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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님과 법을 믿으며 한 관 또 한 관을 넘다

글 / 대륙대법제자

【명혜망 2006년 11월21일】 집사람과 나는 1996년에 연분으로 대법을 얻었다. 얼마나 행복하고 수승한 일인가? 10년의 수련 과정 중 아주 많은 신기한 일들이 있었고, 사부님의 위대함과 자비를 체험하게 되었다. 그 중 몇 가지 일을 써내어 동수들과 격려하고자 한다.

1999년 7월20일 파룬궁에 대한 잔혹한 박해가 시작되었을 때, 많은 파룬궁 수련생들은 북경으로 청원하러 갔다. 당시 대법제자로서 우리들도 무관심할 수 없었다. 처음에는 우리집에서 6명이 법을 얻었다. 12월10일 우리 두 늙은이와 큰 딸 세 명이 북경에 가 법을 실증하였다. 처음 우리는 기차역에서 억류당하여 간수소로 보내졌다. 나는 전후로 5번 붙잡혔다. 두번째는 두 딸과 함께 북경에 갔다가 또 간수소로 보내졌다. 세번째는 단체연공 중 2000년 8월9일에 붙잡혀가 불법(不法)적인 노동교양을 당하였다. 당시 50여 명의 대법제자들이 있었는데, 손으로 베낀 경문을 나에게 주었다. 어느날 갑자기 악경들이 뛰쳐들어와 몸을 수색하고 이불을 뒤집었다. 양쪽에서 중간으로 오면서 수색하였다. 경문은 나의 침대아래와 종이박스 안에 있었다. 그리고 옷과 그릇이 있었다. 모두 수색하였다. 큰일이었다. 또 움직이지도 못하니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당시 사부님께 빌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마음속으로 말했다. ‘사부님, 이 경문들을 그들이 발견하면 안됩니다. 동수들은 아직도 보아야 합니다. 결국 양쪽 모두 뒤졌지만 나의 침대와 반 미터까지 왔을 때, 더 이상 뒤지지 않았고 모두 가벼렸다.

* 정념으로 경찰서를 뛰쳐나와 집으로 돌아오다

2001년 4월경 노동교양소에서 돌아온 후, 10월10일 집안식구 6명 모두 북경으로 법을 실증하러 갔다. 이때 두 명의 동수들도 함께 북경으로 갔다. 매개인이 모두 현수막을 가지고 각자가 각각 하기로 하였다. 열 몇달 되는 외손녀도 그의 어머니 품에서 현수막을 꺼냈다. 당시 나의 둘째딸과 내가 함께 붙잡혔다. 오후에 또 큰딸이 붙잡혀 천안문 파출소에 갇혔다. 모두 딸 4명과 동수 두 명이 붙잡혔다. 나는 당시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감각을 느꼈다. 경찰이 말하였다. “당신들은 가부좌하세요.” 이때 6명의 동수들이 동시에 가부좌하고 발정념을 하면서 사악을 청리했다. 저녁에는 우리를 두 경찰서로 나누어 보냈는데 우리는 두 남자와 한 조가 되었다. 들어서자마자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집으로 돌아갈 기회를 준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동수들과 동시에 발정념을 하였다. 상호 교류를 통해 그들과 배합하지 않고 아무것도 말하지 말고 뛰쳐 나가자고 말하였다.

저녁 9시에 심사가 시작되었다. 어느 지방에서 왔는지와 나이 이름 등을 물었지만 우리는 모두 대답하지 않았다. 그들은 또 물었다. “그럼 당신은 무엇 때문에 왔는가?” 나는 대답하였다. “대법을 실증하러 왔습니다!” “무슨 말이냐? 나는 말했다. “현수막을 걸고 ‘파룬궁은 좋다!’라고 외치러 왔습니다.” 또 다른 것들을 물었지만 우리는 아무것도 대답하지 않았다. 한시간 후, 그들은 우리를 작은 칸에 가두어 놓았다. 당시 사회사람 둘이서 우리를 지켰다. 그중 하나는 맞은편 작은 칸에서 자고 다른 하나는 복도의 긴 걸상에서 자면서 안으로 여는 문을 받치고 있었다. 자정이 되었을 때 우리는 그들이 자는 소리를 들었다. 나와 수련생이 의자에서 일어섰으나 소리를 내고 말았다. 그 사람은 숨을 내쉬며 일어나면서 물었다. “당신들은 무엇을 하려고 하는가?” 나는 대답하였다. “겁내지 마세요. 화장실 가려고요.” 그를 진정시켰다. 당시 마음은 안정되지 못했고 겁이 났으며 대문이 잠겨 나가지 못할까 근심하였다. 사람의 관념이 또 나왔기에 자정에 나가지 못하였다.

이튿날 오후 나는 말했다. “당신들은 우리들에게 밥을 사주세요. 우린 이틀 동안이나 아무것도 먹지 못했어요. 우리에게는 돈이 있어요.” 식당 복무원이 밥을 가지고 왔을 때 나는 말했다. “저녁 일찍 오세요. 경찰서에서 대문을 잠그면 들어오지 못해요.” 이때 간수가 말하였다. “대문은 24시간 열려 있어요.” 나는 마음속으로 흠칫했다. 오후 1시였으며 간수가 한 명이었다. 그는 의자 두개에 다리를 올려놓고 복도에 가로로 누워 있었다. 나는 동수에게 도망치자고 하였다. 그러나 간수의 다리를 뛰어넘어야 했다. 결국 그의 발에 부딪쳤다. “파룬궁이 도망친다.” 이때 나는 작은 문을 돌아 뒤의 막힌 골목으로 들어갔다.

이때 층집에서 한 경찰이 숨이 차서 헐떡거리면서 나의 앞으로 달려왔다. 나는 말하였다. “경찰동지 우리를 놓아주세요. 우리는 모두 좋은 사람이예요. 당신도 덕을 쌓으세요.” 이때 그 어린 동수도 달려왔다. 경찰은 나를 그 간수(중늙은이였다)에게 넘겨주고 그 수련생을 쫓아갔다. 나는 또 달아나려고 하였다. 간수는 나의 옷을 잡고 놓지 않았다. 나는 필사적으로 벗어나려 했다. 이리 밀고 저리 밀고 허리를 구부리니 양복과 흰 적삼이 확 벗겨졌다. 나는 후닥닥 달아났다. 이번에는 정문으로 나갔다. 나는 달아나면서 말했다. “손목시계, 옷, 현금(80여원)을 모두 가져가세요.” 2,3리 굽은 길을 달렸다. 한 주택단지에 들어갔다. 이층에 올라가서 경찰이 오는가 보았다. 숨이나 돌려보자. 주택단지를 벗어나 택시 두 대를 연속 바꿔 탔다. 옷을 사서 입고 버스에 앉아 천진 기차역으로 갔다. 가는 길에 끊임없이 발정념을 하였다. 2층 대합실로 들어갔을 때 문 양편에서 신분증 검사를 하고 있었다. 나는 사부님께 말하였다. “사부님, 나는 신분증이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집으로 돌아가야겠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그들이 다른 사람을 검사하는 기회를 탔다. 마음은 아주 평온하였고 대범하게 중간으로 들어갔다. 저녁 5시에 출발하였다. 차가 금방 떠나자 곧 신분증을 검사하기 시작하였다. 나는 즉시 발정념을 하였다. 결국 승무원은 나의 차표만 검사하고 신분증은 검사하지 않았다. 나는 두번째 관을 넘었다. 똑같은 방법으로 할빈 출구를 나와 제 3의 관을 넘었다. 나는 버스에 올랐다. 금방 뒷좌석에 앉자마자 경찰 두 명이 신분증 검사를 하였다. 나는 계속하여 발정념을 하였다. 경찰이 내렸다. 옆에 앉은 한 아줌마가 물었다. “아저씨, 그들은 왜 아저씨의 신분증을 검사 안하나요?” 나는 마음속으로 말했다. “나는 사부님이 보호해줘요!” 나는 마음속으로 눈물이 났다. “사부님은 너무도 위대하다. 당신 법신의 보호가 없으면 제가 어떻게 도망칠 수 있겠습니까? 이 한 관 한 관을 어떻게 넘었겠습니까? 70이 넘었는데 어떻게 집으로 갈 수 있었겠습니까?”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그날 왜 경찰 한 명에 간수 한 명이었겠습니까? 이것은 사부님이 안배하신 기회가 아니었겠어요?

이번의 법을 실증하는 과정 중에서 나는 더욱 사부님의 위대함과 자비를 감수하였다. 수련의 이 길 위에서 정념정행을 유지하면서 어떠한 정황 하에서도 위대하신 사존님을 생각한다면 당신은 지혜를 얻고 용기를 얻으며 이지적으로 잘 걸을 수 있으며 바르게 걸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하여 우리는 겹겹의 위험을 뛰쳐나갈 수 있고 신으로 향한 길을 똑바로 걸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집으로 돌아온 후 나는 사부님의 초상에 절을 하고 온 얼굴에 눈물이 가득 흘리면서 말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원만은 불과를 얻거니 고생을 낙으로 삼으세 몸 고생은 고생이 아니거늘 마음 수련이 가장 어렵구나 고비마다 다 넘겨야 하건만 곳곳마다 모두 마귀로다. 백 가지 고생이 한꺼번에 내리거니 어떻게 살아갈지 볼지어다. 세상의 고생을 겪을대로 겪고 세상에서 나오면 부처이노라.” (《홍음》 중) 오늘날 나는 이 시의 함의를 진정으로 체험하였다.

* 사부님은 시시각각 제자를 보호하신다

본 지방으로 돌아온 후 나는 더욱 견강하게 법공부, 연공, 진상, 홍법활동 등 대법제자가 응당 해야할 일을 하였다. 11월 어느날 밤에 나가 글을 쓰게 되었다. 한 시멘트 기둥에 ‘파룬궁은 좋다’라고 쓰게 되었다. 그때는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사악들이 아주 날뛰는 시기였다. 도처에서 진상을 모르는 사람들이 순찰을 하고 있었다. 내가 글을 쓰고 있던 정면의 다리 위에는 가로등이 있었다. 그리고 두사람이 순찰을 하고 있었으며 거리는 대략 백미터 좌우였다. 내가 거기에 서있는 것을 보고 그들은 내가 있는 쪽으로 달려왔다. 나는 즉시 발정념을 하여 사악들을 청리했다. 그들은 나와 마주치며 그냥 지나갔다. 그 뒤 나는 또 연속 앞으로 가면서 뿜어서 글을 쓰게 되였다. 갑자기 몸 뒤에서 “땅! 땅!”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뒤돌아 보니 큰 불덩이 두 개가 공중으로 올라갔다. 나는 누가 폭죽을 터뜨리나보다 하고 생각하였다. 자세히 보니 내 몸 옆으로 지나가는 것이었다. 모양은 농구공만하며 매우 밝았다. 하나가 떨어지면 다른 하나가 올라가는 것이었다. 내가 앞으로 가면 그도 따라서 앞으로 가는것이었다. 내가 지나가는 마을엔 모두 가로등이 없었다. 이렇게 계속 일이 끝날 때까지 나를 따라다니면서 집문까지 바래다주는 것이었다. ‘사부님께서 내보내신 파룬이구나! 사부님께서 처음부터 나를 끊임없이 보호해주고 계셨구나!’라고 생각하였다.

여러분이 모두 알다시피 2001년은 대법이 가장 엄중하게 박해받던 시기였다. 우리 정법시기의 대법제자들은 사악의 잔혹한 박해를 무릎쓰고 대법을 선전하고 대법을 널리 홍법하며 진상을 말하고 대법을 실증하면서 세인과 중생들을 구도하였다. 나는 닫힌 채로 수련하는 상태였다. 아무것도 보지 못하였다. 그러나 나는 대법이 좋은 것을 안다. 나와 집사람의 몇년 간의 질병은 법공부하고 연공하여 치료도 하지 않고 나았으며 신체도 명확한 개변이 있었다. 나의 마누라는 기관지가 막혔었지만 반 년이 지나 전면적으로 정상을 회복했다. 나 본인은 뇌혈전도 없어졌다. 30년 넘게 앓아 온 아장풍과 조갑사상균도 사라졌다. 체중은 60킬로그램에서 90킬로그램까지 불었다. 길을 걸으면 온 몸이 가볍고 몸은 하얗고 정력이 충족하여 젊은이들과 다를 바 없었다.

* 마난 앞에서도 뜻을 굽히지 않다

2002년 1월15일,나는 집사람과 함께 동수집에 갔다. 그 동수의 남편에게 ‘천안문 분신사건’ VCD를 보여주었다. 수련생이 며칠 전에 우리에게 와달라고 요청하였던 것이다. 수련생이 연공하기만 하면 그녀의 남편은 수련생을 욕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남편은 경찰서에 우리를 고발하였고, 우리 두 명은 경찰서에 붙잡혀가게 되었다. 고발한 남편은 2006년 3월17일 아침에 갑작스런 악보(惡報)를 받아 죽었다. 경찰소장은 집사람을 강요하여 집으로 끌고 가서 책, 자료, 사부님의 초상 등을 수색하였다. 당시에 문이 열려져 있었다. 이때 외지에서 또 두 동수(남1, 여1)가 자료를 가지고 왔다가 악경에게 압수당하고 동시에 경찰서에 붙잡혀 왔다. 그들은 자료가 어디에서 났는냐며 심문을 당했다. 남자 수련생은 입을 다물고 말하지 않았다. 악경들은 각종 잔악무도한 수단을 다 써서 남자 수련생을 하루낮 하루밤을 때렸다. 코의 등뼈가 부러졌으며 발목도 불구가 되었다. 온몸은 모두 상처투성이였다. 그리고 또 비닐주머니를 머리에 씌워 호흡을 하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수련생은 자료점이 어디에 있는지 끝까지 말하지 않았다. 마지막에 경찰서에서는 우리 4명의 수련생을 각각 남녀 간수소로 보냈다. 나와 남자 수련생은 동시에 한달 동안 단식했다. 이때 남자 동수의 생명이 위급하게 되어 병원으로 보내졌다. 지방의 전체 동수들이 매일 정각에 발정념으로 배합하였고 우리들도 발정념으로 사악을 제거하고 청리하였다. 거기에 집안 식구들이 경찰서에 가서 석방을 요구함으로써 2월30일에 우리 나이든 두 사람은 집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 3일후에 나의 집사람은 병원으로 가서 방법을 동원하여 그 수련생을 구출하였다. 우리는 이후 법공부와 연공을 통해 매우 빨리 정상을 회복하였으며 또 정법의 홍류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 남자 수련생은 나중에 박해받아 치사하였다.)

7월24일, 나와 집사람은 또 악경에게 불법(不法)적으로 체포되어 3년 판결을 받았다. 간수소에서 나의 집사람은 정념을 견지하면서 대법수련을 포기하지 않았으며 악경들은 더욱 그녀를 잔혹한 수단을 통하여 박해하였고, 결국 집사람은 박해받아 치사하였다. (간수소에 있을 때 나는 집사람이 박해받아 치사한 소식을 몰랐다.) 얼마나 사악한가! 70여 세의 할머니도 놓아주지 않아 기어코 ‘眞.善.忍’을 수련하는 좋은 사람마저 박해해 죽게한 것이다. 이것은 중공악당의 나치 폭행을 초월하는 또 하나의 증거이다.

불법적으로 감금된 3년 동안, 법공부와 연공을 못하였으며 동시에 악경과 악인들의 비인간적인 박해를 받았다. 몇날 몇일을 자지 못하게 했으며 각종 형식의 고문 속에서 아주 많은 집착과 사람의 마음이 일어나고 말았다. 이쪽으로 넘어지고 저쪽으로 넘어지면서 심성이 떨어졌으며 자신이 수련인이라는 것을 잊고 말하지 말아야할 것을 말하고 쓰지 말아야할 것을 쓰게 되었다. 그러나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때, 이미 썼으니 어찌 한단 말인가? 이 관건적인 시각에 사부님께서는 또 나를 점화해 주셨다. 나는 끝내 또 걸어나왔다. 나는 또 많은 악인들 앞에서 외쳤다. “사부님은 좋다! 파룬궁은 좋다! 나는 모든 말하고 쓴 것을 전부 폐지한다!” 정정한 후 마음도 가라앉았고 괴롭지도 않았으며 잠을 자도 편안하였다. 사부님께서 시시각각 나의 신변을 떠나지 않고 나를 보호하셨으며 떨어지지 않게 하셨다!

몇 년 동안의 정법수련의 길에서, 7년동안의 박해의 시련 속에서, 위대한 사존은 우리를 보호해주고 모든 것을 안배해 주셨다. 오직 정념이 있고 사부님을 믿고 법을 믿으면 꼭 대법의 위엄과 신기를 체현할 수 있다.

2003년말, 감옥에서는 대법을 모함하고 사부님을 모함하였다. 우리에게 10개의 빈 칸에 써넣는 문제를 냈는데 대법제자는 누구도 적지 않았다. 저녁에 그들은 나를 검은 방에 가두어 두었는데, 마침 겨울이였다. 악인은 나의 옷 단추를 열게 하고 창문을 열어 창문과 마주하여 보게 하여 나를 얼게 하였다. 한밤중이 되었을 때, 그들은 내가 아직도 써넣지 않은 것을 보고 동시에 세 범인이 주먹으로 함께 나의 머리를 때리는 것이었다. 나는 즉시 외쳤다. “이 선생님, 빨리 저를 구원해 주세요!” 이 한마디의 외침에 그들은 누구도 감히 때리지 못하였다. 전부 진정되었다. 사부님께서 또 한번 나를 보호하였다. 이것은 또 한 차례의 사부님을 믿고 법을 믿은 사례이다.

2005년 4월17일, 집으로 돌아온 후 지금까지 나는 시간을 다그쳐 법공부하고 있으며, 매일 아침, 저녁으로 두번 연공하는 것을 견지하고 있다. 이를 통하여 나는 3년 동안의 손실을 미봉하려 한다. 동시에 매일 정각 발정념을 견지하여 일체 대법을 파괴하는 사악의 요소를 모조리 제거하고 있다.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고하고 중생을 구도하며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세 가지 일을 잘함으로써 결코 사존의 자비로운 구도를 헛되지 않게할 것이며 사전의 큰 소원을 실행할 것이다!!!

문화와 층차의 한계로 부족한 점이 많다. 동수들의 자비로운 지적을 바란다.

원문위치 : http://www.minghui.ca/mh/articles/2006/11/21/14285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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