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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지역 여러 명의 대법제자가 불법 납치된데 대한 약간의 인식

글/바오딩시 대법제자

【명혜망 2006년 10월 26일】 10월 10일, 11일은 바오딩 노교소(勞敎所)에 불법 수감된 대법제자들의 가족 면회 날이다. 바오딩 바리좡(八里莊 팔리장) 노교소는 바오딩시 ‘610’, 공안국, 국보대대, 난스구(南市區) 악경들과 결탁하여 노교소에 가서 근거리 발정념을 하는 동수들에 대해 계획적이며 미리 음모를 꾸민 대규모 체포를 진행하여 이틀 사이에 16명의 대법제자들이 불법 체포되었다. 그중 2명은 이미 정념으로 뛰쳐나와 집으로 돌아왔다. 이 일을 겨냥하여 나는 나 개인의 인식을 한번 말해보고자 한다.

금년 3월 8일, 쑤자툰에서 자행된 중공의 놀라운 죄악이 폭로된 후 동수로서 누구나 침통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이 죄악을 폭로하는 동시에 자신을 검사해 보면서 마지막으로 나는 인식하게 되었다. ‘만약 대법제자에 대한 간수소(看守所), 노교소, 감옥의 불법 수감이 없었다면 비밀 강제 수용소도 없었을 것이며, 만약 악인 악경들의 대법제자에 대한 불법 체포가 없었다면 대법제자의 생체에서 장기를 적출하는 일도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잇따라 명혜망은 첫 페이지에 “대법제자에 대한 간수소, 노교소, 감옥의 불법 수감을 철저히 끝장내자” 라고 명확하게 제출하였다. 이것은 정법이 또 새로운 노정으로 진입했으며, 우리의 수련도 따라서 새로운 단계로 진입했음을 설명하는 것이다 .

정법 노정을 바짝 따르는 가운데 대법제자 류지즈(劉季芝)에 대한 악경의 강간사건 , 가오베이뎬(高碑店)에서 5명의 대법제자가 불법 체포된 사건이 출현하였다. 대법제자에 대한 악인, 악경의 불법 체포를 철저히 결속 짓기 위하여 현지 동수들은 몇 년 동안 악경의 악행을 폭로하는 동시에 악경을 법정에 신고하였다. 몇몇 현(縣)의 동수들의 공동 노력으로 류지즈에 대한 살인멸구 계획이 수포로 되었고, 대법제자가 부상당한 다른 한 소송도 지금 진행 중이다. 동시에 노교소, 감옥에 감금된 대법제자에 대하여 동수들은 전력을 다해 구원하고 있다.

노교소, 감옥의 동태(動態)로부터 사악도 활동하고 있음을 보아낼 수 있다. 한 감옥에서는 지금까지 면회실에서 기록을 남기는 일이 없었는데 최근 들어 어떤 감옥에서는 누구든 상관없이, 면회를 하거나 안 하거나 상관없이 그곳에 가기만 하면 기록을 남겨야 하는데 그야말로 사악하기 그지없다. 심지어 가족과 함께 가서 사람을 내놓을 것을 요구하던 대법제자마저 납치되는 일이 나타났다. 하반기에 접어들어 바오딩 노교소에 대한 근거리 발정념을 하러 간 사람이 많아졌다. 다시 말해 사악을 제거하는 화력(火力)은 이미 보다 직접적이며 집중적으로 노교소, 감옥을 겨냥하고 있다.
우리가 정법 노정을 따라갈 수 있다는 이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이렇게 큰 박해가 나타났으니 교훈 역시 침통한 것이다.

우선, 내가 느끼기에 근거리 발정념에 대해 일종 떠들썩하고 일시적인 열조에 들뜬 상황이 나타난 것 같다. 예를 들면 루바오(盧寶 노보)가 불법 납치된 후 근거리 발정념 건의가 있자 단번에 백 십여 명의 사람들이 갔다. 그러나 그 이후에는 가족들이 날마다 사람을 찾으러 갔지만 발정념을 하는 사람을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이것은 바로 사부님의 경문 《정진요지―뿌리를 캐다》에서 말씀하신 바와 같다. “법을 명백히 이야기하여서만이 당신들은 비로소 움직이며, 명백히 이야기하지 아니하면 움직이지 않거나 또는 반대로 되는 방향을 향해 움직인다. 나는 이런 행위가 수련이라고 승인할 수 없다.”

떠들썩하게 노교소에 가서 발정념을 하는 것은 기점이 순수하고 바르지 못하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오랜만에 만났다고 친밀하게 대화를 나누다 보니 본래 발정념을 하러간 것이 단번에 오랜만의 만남으로 변했고 감정을 교류하는 기회가 돼 버렸다. 이 어찌 될 말인가? 어떤 사람은 처음에는 아주 좋았는데 다른 사람이 이렇게 하는 걸 보고 그렇게 하지 말라고 일깨워주다가 나중에는 자신도 모르게 따라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한두 사람이 그랬지만 나중에는 대부분이 모두 이 모양이었다. 한두 사람이라면 그것은 개인의 문제이지만 대다수가 모두 이렇다는 것은 낡은 세력의 흑수(黑手)가 틈을 타고 들어온 것이다,

둘째: 이지적이지 못했다. 어떤 사람은 “두려울 게 무언가, 바로 노교소 문 앞에서 정념을 발하자.”라고 말한다. 그리하여 무리를 지어 노교소 정문 앞에 서서 사악에게 박해할 구실을 주었다.

셋째 : 활동을 조직한 사람의 책임이다. 큰 활동에 대해서는 조직자가 관건적인 작용을 한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발정념을 하러 갔다면 사전에 주의 사항에 대해 교류하고 대법제자의 안전을 첫 자리에 놓고, 매 시각마다 과정 중에 나타나는 문제에 중시를 돌려야 할 것이다. 이 점에서 본다면 또한 바오딩시의 정체적 협조의 미성숙을 반영하고 있다.

넷째 : 토론과 교류가 충분하지 못했다. 큰 활동에 대해서는 마땅히 교류를 많이해야 한다. 예를 들면 정법 노정에 관한 인식이라든가, 근거리 발정념에 관한 인식 등이다. 특히 떠들T썩한 문제가 출현한 후 본래는 일찍이 의식해야 했는데 도리어 제때에 교류하지 않아 사악에게 틈을 탈 기회를 주게 되었다. 이 역시 바오딩 정체(整體)가 산만하고 간격이 아주 크다는 것을 설명한다.

이상 몇 가지를 총결한 교훈은 다음과 같다.

1. 무엇을 하든지 막론하고 자신은 수련인이자 정법시기 대법제자이며, 속인이 대법 일을 하는 것으로 되지 말아야 한다는 주의식이 똑똑해야 한다.

예를 들어 말한다면, 북경으로 대법을 실증하러 갔을 때 어떤 사람은 신분을 밝히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신분을 밝히지 않은 것은 더욱 많은 사람들이 박해에 참여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한편 어떤 사람은 자신이 신분을 밝히지 않은 것은 함께 간 수련생이 “우리는 북경에 가서 신분을 밝히지 말자”라고 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때문에 결과는 달랐다. 전자는 박해를 받지 않았지만 후자는 아무리 때려도 이름을 대지 않았다. 왜냐하면 수련생이 이름을 대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다. 한 속인으로서 그에게 이름을 대지 말라고 하면 속인 역시 아무리 때려도 이름을 대지 않을 수 있지만 그는 속인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므로 동수들이여,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막론하고 모두 ‘법에 입각하여 법을 인식해야 한다.’

2. 주동적으로 법을 원용해야 한다
7년 동안의 온갖 역경을 지나오면서 지금에 이르러서는 마땅히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 어떤 동수들은 줄곧 협조인에게 의지하며 심지어 다음과 같은 고정관념이 형성 되었다. ‘우리 지역 수련생들이 모래알처럼 흩어진 것은 협조인에게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수련생이 박해 받는 것은 협조인이 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문제가 나타나기만 하면 곧 “협조인을 찾지 못했는데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라고 말한다. 마치 협조인을 위해서 수련하는 것 같다.

3. 정념의 부족이 두드러지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공능을 주셨다. 그렇다면 그렇게 많은 제자들이 있었음에도 도리어 한 사람의 악한 무리도 멈춰 세우지 못했다. 이 역시 우리가 근거리 발정념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때문이다. 근거리 발정념을 하러 갔다면 바로 사악을 찾으러 간 것이며 사악이 왔다면 이것은 근거리 발정념의 법리를 증오(證悟)할 좋은 기회가 아닌가? 대법제자는 이 법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왜 도망을 가는가? 나는 여기서 누구를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 자신도 말하기는 쉬워도 해내기란 말하는 것처럼 그리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또한 우리는 경험이 없었다고 말할 수 있으니 처음에 잘하지 못했다면 이후에 잘하도록 하자.

4. 상반기에 나는 자신이 받은 박해 자료를 써 내어 현지 민중들에게 현지 사악을 폭로할 것을 여러 번 제의하였다. 하지만 써내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이로써 사악이 존재할 시장을 주었고 사악의 박해를 알게 모르게 묵인해 주었고 이는 또한 백주대낮에 사악이 마음대로 날뛸 수 있는 주요 원인이 되었다.

여기에서 명혜망을 통해 다시 한 번 바오딩의 많은 동수들에게 탄압 이후 자신이 받은 박해 자료를 상세히 써 낼 것을 제출하는 바이다.

5. 우리의 수련 형식은 자고로 전례가 없고 참조가 없으며 깔린 길도 없다. 우리는 모색하면서 걸어가고 있으며 우리가 의거할 것은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해주신 설법이다. 법을 실증하는 길에서 조심하지 않아 넘어지는 것을 피하긴 어렵다. 허지만 우리는 넘어졌다 해도 재빨리 일어나야 하며 서로 원망하거나 질책하지 말아야 하고 용기를 잃지 말아야 한다. 정확한 길이라는 인식이 들고 오직 법속에 있기만 하다면 그럼 끝까지 걸어가야 한다.

이상은 개인의 인식으로 층차가 제한되어 있으니 부당한 곳이 있다면 동수들이 자비로 시정해 주기 바란다.

문장발표 : 2006년 10월 26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minghui.ca/mh/articles/2006/10/26/140914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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