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대륙대법제자
【명혜망 2006년 10월 22일】
자료점이 도처에 꽃이 피듯 많아진 상황 하에서, 아직도 많은 동수들은 의지하는 마음이 비교적 강하며 설사 자료점을 건립했다 하더라도 신속하게 독립하지 못한다. 그것은 기술방면이나, 소모품을 구입하거나, 자료를 만드는 방면에서 표현된다.
기술방면에서 말한다면, 명혜망에는 기술을 다루는 동수들이 중점적으로 박해받는 대량의 상황이 나타났고, 우리 지역에서도 이런 일이 발생했다. 가정 자료점이 건립된 후 기술을 담당한 수련생은 바쁘기 시작했는데 이집 저집 다녀야했으며 심지어 동수들의 요구를 모두 들어줄 수 없으면 동수들은 기술을 담당하는 사람을 원망하기 시작했다. 결국 그 수련생은 사악에게 눈엣가시가 되었고 중점적인 박해 대상이 되어, 지금까지 마귀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더욱 심한 것은, 사악이 기술을 담당한 수련생을 미끼로 삼아, 여러 동수들을 납치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되었는가? 사부님께서는 “조용히 생각해보니 집착한 일 얼마이더냐, 사람 마음을 덜면 악은 스스로 패하리라”(《홍음(2)―슬퍼하지 마라》)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우리가 모두 사부님의 가르침에 따라 마음을 조용히 하고 내심으로 찾아 심성(心性)을 제고하는 과정에서 사악을 자멸(自滅)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하든지 모두 자신의 심성을 제고하는 것이고, 개인수련의 요소가 안에 포함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일이 나타나든 모두 안을 향해 찾아야 하며 여기에는 기술방면도 포함한다. 동시에 자신도 수련해야 하며 층차를 제고해야 하지 않겠는가? 당신의 심성이 제고되었고 속인의 이 지식을 당신이 장악해야 한다면, 사부님께서는 꼭 당신에게 점화해 주실 것이다. 속인의 이 지식이란 위대한 불법(佛法) 앞에서 창해일속(滄海一粟)에 불과하다. 수련자로서 또 무엇이 두려울 것이 있겠는가? 때문에 관건은 여전히 자신을 수련하는 것이고, 당신을 장애하는 속인의 그런 집착을 수련해버려야 한다.
일은 곧 일이고 법공부를 할 때만 수련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명혜주간》에 발표된 한 문장에서 어느 꼬마 대법제자가 자료를 만드는 것을 배운 이야기를 말한 적이 있는데, 그는 매우 빨리 배웠고 또 아주 잘 했으며 어떠한 기술적인 문제도 아무것도 아니었고 모두 척척 해냈다. 왜 그러한가? 그것은 그가 사람의 관념으로 문제를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람의 물건이 그를 난처하게 할 수 없는 것이다.
자료를 만드는 문제를 다시 말함
어떤 동수들은 비록 자료를 만들고는 있지만 만드는 자료에 대해 구별하는 마음이 있어서 어떤 것은 하고 어떤 것은 하지 않는다. 대법 서적을 만드는 것은 확실히 요구가 높고 고품질의 프린터와 기술적인 경험이 필요하며 모든 자료점에서 기술과 조건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진상 소책자 정도는 충분히 배워서 만들 수 있다. 우리는 대법제자이며 모두 대법이 부여한 지혜가 있고 할 수 없다면 배울 수 있다. 우리는 양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기에 처음에 한두 권을 배워서 만들어 보고 이렇게 하다보면 서서히 기술이 향상될 것이다.
또 어떤 수련생은 자료점을 하면서 늘 천리 밖 먼 곳에서 자료를 가져온다. 왜 이렇게 하는지 자세한 정황을 나는 모르겠지만 마땅히 더 잘 고려해봐야 한다. 속인 중에서도 모두 “먼 곳의 물로는 가까운 곳의 갈증을 해결할 수 없다”는 말이 있다. 하물며 우리는 사람을 구하는 일을 하고 있기에 주도면밀하게 고려해야 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 많이 고려해보아야 한다. 만약 늘 무엇이 필요하기만 하면 외지 동수에게 해달라고 알리고 외지 수련생이 와서 해주기를 기다린 후에야 다시 한다면 이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지체시키겠는가! 하물며 외지 동수 역시 그곳 현지에서 할 일이 있기에 제때에 당신에게 해줄 수 있는가도 문제가 된다. 설마 기다리는 시간에는 사람을 구하지 않겠다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러므로 내 생각에 기왕에 사람을 구하는 것이라면 자신이 감당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또한 외지와 연락하고 자료를 만드는 것을 책임진 동수에게 법으로 일을 하는 것을 가늠하고 사람의 정으로 하지 말 것을 건의한다. 그(그녀)가 당신과 어떤 관계가 있으니 무엇이든 모두 해줄 수 있다고 여기지 말아야 하며 사실상 이것은 동수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 것이다. 당신이 줄곧 ‘요청하면 반드시 온다’면 단지 당신이 일을 하는 계획을 교란(왜냐하면 외지에서 물건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시간과 수량을 결정할 수 없다.)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자신을 수련하는 것을 저애한다. 그들의 의뢰심 등 집착심을 조장해서는 안 된다. 당신은 그들을 도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데 바로 법리적인 교류를 포함하여 그들이 독립하게 하며 늘 완성품을 주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물론 만약 초기의 특수한 정황이라면 한두 가지를 대신해주는 것은 문제가 없지만 장기간 이렇게 하지는 말아야 한다.
어떤 수련생은 나에게 그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여러분들과 함께 교류하기 위해 말해보고자 한다.
한 번은 그녀가 납치된 후에 생각했다. ‘나는 나간 후에는 반드시 스스로 자료를 만들겠다.’ 그러나 그녀가 나온 후에 또 곧장 자료를 배포할 생각을 하게 되자 다른 수련생을 찾아가 자료를 달라고 요청했고 그에게 자료가 얼마나 있던지 상관이 없다고 말했다. 이렇게 반달이 지나 그녀는 또 그 동수의 집에 자료를 가지러 갔지만 아무것도 가져올 수 없었다. 또 반달이 지났고 이번에도 가져올 수 없었다. 이렇게 연달아 몇 차례 단 한 부의 자료도 가져올 수 없게 되었다. 그녀는 ‘더 이상 기다리지 말자, 반드시 스스로 만들고야 말겠다!’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하여 그녀는 자료를 만들기 시작했다. 나중에 그녀가 한 말 중에 내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 “만약 당시에 내가 필요한 자료를 그 수련생이 제때에 줄 수 있었다면 어쩌면 나는 지금까지도 여전히 기다리고 의지하는 상태에 처해 있었을 거예요.”
여기서 볼 수 있다시피 동수의 요구에 대해서도 완전히 ‘요청하면 반드시 들어준다’로 될 수는 없으며 이것 역시 동수에 대해 책임지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도 수련을 해야 하며 우리 자신도 다른 사람을 위해 많이 생각하는 것을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문장완성 : 2006년 10월 22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06/10/22/140676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