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대륙 대법제자
【명혜망 2006년 11월 24일】“사람이란 제도하기가 매우 어렵다. 매 학습반마다 언제나 백분의 오, 백분의 십의 사람이 따라오지 못한다. 사람마다 모두 도를 얻기란 불가능한 것이다. 연마를 견지해 나갈 수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또 여전히 당신이 수련해낼 수 있는가 없는가를 보아야 하며, 또한 당신이 결심하고 수련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 보아야 한다. 사람마다 성불(成佛)한다는 이것은 불가능하다. 대법을 진수(眞修)하는 사람은 책을 보아도 마찬가지로 같은 상태가 나타나게 되며, 마찬가지로 마땅히 얻어야 할 일체를 얻게 된다. ”(《전법륜》)
수련 초기에 법공부를 할 때는 위의 단락을 보고도 깊은 체험이 없었다. 그저 수련의 길에서 꼭 정진해야 한다는 것만을 알았다. 법공부가 끊임없이 깊어지고 정법 중에서 진정으로 자신을 착실하게 수련하면서 나는 갈수록 사부님의 이 한 단락 법에 깊은 내포가 있다는 것을 느낀다. 사부님께서는 일찍이 우리에게 수련의 길에서 출현하는 각종상태에 대해 알려주셨다. 만약 장기간 실속 있는 수련을 견지하지 못한다면 겉으로는 수련하지만 도리어 진정으로 법속에서 수련해낼 수 없는 것이다. 그럼 사람의 이 층 껍데기를 벗어버리지 못하고 원만할 방법이 없다.
최근 2년 이래 동수들과의 접촉에서 나는 아주 좋지 못한 현상을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일부 동수들이 갈수록 안일을 추구하고 갈수록 속인의 생활에 집착한다는 것이다. 최근 명혜망의 ‘수련마당(제자절차)’ 항목에서 이 방면의 문제를 담론한 동수들도 있다. 말할 수 있는 것은 현재 우리 대법제자 중에서 안일을 구하는 것은 이미 개별적인 현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은 마치 악성종양처럼 자라나고 확산되고 있다. 일단 뿌리가 생길 때면 그것은 최종 목적에 도달한 것이다. 바로 수련인의 의지를 훼멸하고 대법제자를 끌어내리며 우리들의 과거 공(功)을 모두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다.
어떤 동수들은 아마 이는 너무 심한 말이 아닌가 라고 말할 것이다. 아니다. 조금도 심하지 않다. 내가 알고 있는 동수들은 2002년, 2003년 사악이 가장 미친 듯이 탄압할 때 모두 자기를 수련인으로 간주하고 실속 있게 수련하며 중생구도를 자신의 임무로 여겼다. 그러나 사악이 갈수록 적어지고 수련환경이 갈수록 느슨해지자 안일한 마음을 구함에 이끌려 자신을 느슨히 했다. 처음에는 한 걸음 한 걸음씩 미끄러졌고 바로 마에게 이끌려 속인 속으로 되돌아갔다. 속인 중의 사업에 집착하고 머릿속으로는 온통 어떻게 돈을 벌 것인가로 가득하다. 어떤 수련생은 늘 속인 친구를 따라 식당이나 술집에 가고 심지어 여러 차례 술을 마시기도 한다. 또 어떤 수련생은 경제적으로 어려워지고 생활이 여의치 않자 마작을 하거나 컴퓨터 게임을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어떤 여자 수련생은 소중한 수련시간을 상점을 돌아다니며 고급 옷을 쇼핑하는데 낭비한다. 노인 수련생들은 자식들의 사업, 혼인, 생활 등에 집착하고 어떤 수련생은 속인 중의 정욕, 남녀 정에 이끌려 이지적이지 못하다. 현재 이런 문제들이 있는 동수들은 보편적으로 상태가 좋지 않고 법공부를 적게 하며 대부분 속인 생활에 마음을 쓰고 있다.
그들이 이런 것을 보고 마음이 조급해지고 동수들이 조금씩 대법 기연(機緣)을 잃어버림을 보고 나는 마음이 아파 눈물을 흘린다. 나는 늘 생각한다. 이렇게 좋은 대법을, 우리는 이렇게 위대한 사부님이 계시는데 왜 소중히 여기지 않는지? 정말로 속인 중의 것이 우리가 미련을 가질 만큼 그렇게 가치가 있단 말인가? 우리는 이런 파리대가리 만한 작은 이익, 좋은 옷과 영화, 자식에 대한 정을 위해 살고 있는가? 속인 중에서 사리에 밝은 사람도 세간의 일체가 아무리 좋아도 한 시기일 뿐 죽으면 그만임을 다 알고 있는데 하물며 우리는 우주 법리를 깨달은 대법제자가 아닌가? 왜 여전히 그렇게 미혹에 빠져있는가? 냉정하게 심사숙고해보면 우리가 정진하지 못하고 느슨한 원인은 곧 평상시 안일을 구하는 마음을 오랫동안 제거하지 못한 것이다.
날마다 속인의 것을 집착하고 정진하지 못하니 정법수련의 후기에 마에게 이용당해 이렇게 우리 수련을 교란하는 것이다. 안일한 마음은 우리로 하여금 연공하기 싫어하고 법공부를 소홀히 하며 대신 잠을 많이 자게 하거나 텔레비전을 보게 만든다. 안일한 마음은 우리로 하여금 박해 중에서 두려운 마음이 생겨 법을 실증하는 것을 원하지 않고 대신 집에 숨어서 몰래 연공하게 한다. 안일한 마음은 우리로 하여금 고생을 두려워하고 힘든 것을 두려워하게 하며 심지어 법을 실증하는 가운데 자아를 내려놓지 못하고 전심전력으로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하지 못하게 하며 대신 개인의 이해득실을 따지고 얻으려는 생각만 하며 지불할 생각은 하지 않게 한다. 또한 늘 속인의 것을 잃을까 봐 두려워하게 한다. 안일한 마음은 동수들과의 정체적인 협력을 원하지 않게 하고 공동으로 제고하지 않고 자신의 법공부와 연공에만 열중하고 원만할 생각만 하게 만든다. 안일을 구하는 마음은 정말로 수련인을 크게 해친다. 그것은 우리의 일사일념(一思一念) 속에 숨어 있거나 혹은 속인의 안일한 생활을 추구하게 하거나 혹은 대법 중에서 얻은 속인의 복에 만족하고 현실에 만족하게 하며 대법제자의 사명을 잊어버리고 무조건적으로 법을 실증하지 못하게 한다.
어떤 동수들은 말한다. 자신이 정진하지 못하는 원인은 바로 자신의 경제적인 조건이 좋지 않고 가정에서 부담이 무거운데 어떻게 수련할 마음이 있겠는가? 또 어떻게 법을 실증할 마음이 생기겠는가? 환경이 좋아야만 수련할 마음이 생긴다고 한다. 이것은 사실, 속인의 안일한 마음이 작용한 것이 아닌가?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그밖에, 당신이 뒷근심이 없고 당신이 어떤 번거로움도 다 없다면, 당신은 또 무엇을 수련하겠는가? 편안하고도 편안하게 거기서 연공을 한다고? 어디 그런 일이 있는가? 그것은 당신이 속인의 각도에 서서 생각한 것이다.”(《전법륜》)
법리상에서 사부님께서는 우리 인간세상의 일체는 모두 인연관계가 있으며 사람 중의 행복과 고난은 모두 업력윤보의 체현으로 모두 자신이 조성한 인과(因果)임을 알려주셨다. 수련인으로 말하자면 마땅히 이 한 층의 도리를 깨달아야하고 평온하고 담담하며 만족할 줄 알고 욕심이 적어야한다. 자신의 수련환경에서 心性(씬씽)을 제고하고 우리가 부딪친 좋은 일이거나 나쁜 일을 모두 씬씽을 제고하는 좋은 기회로 삼아 그 안에서 수련해내야 한다. 사실 우리가 정말로 이 한 점을 할 수 있을 때 번거로움도 우리가 상상하는 것처럼 그렇게 오래 가지 않을 것이고 우주의 법리가 일체를 제약하며 우리 자신의 제고에 따라 부(負)면적인 요소도 갈수록 우리를 제약하지 못할 것이며 우리의 수련환경도 갈수록 좋아질 것이다. 반대로 만약 우리에게 그렇게 강한 수련하려는 마음이 없다면 설사 환경이 좋다해도 속인의 일체를 집착하기에 정진할 수 없다.
내 주위의 동수들 중 적지 않은 동수들은 집안 조건이 상당히 좋다. 경제적으로도 풍족하고 자식들도 순탄하고 시간도 여유가 있으며 심지어 해야 할 집안일도 거의 없다. 그러나 그들은 속인 중의 안일한 생활에 미련을 두고 자신을 방임(放任)하며 스스로 벗어나지 못한다. 또 어떤 수련생은 가정 부담이 중하고 생활은 어렵지만 늘 자신을 수련인으로 생각하고 정진하는 마음을 늦추지 않으며 사람을 구하려는 마음이 매우 강하다. 이렇게 보면 사실 수련인이 정진할 수 있는가 여부는 전부 자신의 마음에 달렸고 외부의 환경이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다. 안일을 구하려는 마음이 중한 사람은 조건이 좋거나 나쁘거나 모두 정진하지 못하는 것이다.
개인 체험에 의하면 수련인이 만약 안일한 마음을 내려놓지 못한다면 매우 위험한 것이다. 안일한 마음의 작용 하에 우리의 수련 의지는 점차적으로 상실된다. 대신 속인의 욕망에 의해 지배당하며 속인의 상태에 부합한다는 구실로 속인의 명리정(名利情)을 추구한다. 마지막에 넘어져서 아픈 후에야 비로소 자신이 길을 잘못 걸은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때 우리가 수련 중으로 다시 되돌아오려면 자신이 이미 소중한 기연을 잃어버렸고 후회해도 너무 늦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수련은 곧 엄숙한 것으로, 우리는 정말로 속인의 소위 행복한 생활에 미련을 두면 안 된다. 그것이 우리가 구하려는 것인가? 잠시 얻을 수 있다 해도 아주 짧은 순간에 불과하다. 백년 후 육도에서 계속 윤회전생하고 영원히 고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 이것이 바로 우리 생명이 존재하는 의의란 말인가?
오늘 우리는 다행히 정법 제자가 되었다. 우리의 일체 복은 이미 지금 속인의 안일을 약간 향수하는 것에서 체현되는 것이 아니라 더욱 큰 위덕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조사정법(助師正法), 중생구도(衆生救度), 진정한 원만, 아름답기 그지없는 신 우주로의 진입. 그것은 생명의 지고무상(至高無上)한 영광이며, 그것은 우주 중의 많은 생명이 모두 얻고자 해도 얻지 못하는 특별한 영예이다. 동수들이여, 사부님께서는 줄곧 대법제자는 위대하다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우리 재빨리 안일한 마음을 내려놓고 단지 연마만 견지할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법속에서 수련해내야 하며, 정과(正果)를 이뤄야한다. 그것이야말로 생명이 존재하는 참뜻이다.
문장발표:2006년 11월 24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6/11/24/143028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