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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동수들에게 농번기에도 단체법학습과 연공을 견지할 것을 건의

글/대륙대법제자

【명혜망 2006년 10월 28일】
애초에는 이런 문장을 쓸 생각이 없었다. 왜냐하면 매년 가을 추수철이면 명혜망에 늘 동수들이 아무리 바빠도 절대로 법학습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문장이 올라왔기 때문이다. 그동안 수련 속에서 모두들 老수련생이 되었고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3가지 일에 대해 매 사람마다 마음속으로 마땅히 이 관계를 바로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변에서 농번기에 바쁘다는 이유로 법학습과 연공을 소홀히 하는 동수들에게 일깨워주어도 또 기어코 농번기가 끝나면 다시 단체 법학습과 연공에 참여하겠다는 동수들이 많이 있다. 이에 나는 비로소 명혜망이란 소중한 자리를 빌려 이런 동수들에게 몇 마디 일깨워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세상에 온 것은 사부님을 도와 정법하고 중생을 구도하기 위한 것이며 여기에는 동시에 우리 자신의 개인 수련의 요소들이 들어있다. 만약 자신이 수련을 잘하지 못하면 곧 진정하게 대법에 동화될 수 없으며 진상을 알려 중생을 구도하는 일 역시 잘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자신을 잘 수련하는 동시에 중생을 구도하는 것으로 이것은 우리가 매일 인간 세상에 존재하는 목적이다. 만약 대법을 제1위에 놓지 못한다면 곧 인간세상의 물질이익이 아무리 많다한들 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나는 한 가지 일화가 생각났는데 대략적인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여호와의 제자 중에 욥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여호와를 매우 굳게 믿었으며 물질생활도 매우 부유했다. 어느 날 사탄이 여호와에게 말했다. “당신께서 그에게 많은 재산을 주었기 때문에 그가 비로소 당신을 믿는 것입니다. 만약 그에게 재산을 주지 않는다면 그는 곧 당신을 믿지 않을 것입니다.” 이에 자신에 대한 욥의 믿음을 고험하기 위해 다음 날 여호와는 사탄을 세상에 내려 보내 하룻밤사이에 욥의 모든 재산과 집을 파괴하고 돌림병으로 모든 친인들의 생명을 앗아갔으며 오직 욥 한 사람만을 남겨두었다. 다른 사람이 욥을 조롱하면서 “당신은 주를 믿지 않는가? 왜 주에게 당신을 보호해달라고 하지 않는가?”라고 말했다. 이에 욥은 대답했다. “내 모든 것은 내 생명을 포함하여 주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 모든 것을 원하신다면 언제든 가져가실 수 있습니다. 나는 주님의 뜻을 존중합니다.”(원래 말은 아니다) 욥은 나중에 여호와의 천국세계로 들어갈 수 있었다.
[역주: 이상의 일화는 원래 《구약성경 욥기》에 일부 발췌한 것이다.]

한 보통 수련자라 할지라도 모두 그가 신앙하는 신을 굳게 믿고 자신의 모든 것은 주께서 주신 것임을 굳게 믿으며, 물질이익과 속인 중의 일체를 담담히 보아야 한다. 설마 정정당당한 주불(主佛)의 제자인 우리가 한 보통 수련자보다도 못하단 말인가?

물론 농번기에는 분초를 다툴 정도로 바쁘며 옥수수를 수확한 농가에서는 빨리 껍데기를 벗기지 않으면 싹이 나서 중량이 감소한다. 일 년 수확이 전부 이때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여기서 다그쳐 일을 끝내지 말라는 것이 아니며 대법을 어떤 위치에 놓는가를 말할 뿐이다. 우리가 하루 24시간 중에 절약하여 한 두 시간 법학습과 연공할 짬을 낼 수 없단 말인가? 이 시간은 사부님께서 뭇 제자들에게 주신 것으로 만약 대법제자의 시간을 우리가 모두 인간 세상의 일에 사용한다면 그러고도 우리가 합격한 ‘대법제자’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인간 세상의 일이 바쁘기만 하면 우리는 곧 법을 학습하지 않을 것인가? 만약 일 년 365일 늘 바쁘다면 우리는 인간 세상의 일이 다 끝난 후에야 다시 수련할 것인가? 우리는 인간세상의 물질이익을 위해서는 분초를 다투면서도 자신을 순정하게 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데는 시간을 다그치지 않을 것인가?

우리가 매일 생활 속에서 접촉하는 많은 사람들은 속인이며 오로지 대법제자들이 함께 있을 때라야만 ‘배움을 비기고 수련을 비기며’ 공동으로 제고하고 서로 일깨워줄 수 있다. 자신의 집에서는 자신에 대해 그리 엄격하게 요구하지 않거나 매일 법학습과 연공을 견지하지 못할 수도 있다. 우리의 단체 법학습이란 이 환경은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남겨주신 것으로 단체 법학습에 참가하는 것 역시 법을 수호하는 한 가지 표현이 아닌가?

동수들이 법학습을 중시하고 아무리 바쁜 와중에도 수련과 속인 일과의 관계와 시간문제를 잘 배치하여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남겨주신 수련환경을 잘 수호하기를 희망한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어떠한 환경 속에서, 어떠한 시기에서, 일이 아무리 다망할지라도 모두 법공부를 벗어나서는 안 되는 것으로, 이는 당신들이 제고하여 원만하는 가장 근본적인 보장이다.”(《도항―워싱턴 DC 국제법회에서의 설법》)

끝으로 우리 함께 사부님의 한 단락 설법을 보면서 서로 격려하도록 하자.
“나는 여러분이 아주 수고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다. 당신들은 사업을 해야 하고, 학습을 해야 하며, 가정생활이 있고, 사회 생활이 있으며, 동시에 또 가정을 보살펴야 하고, 일을 잘 해야 하며, 또 법을 잘 배우고 공을 잘 연마해야 하며, 또한 진상을 똑바로 알려야 한다. 어렵다! 시간적으로나 경제적 조건에서든 모두 비교적 어렵다. 어려움은, 위덕을 체현시키며, 어려움, 이것이야 말로 위덕을 수립하는 좋은 기회이다. 대단하다! 왜냐하면 당신들은 수련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비록 어려울지라도 역시 더욱 잘 해야 한다.” (《도항―2001년 캐나다 법회에서의 설법》)

부당한 곳은 삼가 자비롭게 지적해주기 바란다.

문장발표 : 2006년 10월 28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06/10/28/141174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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