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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을 하면서 수련

[명혜망 2006년 8월 24일]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세요. 여러 동수분 안녕하세요.

내가 대법을 얻은 지는 벌써 8년이 지났다. 4년 전에 나는 연꽃 예술단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이를 계기로 행운스럽에 여러해의 신년 갈라에 참가 할 수 있었다. 나는 춤을 추기 좋아한다. 그것은 춤으로 진정한 인류문화의 아름다움과, 조화로움을 표현할 수 있고, 또한 법을 실증할 수 있는 유력한 무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지금까기 100차례의 공연에 참가해 오면서 우리는 많은 지역에 우리의 공연을 보여주었고, 공연을 보고 다겨간 사람은 수천만에 이른다. 무용은 구도중생에 아주 효력있는 법기라고 나는 생각한다.

다가오는 내년의 연출을 대비해, 그리고 우리의 무용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키기 위해 이번 여름방학에 우리는 합동훈련을 받으러 미국에 왔다.

그 전에 나는 나의 무용수준이 단체무용을 추기에는 크게 무리가 없지만 순박력이 떨어지기에 이 단점을 극복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변명이라고나 할가? 그런 고난도에 기교있는 무용은 전업 무용수만이 장악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실 이런 사상 뒤에는 나의 여러가지 집착이 감춰져 있었는데 예컨대 체면, 좌절을 두려워 하는 마음, 고통을 참으려 하지 않는 마음 등등이 있다.

정법 노정의 진전에 따라 예술형식의 진상에 있어 사부님은 우리에게 더욱 새롭고 높은 요구가 있다. 그러기에 우리는 빨리 실력을 높여 더욱 많은 중생을 구도해야 하는 사명이 있다.

전법륜에서 사부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심성이 얼마나 높으면 공이 얼마나 높다.” 나의 인식은 전공 기능을 높이기 위해서는 그전에 반드시 제고에 장애되는 집착과 관념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에 따라 심성을 제고하는 과정은 나에게 있어 정말 고통스러운 날들이었다.

합동훈련 장소에 와서 며칠을 보내고, 나는 그런 순발력이 요구되는 동작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허리를 굽힌다든가 기타 기교있는 동작도 말이다. 나의 그 걱정되는 마음과 안정되지 않는 마음을 다른 사람은 상상도 하지 못할 것이다.

하루는 다들 그런 고난도의 동작을 연습하고 있었다. 순간 나의 심장박동은 갑자기 빨라졌다. 이것은 나도 그들과 같이 동작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나는 스스로에게 ”다른 사람이 할 수 있으면 나도 할 수 있다.”고 동력을 부어 넣었다. 그리고 동작을 시도하면서 사부님에게 도움을 청했다. 하지만 아프기 때문에 매번 실패하고 말았다. 나는 부끄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오랫동안 무용을 해왔지만 역시 남에게 뒤쳐졌다. 나는 안타까운 마음에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고, 자기가 쓸모없이 느껴졌고, 신심도 잃었다. 그때 나는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들었다. 무용은 나에게 너무 어렵게 느껴졌다. 그러면서 속으로 다른 팀에서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이런 것들은 단지 자기의 집착을 가리려는 구실에 불과했다. 그 다음 나는 대법공부를 강화했다. 그때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나의 동작이 느리든 재빠르든 사실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내가 ‘자기’를 포기할 수 있는지, 부족점을 바른 시각으로 볼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사람마다 조건이 다 다르므로 수련되어야 하는 마음 또한 각기 다르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장점을 따라 배워야 하는 것은 마땅하지만 비교해서는 안 된다. 사부님이 하신 말씀처럼” 수련은 자신을 닦는 것으로 어떠한 상태가 나타나든 모두 자신을 생각해봐야 한다.”(미국수도법회)

매일 숙사에서 산으로 올라갈 때 나는 늘 ”홍음”을 외운다. 이렇게 함으로써 나는 곤난을 극복 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이러한 자신을 돌파하려는 마음으로 나는 허리, 다리를 늘이는데 좀더 시간을 내서 연습했다. 한동안 지나 나는 체력이 더욱 왕성함을 느낄 수 있었고 몸 움직임도 재빨라졌다.

《고지심지》에서 사부님은 “고생을 낙으로 삼으라”고 하셨다. 우리는 자주 이 시를 외우고 있는데 나는 이를 실천하는데는 그리 어렵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진정 그 고생이 앞에 놓여 있을 때는 그것이 마치 거대한 산처럼 보이고, 극복하기 어렵게 느껴졌다.

아프다고 느낄 때 나는 이런 생각을 하는데 ‘사부님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주어 우리가 능히 제고할 수 있게 만들어 놓으셨다. 그러나 하고 안 하고는 자기에게 달렸다.’ 차츰 나는 아픔것도 그리 심하게 느끼지 못했고, 그토록 어렵다는 생각도 없어졌다. 지금에 와서는 아프지 않을 때는 오히려 그런 고통이 그리울 때도 있다. 그것은 고난을 극복한 다음의 뿌듯함을 체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정말 사부님과 대법을 믿는다면 어떤 일도 개변시킬 수 있다. 물론 허리를 굽히는 훈련은 여전이 도전해야 하고, 여러면에서 또한 모두 개선되어야 하지만 내가 마음을 내서 하기만 하면 기적이 생긴다는 것을 나는 이미 보았다. 오직 수련인의 정념이 가득하다면 우리는 모두 자기의 능력을 개변시킬 수 있다.

사부님은《LA 설법》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실 인류사회의 모든 것은, 그것이 내가 선택한 것이라면 모두 그것으로 대법제자를 수련시킬 수 있게 한다. ” 무용 역시 수련이기에 고통도 감내해야 하고, 훈련중의 심성고험도 넘겨야 하며, 지혜와 정념으로 정법해야 한다. 사부님과 대법은 지금 우리에게 더욱 높은 수련을 요구하는데 바로 모순 속에서 고통을 이겨내면서 자기의 수련을 제고시키는 것이다. 아마 많은 수련방식을 놓고 볼 때 무용은 나로 하여금 업력을 좀더 제거할 수 있게 하고, 사상 속의 집착을 제거해 주며 명리에 대한 집착, 그리고 칭찬과 물질 향수의 집착도 더욱 많이 제거할 수 있게 하는 것 같다.

나는 우리가 무용으로 연출하는 중요성을 깨달았다. 이는 아주 힘있는 구도중생의 방식이자 또한 인류를 위해 새로운 하나의 바른 문화를 창조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사부님은 우리에게 매우 완벽한 수련 환경을 배치해 놓으셨는데 우리의 역할이 크든 작든 우리는 반드시 잘해야 한다. 우리가 갈 수 있는 길을 오직 하나로 그것은 바로 더욱 잘해나가는 것이다.

자비로운 사부님께 감사드리고 여러 동수분께 감사드린다.

문장완성:2006년 8월 22일
문장발표:2006년 8월 24일
문장갱신:2006년 8월 24일
원문위치:http://www.minghui.ca/mh/articles/2006/8/24/136168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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