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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람 속에서 당당하게 전진하다

글 / 다칭(大慶) 대법제자

【명혜망 2004년 10월 13일】

1. 만고의 기연(機緣)이 한 줄로 엮여

1996년 7월 12일 새벽 내가 눈을 부비면서 일어나보니 거실 탁자에 두 권의 책이 놓여 있었다.(한권은 『법륜공(수정본)』이었고 또 한권은 『전법륜』이었다.) 당시에 나는 책의 제목도 모르면서 문득 책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에 나는 학교 교과서 외에는 그 어떤 책도 본 적이 없다. 나중에 알고보니 이 두 권의 책은 엄마가 새벽 연공을 할 때 같이 파룬궁을 연공하던 한 아주머니가 준 것이었다.

나는 책을 들어 목마른 사람이 물을 마시듯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한편으로는 책을 보면서 또 한편으로는 자신도 모르게 아주 오랫동안 찾아왔던 것을 마침내 찾아낸 것 같았는데 그 격동한 심정은 말로는 표현할 길이 없다. 책을 보기 직전까지도 나는 여전히 절대적인 ‘무신론자(無神論者)’였었지만 몇 페이지 보지 않아 나는 사람이 살아가는 진정한 의미가 바로 ‘반본귀진(返本歸眞)’임을 분명히 알게 되었고, 사람이 수련을 통해 심신이 승화되고 생로병사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었으며, 생명은 왜 ‘眞善忍’ 원칙을 따라야 하며, 왜 덕을 중시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 분명히 알게 되었다. 십여 년 간의 무신론 교육이 단번에 와해되는 순간이었고 내 마음 깊은 곳은 사부님의 법리(法理)에 의해 무수한 진감(震撼)을 느꼈으며 나는 마음속으로 ‘사부님, 저는 眞善忍의 표준에 따라 자신을 수련하고 반본귀진 하겠습니다.’라고 외쳤다.

2. 대법을 확고히 수련하고 사부님을 바짝 따르다

다음날 새벽 나는 엄마를 따라 연공장에 갔으며 연공장에 간 첫날 마침 연공을 배울 수 있었다.

1997년 나는 우수한 성적으로 모(某) 대학 법학(法學)계열에 합격했는데 당시 내가 다니던 학교에는 연공장이 없었다. 1996년 ‘《광명일보》사건’이후 우리 학교에서는 일부 학교 간부들이 파룬궁 수련생들이 교내에서 연공하는 것을 금지시켰다. 나는 혼자서 묵묵히 수련을 견지해나갔다.

1999년 7월 20일 사상 유례가 없는 탄압이 시작되었고 중국 대지는 온통 공포분위기에 휩싸였다. ‘7.20’ 당일 아침 여름방학을 맞아 집에 와있던 나는 엄마와 함께 연공장에 갔는데, 연공장 주변은 온통 경찰과 사복형사들이 깔려 있었다. 그날은 마침 엄마가 공법을 가르치는 날이었다. 마지막 포륜(抱輪) 동작을 하고 있을 때 때마침 떠오르는 붉은 태양을 보면서 나는 마음속으로 무척 괴로웠다. ‘이제 언제나 다시 이곳에 와서 정정당당하게 연공을 할 수 있을까!’ 집에 돌아오자 몹시 분노한 아버지가 각목으로 나를 때려눕히고는 여러 차례 내 얼굴에 각목을 들이대며 “연공 할 거야 안 할 거야?”라면서 물어보았다. 나는 아버지의 일그러진 얼굴을 보면서 단호하게 “할 거예요.”라고 대답했다. 결국 아버지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듯이 각목을 치웠다. 그 이후로 아버지는 더 이상 나를 때린 적이 없는데 이런 방법으로는 아무 효과가 없다고 말했다.

여름방학이 끝난 후에 학교에 돌아간 지 얼마 되지 않아 학교 지도자가 나를 찾아와서는 眞善忍에 대한 신앙을 포기하라고 말하면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제적시키겠다고 위협했다. 나는 학교에서 줄곧 품행이 단정하고 성적이 우수한 학생이었으며 성적도 계속해서 계열 수석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眞善忍에 대한 신앙 때문에 곧 ‘제적’당할 위기에 처했던 것이다! 그 당시의 중국에서 파룬궁 수련자들은 모두 신앙과 사업, 신앙과 학업, 신앙과 가정, 심지어 신앙과 생명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만 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한 위대한 수련자는 바로 중대한 고험 속에서 능히 자아(自我), 속인의 일체 사상에 이르기까지 내려놓을 수 있다.”(『정진요지(2)―위치』) 나는 학교 지도자에게 대법의 아름다움과 대법의 진상을 알렸고 인성(人性)을 말살하는 박해의 불합리성 등에 대해 알려주었다. 당시 나에게 소위 전화(轉化)공작을 담당했던 학교 간부가 진상을 명확히 알고 난 후 학교 지도자에게 나를 위해 통사정을 했다. 학교 지도자는 그의 입장이 확고하지 못하다면서 그를 비판했다. 한 번은 이 간부가 동창생들이 모인 자리에서 “우리 학교에는 파룬궁을 수련하는 여학생이 하나 있는데 그녀는 내가 지금까지 본 중에서 가장 총명한 학생으로 줄곧 자신의 신앙을 포기하지 않았다….”라고 발언했다.

2000년 6월초 나는 혼자서 천안문 광장에 가서 우주의 모든 생명들에게 내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소리를 외쳤다. “파룬따파 박해를 중지하라!”

나는 학교 지도자에 의해 다시 학교로 불려왔다.
학교에 돌아온 후 고향 동수들이 나를 도와 내가 다니던 학교에 있는 한 자료점을 연계해주었다. 나는 일체 시간을 다그쳐 법학습을 했는데 그때 나는 매일 하루에 『전법륜』9강을 읽었다. 피곤한 감각도 없었고 잠을 십여 분만 자고나면 정력이 다시 충만해짐을 느꼈다. 나는 혼자 버스를 타고 몇 백 부의 진상자료를 가져와 하나하나 잘 포장하여 집집마다 배포했다. 교직원 숙소, 학생 기숙사, 교직원 거주 지역, 학교부근 주택가에 모두 나의 발자취를 남겼다. 학교 지도자는 매 건물마다 2명의 보안인원을 배치해 주야로 감시를 했으나 나는 보안의 감시 하에서도 침착하게 대법의 복음을 중생들의 손에 전달해주었다.

내가 깨달은 것은 사람이 대법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대법제자가 대법 일을 하는 것으로 양자 간에는 기점이 다르고 본질적인 구별이 있다는 점이다. 사람이 일을 할 때는 사람 마음을 써서 하기에 일을 하려는 마음, 과시심, 승부욕 등으로 일을 하며 일의 결과를 추구한다. 그러나 대법제자는 끊임없이 사람마음을 제거하고 끊임없이 자신의 변이된 사상을 바로잡는 동시에 법속에서 수련해 낸 자비로 거짓에 기만당한 세인들을 구도하는 것으로 하는 과정에서도 ‘일을 하되 구하고자 함이 없는’ 것이다.

나는 매 한 장의 진상자료를 발송할 때마다 늘 아주 순정(純淨)하고 상화(祥和)한 심태로 했으며 아울러 대법을 박해하는 사악을 깨끗이 제거하고 인연 있는 사람들에게 진상을 명백히 알릴 수 있도록 발정념을 했다. 때문에 내가 발송한 진상자료들은 훼손되는 경우가 거의 없었으며 어떤 때는 내가 진상자료를 어떤 집 문 앞에 막 붙이자마자 집에서 사람이 나와 진상자료를 가져가서는 목마른 사람이 물을 마시듯 읽기도 했다.

내가 직접 얼굴을 맞대고 진상을 알리는 과정에서 몇몇 사람들이 법을 얻었고 그들은 나와 함께 진상자료를 발송했다. 우리는 함께 발정념을 한 후 자료를 발송했으며 거리에 사람이 얼마나 있든지 상관없이 정정당당하게 자료를 붙이고 대법 현수막을 걸었다. 한 사람이 붙이면 나머지 사람들은 입장(立掌)하여 발정념을 했다. 한 번은 동수들이 모두 간 후 나 혼자 자료를 발송했는데 한편으로는 발정념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자료를 배포했다. 갑자기 나는 자신이 몹시 크고 높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내가 있는 도시나 힘지어 전 중국마저도 대단히 작게 느껴졌다. 나는 이때 처음으로 두려움이 없는 감각을 깊이 느낄 수 있었다. 전반 신체가 모두 텅 빈 것 같았는데 나는 이것이 사부님께서 가지해주신 것임을 알았다.

2001년 5월 여행 가이드를 하고 있던 한 친구가 나를 찾아와 미국 모 기업의 총재와 CEO들을 위해 일상적인 번역을 맡아달라고 했다. 당시 나는 막 졸업논문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원래 시간이 없었다. 그러나 이것도 중생을 구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어 흔쾌히 승낙했다. 나는 어느 관광지의 산장에 가게 되었다. 나는 그곳에서 매일 시시각각 표지가 없는 『전법륜』책을 손에 들고 있었다. 산장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모두 이상한 눈으로 나를 보았고, 나는 만나는 사람들마다 모두 미소로 대하면서 대법이 박해받고 있는 진상을 알려주었다. 사람들은 모두 받아들일 수 있었다. 외국인들에게 진상을 알릴 때는 언어방면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나는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단어를 이용해 진상을 알렸고 아울러 명혜망 사이트 주소를 알려주었다. 그들 역시 대법을 잘 받아들였다. 나중에 이 기업의 총재는 나에게 이메일을 보내 “당신과 당신의 그 책에 축복이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어느 날 저녁 나는 산장 보안인원에게 불려갔다. 그들은 탁자에 있던 진상 VCD를 가리키면서 나에게 물으면서 아울러 “우리는 시 공안국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나는 조금도 두렵지 않았고 사악의 이런 작은 재주로는 대법제자에 대해 전혀 작용을 일으키지 못했다. 나는 파룬따파 수련자이며 나의 사명은 중생을 구도하는 것이지 사악의 박해를 받는 것이 아니다. 나는 대법이 부여한 자비와 위엄으로 선의(善意)적으로 그들에게 대법의 진상을 알려주었다. 결국 그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이면서 진상을 분명히 알았다는 표시를 했다. 오직 한 사람만이 아주 고집스러웠는데 이 사람도 나를 데려다주고 헤어지면서 “眞善忍은 정말로 좋아!”라고 내게 말했다. 어둠 속에서 나는 비록 그의 얼굴을 보지는 못했지만 그러나 그의 말투에서 나는 대법의 빛이 널리 생명을 비춰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온 찬탄과 감사임을 느낄 수 있었다. 내 마음은 다시 한 번 사부님의 무량한 자비에 대해 진감(震撼)되었다!

학교로 돌아온 후에 동창들은 모두 졸업논문 때문에 근심하고 있었다. 나는 단지 반나절 만에 약 2만자에 달하는 졸업논문 초고를 완성했으며 또 하루 만에 졸업논문을 전부 완성했다. 또한 긴장된 졸업 구술시험을 거쳐 내 논문은 전체 계열에서 1등을 차지했다.

3. 비바람 속에서 함께 법을 실증하다

(1) 정체협조와 협력

2001년 10월 하순 천안문 광장에서 공산악당의 붉은 기가 올라갈 때 나는 손에 든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가 적힌 노란 바탕에 붉은 색 글씨가 적힌 현수막을 높이 치켜들고 “파룬따파하오! 파룬따파는 정법이다! 대법은 결백하다! 사부님은 결백하다!”라고 큰 소리로 외쳤다. 한 경찰이 내 옆에 와서 나를 붙잡고 현수막을 빼앗았으며 빼앗은 현수막으로 내 입을 틀어막았다. 나는 주변에 있던 사람들에게 계속 외쳤다. “천안문 분신자살은 정부에서 연출한 것입니다.” 나는 경찰차로 끌려갔고 북경 전문(前門 첸먼) 파출소로 보내졌다. 이곳은 전문적으로 천안문 광장에 법을 실증하러 오는 대법제자를 체포하여 가두는 곳이었다. 그날 모두 10명의 대법제자가 체포되었다(수많은 제자들은 정정당당하게 갔다가 정정당당하게 돌아왔다). 우리는 함께 교류하면서 발정념을 했다. 한 아주머니 동수 A가 내게 가만히 자신의 집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

그날 밤 우리는 북경시 팡산구(房山區) 간수소로 보내졌다. 교류를 통해 모두들 ‘사악에게 협력하지 않는다’는 인식에 도달했고 우리는 단체 단식으로 사악의 박해를 제지하기로 결정했다. 우리는 하나의 정체이니 반드시 정체적으로 제고하고 정체적으로 승화해야 한다. 처음에 두 명의 수련생이 단식에 참여하지 않았는데 한 명은 판결을 받아 곧 감옥에 보내질 예정이었고 또 한명은 자신이 곧 석방될 것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며칠 후에 그녀는 노교소로 보내졌다. 경찰이 대법제자를 끌고 가 강제로 음식물을 주입할 때 우리는 몸으로 수련생을 보호하며 수련생이 악경들에게 끌려가지 못하게 막았다. 우리가 몸을 던져가면서 수련생을 보호하는 것을 본 후 원래 단식을 거부했었던 판결 받은 수련생은 아주 감동을 받았다. 그녀는 지금까지 여러 차례 한 무리 한 무리의 제자들을 접촉했지만 우리처럼 이렇게 하는 것은 처음 본다면서 결국 자신도 우리의 대열에 동참했다.

한번은 경찰이 미친 듯이 우리를 한사람씩 끌어내어 구타하면서 수갑과 족쇄(무게가 5Kg이 넘는다)를 채워 놓았다. 게다가 우리 몸 뒤로 수갑과 족쇄로 하나로 연결해놓았다. 이 고문을 ‘뒤로 꿰기’라고 한다. 우리들의 몸은 하나의 타원형을 이뤘고 기거나, 서거나, 앉거나 어떤 자세를 취하든지 몇 초만 지나도 참을 수 없는 통증이 생겼다. 만약 대법에 대한 바른 믿음이 아니었다면 아주 감당하기 힘들었다. 나는 일초 일초를 버텨내면서 낡은 세력의 배치를 전반적으로 부정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었고 마음속으로는 《논어》를 계속 외웠다. 그때 나는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께서 우리를 위해 본질적인 것들을 감당하셨고 나는 단지 육체적으로 요만한 작은 고통만을 감당할 뿐임을 생각하고는 끊임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다음날 기적이 나타났다. 나는 갑자기 몸이 조금도 힘들지 않음을 느꼈으며 팔, 다리는 마치 뒤로 묶여 있던 족쇄가 사라져 앞으로 편안히 뻗은 것 같았다.

저녁에 경찰은 우리들의 형구(刑具)를 풀어주었다. 왜냐하면 사악도 그 어떤 방식을 사용해서도 대법제자들의 대법에 대한 바른 믿음을 동요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또한 ‘한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만 가지 움직임을 제압할 수 있다’는 것을 깊이 체득하게 되었다. 나는 사부님께서 시시각각 주변에서 나를 보호해주시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단식을 한 지 9일이 지난 후 고향의 경찰이 와서 나를 데려갔다. 기차에 오른 후 나는 두 개의 꿈을 꾸었다. 의미는 내가 사명을 완수하기 전에는 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꿈’은 수련을 지도할 수 없으며 법리상으로 바르게 깨달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정법제자이니 절대로 낡은 세력이 배치한 길을 걸을 수 없으며 또 아직 법을 실증하는 많은 일들을 하지 못했다. 나는 사부님께 가지해주실 것을 청하는 한편 발정념을 하면서 나를 데려가던 3명의 경찰이 잠들게 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정신이 또렷했다. 내 씬씽에 분명히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안을 향해 찾아보니 자신에게 두려움이 있었다. 나는 내가 탈출에 성공하지 못할까 두려워하고 있었고 체포된 후 어떤 박해를 받을지 몰라 두려웠다. 자신의 두려움을 찾은 후 나는 발정념으로 그것을 깨끗이 제거하고 그것을 승인하지 않았다. 기차가 어느 역에서 정차할 때 나는 3명의 경찰이 보는 앞에서 탈출에 성공했다. 다시 한 번 대법의 위력을 견증한 것이다.

나는 지난번 북경에서 알게 된 A동수와 연계하여 2001년 12월 하순 내 고향에서 수천 킬로미터나 떨어진 어느 낯선 대도시로 가게 되었다. 그 때 그 지역에는 수련생들이 거의 모두 집에서 걸어 나오지 못하는 상태였고 명혜망 자료도 거의 보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내가 이곳에 온 목적과 사명을 알게 되었다. A수련생은 늦게 법을 얻었기 때문에 현지에서 그녀가 알고 있던 수련생은 B 한 명뿐이었다. 나는 동수 B를 통해 한 사람 한 사람씩 동수들을 찾아가 한 사람 한 사람씩 얼굴을 맞대고 교류를 했다.

나는 그녀들에게 사부님의 신경문을 외워주었고 그녀들에게 사부님의 위대함을 말해주었다. 즉, 사부님께서는 9개월에 걸쳐 당신의 몸으로 우주의 모든 고난을 감당하셨으며 우주 중생들을 위해 일체를 소모하셨다고. 나는 또한 그들에게 다른 지역의 정법 상황을 알려주었고 전반 대법의 정법노정에 관해 교류를 나눴으며 대법제자들이 정법 중에서 일으킨 장거(壯擧)를 말해주었다. 동시에 나는 교류 중에서 어떻게 하면 이성적으로 법을 인식할 수 있는가, 어떻게 해야 걸어 나와 대법을 실증할 수 있는가를 강조했다. 낡은 세력의 배치란 무엇인가? 어떻게 해야 낡은 세력의 배치를 전반적으로 부정할 수 있는가? 개인 수련과 정법수련의 관계는 어떠한가? 사업이 아니라 정법수련이고, 무엇이 진정한 선(善)인가? 왜 진상을 알려야 하는가? 어떤 심태로 진상을 알려야 하는가? 어떤 문제에 부딪히든 모두 정념으로 대해야 하며 어떻게 시시각각 정념을 유지할 것인가? 발정념의 중요성과 정법무대 위에서 어떻게 연출하고 어떻게 주역을 맡을 것인가? 왜 큰 뜻을 품고도 사소한 일에 주의해야 하는가? 어떻게 해야 대법제자의 풍모를 체현할 수 있는가? 무엇이 정법시기 대법제자인가? 등등

동수들과의 매 차례 교류에서 나는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기회와 인연을 아주 소중히 여겼다. 그곳 수련생들의 두려움은 아주 심해서 만약 한 차례 교류의 기회를 소중히 하지 못한다면 다시는 마주할 기회가 없을 가능성이 매우 컸다. 그들은 의심이 많아 사람을 보기만 하면 특무로 여겼다. 어떤 때는 동수의 가족이 이해하지 못하여 나를 쫓아낼 때도 있었고 보다 심각한 경우에는 전화로 경찰에 신고한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압력이 크고 어려움이 클지라도 나는 그것이 낡은 세력의 배치이며 생명이 대법에 동화되는 것을 방해하려는 것임을 알기에 나는 씬씽을 제고하는 동시에 그것들의 배치를 전반적으로 부정했다.

동수들과의 만남을 통해 그들은 나를 의심하던 데서부터 신임으로 변했고 우리는 견고하여 깨뜨릴 수 없는 입자단(粒子團)을 이뤘다. 우리는 곧 자료점을 건립하기 시작했고 단선(單線) 연락 체계를 구축했다. 한 동수에게 문제가 출현하면 우리는 그에게 어떤 누락이 있다고 비난하는 대신 정체에 누락이 나타난 것이라고 말했고 우리 모두 안을 향해 찾아야하며 문제의 근원을 찾아내어 바로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어떤 수련생은 나를 책임자로 여겨 나에 대해 ‘시키는 대로 따르겠다’고 했는데 나는 이런 상태가 옳지 못함을 알고 자신에게 있는 아주 깊이 숨겨진 과시심이 있다는 것을 보게 되었다. 대법 사업 중에서는 절대로 지도하려는 마음이 있어서는 안 되며 여러분이 모두 정법 중에서 대법 입자의 작용을 발휘해야 한다. 단지 정법 사업 중에서 각자 맡은 일이 다르고 역할이 다를 뿐이며 누구도 속인 지도자처럼 누구를 지휘할 자격이 없다. 어떤 일에 부딪히든 절대로 자신의 관념으로 다른 사람을 가늠해선 안 되는데, 사부님께서는 형식을 보지 않으시고 오로지 사람 마음만을 보신다.

동수와 동수 사이에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이해이다. 내가 처음에 일을 시작할 때 방해가 아주 컸다. 한번은 한 아주머니가 나를 데리고 동수 D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 수련생은 나를 특무로 의심하고 있었다. 내가 막 그와 교류하려고 하는데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그의 친구가 갑자기 외국에서 찾아왔다. 나는 곧 다른 방에서 발정념을 하면서 이번 교란을 제거했고 잠시 후 그 친구는 돌아갔다. 우리가 앉아서 교류할 준비를 하는데 나를 데려간 그 아주머니의 남편(속인)이 달려와 나를 쫓아내려했다. 나는 인간 표면공간의 가상에 이끌리지 않았고 나는 매 한 생명 모두 마땅히 소중히 해야 한다는 것을 떠올리고는 그 아저씨에게 홍법을 했다.

그에게 내가 대법을 실증한 경험을 이야기하고 대법제자들이 어떤 일을 하던지 모두 위사위아(爲私爲我)의 요소가 없으며 완전히 진상을 모르는 그런 생명들을 위한 것임을 말해주었다. 그러나 우리 대법제자들이 지금까지 세상에서 얻은 것은 무엇인가? 어떤 사람은 감금되었고 어떤 사람은 판결 받거나 고문으로 시달림을 받았으며 심지어 생명마저도 잃었다라고. 내가 말을 끝내자 아저씨는 내게 “너는 참 대단하구나!”라고 말했다. 동수 D도 내가 한 말을 다 들은 후 나에 대한 모든 의심을 버렸고 우리는 마음을 툭 터놓고 허심탄회하게 교류를 했다. 이후 그는 걸어 나와 적극적으로 대법을 실증하고 있다.

한번은 7.20 이전에 그 지역에서 책임범위가 가장 컸던 보도원 E를 만나려고 했다. 7.20 이후 사악은 줄곧 그에 대해 24시간 감시를 하고 있었고 그는 다른 수련생과 접촉할 수 없었다. 처음에 내가 그를 찾아가 먼 곳에서 온 친척이 만나보고 싶다는 쪽지를 써서 건네주었다. 그는 내게 쪽지를 써서 만나길 원치 않는다고 했다. 두 번째 그를 찾아갔을 때는 그가 집에 없었고 나는 한 통의 긴 편지를 써서 주었다. 세 번째 가서야 나는 끝내 그 수련생을 만날 수 있었다. 우리는 아주 오랫동안 교류를 나눴고 그는 눈물을 흘리면서 내가 가져간 진상 VCD를 5번이나 보았다. 이후 그 역시 사부님을 도와 정법 하는 길에서 아주 견정하게 걷고 있다.

2002년 10월 나는 고향에 돌아갔고 이 기간에 씬씽 방면에서 아주 큰 시련이 있었다. 자료점에서 일하는 동수의 일을 하려는 마음, 지도하려는 마음, 질투심 등을 보았고 어떤 수련생은 속인 지도자처럼 굴었으며 어떤 수련생은 진상자료를 제작할 때 자신의 기호에 따라 줄곧 ‘방광명’ 프로그램을 따라 수시로 자료를 바꿨다(역주 : 여기서 필자가 문제 삼는 부분은 ‘방광명’ 프로그램을 사용했기 때문이 아니라 수시로 자신의 기호에 따라 내용을 변경했다는 점이다.) 나는 내심으로 동수에 대해 간격이 생겼고 그들이 대법제자라면 마땅히 내가 인정하는 표준과 내가 인정하는 사상경지에 도달해야 한다고 여겼다. 나는 자신의 기점에 서서 동수들과 체득을 교류했으나 교류효과는 좋지 못했다. 동수들은 전혀 나의 관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나의 씬씽이 승화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어떤 말을 해도 법의 위력이 없었고 동수 사이에 심지어 모순이 발생하기도 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너무 힘이 들었는데 이때 사부님의 설법을 읽었다.

“특히는 우리 대법제자(大法弟子) 내부에서 우리가 외부를 향하여 진상을 똑바로 알릴 때 여러분은 모두 중생을 자비(慈悲)로 대하여야 함을 느꼈고, 우리 대법제자(大法弟子) 사이에도 자비롭지 않으면 안 된다. 당신들은 동문제자(同門弟子)이며, 여러분은 모두 우주의 정법을 위하여 온갖 마음과 힘을 쏟고 있기 때문에, 서로간에 잘 어울려야 하며, 너무 지나치게 속인의 마음으로 문제를 보지 말아야 하며, 서로간에 속인의 마음을 지니고 일부 발생하지 말아야 할 모순과 논쟁을 일으키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일은 모두 반드시 대법제자(大法弟子)로서 관용(寬容), 선량(善良), 상화(祥和)한 표현이 있어야 하며, 그의 일이 바로 당신의 일이며, 당신의 일이 바로 그의 일이다. 우리는 그 무슨 속인의 단결을 말하지 않으며, 그것은 일종 억지로 강요하는 표면 형식이며, 당신들은 수련자이고, 당신들은 더욱 높은 경지가 있다. 그렇다면, 아주 많은 일 중에서의 표현은 곧 반드시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들을 수 있어야 하며, 대법으로 옳고 그름을 가늠할 수 있어야 한다. 사실, 당신들은 지난날에 비하여 아주 많이 좋아졌고, 내가 생각하건대, 장래에 반드시 더욱 잘해야 한다.”(『2002년 워싱턴 DC 법회에서의 설법』)

나는 매번 사부님께서 하신 포용과 이해 홍대한 관용과 자비로 수련생을 대하라는 말씀을 볼 때마다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말씀드렸다. ‘그들처럼 그렇게 자아에 집착하는 방법은 저로서는 아무리해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사실은 나 역시 자아에 집착하고 있었다.)’ 낡은 세력의 음모는 대법제자들의 씬씽이 제고되지 않고 자신의 근본 집착을 캐내지 못하는 상황 하에서 한 차례 또 한 차례 목적에 도달했고 각양각색의 모순을 만들어냈으며 동수들 사이의 간격은 갈수록 커졌다. 나는 이런 상태가 옳지 못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씬씽을 제고할 길이 없어 고통스러웠으며 사악한 낡은 세력의 배치 하에서 자신의 관념으로 엮어낸 함정에 빠져 배회했다. 나는 굳은 결심을 내리고 다른 사람을 개변하기 전에 먼저 나부터 개변하기로 했다. 나는 14일 동안 『전법륜』을 한번 외웠고 동수들의 수련체득을 보았으며 안을 향해 찾았다.

나는 끝내 자신이 고수하고 있던 관념, 즉 자신이 옳으며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집착하고 다른 사람의 집착에 집착하는 등등을 발견해낼 수 있었다. 낡은 우주의 각 층차에서 참여하여 정법을 파괴하는 20%의 생명인 낡은 세력, 그것들이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원인의 하나는 바로 그것들이 낡은 우주의 법리에 따라 정법제자(正法弟子)를 가늠하고 그것들의 관념이 옳다고 인정한다는 것이다. 사악은 이런 관념들을 이용하여 각종 간격을 만들어냈다. 사부님께서는 『미국 중부법회에서의 설법』에서 말씀하셨다.

“그 신(神)이 여기에 와서 돌아갈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이런 더러운 것을 씻어내지 못해서가 아니라 생명의 경지가 낮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우주 중에는 그런 각종 각양의 관념, 각종 각양의 생명이 좌우지 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비로소 돌아가지 못한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말해서, 진정하게 나를 오염시키고, 나에게 번거로움을 만들어 내고, 정법에 곤란을 조성하고, 대법제자를 박해한 것은 결코 이 속의 이런 더러운 요소 자체가 아니라 오히려 우주 생명 중에서 변이된 관념이 이런 요소를 이용한 것이다.”

사실 진정으로 더러운 것은 생명이 고수하는 관념이다. 무엇을 포용이라고 하는가. 포용이란 방임이 아니며 일종 선의적인 이해상태이다. 우리는 관용하고 이해하며 진정하게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상대방을 위하는 심태 하에서 문제를 처리해야만 비로소 대법제자의 표준에 부합하는 것이다. 만약 줄곧 자아에 관점, 자아의 관념에 집착한다면 곧 낡은 세력의 틈을 타게 되어 대법제자 내부에 간격이 조성되고 정체적인 협조와 협력에서 마땅히 있어야할 상태를 잃게 된다.

(2) 집착을 내려놓고 진상을 알리다

한 정법제자로서 끊임없이 자신의 후천적인 관념을 돌파하여 일체 집착을 내려놓아야만 한다. 직접 대면하여 진상을 알릴 때 마음속에 장애가 있는 수련생은 궁극적으로 ‘두려움’ 때문이다. 우리는 마땅히 자신의 마음속으로 물어보아야 하는데 도대체 무엇을 두려워한단 말인가? 체포될 것을 두려워하고, 구타당하는 것을 두려워하며, 감금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고생을 겪는 것을 두려워하며, 가족들이 정신적인 고통을 받을까 두려워하고, 자신의 이익이 손실을 입을까 두려워하는데 도대체 두려움의 근원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물질과 정신을 일차적인 것으로 우리에게 반영되어 나오는 것은 우주의 정법이치에 부합되지 않는 마음이 다른 공간에서 확실하고도 확실하게 존재하는 것으로 그럼 당신의 체계 중에 바로 잡히지 못한 것이 있고 법에 동화되지 않은 변이된 생명이 표현되어 나오는 것이 있다. 때문에 우리 자신이 승화하는 것은 또한 자기 체계내의 무량무제(無量無際)한 생명들을 구도하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지(理智)적으로 자신의 일사일념이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지 분명히 갈라야 한다. 법속에서 오거나 대법에 대한 바른 깨달음과 바른 믿음에서 오는지 아니면 사람의 후천적인 관념에서 오는지를.

진상 알리기를 잘하려면 우리가 평상시 정법의 매 한걸음을 바르게 걸어야 하며 아주 사소한 데서도 자신을 엄격히 요구해야 하며 씬씽을 제고하는 방면에서 착실하게 표준에 도달하도록 자신을 요구해야 한다. 진상을 알리는 이 일은 생활 곳곳에서 녹아들어가야 한다. 개인적인 인식으로는 우리는 이지적으로 한 생명을 분석할 수 있지만 그러나 절대 자신의 관념으로 한 생명을 틀에 넣지는 말아야 하며 이 사람은 구할 수 있고 저 사람은 희망이 없다고 여기지 말아야 한다. 강철을 녹일 수 있는 자비가 있다면 생명을 구원할 수 있다. 우리가 중생들을 대할 때에도 아무런 차별 없이 동등하게 대하며 어떤 생명에 대해서도 최대한 가서 구원하겠다는 이런 심태가 필요하다.

개별적인 동수들은 늘 현상에 안주하면서 자신이 꽤 괜찮다고 여기지만 도리어 자신에 대하여 부동(不同)한 경지에서의 법으로 자신이 표준에 도달했는지 요구하지 않는다. 현상에 안주할 것인가 아니면 정법의 길에서 큰 걸음으로 전진할 것인가, 수련인은 마땅히 어떻게 해야 진정으로 자신에 대해 책임지는 것인지 한번 잘 고려해 보아야 한다. 한 대법제자로서 정진하느냐 하지 못하느냐를 결정하는 것에는 몇 가지 요소가 있다.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학습을 할 수 있는가, 늘 자신이 수련인임을 의식할 수 있는가, 부동한 경지에서 법의 표준에 따라 엄격하게 자신을 요구할 수 있는가, 진정으로 마음을 써서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3가지 일을 잘 하고 있는가 등이다.

여기에서 내가 직접 겪은 경험을 하나 소개해보고자 한다.

2002년 내가 외지에 있을 때 한동안 어느 동수의 집에 머물고 있었다. 한번은 우리 두 사람이 ‘택시를 잡아탔다.’ 차에 오르자 수련생은 습관적으로 운전기사에게 파룬궁 진상을 알고 있는지 물었고 당시 기사는 아주 흥미 있어 하면서 우리에게 자신이 사부님의 친척이라고 말했다. 수련생은 이 말을 듣고 너무 격동한 나머지 곧 자신의 연락처를 기사에게 알려주었다. 당시에 나는 비록 이것이 타당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수련생을 막지는 못했다. 다음날 그 기사가 곧바로 우리가 머물고 있는 곳으로 찾아왔다. 우리는 앉아서 몇 마디 대화를 나눴는데 나는 곧 그가 특무(特務)임을 알게 되었고 게다가 전문적으로 자료점 대법제자를 체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의 말 속에는 대법제자가 정치에 참여하고 있으며 마치 XX당을 뒤엎으려 한다는 뉘앙스가 담겨 있었다. 나는 전혀 내색하지 않고 평온하게, 그에게 대법은 절대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별로 얻어낼 것이 없자 곧 떠났는데 떠나기 전에 나와 다시 한 번 만나자면서 시간과 장소를 알려 주었다.

그가 특무임을 알고 난 후 수련생은 좀 긴장했고 나더러 빨리 이곳을 벗어나라고 했다. 나는 그녀에게 지금은 갈 수 없다고 말했다. 우선 이 특무는 아직 우리가 도대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확인하지 못했는데 내가 떠난다면 내가 자료점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게 되며 또 만약 내가 간다면 수련생은 어떻게 한단 말인가? 나는 자신의 안전을 위해 수련생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둘째 우리는 이제 막 이곳에 와서 대법 사업을 전개했고 형식도 아주 좋으며 내가 직접 해야 할 일이 아직 많은데 만약 내가 떠난다면 이곳의 많은 동수들은 어떻게 하는가? 또 이곳에 있는 아직도 진상을 알지 못하는 많은 중생들은 어떻게 하는가? 세 번째 우리는 마땅히 사악한 낡은 세력의 배치를 전반적으로 부정해야 하며 발정념으로 교란을 청리해야 하는데 도피한다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아니다.

“어디에 문제가 나타났다면, 그 곳이 바로 당신들이 가서 진상을 똑바로 알리고, 가서 구도(救度)할 것을 필요로 하고 있다. 곤란에 부딪쳤다고 하여 피해가지 말아야 한다. 우리에게 손실을 갖다준 것을 보았을 때, 우리가 법을 실증(證實)할 때 장애가 있는 것을 보았을 때 피해 가지 말아야 하며, 그것을 향하여 진상을 똑바로 알리고 가서 생명을 구도(救度)하여야 한다.” (『2002년 워싱턴 DC 법회에서의 설법』)

그 특무 역시 진상을 모르는 생명으로 나는 단지 그를 내가 구도할 중생의 하나로 대하고 마땅히 진상을 똑똑히 알려야한다. 어쩌면 그에 대해 말하자면, 대법제자와 만날 수 있는 기회와 인연이 이번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 나는 마땅히 그에게 미래로 진입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하며 그에게 선택할 수 있는 한 차례 기회를 주어야한다. 나는 나 자신이 닦아버리지 못한 사람마음으로 인해 한 생명을 영원히 중단되지 않는 회멸 속에서 도태되도록 하여 자신의 생명에 크고 영원한 유감을 남기고 싶지 않았다. 대법제자로서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가서 해야 하며 결과가 어떠한가는 전혀 고려할 필요가 없다.

며칠 후 우리는 약속했던 작은 식당에서 만났다. 수련생은 기어이 나를 따라가겠다고 했다. 당시 마침 출근시간이었음에도 음식점 안에는 많은 젊은이들로 가득 차 있었다. 우리가 들어갈 때 그들 모두 예리한 눈초리로 우리를 쏘아보았는데 정말이지 ‘호랑이 굴’에 들어간 셈이었다. 하지만 나와 수련생은 겉보기에 그냥 모임에 참가한 즐거운 젊은이들처럼 보였다. 왜냐하면 이 문제에 있어서 내가 마음속으로 생각한 것은 모두 다른 사람이었고 전혀 자신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심태가 아주 담담했고 머릿속에는 온통 사부님의 법이었으며 조금도 두려운 감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일종 말할 수 없이 즐거운 느낌이 들었다. 당시 나와 수련생이 앉은 위치는 이 특무만을 볼 수 있었고 특무는 전체 실내 상황을 볼 수 있었다. 몇 마디 말을 시작하자 나는 수련생이 약간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고 나는 곧장 화장실에 가는 기회를 이용해 동수에게 먼저 가라고 알려주었다. 만약 내게 무슨 문제가 생기면 빨리 떠나라고 했다.

수련생이 간 후에 나는 계속해서 이 특무와 대화를 나눴다. 나는 그에게 진상을 알려주었다. 가장 얕은 도리에서부터 시작하여 파룬궁은 眞善忍의 표준에 따라 사람더러 진정하게 고상한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친다고 설명해주었고 여론매체에서 어떻게 파룬궁을 비방했고 자살과 원만의 관계를 날조한 등등을 말해주었다. 그는 시종 조용히 듣고만 있었고 중간에 사부님에 대한 인신공격성 발언을 포함하여, 자신이 명확하지 않은 부분을 제기했다. 당시 나의 심태는 아주 평온했지만 나는 심태를 약간 조절하여 엄숙하지만 평온하게 그가 들은 이 악독한 거짓말을 폭로했다. 우리는 아주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눴고 마지막으로 그는 친구가 오기로 했으니 친구와 함께 식사에 나를 초대할 것인지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그의 말이 막 나오자마자 친구는 이미 내 앞에 서있었다. 나는 이렇게 오랫동안 그가 내 뒤에 서있었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왜냐하면 내가 앉은 자리가 특무만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이 사람은 위아래로 나를 훑어본 후 특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 특무는 일종 아주 복잡한 눈빛으로 그를 보고는 말했다. “그녀는 정말 좋은 사람이야!” 나는 일어나서 그에게 다른 볼일이 있어서 먼저 가야한다고 말하고는 음식점을 나섰다. 지금에 와서 이 일을 회상해보아도 여전히 기억이 새롭다. 나는 이 이야기를 하는 목적은 동수들더러 나의 방법을 따라 하라는 것이 아니라 씬씽의 승화를 중시하자는 것이다.

이후 나는 다시 유사한 정황에 부딪혔지만 당시의 객관적인 정황 및 자신의 심태에 따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결정했다. 이런 방법을 그대로 따라해서는 안 된다. 길은 참조할 수 없는 것으로 나는 단지 당시 머릿속에 일체 사람의 관념이 없었고 억지로 하거나 요행을 바라는 심리가 없었기 때문에 비로소 사부님의 자비하신 가호(呵護)하에서 낡은 세력의 배치를 벗어날 수 있었다. 때문에 진상을 알리는 중에 심태는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물론 이것은 평상시 수련 중에서 조금씩 기초를 다진 것이다.

(3) 자아에 집착함이 바로 사(私)이다
한번은 내가 어떤 일에 성공한 후 마음속으로 매우 기뻐했다. 막 득의양양해 하고 있을 때 수련생이 나에게 한 마디 했다. “모두 법의 위력입니다.” 나는 즉시 너무나 부끄럽다는 것을 깨달았다. 왜 나는 어떤 일을 할 때 늘 먼저 생각하는 것이 “나는 어떠어떠하게”인가. 이것은 바로 낡은 우주 생명의 변이된 근원이 사(私)가 아닌가. 나는 자신의 근본적인 집착을 보아냈다. 사실 대법제자는 어떤 일에서 성공하든지 모두 대법의 위력과 사부님의 홍대(洪大)하신 자비가 우주 중에서 펼쳐진 것으로, 우리가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우리가 최대한도로 자아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자신의 고수하는 관념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물론 어떤 관념은 우주 중에서 존재한 시간이 아주 오래된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책임자는 그가 속인 중에서 얼마나 사업을 했든 지를 막론하고, 모두 대법을 위하여 자원적으로 사업하는 것이다. 사업의 성공은 다만 속인 중의 표현형식일 따름이다. 사람으로 하여금 능히 법을 얻고 대법을 널리 전하게 됨은 대법자체의 위력과 법신의 구체적인 배치인 것이다. 나의 법신이 이런 일을 하지 않는다면 널리 전함을 말하지 않더라도, 바로 책임자 자신의 보장(保障)마저도 얻기 어렵다. 때문에 늘 자신이 여하여하하게 대단하다고만 생각하지 말라. 대법은 명예가 없고 이익이 없으며 벼슬할 것이 없는 것만큼, 바로 수련이다.” (『정진요지―맹격일장』)

(4) 형식에 집착하는 것이 바로 유위(有爲)이다
매우 많은 동수들은 사상 깊은 곳에서 자료점에서 일하는 동수들에 대해 일종 숭배하는 심리가 있다. 어떤 자료점의 동수 역시 사상 깊은 곳에서 자신이 자료점에서 일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 이런 것들은 모두 사람의 관념이며 우주의 정법이치에서 좋고 나쁨을 가늠하는 표준은 바로 ‘眞善忍’이다. 나는 어떤 지역의 자료점에서 ‘크게 해야’ 비로소 정법노정을 따라간다고 여기고 ‘작게 하는’ 것은 정법노정을 저애한다고 여기는 수련생을 보았다. 그가 ‘크게 한다’고 여기는 것은 바로 진상자료, 현수막 등의 보급률을 가지고 말하는 것이다. 사실 ‘크게’ ‘작게’는 좋고 나쁨을 가늠하는 표준이 아니며 매 사람의 수련의 길은 서로 다른 것으로 매 지역의 수련의 길 역시 서로 다른 것이며 참조가 없다.

정법노정을 바짝 따른다는 것은 씬씽이 끊임없이 승화한다는 전제하에서 끊임없이 우주정법의 이치로 자신을 바로잡는다는 전제하에서,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하며 마땅히 어떤 길을 걸어야 하는지 마땅히 법속에서 자신이 닦아낸 지혜를 어떻게 발휘해야 하는지 자연히 알게 되는 것이다. 모방은 사람의 수단이며 표면적으로 대단한 것은 대법 위력의 한 방면의 전시이다. 파룬따파의 진상이 사람들의 마음속으로 깊이 들어가고 우리가 착실하고 꾸준하게 도처에 꽃이 피듯이 해나가기만 한다면 각종 형식은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며 우리의 장점을 충분히 발휘하여 지혜와 이지를 운용해 청성하게 할 수 있다.

어떤 지역에서는 ‘파룬따파하오’를 벽에 스프레이로 쓰는데 어떤 지역에서는 객관적인 조건상 불가능한 곳이 있다(가령 환경미화원이 이 때문에 벌금을 당하는 경우). 수련인은 어떤 일을 하든지 우선적으로 다른 사람을 위해 생각해야 하며 우리는 중생을 구도하러 온 것이다. 행위상에서도 최대한 속인의 집착을 따라주어야 하며 진상을 알리는 형식도 어떤 형식에 국한시킬 필요가 없다. 어떤 지역에서는 묵묵히 소리 소문 없이 일을 하는데 마찬가지로 대법의 진상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이 들어간다. 간혹 형식적으로 비기는 것은 사람 마음의 집착이다.

(5) 5년간 정법의 길 회고

지난 5년 동안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걸어온 길을 돌이켜보면 심태가 물처럼 평정하다. 대법을 실증하는 길에서 사부님께서는 줄곧 나를 자비롭게 가호해주셨다. 이 길에서 비록 수많은 유감을 남겼지만 또한 수많은 위안도 있다. 자신을 바로 보고 대법에서 너무 멀리 벗어나지 말아야 한다. 나는 스스로에게 앞으로의 길을 어떻게 걸을 것인지 자문해본다. 그것은 바로 일체 관념을 내려놓고 일체 사람마음을 내려놓으며 시간을 다그쳐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3가지 일을 잘하는 것이다. 법학습, 발정념, 진상 알리기와 전 세계 모든 대법제자들이 손에 손을 잡고 어깨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비바람 속에서도 당당하게 앞으로 전진할 것이다!

가장 가장 위대하신 사부님께 허스!
모든 대법제자들에게 허스!
대륙 제자들에게 교류의 기회를 제공한 명혜망에 감사드립니다.

문장발표 : 2004년 10월 13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minghui.org/mh/articles/2004/10/13/8639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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