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대륙 대법제자
【명혜망 2006년 8월 24일】사부님께서는“우리들은 자비심이 나오게 되면 중생들이 매우 고생스러운 것을 볼 수 있으며 누구를 보아도 고생스럽게 여겨지는데 이러한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 ”《전법륜》라고 제7강에서 말씀하셨다. 나는 10여 년의 수련과정에서 진정으로 자비심을 수련해 내는 감을 느꼈다.
대법이 박해를 받게 되자 중생들은 거짓말에 미혹되어 대법을 오해하여 적대시하고 있다. 대법을 적대시하는 관념을 갖고 있는 중생들은 악당에 끌려 심연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으며 이는 중생이 직면한 거대한 위험이다. 이때 당신이 자비심이 있으면 미혹 속에 빠져 도태될 중생들을 보고만 있을 수 있겠는가? 억지로가 아니라 자연히 중생을 구도하는 일을 하게 될 것이다. 진상을 알려 거짓말을 폭로하고 중생이 기만당했다는 것을 알고 대법이 좋다는 것을 알게 되어 3퇴 하게 되면 그들은 구도 될 것이다.
지나온 수련과정을 돌이켜 보면 자비심을 어떻게 수련해 냈던가? 우선 법공부인데 나는 법공부 할 때 양을 추구하지 않는다. 한 단락을 보고나서 마음이 조용해지지 않으면 반복하여 그 단락을 본다. 오직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공부를 해야만 비로소 “법을 배우고 법을 얻을 수 있다.” 법을 외우는 동수들이 단맛을 보게 되는 것은 법을 외우는 과정이 곧 가슴속에 법이 젖어드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법을 외울 때 그 한 구절에 대해 더욱 깊은 인식이 있게 된다.
예를 들면 한 구절에 대해 새로운 인식이 없으면 바로 법의 이 한 층에 있다. 한 구절의 법에 대해 새로운 이해가 있을 때 한층 더 높은 법에 있는 것이며 이것이 법에서 법을 인식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아무리 봐도 새로운 인식이 없다면 응당 생각해 보아야 한다. 평소 생활에서, 사업 중에 심성수련을 중시하였는가를 보아야 한다. 더구나 현재 중생을 구도하고 있는 시기에 죽는 것을 보고서도 구하지 않으면 심성문제이다. 중생을 구하는 일을 하지 않거나 혹은 몇 번만 하고 견지해 나가지 않는다면 심성을 제고할 수 없으며 우주의 특성도 당신을 위로 밀어 올려 보내지 않으며 당신은 또 당연히 더욱 높은 층의 법의 내포를 보아낼 수 없다.
진상을 알리고 3퇴를 권고하는 것은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제출한 큰 과제라고 생각한다. 당신이 잘했으면 점수가 당연히 높을 것이다. 일상 생활에서의 행위, 사람을 대하는 것, 모순에 봉착했을 때의 번뇌, 이것을 어떻게 보며 대하는가 하는 것, 이런 것은 하나의 소제이며 한 가지 일에 부딪칠 때마다 사람의 마음을 폭로하는데 사람의 관념이 나타날 수 있다.
내가 손녀를 보고 있는데 수련생이 나에게 “아이를 보는 게 시끄럽지 않나요?”라고 물었다. 나는 이미 이 시끄러운 마음을 닦았기에 그 수련생이 자신에게 있는 그 마음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대답했다. 우리가 닦는 것이 바로 이 시끄러움이지요. 나에게 물었던 그 동수 자신은 아이를 보지 않지만 이미 그가 시끄러워하고 있는 마음을 폭로한 것이다.
만약 그가 이 말을 했을 때, 이 부분에서 자신이 닦아야 할 것이 있다는 것을 능히 의식하고, 이 일을 통해 그 마음을 닦을 수 있다면 이 문제에서 그는 바로 제고한 것이다. 만약 정말로 그에게 아이를 보라고 해서 그가 정말로 시끄러워하지 않게 되면 그 마음은 이미 닦은 것이다. 자신은 아이를 보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이 아이를 보는 것을 보면서 시끄러워하는 그 마음을 닦아야 하지 않겠는가?
아이를 보는 동수들이 많은데 각자 나름대로 구체적인 상황이 있을 것이다. 보지 않고 대법일을 더욱 많이 할 수 있으면 당연히 좋은 일이다. 그러나 아이를 보고있다면 여기서도 우리들이 제거해야 할 마음들을 닦을 수 있다.
수련 과정에서 생활 속에서 나타나는 크고 작은 일에 대해 하나도 놓치지 않는다. 한 문제가 일단 나타나면 자신이 이 문제에서 나타난 관념이 무엇인가를 찾아서 법으로 가늠하여 철저하게 해부한다. 때로는 자기 입에서 말이 나가는 순간 관념에 의해 속인의 말이 나가는 것을 의식하게 된다. 의식할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며 이것을 느끼지 못하면 그거야 말로 두려운 것인데 다음 번에 또 이와 유사한 일에 부딪치면 그대로 관념에 의해 속인의 말을 하게 된다.
때문에 동수들은 생활 속에서 부딪치는 일부 일들과 불쑥 튀어나오는 생각들을 절대로 소홀히 여겨서는 안 된다. 만약 소홀히 여긴다면 하나 하나의 작은 문제에 답안을 쓰지 않은 것과 같다. 응당 제거해야 할 관념들을 제거하지 않는다면 이 한 층의 껍질 (관념)이 국부적으로 당신의 본성의 일면을 포위하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선천적인 자아가 크게 나타나지 못하게 된다. 천상의 작용으로 큰 일들이 나타나게 될 때 당신은 사람의 관념으로 생각하고 이해할 것이며, 이것은 그러한 물질을 제거하지 못했기 때문이며 이런 것이 반복되다 보면 심지어 대법을 의심할 수도 있다.
관념을 제거하는 것이 늦어지면 당신의 자비심이 산생할 수 없으며 중생들이 다급히 구도되기를 바라고 있는 시기에 자비심이 모자라면 중생들을 효과적으로 구도할 수 없다. 동시에 사람의 관념이 많을수록 정념이 일어나지 못한다. 당신은 낡은 세력이 당신에 대한 배치를 승인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러나 그 물질이 있으면 낡은 세력은 곧 틈을 타게 된다.
마치 238기 명혜주간에 《두려워 하는 질곡에서 걸어나오자》는 문장에서처럼 그 동수집의 아이가 동수에게 말한 것처럼 “발정념에만 의지하지 말고 진정으로 그 마음을 놓아야 한다. ”때문에 결국은 3가지 일을 잘하려면 법리에 대해 깊은 깨달음과 개인의 심성에 많은 노력을 들여야 한다.
우리가 부딪친 나쁜 일이나 좋은 일이든 모두가 좋은 일이다. 왜냐하면 모두가 사람의 마음을 폭로하며 자기가 의식하고 그것을 제거하면 되는 것이다. “수련은 자신이 하고 공은 사부에게 있다”사부님께서 이런 물질을 없애주시며 당신은 이 문제에서 진정으로 제고하게 된다.
정진하고 있는가 정진하지 못하고 있는가 하는 것은 전력을 다해서 3가지 일을 하는 기초에서 나타나는 크고 작을 일들을 놓치지 않는데서 체현되며 일부 뿌리가 깊이 박힌 관념들은 정말로 제거하기 어려우며 웬만한 결심과 심지 고통을 겪지 않고서는 쉽게 제거할 수 없다. 관념들을 하나 하나씩 벗겨버릴 때에야만 기점이 법에 서게 되며, 자비심이 마음에서 나오게 되며, 선한 마음이 흘러 나오면서 중생을 구도하게 된다.
개인의 체험이니 적당치 않는 곳이 있으면 자비로 지적해 주기 바란다.
문장 완성:2006년 8월 23일
문장 발표:2006년 8월 24일
문장 수정:2006년 8월 24일
원문위치: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6/8/24/136305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