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대법제자는 반드시 무척 홍대한 관용을 닦아내야 한다

——전통문화 단편글 ‘기량이 있으면 존경을 받는다.’를 읽은 소감

글 / 헤이룽장 대법제자
[명혜망 2006년 9월30일] 명혜주간 제243기 전통문화 부문 특별 코너에서는 ‘기량이 있으면 존경을 받는다.’ 라는 단편글을 실었다. 이 글을 읽고 현재 대법제자의 수련 상황이 연상되면서 감촉이 매우 깊었다. 지금 자신의 감상을 써내어 동수들과 나누고자 한다.

동한(東漢) 시기에 황헌이라고 하는 한 비천한 백성이 있었다. 그의 학식과 품행, 특히 남을 능가하는 기량은 위로는 고관 명인들, 아래로는 평민 백성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황헌의 기량은 정말로 천경호수(千頃湖泊, 역주-‘頃’은 논밭의 면적 단위이며 일경(一頃)은 약 2만여 평임. 따라서 천경은 약 2천만여 평에 해당)와 같아 가늠할 길이 없었다! 황헌은 단지 평범한 속인인데 오히려 흉금이 넓고 관용이 있어 대범한 것이 실로 고귀하였다.

우리는 정법시기의 대법제자이고 우주 생명의 부러움을 받고 있는 대법수련자이다. 우리는 머지 않아 아주 높은 과위를 성취할 것이고, 우리가 짊어진 역사적 책임은 또 무척 중대하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반드시 무척 홍대한 관용을 닦아야 하는 이유이다. 사부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들은 어떠한 심태(心態)인가? 바로 관용(寬容)인바, 매우 홍대(洪大)한 관용(寬容)으로서, 다른 생명을 용납할 수 있고 진정으로 입장을 바꾸어서 다른 생명을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 많은 사람들이 수련과정 중에서 아직 도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당신들은 점차적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도달하고 있다.’ (《2002년 미국 필라델피아법회 설법》 중)

대법제자가 닦아낸 관용은 무척 홍대하여 속인의 기량으로는 절대로 따라올 수 없다. 동한인 곽림종은 ‘천경호수(千頃湖泊)’로 황헌의 기량을 형용했지만 대법제자가 닦아낼 관용은 천경호수보다 몇 갑절 더 큰 지 모른다. 그것은 무량한 성구(星球), 무량한 천체의 용량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 일부 수련생들은 관용 방면에서 아직도 잘 닦지 못했고 구체적 표현은 수련생 사이에 나타난 모순 충돌에서 표현된다.

문제가 나타나면 일부 수련생들은 안을 향해 찾는 것이 아니라 늘 남의 잘못을 집어내며 서로 질책하고 서로 경계하며 서로 간에 배척한다. 무의식 중에 대법제자 정체가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힘을 감소시켰다.

현지에서 근간에 이런 일이 발생했다. 악경에게 납치당한 한 수련생을 구원하려고 현지 수련생은 현지 사악을 폭로하는 문장 한 편을 썼다. 이런 류의 문장은 본래 현지에서 문자 능력이 훌륭한 수련생에게 보내 교정을 보게 한다. 그러나 이번에 협조인은 이렇게 하지 않았는데, 그 원인은 전 한시기 협조인과 그 수련생 사이에 모순이 생겼지만 완전히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인쇄한 문장에 많은 문제가 생겼고 일정한 정도에서 문장의 작용은 감소되었다.

이는 본래 피할 수 있는 실수였지만 협조인의 관용스럽지 못함 때문에 생긴 것으로서 정말로 가슴 아픈 교훈이었다. 관용은 마음의 용량의 체현이고 수련 경지의 체현이다. 얼마나 높은 심성(心性)의 척도가 있다면 얼마나 큰 관용이 있다. 모종의 의미에서 말하면 관용은 바로 포용이다. 바다가 백갈래의 강을 포용하는 것이다. 우리가 참답게 법공부하고 문제에 부딪치면 무조건 안을 향해 찾아 사람의 마음을 제거하고, 남을 가늠하는 표준으로 역시 자신을 단속할 줄 알며, 자신을 양해하는 심태(心態)로 남을 너그럽게 대한다면 무척 홍대한 관용을 닦아낼 수 있을 것이다.

문장완성 : 2006년 9월27일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6/9/30/138890p.html

ⓒ 2024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