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칭다오(靑島) 대법제자
【명혜망 2006년 9월 6일】
한 수련생이 박해받아 체포된 후 많은 대법제자들이 모두 그를 위해 발정념을 하며 그를 도와 그의 공간마당 범위 내에 있는 사악을 청리하고 이로써 이 수련생이 마귀굴에서 걸어 나오는데 성공하도록 했다. 이것은 우리가 정말로 다른 사람의 일을 자신의 일로 여기고 무사무아(無私無我), 선타후아(先他後我) 한 상태를 향해 걸어가고 있음을 설명한다.
그러나 어떤 동수들은 여전히 불법(不法)으로 판결을 받고 있는데 많은 제자들은 곧 ‘아, 일이 이렇게 되어버렸구나!’라고 하면서 곧 발정념을 중단한다. 우리 마음을 조용히 하고 한번 생각해보자. 이것은 낡은 세력의 사악한 박해에 대한 묵인(黙認)이 아닌가? 이것은 아주 심각한 문제가 아닌가? 이것은 하나의 큰 누락이 아닌가?
내 기억에 《명혜주간》에 한 편의 문장이 발표된 적이 있다. 한 어머니가 자신의 딸이 불법으로 노동교양을 당하자 노교소(勞敎所)에서 가까운 곳에 거처를 정하고 매일 근거리에서 딸을 위해 발정념을 하고 책을 읽으며 딸의 정념이 강해지도록 했다. 그 결과 딸은 기한을 앞당겨 석방되었다.
이 문장은 내게 큰 감동을 주었는데 만약 우리가 모두 이 어머니가 딸에게 한 것처럼 이런 책임감을 가지고 불법으로 박해를 받는 동수들을 대한다면, 한 사람에게 사건이 발생할 때 모두 함께 그를 위해 발정념을 하고 이 박해가 끝나지 않으면 정념을 중단하지 않는다면 우리 모두는 하나의 정체를 형성하게 될 것이다.
[물론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이런 마음은 정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에 대해 말하자면,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마음이야말로 가장 무사(無私)하며 가장 순결(純潔)한 것이다. 그러나 한 수련인으로서는 정을 내려놓아야 하는 것으로, 나는 단지 우리가 정말로 다른 사람의 일을 자신의 일로 간주하고 무사무아, 선타후아의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위하고 수련생을 위하여 생각해야만 한다는 것을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마음으로 표현한 것이다.]
정체의 힘이 아주 강대해진다면 그럼 사악이 어찌 박해할 수 있겠는가? 어찌 감히 박해를 하겠는가! 설사 박해가 발생한다 해도 견고하여 꺾을 수 없는 정념을 보기만 하면 놀라서 즉각 사람을 석방할 것이다.
사실 이 방면에 있어서는 속인 중의 일부 일 역시 우리에게 계시를 준다. 여러분이 늘 보는 일부 뉴스처럼 어떤 사람이 억울한 일을 당한 후 그 가족들이 그를 위해 상방(上訪)을 견지하며 해이하지 않았고 결국 그 사람은 결백함이 입증되어 자유를 얻게 되었다. 그러나 대다수 가정에서는 모두들 묵묵히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 방식을 취했는데 그렇다면 석방 가능성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이런 종류의 견지함이야말로 사악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다.
또 일부 우리 주변에 있는 동수들은 걸어 나와 법을 실증하다가 언젠가부터 전혀 소식이 없다. 우리는 자신의 가족을 잃은 심정으로, 자신의 딸을 잃은 심정으로 그들을 염두에 두고 늘 그들을 생각하며 그들을 위해 발정념을 하고 그들이 박해에서 걸어 나오도록 도와주었는가. 만약 이렇게 하지 못했다면 이는 우리에게 누락이 있는 것이 아닌가?
[많은 동수들이 이 글의 초고를 보고 내게 정(情)이 있다고 지적했다. 내가 마음을 조용히 하고 생각해보니 그런 것이 아니었다. 나는 단지 속인의 이런 언어를 통해 수련생을 위해 생각하는 그런 심태를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 우리 대륙의 대법제자들은 많은 사람들이 이런 정황에 처해 있는데 어떤 수련생은 법을 실증하러 나온 이후 다시는 소식이 없다. 많은 동수들이 이런 상황에 부딪히면 첫 번째 생각하는 것이란 바로 ‘아, 아마 체포되어 박해받고 있을 거야.’인데 그러나 곧 그들을 잊어버린다. 그들이 어느 곳에 감금되어 어느 정도로 박해를 받는지 어떻게 그들을 구출할 것인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은 표면적으로는 정을 내려놓은 것 같지만 사실상 수련생이 박해받는 것에 대하여 마비되고 냉담한 것으로 일종 이기적인 표현이며 부정확한 상태이다.]
또 소위 전화(轉化)된 그런 사람들이 있는데, 우리 대부분은 일찍이 이런 굽은 길을 걸었던 적이 있다. 알다시피 불법으로 박해받을 때 사악은 죽어라 당신이 집착하여 내려놓지 못하는 것과 누락이 있는 곳, 법리(法理)상에서 똑바로 인식하지 못하는 곳을 찾아내는데 일단 찾기만 하면 곧장 움켜쥐고는 놓아주지 않는다. 아울러 그것을 팽창하게 만들어 당신으로 하여금 점점 그것이 말하는 것이 옳게 느껴지게 하는데 그리하여 곧 전화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심지어 사악을 돕는 조교가 되기도 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 실질은 앞서 서술한 문제가 발생한 후, 다른 공간의 사악에 의해 조종 받고 통제당한 것이다. 석방된 후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법학습을 통해 이런 전화는 착오적임을 인식하게 되고 곧 성명을 발표하며 아울러 새로 정법 속으로 되돌아왔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지금까지도 정법 속으로 되돌아오지 못하는데 많은 대법제자들은 이런 사람들은 안 된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무의식중에 그를 사악의 일방으로 간주해버린다. 이 얼마나 위험한 생각인가! 대법제자가 내보내는 사유(思惟)는 에너지가 있는 것으로 만약 내보낸 것이 정념(正念)이라면 정(正)의 요소를 강화시키지만, 만약 정념이 아니라면 도리어 부(負)의 요소를 강화시킨다. 사부님께서는 설법 중에서 누차 정법이 끝나지 않았다면 곧 기회라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어찌 이 사람이 ‘안 된다’고 여길 수 있는가? 그에게 기회를 주지 않을 수 있는가? 만약 많은 제자들이 모두 이렇게 생각한다면 이것은 그에게 ‘안 되는’ 요소를 증가시켜주는 것이 아닌가? 어쩌면 정말로 이 사람이 ‘되는’ 것도 ‘안 되게’ 만들 수 있다. 이것은 우리 수련생을 훼멸시키는 것이 아닌가? 가장 관건적인 것은 이것은 낡은 세력의 박해에 대해 묵인하고 인정하는 것이자 낡은 세력이 가장 좋아할 일을 하는 것인데 이것이 하나의 큰 누락이 아니란 말인가?
만약 자신이 정법시기 대법제자라고 여긴다면 중생을 구도하는 것은 자신의 미룰 수 없는 책임이다. 선심(善心)과 자비심을 품고 일체 중생을 대해야하며 더욱이 일찍이 대법을 배운 이런 사람들에 대해 가슴아파하고 애석하게 여겨야 한다. 나는 무조건적으로 당신을 도울 것이며 무조건적으로 당신을 위해 당신의 공간 마당 범위 내에서 당신을 조종하고 통제하는 일체 사악을 청리할 것이며 당신이 이지적이고 청성해지도록 하여 당신의 ‘되는’ 요소를 증가시키고 당신의 ‘안 되는’ 요소를 제거할 것이다. 이렇게 한다면 내가 생각하기에 정말로 많은 수련생들이 ‘안 되는’ 데서 ‘되는’ 데로 변하게 될 것이다.
또 일부 이런 수련생들이 있는데, 큰 관을 넘기지 못하여 대법을 포기한 사람 등을 포함한다. 우리는 그들을 소홀히 하고 있지 않은가? 그들을 잊고 있는 것이 아닌가?
바로 이상의 인식에 기초하여 나는 발정념을 할 때 다음과 같은 일념을 추가한다. ‘사부님, 저로 하여금 강대한 공이 나오게 하여 박해받거나 사오(邪悟)한 사람들, 상태가 좋지 않은 모든 대법수련생들의 공간 마당 범위 내에서 그들을 조종하고 통제하며 정법을 교란하는 일체 사악을 철저히 해체시키도록 가지(加持)해주시고 동시에 그들의 정념을 가지하시어 그들의 신의 일면으로 하여금 정신을 차리게 하고 이지적이고 청성해지도록 하며 낡은 세력의 사악한 배치를 부정하고 진정으로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길을 따라 걸어가 진정으로 위대한 정법시기 대법제자가 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이외에도 내가 고려하는 것은 만약 그들이 내가 내보낸 정념을 받아들일 수 있고, 대뇌 속에 반영되어 나올 수 있다면 그럼 그들의 정념을 강화하는데 거대한 작용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이때 나는 사부님께서 《전법륜》에서 말씀하신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 나의 천목으로 보았는데 그는 나와 말을 했다고 한다. 그는 당신과 말한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은 나의 법신을 보았다고 하지만 당신과 말한 것이 아니다. 그가 내보낸 의념은 입체 음향을 갖고 있어 당신이 듣기에는 마치 그가 말하는 것과 같다.”
“그 각자들은 상호간에 만나 두 사람이 웃기만 하면 무엇이든 모두 안다. 왜냐하면 이것은 무성(無聲)의 사유전감(思維傳感)으로서, 접수한 것은 입체음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 둘이 웃을 적에 이미 의견 교환이 끝났다.”라는 구절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우리 역시 이런 무성의 사유전감을 발출할 수 있지 않겠는가?
사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아주 많은 공능을 언급하셨고 우리는 반드시 모두 이런 공능들을 구비해야 한다. 단지 우리의 마음이 정법 속에 있고 사용하는 목적이 순정(純正)하기만 하다면 내 생각에 이런 공능들은 모두 나타날 수 있다. 단지 종종 사람의 관념이 스스로를 장애하여 그것은 각자(覺者)를 말한 것이며 다른 사람을 말한 것이지 자신은 아니라고 여기며 자신에게도 이런 공능들이 있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운용하지 못할 뿐이다.
이런 인식이 생긴 후에 매번 발정념을 한 후 나는 늘 다음과 같은 강대한 일념을 강화한다. ‘사부님, 저의 강대한 의념이 나와 직접 박해받고 있거나 사오한 사람들, 상태가 좋지 못한 모든 대법수련생들의 대뇌 속에 들어가게 하여 그들로 하여금 ‘나는 한명의 대법제자이다, 나는 떨쳐 일어날 것이다! 이지적이고 청성해질 것이며 나의 강대한 정념을 내보낼 것이다! 반드시 사악한 낡은 세력의 사악한 배치를 해체할 것이다.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길을 따라 걸어 제자들이 마땅히 해야 할 3가지 일을 잘 하여 진정 위대한 대법제자가 될 것이다.’라고 하는 의념을 직접 받아들이거나 들을 수 있도록 가지해 주시기 바랍니다.’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해낼 수 있다면 그들은 반드시 받아들이거나 들을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이것은 그들의 정념을 강화하는데 대하여 거대한 작용을 일으킬 것이다.
이런 사로(思路)의 계발을 받아들여 나는 매번 발정념을 할 때 늘 삼계 내의 일체 중생을 위해 그들의 공간마당 범위 내에서 그들을 조종하고 통제하며 정법을 교란하는 일체 사악을 청리하고 있다. 그들에게 내보내는 사유전감은 바로 다음과 같은 것이다. ‘파룬따파 하오(法輪大法好), 쩐싼런 하오(眞善忍好), 파룬따파(法輪大法)는 정법이다. 공산당은 사교이니 빨리 탈퇴하라, 빨리 탈퇴하라, 빨리 탈퇴하라! 신이 중공을 멸망시키려 하니 탈당, 탈단, 탈대로 평안을 보장받자!’
삼계 내의 그 어떤 하나의 생명이든지 만약 대뇌 속에서 이런 구절을 반영할 수 있다면 이는 장차 그의 마음속에서 강대한 진동을 일으킬 것이며 그는 자신이 해야 할 선택에 대해 새로이 신중하게 대하고 사고하게 될 것이다.
이상은 개인의 인식이니 타당하지 못한 곳이 있다면 동수들이 자비롭게 지적해주기 바란다.
[주: 작자는 발정념에 대한 자신의 체득을 말한 것이다. 동식에 동수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현지 민중들에게 사악을 폭로할 것을 요청했는데 이것 역시 수련생을 돕고 중생을 구도하는 중요한 방식이다.]
문장발표 : 2006년 9월 6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06/9/6/137116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