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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이란 ‘감옥’에서 걸어나오다

글 / 허베이(河北) 대법제자

【명혜망 2006년 9월 8일】나는 1996년에 다행히 법을 얻었으나 개인 수련 중에서 가정의 마난(魔難)이 끝없이 나타났다. 남편은 원래 성격이 난폭해서, 걸핏하면 심하게 화를 냈다. 물론 지금 보면 이것들은 모두 원인이 있는 것으로 우리가 수련 중에서 제고해야 할 요소가 안에 있는 것이다.

1999년 7월 20일 사악이 대법을 박해한 후, 나는 두 번이나 불법으로 감금되었다. 집에 돌아온 후, 집은 형체 없는 감옥으로 변했다. 남편은 나더러 동수들과 접촉하지 못하게 했다. 당시 나는 사람의 마음이 매우 심하여, 가족들도 매우 큰 고통을 감당하고 있다고 여겨 그대로 순종하게 되었고, 그리하여 한 동안 집에서 혼자 법공부를 하는 소극적인 상태로 되어 버렸다.

남편은 운전기사라 늘 밖으로 다녔지만, 설사 그렇더라도 나에 대한 감시를 조금도 느슨히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전화는 그의 ‘원격조종기’가 되어 버렸다. 한번은 동수와 교류를 하기위해 저녁에 나가려고 하다가 속으로 남편이 집으로 전화를 걸면 어쩌나 걱정을 했다. (이것은 모두 속인의 마음이며 박해를 승인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출발하기 전에 아이에게 만약 아빠한테 전화가 걸려오면 받지 말라고 했다.(이것은 변칙적으로 그런 번거로운 일을 구한 것으로, 이미 낡은 세력의 배치에 협조한 것이다). 당부하고 나서 집에서 나와 동수 집으로 간지 얼마 되지도 않아, 시어머님한테 전화가 왔는데, 화가 많이 난데다 빨리 집에 가라고 하면서 집에 가면 혼날 준비나 하라고 했다.

집에 돌아가 보니 아이는 전화가 끊임없이 왔다고 했다. 좀 지나자 정말 전화가 또 왔다, 내가 전화를 들고 남편에게 설명해주었다(수련은 제일 신성한 것인데 나는 왜 정정당당하게 말하지 못했는가?). 그러나 아무 소용이 없었고, 남편은 벌써 화가 나서 말도 나오지 않았다. 나중에 이런 일이 여러 번 생기자, 나는 오랫동안 마난 속에 있으면서 돌파하지 못했다.

이 일이 있은 후에 나는 자신에게 왜 늘 마난 속에 있어야 하고, 무슨 요소가 조성한 것인지 물어보았다. 나는 점차적으로 더 이상 이렇게 나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돌파하고자 했다. 하루는 《2003 애틀랜타 법회에서의 설법》을 보았다. “그렇다면 당신들이 법을 실증하는 어떠한 일을 할 때 그 중에는 단체가 하는 일과 개인이 하는 일이 포함되며, 당신들은 모두 자기가 가서 사고하고 방법을 생각하여 난제를 해결할 것이다. 사고 중에서 사람의 관념을 이용할 것인지 아니면 수련자의 정념을 이용할 것인지에 따라 해낸 일의 결과도 같지 않은 것이다.”

이때 나는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나는 수련인의 정념으로 문제를 보았는가? 아니다, 나는 완전히 그것을 사람이 사람에 대한 박해로 보았고, 두려운 마음과 도피하는 마음으로 이 일체를 받아들였다(사부님께서 나에게 사람의 마음을 폭로해주셨는데, 나는 도리어 피해가고 제고하려고 하지 않았다) 이것이 어찌 될 수 있겠는가?’ 이런 것을 깨달은 후, 저녁에 나는 강대한 정념을 내보냈다. 남편을 조종하는 일체 사악을 해체시키고, 내가 나가 법공부를 하고 진상을 하며 동수들과 교류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며 아울러 가장 바른 일이기에 사악이 어떠한 구실로도 남편을 교란하지 못하게 한다고 하였다. 동시에 사부님께 가지해주실 것을 요청했다.

나중에 남편에게 또 전화가 왔는데, 나는 전화로 남편에게 “사람이 저녁에 밥을 먹고 나가서 다른 사람을 찾아가서 이야기를 좀 나누는 것은 아주 정상적이지 않아요? 그래 나는 날마다 전화기 옆에서 당신이 건 전화만 기다려야 하나요? 당신 생각대로 한다면 나는 어떤 사람이 되겠어요? 이 몇 년 동안 당신이 많은 것을 감당했다는 것은 알지만 나는 불법으로 감금당하면서 더 많은 것을 감당했어요. 현재 나도 성숙해지고 있으니, 사악이 다시 우리를 박해하게 하지 않을 거예요. 당신은 제 걱정일랑은 하지 말고 차를 모세요. 더이상 걱정하지 말고, 당신 뜻대로 해도 내게 아무 일도 생기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는 없잖아요.” 라고 말했다. 남편은 급히 “됐어, 별일 없으면 전화 끊어.”라고 하기에 나는 또 이렇게 말했다. ”안돼요, 끝까지 들어보세요.” 나는 사람을 조종하는 사악이 이미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똑똑히 알았다.

그 후, 내 마음은 많이 가벼워졌고 그런 두려운 마음, 도피하려는 마음, 근심 등 사람의 마음은 버리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병(甁) 하나에 더러운 것을 가득 채워 넣고, 그것의 마개를 꽉 틀어막고 물에 던지면, 그것 또한 물밑까지 가라앉는다. 당신이 그 속의 더러운 것을 쏟아 버리되, 많이 쏟아 버리면 버릴수록 그것은 더욱 높이 떠오르게 되며, 완전히 쏟아 버리면 그것은 곧 완전히 떠오르게 된다.”라고 하셨다.

남편은 사악의 요소가 조종하는 것이 없어진 후 그리 심하게 간섭하지는 않았다.

나는 줄곧 자신의 수련이 아주 평범하여 글로 쓸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 후 사부님의 경문 《성숙》을 반복적으로 읽으면서, 마음속으로 사부님께서 우리더러 하라고 하신 것을 우리는 마땅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전법륜》의 한 단락 법을 동수들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 공은 사부에게 달렸으므로 당신은 이런 소원만 있으면 된다. 진정하게 이런 일을 하는 것은 사부가 해주는 것이며 당신은 전혀 해낼 수 없다.”

개인의 작은 심득이니, 타당하지 못한 부분이 있으면 동수들의 자비로 시정해주기 바란다.

문장발표 : 2006년 9월 8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minghui.org/mh/articles/2006/9/8/13732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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