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허베이 대법제자
【명혜망 2006년 8월 16일】정법이 현재까지 이르렀음에도, 일부 지역 대법제자들이 박해받는 사건이 여전히 발생하고 있다. 비록 제때에 사이트에 올려 폭로하고 악인들의 악행을 드러내고 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모종의 의미에서 말하자면 우리는 여전히 피동적인 처지에 놓여 있다. 혹자는 “사악의 박해는 분명 이전처럼 제멋대로 하기에는 힘이 부족해졌다.”라고 말할 것이다.
매번 명혜망에서 동수들의 박해를 볼때면 늘 기분이 좋지 않다. 수련생을 도와 사악의 박해를 타파하는 것은 우리 매 대법제자의 책임이다. 그러나 늘 힘이 부족한 느낌이다. 나는 우리 현(縣)에서 몇 년간 걸어온 정법의 길에서부터 사악의 박해를 타파하고 현지 정법환경을 개변시키며, 중생구도를 더 잘 할 수 있게된 약간의 체득을 말해보고자 한다. 부족한 곳이 있으면 제때에 지적하여 보충해주기 바란다.
사악의 박해 중에서 우리 현(縣)은 다음과 같은 일들을 겪었다. 사악의 박해 중에서 정체를 형성하고 협조체계를 구축했으며 ‘현지 민중들에게 현지의 사악을 폭로’했고, ‘도처에 꽃이 피듯’ 많은 자료점을 만들고 정체를 응집시키고 정체를 세밀하게 하는 과정이 있었다.
지금에 이르기까지 우리들의 정법과 중생구도 환경은 비교적 좋아졌다. 당초 감금되거나 노동교양 처분을 받거나 판결을 받았던 동수들은 이미 일찍이 모두 돌아왔으며, 일찍이 굽은 길을 걸었던 수련생들도 절대다수 모두 정법속으로 다시 돌아왔다. 지난 2년여 동안 기본적으로 사악이 주동적으로 대법제자를 박해한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다. 또한 간수소, 노교소, 감옥에 불법으로 감금된 동수도 없다.
구체적은 표현은 다음과 같다. 전체 현의 동수들은 무릇 대법제자가 있는 마을이라면 기본적으로 모두 단체 법학습과 연공장을 만들었다. 현 전체에 걸쳐 각각의 향(鄕), 진(鎭) 및 각 촌(村)에는 모두 협조를 책임진 동수(우리 현은 지역이 비교적 작은 편이라 연계가 쉽다)가 있다.
각 자료점은 비교적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진상을 알리는 자료 역시 비교적 충분하고 골고루 갖춰져 있다.(9평, VCD, 소책자, 전단지 등이 있다. 아울러 각 자료점은 모두 단선적(單線的)으로 연계되며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고 9평을 제작하고, VCD를 제작하며, 소책자를 제작하고, 전단지를 제작하는 것은 모두 독립적으로 운영된다. 서로 영향을 주지 않으며 서로 간섭하지도 않는다.)
현 전체 혹은 각 향진이나 촌을 단위로 해서 동수들은 기본적으로 모두 독립적이고 자발적으로 부정기적인 법회를 조직하여 정법노정과 나타난 문제들에 근거하여 제때에 교류하고 토론한다. 아울러 많은 동수들은 모두 직접 대면하는 방식으로 9평을 나눠주고 진상을 알리고 있으며 ‘3퇴’를 권하고 있다. 수많은 세인들도 모두 ‘파룬따파가 좋다’는 것을 명백히 알고 있으며 전체 현에서 약 15%의 사람들이 ‘3퇴’성명을 발표했다. 전체 현에서 동수들은 모두 주동적으로 사악을 폭로하는 것을 보증할 수 있으며 ‘파룬따파하오’와 ‘3퇴’를 권고하는 표어들을 연속적으로 끊임없이 유지할 수 있다.
아래에서는 구체적으로 우리가 어떻게 현재와 같은 이런 상태에 도달할 수 있었는지 말해보기로 한다.
2002년부터 시작하여 우리는 줄곧 정체를 형성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당시의 정황은 여전히 아주 사악하여 불법으로 노동교양을 당하거나 불법으로 감금된 수련생이 몇십명에 달했다. 수시로 동수들이 체포되었고 불법으로 감금되거나 심지어 노동교양을 당하기도 했다. 사악은 또 끊임없이 세뇌반을 꾸렸다. 비록 이러했지만 일부 동수들은 이런 정황하에서도 자발적이며 주동적으로 걸어나올 수 있는 동수들과 교류를 했다. 어떻게 수련생을 구출하고, 어떻게 사악의 박해를 타파하며, 어떻게 사악의 세뇌반을 해체할 것인가 등등. 당시의 인식은 여전히 분산되어 있었고 체계가 없었으며 여전히 모색중이었고 정법과 반박해(反迫害)에 대하여 여전히 청성한 사고가 없없다.
이 동안 어떤 동수들은 매일 자전거를 타고 왕복 1-2백리를 다니면서 동수들과 교류를 했는데 이들이 치른 고생에 고생에 대해서는 많이 언급하지 않겠다. 이런 정황하에서 걸어나오는 동수들 역시 점점 증가했다. 또한 일부 동수들이 자발적이며 주동적으로 대법사업을 하는 중에 서서히 협조인으로 되었다.
당시 우리가 우선적으로 고려했던 것은 동수들에게 몇몇 촌(村)의 교류를 비교적 많이 갖게하여 작은 범위에서 정체를 이루게 하고 동수들에게 교류와 토론의 ‘중요성’을 맛볼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자 동수들은 점차 두려움이 적어지고 담이 커졌으며 사부님과 대법에 대하여 보다 견정(堅定)해졌다. 그 후에 수련생을 통해 수련생을 찾았고 이전에 연계되던 동수와 소통시켰으며 동시에 또 보다 세밀하게 교류를 진행시켰다. 방향이 명확해지자 하는 것도 보다 힘이 붙었다.
걸어나오는 동수들이 많아졌고 전현(全縣)의 정체적인 협조와 연락체계가 기본적으로 형성되었다. 아울러 우리는 쉬지 않고 현수막을 걸고 표어를 부치며 수련생을 구원했다. 정체적인 역량이 끊임없이 커졌고 정체적인 역량이 강대해짐에 따라 대법의 법리에 대해서도 보다 명백해졌다. 동수들은 정법과 중생구도에 대해 보다 깊은 인식이 있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서로 법학습을 촉진한 것이 지극히 관건적이며 중요한 작용을 일으켰다.
2003년 우리는 처음으로 우리 자신의 자료점 설립을 모색하기 시작했다[이전에는 모두 외지와 시(市)에 있는 동수들이 자료를 제공해주었다]. 2003년 연말 이미 매우 많은 동수들이 정체속으로 녹아들어왔다. 2004년 초 성(省) 610에서 직접 시(市) 노교소에서 7명의 ‘유다(역주: 대법과 사부님을 배신하고 사악을 도와 동수들을 전화시키는 자들)’를 데리고 왔다. 우리 현 610에서 세뇌반을 열고 아울러 몇 명의 동수들을 납치해갔다.
그때는 사부님께서 ‘현지 민중들에게 현지의 사악을 폭로하자’는 평어문장을 발표하신지 이미 꽤 시간이 흐른 뒤였다. 동수들은 이 문장을 본 후에 큰 계발이 있었고 고무되었다. 당시의 정황은 많은 동수들이 현지의 사악을 폭로하는데 대해 이미 깊은 인식이 있었다(이전에 해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성숙되지는 않았지만 아주 좋은 효과를 거둔 적이 있다.) 반박해의 신념(信念)은 높아졌고 아주 순수해졌다. 당시의 상태를 속인의 말로 하자면 전투에 임하기 전에 사기가 하늘을 찌를 듯한 모습이었다.
사악을 폭로하면서 사악에게 다시 박해당할 수 있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이 점이 매우 중요하다. 이 때문에 2004년 초 사악이 세뇌반을 꾸린 기간에 우리는 우리 현의 610 두목을 폭로하는 표어 수만장을 제작하여 전현(全縣)에서 걸어나올 수 있는 동수들(당시에는 이미 몇백명에 달했다)에게 집중적으로 나눠주었다. 그리고 전현 곳곳에 부쳤으며 특히 악인의 거처나 그 가족들이 일하는 직장, 부모가 사는 마을 및 그 친척들이 사는 마을 등에 전부 도배를 했다.
당시 현성(縣城 현 정부 소재지)의 동수들이 비교적 적었기 때문에 보다 많은 농촌 동수들을 배치하여 현성에 와서 돕게 하였다. 이 행동의 영향은 거대했으며 사악을 두려워 떨게했고 약화시켰다. 게다가 정체적으로 고강도의 발정념을 더했다. 그 결과 세뇌반은 곧 해체되었다. 이때 이후 사악은 더 이상 대대적으로 일을 벌이거나 노골적으로 대법제자를 박해하지 못하게 되었으며 심지어 대법제자에게 소란을 피우는 일마저 매우 적어졌다. 이로써 정체적인 협력의 힘을 발휘한 효과가 비교적 거대함을 볼 수 있다.
정체적인 환경이 개선됨에 따라 걸어나오는 동수들 역시 점점 많아졌다. 2004년 상반기까지 우리 현 각 지역에는 약 20명의 협조인(대체로 향진을 단위로 지역을 나눴다)이 모여 성공적으로 한차례 법회를 치렀다. 법회에서 우리는 몇 년 동안의 반박해 중에서 경험과 부족을 총괄했다. 동시에 정체를 형성하여 정체속으로 녹아들어가며 정체적인 체계를 만드는 것의 중요성을 더욱더 인식하게 되었다.
‘3가지 일’을 중심으로 어떻게 정체적으로 더 잘할 것인가 등에 관해 교류를 진행했다. 이후 우리는 계속적으로 ‘현 610’, ‘현 당서기’, ‘현 검찰청’, ‘전현(全縣) 인민교사’, ‘전현(全縣) 부모친척’ 등에게 보내는 몇 편의 공개편지를 써서 광범위하게 산포했고 효과가 아주 좋았다. 2004년 우리는 1년의 시간을 이용해 자발적인 정황하에서 동수들이 자신들이 몇 년동안 박해 받아온 정황에 근거하여 자신의 정법 경험을 쓰게 했으며 이를 정리하여 사악을 폭로하는 소책자를 만들었는데 아주 좋은 작용을 일으켰다.
환경이 개선됨에 따라 주동적으로 대법을 인식하는 세인들도 점차 많아졌고 자료점 역시 계속적으로 건립되었다. 2005년 하반기까지 무릇 동수들이 있는 지역이면 어디나 할 것없이 단체 법공부와 연공상태(왜냐하면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남겨주신 것은 단체법공부와 연공이기 때문이다.)를 회복했다. 이렇게 하자 일부 새로운 정법형식의 출현에 대하여, 가령 사악을 폭로하고 ‘9평’을 널리 전하며, 탈퇴를 권하고, ‘중공의 파룬궁 수련생 생체장기적출’ 사건 등에 관해서도 아주 빨리 인식이 올라갈 수 있었다.
정체가 있었기에 사악을 폭로하고 수련생을 구원하는 방면에서도 거대한 작용을 일으킬 수 있었으며 우리는 일찍이 정체적인 협력의 작용하에서 사악을 폭로하고 발정념을 하며 사악을 폭로하는 표어를 부치고 선을 권고하는 편지를 쓰는 등 몇 차례 성공적인 구원활동을 펼쳤다. 심지어 다른 현에 가서 진상을 알리다가 악인의 제보로 체포된 동수들도 구해냈다. 정체적인 협력 속에서 대법의 위력을 여러 차례 펼쳐냈으며 동시에 사악의 요소로 하여금 대대적으로 제거되게 하였다.
정체적인 역량이 끊임없이 커짐에 따라 자료점도 계속해서 설립되었다. 2005년 우리는 반년의 시간을 들여 전현에 걸친 통일적인 협조를 각 지역 책임자가 독립적으로 그 지역의 일을 협조하는 방식으로 변경시켰다. 예를 들면 각 지역별로 사이트에 접속하고 자료를 다운받을 곳을 만들고(농촌 동수들이 기술을 배우는데는 그래도 어려움이 있었다), 자료를 인쇄하고, 협조인은 각자 자기 지역(각 촌을 포함)을 책임지고 부정기적으로 법회를 열거나 어떻게 자신의 향진 혹은 촌의 구체적인 정황을 겨냥하여 진상을 알릴 것인가 등등을 책임졌다.
여기에는 어떻게 수련생을 도와 걸어나오게 할 것인가를 포함하는데, 7.20 이전에 수련을 포기했던 수련생들이 다시 대법속으로 걸어들어올 수 있게 돕는 것도 포함한다. 그러나 전현의 정체적인 협조 체계는 변하지 않았다. 사실 전현의 정체적인 협조를 책임진 것은 바로 각 지역을 책임진 동수들이었다.
9평과 진상 VCD 역시 단독으로 제작되었다. 협조를 맡은 수련생은 전현(全縣) 각 지역 동수들의 수요에 근거하여 나누어 배포했다. 아울러 2002년 하반기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여전히 한, 두달 간격으로 전현의 협조를 책임진 동수들이 교류회를 여는 것을 관례로 하고 있다. 각 지역에 각종 문제가 발생하거나 자신의 수련이나 가정의 교란, 병업(病業)형식의 박해, 사악의 소란, 발정념시 잠자는 것, 개별적인 동수들이 별로 이지적이지 못한 행동을 하는 것을 포함하여 각 자료점의 운행상황, 진상을 알리는 자료의 선정, ‘호신부’의 제작과 수요량 및 동수 각자가 법을 실증하고 진상을 알리는 과정에서 누적된 경험을 서로 소개하는 등등.
총괄하자면 무릇 대법을 실증하고 중생구도에 이로운 일이라면 곧 힘을 써서 널리 알렸으며, 무릇 대법에 부합하지 않거나 진상을 알리고 세인을 구하는데 이롭지 못한 요소들은 제때에 제지하고 시정하였다. 이런 정체를 통하여 또한 이 정체를 끊임없이 강화하는 동시에 정체를 발휘하는 작용을 보다 중시하여 배움을 비기고 수련을 비기며 더욱 정진할 수 있었다. 동시에 반드시 동수들이 각자 자신의 장기를 살려 세인을 구도하게 함과 동시에 자신을 잘 수련하는 것을 유지하도록 했다. 총괄하자면 이 정체 속에서 정말로 ‘상호 원용(圓容)하고 상호 보충’하는 상태를 체현할 수 있었다.
각자 자신이 책이진 방면을 잘 했는데 협조를 책임진 사람, 사이트 접속과 다운을 책임진 사람, 자료 인쇄를 책임진 사람, ‘9평’ 제작을 책임진 사람, VCD 제작을 책임진 사람, 문장 쓰는 것을 책임진 사람, 각종 형식의 ‘호신부’ 제작을 책임진 사람, 돌발적인 사건이 발생했을 때 대처하는 사람 등이 있다.
보다 많은 동수들은 자신의 일과 생활의 편리한 조건들을 이용하여 진상자료를 배포하고 3퇴를 권하는 등을 하고 있다. 사실 많은 동수들이 몇가지 일을 겸해서 하고 있다. 총괄하자면 모두들 정체속으로 걸어들어올 수 있었고 자신을 착실히 수련(안을 향해 찾음)했으며 자신이 해야할 법을 실증하는 일과 긴밀하게 결합시켰다(실천이 증명하다시피 이 점은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3가지 일’을 동시에 잘했으며, 상호 협조를 잘할 수 있었기에 동수들간에 동력(動力)을 느꼈으며 그리 큰 압력을 느끼지 않았다. 동시에 수련생이 부족한 지방을 살펴, 어느 촌에 수련생이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빠뜨리지 않았다. 사부님의 설법, 경문, 명혜주간과 진상자료는 협조를 책임진 수련생이 역시 제때에 보내주었으며 아울러 법회를 열어 와서 교류하게 하였다. 단 한 명의 동수도 잃지 않았고 단 하나의 공백도 남겨두지 않았으며 동수들이 모두 제고할 수 있게 하고 세인들이 모두 제때에 진상을 볼 수 있고 구원받을 기회가 있게 하였다.
정체가 있었기에 동수들은 보다 정진제고(精進提高)하고 비학비수(比學比修)하는 환경을 갖게 되었으며 대법제자가 형성한 바른 장(場)은 곧 다른 공간의 사악들이 발디딜 여지를 없게 만들었다. 지금은 사람 이 층에서도 사악의 교란과 박해의 표현이 매우 약해지거나 심지어 사라졌다. 다시 말해 사악은 우리 정체의 이런 바른 장의 작용하에서 대대적으로 약화되었다. 게다가 정체적인 대량 발정념으로 사악한 생명과 요소는 대대적으로 제거되었으며 이로 인해 정법 환경은 크게 개변되었다.
동수들은 비로소 상대적으로 느슨한 환경 하에서 세인을 구도하고 우리가 마땅히 해야할 대법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설사 무슨 돌발적인 사건(가령 수련생이 납치되는 것)이 발생한다 하더라도 모두들 일제히 정체적으로 반응할 수 있게 되었다. 아울러 신당인 위성안테나를 광범위하게 설치하여 중생을 구도할 길을 넓혀놓았다.
정체는 동수들의 참여와 가지(加持) 중에서 완벽해졌으며, 동수들은 정체에 협력하고 협조하는 중에서 제고(提高)되었다. 법학습, 연공, 발정념, 진상알림, 어느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아주 중요한 것이다. 사악한 환경 속에서 우리는 수련을 제고하고 중생을 구도할 환경을 창립해야만 한다. 사부님께서는 정법을 전면적으로 빠짐없이 하고 계시지만,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인간세상에서 해야할 이 일부분을 해내야만 하며 사악의 배치를 타파하는 것은 정법시기 대법제자로서 우리가 반드시 걸어가야 할 길이다. 왜냐하면 사악의 박해가 필경 발생되었기 때문이다.
‘참기 어려운 것도 참을 수 있고 행하기 어려운 것도 행할 수 있노라.’ 이렇게 한다면 정말로 ‘유암화명우일촌(柳暗花明又一村)’을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각지 동수들이 모두 자신의 현지 실제 정황에 근거하여 견고하여 깨뜨릴 수 없는 정체를 이루기를 희망한다. 최대한 빨리 박해를 타파하고 중생을 구도할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수련생이 적어도 좋고 또는 사악의 요소가 크다 해도 좋은데, 우리 앞에 닥친 모든 곤란은 바로 우리가 정법의 길에서 돌파해야할 고비이자 난(難)이다. 우리가 마땅히 해야할 일과 자신의 제고를 결합시켜 보다 세밀하게, 보다 체계적으로, 보다 마음을 써서, 보다 조리있게 한다면 효과는 반드시 좋을 것이다.
처음에는 우리 현 역시 610에 의해 중점현(重點縣)으로 지목되었다. 왜냐하면 우리 현에서 당초 북경에 가서 상방한 동수들이 천명을 넘었고 박해 몇 년 전에 사악의 상부에서 현 공안부문에 요구한 수련인수(정부 통계)에 근거하여 800명을 체포(그것들은 뜻을 이루지 못했음)하라고 했기 때문이다. 99년부터 2001년까지 매년 공판대회(公判大會 역주: 일종의 공개적인 군중 비판대회를 말하는데 이 자리에 대법제자를 불러내 공개적인 모욕과 비판을 가했다는 의미.)를 열었는데 모두 대법제자가 있었다. 일찍이 18명의 대법제자가 거리를 다니면서 대중들에게 공개적으로 보여준 적도 있다.
대법제자로서 마땅히 사악의 박해 환경을 타파하는 속에서 걸어나와야 한다. 사실 사부님께서 계시고 법이 있는데, 우리가 견고하여 깨뜨릴 수 없는 정체를 형성하기만 한다면 정법의 일은 해내지 못할 일이 없다. 단지 우리가 하는가 하지 않는가, 마음 씀이 큰가 작은 가의 문제에 불과할 뿐이다.
이상은 우리 현에서 지난 몇 년간 정법의 길에서 걸어온 일부 경험들이다. 우리가 희망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각지 동수들이 모두 자기 지역에서 대법을 실증하고 사악의 박해를 타파하며 정법환경을 개선한 체득과 경험을 써내자는 것이다. 정체적인 각도에서 보다 깊이 있고 보다 세밀한 교류를 통해 정체적으로 사악의 박해를 타파하는데 도달하도록 하자. 7.20 이전의 동수들이 최대한 많이 걸어나오게 하고 보다 많은 사람들이 ‘3퇴’를 하게 하여 보다 많은 중생들을 구도하자.
문장완성 : 2006년 8월 15일
문장발표 : 2006년 8월 16일
문장갱신 : 2006년 8월 15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06/8/16/135688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