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대륙 대법제자
[명혜망 2006년 10월 12일] 나는 99년 초에 법을 얻은 제자이다. 집착을 가지고 대법에 들어 온 것으로 하여 굽은 길을 걸었다. 사부님께선 자비로 나를 포기하지 않으셨기에 또 동수들의 도움 하에 나는 다시 대법 속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법에서 법을 인식하지 못하고 근본적인 집착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비록 세 가지 일을 하여 약간의 개변은 있었으나 의연히 완전하게 바로 돌아오지 못했다. 그래서 조급한 정서와 원망하려는 심리가 나타났었다.
최근, 동수와 교류할 때 사부님께서 그 수련생을 통하여 나에게 점화해 주셔서 나는 끝내 명백하게 되었으며 아울러 ‘착실하게 수련함’ 역시 매우 중요한 하나의 절차(環節)임을 인식했다. 속인 속에서 현대인들의 관념의 영향으로 각양각색의 집착심을 양성했었다.
예를 들면, 다른 사람이 잘 되면 질투하고, 자신이 좀 잘 되면 과시하고, 일을 할 때 결과가 옳거나 그르거나 일을 틀리게 했을지언정 다른 사람이 ‘아니다’란 말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 자신의 생각과 작법이 부동한 상황에 부딪치면 더욱 즉시 배제하거나 심리가 평형되지 못한다. 마치 사부님께서 법에서 이야기하신 집착들이 나에게 모두 있는 것 같았다.
그리하여 이러한 마음에 이끌려 온종일 걱정하고 두려워했다. 자신의 집에 있을 때를 제외하고 어느 곳에 가든지 모두 당황하면서 그 누구와 접촉하든지를 막론하고 모두 긴장하면서 진실한 말을 감히 하지 못하면서 자신이 일을 그르칠까봐 두려워했다. 따라서 신체 역시 매우 좋지 않았다. 특히, 법을 실증하는 세 가지 일을 하는 과정 중에 이러한 집착은 정말 파괴적으로 나쁜 작용을 했는바 나로 하여금 사상이 집중되지 못하게 하고 우유부단하면서 늘 마음은 있지만 힘이 모자람을 느끼게 되는바 그 압력은 정말 대단히 커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정도였다.
무엇 때문에 이러한가? 나는 법을 많이 학습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그런 상태를 개변하려고 애썼다. 사부님의 법에 대조하면서 확실히 매우 많은 집착심과 후천적으로 형성된 관념을 찾았다. 원래는 이런 것들을 찾아내기만 하면 반드시 홀가분하리라고 생각했는데 결과적으로는 그리 큰 변화가 없었다. 동수와의 한 차례 교류 중에서 그 수련생은 직접 원인을 지적하여 주었다. 그것은 곧 내가 오직 법리와 안으로 찾아야 된다는 것만 알뿐, ‘착실하게 수련’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처음에 나는 잘 접수하지 않고 또 억울하다고 생각했다. 후에 나는 법공부를 거쳐 수련생이 말하는 것이 정확함을 인식했다. 왜냐하면 사부님께서는 일찍 《홍음》에서 말씀하셨다.
법을 배우고 법을 얻어
배움을 비기고 수련을 비기나니
일마다 대조하여
할 수 있음이 수련이노라.
수련인은 법공부를 통하여 집착을 찾아야 하지만 착실하게 수련하지 않으면 또 어떻게 그것들을 없애버릴 수 있으며, 어떻게 제고할 수 있겠는가? 사부님께서는 대법제자들이 좋은 일, 나쁜 일에 봉착해도 모두 좋은 일이라고 하셨다. 그러하다면 대법제자는 더욱 잘 해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이러한 내용을 써내어 이와 유사한 상황에 처한 동수들에게 약간의 일깨움이 되어 공동으로 제고 될 것을 희망한다.
층차의 제한이 있기에 자비로 시정하여 줄 것을 희망한다.
문장완성 : 2006년 10월 11일
원문위치 : http://www.minghui.ca/mh/articles/2006/10/12/1399230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