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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문을 읽을 때 사부님의 존함을 휘(諱)하는 문제에 대한 생각

글 / 후난 천저우 대법제자

【명혜망 2006년 10월 22일】
우리 지역의 많은 동수들도 사부님께서 경문 뒤에 쓰신 서명을 ‘사존(師尊)’ 또는 ‘사부님’이라고 읽거나 심지어 개별적인 동수들은 《전법륜》에 나오는 사부님의 존함마저 ‘사존’ 또는 ‘사부님’이라고 읽는다. 물론 동수의 의도는 사부님을 존중하기 위해 직접 사부님의 존함을 부르지 않으려는 것이다. 나는 이런 방법은 타당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사부님의 법은 불변부동(不變不動)한 것이며, 누구도 움직일 수 없는 것이고, 움직인다면 곧 법을 파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부님의 존함은 법에서 역시 법이고 이것은 직접 사부님의 함자를 함부로 부르는 것과는 다른 개념이다.
(편집자 주: 경문 속에 나오는 사부님의 존함은 원래대로 읽어야 하며 고칠 수 없는 것이고 매 경문 뒤에 나오는 사부님의 서명은 읽지 않는다.)

예를 들어 생각해보자. 만약 당시 석가모니의 제자가 《금강경》을 기록할 때 석가모니의 서명을 ‘사존’이라고 했다면, 2500년 후의 오늘날 누가 《금강경》은 석가모니부처가 하신 말씀임을 알 수 있겠는가? 우리가 지금 석가모니를 이야기 할 때, 모두 일종 장엄하고 신성한 이름이라고 생각하지 조금도 불경한 요소가 없다. 그러나 ‘사부님’은 마치 ‘아버지’, ‘어머니’, ‘형님’처럼 사람에 대한 존칭이고, 많은 사람들도 또 다른 사람을 ‘사부님’이라고 부를 수 있다.

내 기억에 초기에 법공부를 할 때, 사부님께서는 일찍이 우리에게 만약 꿈속에서나 또는 천목이 열려 사악한 마가 자신을 해치는 것을 볼 때, 사부의 이름을 부르면 아무 일도 없을 거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이럴 때 사부님의 존함을 부르는 것은 사부님을 믿고 법을 믿는 행위이며, 사부님의 존함 ― 이 세 글자는 우주 중에서 가장 위엄 있고 법력이 가장 강대하며 우주 중의 일체 바르지 못한 것들을 제압하실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 나는 정말로 울고 싶고 사부님께 정말로 면목이 없다. 왜냐하면 단체 법공부할 때 나도 다른 사람들을 따라 이렇게 해왔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모두 이렇게 하자, 나만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또 정말 조금은 불경(不敬)하는 의미가 있는 것 같았고, 오랜 시일이 지나자 나도 습관이 되었다. 하지만 나중에 다시 마음속으로 불편해졌고 교류할 때 여러 번 내 생각을 제기했지만 많은 동수들은 모두 사부님의 존함을 직접 부르지 않는 것이 좋다고 했다. 나중에 나는 문장으로 써서 명혜망에 보내 교류하려고 했고 제목까지도 다 써놓았지만 일 년이 넘도록 마무리 하지 못했다.

며칠 전 수련생이 쓴 윤회 이야기를 보니, 석가모니가 원적한 후 불법(佛法)을 기록할 때 동수의 사형(師兄)이 자신의 말을 몇 마디 써 넣었다가 여러 번 지옥으로 떨어져 고생을 했으며, 대법이 전해질 때에야 겨우 그 집 처마 밑에 사는 제비로 전생했다고 한다. 사람의 몸을 잃었으니 또 어찌 사전의 큰 소원을 이룰 것인가? 정말 영원한 유감이 아닌가? 나는 자신에게 이 며칠 바쁜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붓을 들겠다고 다짐했다.

오늘 내가 《명혜주간》을 펼쳐보니, 문장 가운데 바로 이 문제를 토론한 것이 하나 있었다. 나는 한편으로는 놀랐고 또 매우 부끄러웠다. 나는 자신의 그 이기적인 마음으로 대법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 마음을 보았다. 수련은 떠들썩하게 따라하는 것이 아니며 ‘법을 스승으로 삼아’야 하고 맞는 것이면 곧 견지하고, 문제점을 발견했다면 꼭 여러 동수들과 법리에 따라 바로 잡아야 한다.

내가 법을 얻은 지 몇 개월 되던 때가 생각난다. 당시 보도원은 모두에게 착실하고 착실하게 연구회에서 제출한 “대법을 정독하고(精讀大法) 진정하게 심성을 닦으며(眞修心性), 고심히 동작을 연마(苦煉動作)….”에 따라 하라고 했다. 나는 여기에 대해 이견을 제출했지만, 보도원의 엄격한 비평을 받았고, 연구회는 틀리지 않을 것이라고 느꼈다. 비록 그때 ‘통독’에 대해 명확한 개념은 없었지만 그러나 나는 한번 씩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읽는 과정에서 알게 모르게 좋은 사람이 되는 도리를 알게 되었으며 사부님의 말씀대로 하니 심성이 점점 높아졌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사부님께서는 《정진요지―시정》이란 경문을 발표하시어 연구회의 잘못을 바로잡아 주셨다.

7.20이 막 다가올 무렵, 사부님의 법신상과 서적을 감추라는 소식이 전해져 왔다. 나는 동수들에게 이렇게 하지 말라고 했다. 연공장에서 집으로 돌아가, 나는 제일 깨끗하고 부드러운 티슈로 조심스럽게 거실에 높이 걸린 사부님의 법신상을 닦으면서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저는 사부님의 법신상을 더욱 반짝이게 닦겠습니다.’ 나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 나왔고 이때 거대하고 아주 따뜻한 에너지가 나를 감쌌다.

7.20 이후, 나는 여러 차례 체포되어 감금당했고, 2001년에는 또 납치되어 노교소에 감금당했다. 이 일 년동안 사악의 소위 전화(轉化)는 가장 창궐했고 많은 동수들이 미혹되어 악경, 사오(邪悟)한 자들과 함께 나를 소위 ‘청성’하게 하고자 했다. 나는 대법으로 사악의 일체 거짓말을 타파했고 그들에게 대법을 파괴하지 말라고 권고했다. 비록 검은 소굴에서 나에게 기간을 일 년 연장시켜 온갖 고통을 받았지만 매번 위험할 때면 사부님께서는 항상 나를 지탱해 주셨기에, 나는 자신의 깨끗한 하늘을 지킬 수 있었고 반석처럼 견고하게 사부님을 따라갈 수 있었다.

사실 정말로 법이 당신에게 요구한 것을 해낸다면, 그것은 정말 ‘유암화명우일촌(柳暗花明又一村)’이다. 그런 어려운 환경 하에서 매우 긴 시간 동안 나는 법공부, 연공, 발정념을 할 수 있었고 떠날 때도 사부님의 신경문과 일부 《전법륜》을 보존할 수 있었으며, 우리는 심지어 반년 동안 단체로 연공할 수도 있었다.

최후로 갈수록 우리들에 대한 법의 요구는 점점 높아지며 우리는 마땅히 더욱 정진해야 한다. 바쁘다고 하여 자신에 대한 수련을 잊거나 심지어 가장 근본적인 것을 닦는 것도 모두 잊어서는 안 된다.

개인의 깨달음이니 부당한 곳이 있다면 자비롭게 시정해주기 바란다.

문장완성 : 2006년 10월 22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6/10/22/140695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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