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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으로 안을 향해 찾고 선심(善心)으로 의견을 제출해야 한다

글/대륙대법제자

【명혜망 2006년 10월 18일】

우리가 비록 수련인이긴 하지만 그러나 당문화(黨文化)의 찌꺼기가 아직도 체내에 남아 허영을 추구하고 서로 배척하고 질투하며, 기세 드높은 걸 좋아하면서 떠들썩거린다. 그러므로 외국의 일부 사람들이 우리를 당팔고(黨八股)라고 말하는 것도 틀리지 않다. 마음고생이야 말로 정말로 아주 어려운 것으로서 나에게는 이에 대한 깊은 체험이 있다.

나는 늦게 법을 얻었기 때문에 오로지 용맹정진 하여 따라잡고 한 마음으로 세 가지 일을 잘하여, 이 특수한 시기 특수한 환경 속에서 사부님의 정법노정을 바짝 따를 생각만 했다. 그런데 어떤 수련생이 나를 말하면서 과시심이 아주 중하고 수구하지도 않으며 자신을 실증하고 있다는 등을 말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이해할 수 없었고 억울한 생각이 하늘을 찌를 듯 했으며 다른 사람들도 눈에 거슬렸고 책임자가 책임을 지지 못한다고 질책했고, 협조인이 협조하지 않으며 법에서 벗어났다고 하면서 일언일행(一言一行)이 모두 법리(法理)에 있지 않았는데 어떤 때는 화가 나서 죽을 지경이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스스로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다. 만약 노(老)수련생들이 중생들에게 끊임없이 진상을 알리지 않았다면 내가 법을 얻을 수 있었겠는가? 내가 또 어찌 파룬따파(法輪大法)가 좋다는 것을 알 수 있었겠는가?

노 수련생들은 가장 간고한 환경 속에서 걸어 지나왔고 그들은 이미 한 걸음을 앞서 걸었다. 그들을 따라가자면 나는 다만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공부를 잘 해야 하며 자신에 대해 엄격히 요구하고 동수들에게 많은 관심을 갖고 선심으로 부족점을 제출해야지 질책하거나 공격 또는 배척하지 말아야 한다.

나는 스스로 수련을 아주 잘했고,많은 대법 일을 했으며 세 가지 일 중에서 어느 한 가지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고 여겼다. 동수들도 나를 정진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몇 달 전부터 나의 옛 병이 다시 도져 숨이 차고 기침이 났다. 소업(消業)이라면 이틀 지나면 곧 나을 수 있을 테지만 병세는 날이 갈수록 엄중해져서 어떤 때는 감기에 걸린 듯이 머리끝까지 아파왔고 기침을 하기만 하면 머리가 아팠다. 기침하는 것을 두려워할수록 기침은 더욱 쉴 새 없이 나왔다. 나는 줄곧 안을 향해 찾아봤지만 기침은 멎지 않았고 뿌리를 뽑지 못했다.

어느 날 두 명의 수련생이 우리 집에 들렀고 우리는 함께 법공부와 연공을 하고자 했다. 저녁에 그들은 내가 줄곧 기침을 하면서 숨이 차서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을 보더니 자신들도 자지 않고 일어나 앉아 나와 교류하면서 왜 그렇게 기침을 하게 되었는지 물었다. 나는 체면 때문에 감히 그녀들에게 알려 주지 못했고 이렇게 기침을 한 지 두세 달 정도 된다고 마라했다.

동수들은 내게 매우 관심을 가져주었으며 나를 도와 원인을 찾았다. 나는 평상시 다른 사람의 문제만 보면 남을 질책했는데 다른 사람이 접수할 수 있을지 여부는 고려하지 않았다. 단지 겉으로 들춰내고는 한 가지 문제를 꽊 잡고는 놓지 않으며 그 자리에서 비평을 하거나 뒤에서 의논을 했는데 하면 할수록 더 신이 났다. 이것이 수련인가? 나는 속인보다도 더 속인이었다!

내가 마침 방향을 잃고 도처에서 부딪히고 있을 때 사부님의 신경문 《로스앤젤레스 설법》이 발표되었다. 내가 마치 금방 걸음마를 배운 어린아이처럼 막 넘어지려 할 때 사부님께서는 제때에 나를 부축해주셨고 내가 안정적으로 걸어갈 수 있게 해주셨다. 사부님께서는 말씀 하셨다.

“수련이란 바로 안을 향해 찾는 것이라 맞든 맞지 않든 모두 자신을 찾아야 하며 닦음이란 바로 사람의 마음을 닦는 것이다. 늘 지적과 비평을 받아들이지 않고 늘 밖을 향해 지적하며 늘 다른 사람의 의견과 비평을 반박하는 그것이 수련인가? 그것이 어떻게 닦는 것인가? 습관적으로 늘 다른 사람의 부족을 보고 여태껏 자신을 보는 것을 중시하지 않는데, 다른 사람은 수련을 잘했는데 당신은 또 어떻게 하겠는가? 사부는 당신이 잘 수련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닌가? 당신은 왜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고 늘 가서 다른 사람을 보는가? 오히려 안을 향하여 닦지 않고 자신을 찾지 않는가?”.
“수련인은 결코 지적해서 좋아진 것이 아니고 나 이 사부가 누구를 비평해서 좋아진 것도 아니며 당신들이 서로 비평하고 지적해서 좋아진 것도 아니며 여러분 자신이 자신을 닦아서 수련이 잘된 것이다.”

사실 사부님께서는 실과 득을 말씀하시면서 일거사득(一擧四得)의 관계에 대해 말씀하셨다. 우리는 날마다 모두 법공부를 하지만 무엇을 공부 했는가? 마음속으로 들어가지 않았고 아직도 사부님께서 지금 또 다시 방할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우리에게 알려 주셨다.

“진정한 겁난(劫難) 중에서 또는 관(關)을 넘는 중에서 당신은 시험해 보라. 참기 어려운 것을 당신은 참아 보라. 보기에 안 되고 행하기 어렵다고 말하는 것을, 그러면 당신이 한번 시험해 보라. 도대체 행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 만약 당신이 정말로 해낼 수 있다면, 당신은 정말로 유암화명우일촌(柳暗花明又一村)임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사부님의 책은 바로 우리 눈앞에 있고 사부님의 말씀은 바로 우리 귓가에 있는데, 우리에게 또 무슨 넘어가지 못할 관이 있단 말인가? 물론 여러분도 예상했을 테지만, 사부님의 보호속에 나는 지금 신체가 좋아졌고 정신적으로도 많이 좋아졌다. 나의 심태도 좀 제고되어 언제든 다른 사람의 의견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으며, 될수록 정서를 탄연하고 너그럽게 하려 한다. 우리 자비로운 마음으로 일체를 포용하도록 하자. 사부님께서 우리를 보고 계시지 않는가?

개인의 깨달음이니 동수들이 시정해 주기 바란다.

문장발표 : 2006년 10월 18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06/10/18/140423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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