물을 가늠한다. 만약 이것이 많이 형성되었다면 사람의 일생은 모두 그것에 의해 좌우될 수 있다.”(《전법륜(권2)》)
몇 십 년 동안 나의 사상은 늘 그것에 의해 심각하게 교란 받았고 어떤 때는 그것에 의해 좌우되기도 했다. 그러나 비교적 강한 도덕과 양심의 단속이 있었고 타고난 성격이 충직하고 성실했던 까닭에 무슨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았다.
수련을 시작한 후 내 사상 중에서 그런 혼탁한 것들은 끊임없이 ‘眞善忍’ 대법에 의해 씻겨나갔다. 그러나 자신이 평상시 진정으로 수련의 실질을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사부님의 “그 마음을 가리켜 그 마음을 제거한다”(《전법륜》)는 말씀과 대법수련은 마음을 닦는데 중점을 둔다는 법리의 내포를 깊이 깨닫지 못하여 수련을 십여 년 동안 해오면서도 수련의 표면과 형식에만 치중했다. 많은 때는 단지 말과 행동에서만 ‘眞善忍’요구에 순응했을 뿐 일사일념(一思一念)에서 진정하게 대법에 동화되지 못했다. 하여 사상 속에서 그런 염두가 나올 때 대법으로 그것을 제거할 지 남겨야 할 지 대조할 수 없었다. 모순에 부딪힐 때면 안을 향해 찾는 것을 늘 해내지 못했고 어떤 때는 안을 향해 찾긴 하지만 종종 단지 표면적인 것만을 ‘찾거나’ 혹은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해 ‘찾았다.’
바로 심령을 충격하는 일에 부딪혔을 때는 기본적으로 단지 표면적으로 ‘참으면서’ 말을 하지 않았을 뿐 보다 많은 때에는 도리어 진정하게 보다 깊이 안을 향해 찾지 못했다. ‘이것은 나의 어떤 마음을 충격하기 위해 온 것인가?’, ‘나의 어떤 집착이 이 일을 야기 시켰는가?’ 다른 사람이 보면 나는 일에 부딪혀 참아낼 수 있고 수련을 꽤 괜찮게 한 것으로 보겠지만 내 어찌 씬씽에 아주 큰 차이가 있음을 모르겠는가.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사람은 일을 하는 것을 수련으로 간주하며, 사람은 종교의 형식을 수호하는 것을 수련으로 간주하고 있다. 사실 신은 이러한 것을 전혀 중시하지 않으며 오로지 사람 마음의 제고만을 중시할 뿐인데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제고이다.”(《미국수도법회설법》)
최근 몇 년 동안 대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일을 하려는 마음이 아주 강해졌고 늘 이 방면에서 ‘정진하는 상태’로 착각하고 대법 사업 중에서 폭로되어 나와 마땅히 제거해야할 집착을 덮어 감췄다.
장기간 자신의 아주 깊이 감춰진 이런 색욕(色慾)의 집착에 대해 착실히 공력을 들이고 정념으로 깨끗이 제거하지 않음으로 인해 심지어 자신을 속이고 남도 속이면서 여전히 자신은 이 마음을 괜찮게 수련했다고 여겨왔다. 바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았다.
“당신의 수련은 자신에 대하여 책임져야 하며 당신은 진정하게 자신을 개변시키고 당신의 심령 깊은 곳에서부터 당신이 집착하는 좋지 못한 것을 내려놓아야 만이 그것은 비로소 정말로 내려놓은 것이다. 당신이 표면적으로는 그럴듯하게 하지만 당신 심령의 깊은 곳에서 당신이 아직도 자신의 내려놓지 못하는 것을 지키고 있고 고수(固守)하고 있다면 그것은 절대로 안 된다.”(《법륜불법(미국서부법회에서의 설법)》)
여기까지 깨달은 후 나는 정말로 뼈아픈 후회감이 들었다. 곧 더욱 정력을 집중하여 정념으로 이 더러운 색욕악마를 깨끗이 제거했다. 그 이틀 동안 악인들에게 음식을 주입당하는 외에 나는 열 시간 이상 가부좌하고 발정념을 견지하면서 끊임없이 그것을 제거하고 그것을 제거했다. 앉을 수 없게 되었을 때는 누워서도 계속 발정념을 견지했다. 나는 또 사부님께 나를 가지해주실 것을 청했다. 이렇게 하자 나는 그것이 갈수록 약해지고 갈수록 약해지는 것을 느꼈다. 삼 일째 되는 날 오전에 노교소에서는 갑자기 나를 병원에 데려가 신체검사를 받게 했다. 각 항목의 수치가 지난번과 기본적으로 동일했고 심지어 두 항목에서는 지표가 전보다 나쁘지 않은 상황 하에서 의사는 도리어 “아주 위험하다”고 말했다. 당일 오후에 나는 ‘병치료를 위한 보석’의 형식으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정말로 “사람 마음을 내려놓으면 악은 저절로 패하리라”(《홍음(2)―슬퍼하지 마라》)였다.
집에 돌아온 후에 나는 사부님의 경문 《로스앤젤레스 시 설법》을 읽었다.
“내가 낡은 세력의 교란을 이야기했는데 당신들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이 역시 이런 견제(牽制)의 요소이다! 낡은 세력, 낡은 우주는 무엇을 가장 중하게 보는가? 바로 색(色)이며 남녀 사이에 단속하지 않는 이런 것을 가장 중하게 본다.”
이 단락에 대한 체득이 더욱 깊어졌다. 사부님께서는 “가장 중하다”는 이런 단어로 우리에게 ‘색욕지심(色慾之心)’을 닦아 버리는 것의 중요성을 알려주셨다. 나는 더 이상 이전처럼 낡은 세력은 단지 “남녀사이를 제대로 단속하지 못하는 대법 수련생을 붙잡고 놓지 않으려 한다”고 이해하지 않으며 오로지 색욕을 내려놓지 못한 동수라면 지금은 모두 아주 위험하다. 물론 그것의 박해 방식은 각기 다르다.
사실 ‘색욕지심(色慾之心)’을 닦아버리는 것의 기본과 중요성을 사부님께서는 이미 《전법륜》에서 아주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역사상 혹은 고층 공간 중에서 사람이 수련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 봄에 있어서 사람의 욕망・색 이런 것을 아주 주요하게 보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말로 이러한 것을 담담히 보아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정(情) 중으로부터 파생되어 나온 많은 집착심을 우리는 그것을 담담히 보아야 하며 최후에는 완전히 내려놓아야 한다. 욕(慾)과 색(色), 이러한 것은 모두 사람의 집착심에 속하며 이런 것들을 마땅히 모두 제거해야 한다.”(《전법륜》)
진수하는 대법제자로서 누구도 정법이 이미 최후의 최후에 이르렀음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런 색욕지심을 ‘완전히 내려놓음’을 해낼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진정으로 내려놓고 그것을 제거한 후에 정말로 완전히 다른 하나의 경지임을 체험했다. 색욕을 불러일으키는 것에 부딪혀도 거의 보아도 보지 않은 것 같고 마음은 고요한 물과 같았다.
우리 부부는 모두 수련을 한다. 노교소에서 돌아온 후 나는 아내와 함께 몇 달 동안 잠자리를 같이 했지만 그런 일은 전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정말이지 상대방을 만지고 싶은 생각마저도 없었다. 우리 두 사람이 이 문제를 가지고 교류할 때 한번은 아내에게 말했다. “지금에 와서 진수하는 정법제자라면 모두 자신을 신(神)으로 여겨야 하오. 만약 두 신이 함께 있으면서 그런 일을 한다면 사부님과 천상의 뭇신들이 우리를 보고 어떻게 생각하겠소?” 아내는 곧바로 이 일의 엄숙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지금 우리 부부는 확실히 그런 초연한 자재(自在)와 조화로운 상태에 있다.
물론 배우자가 속인인 동수의 경우에는 상황이 확실히 복잡하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당신이 생각을 움직이지 않았으며 당신은 또한 이런 생각을 움직이지 않을 것인바, 그 역시 생각나지 않는다.”(《전법륜》)
만약 배우자가 객관적인 요소의 유혹 하에 생각이 움직인다면 우리 대법제자로서 말하자면 나 개인적으로는 행위가 어떻든 상관없이 자신의 내심으로는 모두 ‘마음이 움직이지 않음’을 수련하고 도달해야만 한다. 만약 아직까지도 자신을 속이고 남을 속이면서 ‘속인상태에 부합해야 한다’는 구실로 색욕지심을 방종하거나 혹은 자신은 정당하지 못한 남녀관계가 없으니 소홀히 해도 된다고 여기면서 주동적으로 이런 더러운 마음을 깨끗이 제거하지 않는다면 그럼 아주 위험한 것이다!
문장발표 : 2006년 9월 4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06/9/4/137020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