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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자신을 잘 수련해야만 중생구도를 더 잘할 수 있다

【명혜망 2006년 10월 27일】
이전 한 시기에 스스로 3가지 일을 잘 틀어쥐고 있다고 느꼈다. 출근을 제외한 그 나머지 시간은 거의 모두 다 3가지 일을 하는데 썼으며, 자신은 그래도 비교적 정진하는 축에 속한다고 여겼다. 하지만 나중에 와서 갑자기 자신의 씬씽(心性)이 안 된다는 것을 발견하였고, 자신에게 아주 많은 집착심이 있음을 발견하였다. 냉정히 생각해 보니, 일을 하는 자체는 수련이 아니며, 일을 하는 과정 및 일상생활 가운데서 끊임없이 집착을 버리고 끊임없이 씬씽(心性)을 제고하는 것만이 옳은 일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반대로 되어 우리가 하는 일의 실제적 효과에 영향이 있을 것이다.

한번은 명혜망에 올라온 동수의 문장을 보고 자신에 대한 계발이 아주 컸다. 동수의 착실하게 안을 향해 찾고 착실하게 집착을 제거하려는 그런 결심과 의지는 나를 진동시켰고 나를 깨어나게 했으며 또한 자신의 일체 집착을 없앨 결심을 하도록 했다.

하루는 꿈을 꾸었는데 꿈에 아주 더러운 화장실을 하나 보았다. 우리 집 화장실은 아주 깨끗하여 화장실로 통하는 길마저도 아주 깔끔하게 청소되어 있었고 위에는 쇼파 커버와 같은 깔개를 놓았다. 어떤 사람이 와서 화장실로 가려고 하기에 그가 깔개를 밟아 더럽힐 것 같아서 깔개를 걷었다. 그런데 깔개를 걷고 보니 그 밑에는 대변이 한 무더기나 있었다. 이는 사부님께서 나를 점화해 주신 것이다. 표면으로는 잘한 것 같았지만 안으로는 허다한 집착심을 덮어 감추고 있었다. 그리하여 나는 안을 향해 한 무더기나 되는 집착을 찾아내었다. 명예, 이익, 정, 두려운 마음, 쟁투심, 질투심, 과시심, 사심(私心), 색, 화내는 것 등등. 나는 길을 걷거나, 밥을 짓거나, 발정념 하기 전의 짜투리 시간을 이용해 그것들을 부정하고 제거해 버렸다.

그 중 며칠 동안은 정에 의해 몹시 끌린 적이 있는데 바로 딸에 대한 정이었다. 배후의 인연 관계는 모르겠지만, 나는 늘 딸에 대해 어려서부터 마음이 순수하고 사람들의 귀여움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또 자신이 직접 키웠기에 이전에도 자신이 이 방면에 대해 집착하고 있음을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중시가 부족하여 마음속에서 진정하게 우러나와 제거하려는 결심이 없었다. 이번에 딸이 시험 때문에 갑자기 외지로 몇 달 동안 공부하러 떠났다. 처음 며칠 동안 나는 정의 교란을 심하게 받았는데 무엇을 하든지 제정신이 아니었다. 마음은 마치 한 국자 한 국자씩 파내듯이 괴로워서 앉으나 서나 끊임없이 생각했다. ‘너 이 사악한 정마(情魔)야, 난 너를 가지지 않을 테다.’ 그러자 서서히 평정을 되찾기 시작했고 마음속을 가로막고 있던 커다란 물건이 없어지면서 홀가분해졌다.

사부님께서는 《미국수도법회설법》에서 말씀하셨다.
“정진이란, 그것은 바로 그가 시시각각 자신의 언행에 주의할 수 있고 자신의 사상반응을 주의할 수 있으며 자신을 엄격히 요구할 수 있고 늘 자신을 엄격히 요구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개인수련 중에서 비교적 정진하는 것이다.”
사부님의 설법에 대조해 보니 자아를 지키려는 일부 사상이 이미 자연적으로 형성되었음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특별히 주의해서 보지 않으면 자신도 의식할 수 없었다.

한 번은 수련생이 작은 책자를 들고 와서 말했다. “모모모가 쓴 책인데 막 도착 했어요.” 내가 “모모모가 누군데요?”라고 묻자 수련생은 “당신은 모모모가 누군지도 모르세요? 정말….”하고 놀라는 것이었다. 나는 곁에 있던 동수에게 다급히 물었다. “당신은 알아요?” 수련생은 “나도 몰라요” 하고 대답했다. 내 마음은 순간적으로 위안을 얻었다. 그리고는 한마디 내뱉었다. “그렇지요, 그렇게 많은걸 알아선 뭘 하겠어요. 법공부만 잘할 수 있으면 되고 세 가지 일을 잘 하기만 하면 되는 거죠.” 동수의 이 한 마디 말이 내게서 그렇듯 많은 것을 한 무더기나 끌어내게 하여 거의 입만 열면 줄줄 나올 정도였다. 그 후 수련생이 지적해 준 후에야 크게 깨닫게 되었다. 원래 모르면 모른다고 솔직히 말하면 될 것인데 자신의 허영심, 자존심 등 각종 명을 추구하는 마음을 수호하기 위하여 서로 결탁하여 힘을 키워서는 자신의 집착을 건드리는 사람에게 대처하였고 또한 쟁투심도 폭로되었다.

이건 또 아무것도 아니다. 점심에 집에 와서 밥을 먹고 문을 막 나서다가 집 주인을 만났다. 집 주인은 열정적으로 나에게 아는 채를 했다. “퇴근 하셨어요?” 나는 얼른 대답했다. “좀 일찍 가려고요. 11시가 넘었어요.” 나는 이전에 집착을 숨겨 놓았는데 집 주인이 내가 장사를 수월하게 하는 것을 보면 또 집세를 올릴 것 같아서 오늘 이렇게 묻자 순간적으로 아무 생각도 없이 되는대로 말해버린 것이다. 한 말은 모두 빙빙 돌려한 것으로 자신의 이익이 손실보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다. 아, 사람의 마음이란 얼마나 복잡한 것인가! 이렇게 순정하지 못한 마음을 지니고 진상을 알리러 간다면 내가 한 말이 어떻게 순수하고 깨끗해져 상대방 생명의 미시적인 세포 속으로 뚫고 들어갈 수 있겠는가?

사부님께서는 경문 《최후일수록 더욱 정진해야 한다》에서 우리에게 경고하셨다. “왜냐하면 고통은 사람으로 하여금 고달프게 하기 때문에, 그리하여 자각적이든 비자각적이든 고난에 대항(對抗)하게 하는데 목적은 좀 행복하게 살려는 데 있다. 때문에 행복을 추구하는 중에서 사람은 어떻게 하면 자신이 상해(傷害)를 받지 않고 어떻게 잘 살며 어떻게 해야만 비로소 사회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공명을 성취하며 어떻게 더 많은 것을 얻고 어떻게 강자가 되겠는가 하는 등등이 형성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이런 경험이 있는 동시에 또한 인생의 관념이 형성되었고 경험은 또 실천 중에서 관념으로 하여금 완고(頑固)하게 변하도록 하였다.”

사부님께서는 또 경문 《정진요지―경언(警言)》에서 말씀하셨다.
“당신들이 속인의 그 천백 년이래 뼛속에 형성된 이치를 개변하지 않는다면, 당신들은 사람의 표면적인 이 한 층의 껍데기를 벗겨 버릴 수 없으며 원만할 수 없다.”

“수련 중에서 당신들은 자신이 진정으로 착실하고도 착실하게 제고함으로 말미암아 내재적으로 거대한 본질적인 변화가 가져오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역량에 의거하고 외재적인 강대한 요소의 도움을 빈다면, 이는 영원히 당신의 인간적 본질을 佛性으로 전변되도록 개변시킬 수 없다.”

어느 때에 가서야 이런 고유한 관념들을 철저히 개변할 수 있겠는가. 불편함을 좋은 일로 여기고, 자신을 해치는 사람이 자기를 도와주었다고 마음속으로 감격해 하면서 안으로 찾고, 듣기 싫은 소리를 기꺼이 듣고자 하며, 미소로 다른 의견을 받아들이고, 선의적으로 일체를 이해해 주며, 자신을 중심으로 생각하지 않고 자기 의견만 중시하지 않으며 마음속에는 자신이 없고 자비로 충만된….

그 날 한 동수와 교류하면서 동수에게 물었다. “저는 왜 변화가 크지 않을까요?” 동수의 대답이 나에게 아주 깊은 인상을 주었다. “저는 곧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오직 남만 생각하며 자신을 생각하지 않겠다고 생각한 그때부터 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자신을 잘 수련합시다! 오직 자신을 잘 수련해야만 그처럼 큰 과위를 성취할 수 있으며, 오직 자신을 잘 수련 해야만 우리의 마당이 더욱 순수해져 중생을 구도할 수 있는 능력이 더욱 커질 수 있다!

문장발표 : 2006년 10월 27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06/10/27/141129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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