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하얼빈 대법제자
【명혜망 2006년 9월 19일】사부님께서는 경문 《시카코 법회》, 《세간문을 열다》, 《미국수도법회 설법》을 연속으로 발표하셨는데 이 한 편 한 편의 경문들은 착실하게 수련하는 우리 대법제자들에게 무슨 문제를 알려주시려는 것인가? 나는 ‘세 가지 일’을 잘하는 중에 끊임없이 정진하고 정진하며 더 정진해야 함을 깨달았다. 시간은 나를 기다리지 않는다.
아래에 자신의 근황에 대해 동수들과 교류하려고 하는데 첫째는 자신을 격려함이고 둘째는 동수들이 경험으로 삼을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세간문을 열다》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대법이 전해지자 천지가 놀라고,
사리왜설(邪理歪說)은 숨어버려 종적조차 없구나.
악당난교(惡黨亂敎) 하루 아침에 흩어지고,
파룬(法輪)이 돌아 신세기가 출현하네”
정법 노정은 이미 결말에 이르렀지만 설령 내일 결속될지라도 착실하게 수련한 제자들은 오늘도 정진 의지를 느슨히 할 수 없으며 ‘세 가지 일’은 반드시 더 잘해야 된다.
1, 진상을 알리고 ‘3퇴’를 알리는 과정에서 단지 수량에만 집착할 수 없어
이전 한단락 시간 동안 나는 이 방면에서 잘못을 범한 적이 있다. 사부님께서는 일찍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삼교수련은 무위를 중시하거니
마음을 잘못 쓰면 곧 유위이노라
전문 착한 일을 한다 해도 역시 유위인지라
집착심을 제거해야만 진짜 무위이노라”
(《홍음―무위》)
그러나 시를 외우는 것과 실제로 해내는 데는 실제로 수행하는 과정이 있다. 우리는 ‘3퇴’를 알리는 것을 두 팀으로 나누었다. 며칠 전에 나는 한상 다른 팀이 우리 팀보다 3퇴를 더 많이 알리는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무형 중에 ‘조급’한 집착이 생겼다. 마음속으로 왜 우리는 그들보다 더 많이 알리지 못할까 생각했다. 이렇게 무형 중에 숫자를 추구하는 ‘마음’은 물론 집착이다. 그 결과 조급해하면 할수록 더 적게 알리게 되었고 나중에는 매일 겨우 한두 명에게 ‘3퇴’를 이야기하게 되었다.
나는 자신의 집착심이 이미 상당히 엄중함을 느꼈다! 한 수련생이 나의 잘못을 지적해주었다
“단순히 수량에 집착하지 말아야 하며 우리는 마음을 다 해 열심히 해야 합니다. 사부님께서는 수련이란 바로 사람마음을 보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집에 돌아온 후 법공부를 통해 자신을 찾아보았다. 도대체 무슨 마음에 의해 이런 결과를 얻었을까? 사부님의 《무위》를 학습한 후에 나는 “집착심을 제거해야만 진짜 무위이노라”를 체험하였다. 수량을 추구하는 것은 그 자체가 집착이 아닌가? 물론 아주 큰 집착임에도 이 마음을 내려놓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동시에 또 동수들의 장점을 보면서 자신의 단점과 대조했다. ‘조급’을 내려놓자 수량은 곧 따라왔다. 어느 날 우리 팀에서는 35명에게 ‘3퇴’를 알렸는데 당원만 8명이었다.
2. ‘진짜’와 ‘가짜’를 분명히 가려 사악의 교란을 해체
동수 사이에 모순이 있음도 아주 정상적이다. 그러나 만약 오랫동안 해결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사악이 그 속에서 교란하는 것이다. 함께 가서 ‘3퇴’를 알릴 때 동수 사이에 다른 의견이 있음은 아주 정상적이다. 그러나 며칠 동안 둘 다 늘 기분이 나빴다. 나중에 나는 돌아와 자신의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찾아보았다. 진상을 알린 수량이 적다는 것에서 의견이 갈렸고 수련생은 내가 수량을 추구한다고 말했다. 이 마음을 내려놓았음에도 하나의 과정이 있었는데 이 과정 중에 사악이 틈을 탔다. 두 사람이 양보하지 않고 조급한 나머지 ‘화’가 갈수록 격렬해졌다. 나중에 나는 이것이 사악의 교란임을 인식하고 그것을 제거했다. 이때 나는 또 ‘진짜[眞]’와 ‘가짜[假]’를 생각했다. 화를 낸 수련생은 진정한 그녀가 아니고 ‘조급해하는’ 나는 진정한 내가 아니다. 동수의 ‘眞’과 ‘善’이야 말로 진정한 그녀이고 나의 집착과 ‘조급’은 진정한 내가 아니다. 이렇게 ‘진짜’와 ‘가짜’를 분명히 가려내자 사악 역시 곧 해체되었다.
어느날 우리 두 사람은 한 임업지역에서 온 간부에게 진상을 알리고 ‘3퇴’를 알렸는데 ‘3퇴’와 진상에 대해 인식이 아주 좋았고 나는 한창 그와 아주 열렬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때 고개를 돌려보니 반대쪽에 앉은 사람의 엉덩이에 ‘권총’이 삐죽이 나온 것을 보았다. 이때 수련생이 나를 향해 걸어오며 ‘9평’을 달라고 했다. 나는 곧바로 책을 주면서 손가락으로 동수에게 그 사람을 가리켜주었다. 그녀도 알아채고 즉시 가방을 들고 나를 떠났다. 그 악인은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고 나는 그를 향해 웃었다. 그 총을 가진 사람은 엄숙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었고 나는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善’으로 그의 ‘惡’을 마주하고 웃었다. 아마도 나의 정념이 무척 강하고 나의 선념의 웃음이 그의 악을 해체시켰는지 그도 결국에는 억지로 웃었다.
나는 강대한 ‘띵(定)’을 내보내어 그 악인을 고정시켰고 동시에 그의 사유를 흩뜨려놓았다. 하지만 나는 반드시 이 임업지역 퇴직 간부와 함께 떠나야 했다. 나는 대법제자이고 사부님께서는 나에게 공능을 주셨다. 그는 속인이지만 악인에게 추적당하면 안 된다. 그래서 우리 두 사람은 현장을 떠났고 우리가 아주 멀리 갔을 때 동수도 따라왔다. 퇴직 간부는 또 우리에게 VCD 몇 장과 ‘9평’을 요구했다. 우리가 헤어진 후 수련생이 나에게 계속 발정념 하여 그 악인더러 그 곳에서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고 알려주었다.
놀라움은 있었지만 위험이 없었던 이 일에서도 ‘진짜’와 ‘가짜’의 관계가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속에는 법이 있고 또 사부님 법신의 보호가 있었다. “제자들 정념이 족하거니 사부는 회천력(回天力)이 있노라”(《홍음 (2)》)
3. 안을 향해 찾고 자신을 연공인으로 간주
7년간의 온갖 역경을 거치고 사부님의 신경문과 《전법륜》외우기를 통해 나는 안을 향해 찾는 것과 자신을 연공인으로 간주하는 것은 대법제자가 반드시 해야 할 것임을 깨달았다. 이것은 또한 정진하고 착실하게 수련하는 두 가지 보배이다. 자신을 연공인으로 간주하지 못하면 마음이 바르지 못하고, 안을 향해 찾지 못하면 공이 자라지 못한다. 특히 《로스앤젤레스 설법》과 《2006년 캐나다 법회》 및 최근의 《미국수도법회 설법》을 학습하고 나서 감촉이 더 깊어졌다.
‘3가지 일’을 하는 실천 속에서 나는 안을 향해 찾고 자신을 연공인으로 간주한다는 것의 내포와 진의(眞意)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관념이 개변된 후의 희열을 느낄 수 있었다. 과거에 나는 남들이 나를 말하기만 하면 “귀찮다”거나 “화가 난다”고 생각했다. 현재 나는 다른 사람이 나에게 의견을 내거나 부족함을 지적해줄 때 소극적으로 ‘참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자신을 찾으며 냉정하게 자신을 보고 대법으로 자신을 바로 잡는다.
예를 들어 이전에 발정념을 할 때 가끔 에너지가 밖으로 충(沖)하는 과정에 표정이 상서롭지 못했다. 수련생이 “마치 무척 괴롭게 보인다”고 알려주었고 나는 자신의 부족을 인식했다. 사부님께서는 발정념 시 아무리 격렬해도 표정은 여전히 상화롭고 자비로워야 한다고 하셨다. 나는 마음속으로 동수의 직언에 감사를 드리며 아주 기뻤다. 왜냐하면 나는 한 가지 나쁜 습관을 고쳤고 자신을 바로 잡았기 때문이다. 들은 바에 의하면 일본 사람들은 돈으로 비평을 산다고 한다. 그들은 속인인데도 이렇게 하는데 나는 수련인으로서 더 잘해야 하지 않겠는가.
‘안을 향해 찾음’은 수련인이 반드시 행해야 할 부분이다. 이는 마치 내 뒤에 한 무더기 오염된 것이 있는 것을 나는 모르고 있지만 수련생이 보고서 지적하여 제거하게 하는 것인데 이것이 좋은 일이 아닌가? 마땅히 즐겁게 받아들이고 성심성의로 남에게 감사를 드려야 한다. 며칠 전 우리 법공부 팀에서는 연공동작이 정확한지 서로 검사하였고 수련생은 나의 아주 많은 부분을 지적해주었다. 나는 집에 돌아와 사부님의 교공 비디오테이프를 보았다. 오후 내내 시간을 들여 바로잡았다. 나는 동수의 도움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렸다.
수련인은 반드시 대법에 대조하여 ‘안을 향해 찾아야’만 비로소 사람의 껍데기를 벗을 수 있으며 진정으로 정진할 수 있고 정념정행(正念正行)하여 신통(神)해질 수 있다.
자신의 깨달음이니 적절하지 못한 곳이 있다면 자비롭게 시정해주기 바란다.
문장완성:2006년 9월 8일
문장발표:2006년 9월 19일
문장갱신:2006년 9월 19일 01:25:06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6/9/19/138157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