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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좌를 하면서 깨우친 수련의 도리

글/대륙 대법제자

[명혜망 2006년 8월 13일] 나는 일반적인 상황하에서 한 시간쯤은 능히 가부좌를 견지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때에는 다리가 몹시 아파 괴롭고, 어떤 때는 마음까지도 따라 괴로워 마치 무수한 벌레가 깨무는 것 같다. 정념이 강할 때는 마음속으로 참기 어려운 것도 참을 수 있고, 행하기 어려운 것도 행할 수 있다는 것을 묵념하거나, 혹은 법을 외우면 끄떡없이 움직이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정념이 부족할 때는 몸을 자꾸 움직이게 되는데 그렇게 하면 아픔을 덜 수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조용하지 않기 때문에 가부좌하는 시간에 대해 전혀 예측하지 못한다. 언제나 시간이 너무나 긴 것 같으며, 얼른 끝나야 하는데 왜 아직까지 음악이 울리나하는 생각에 정말 괴롭다! 다리를 내려 놓을까? 오늘은 한 시간 동안 가부좌를 하지 말까? 기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시계를 볼까?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다면 앉아있지 말까? 시간이 조금만 남았다면 견지 또 견지하자 등등, 그야말로 무슨 생각이든 다 있다.

한 번은 가부좌 상태에서 정말로 참기 어려웠다. 그런데 연공 음악은 끝날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다리를 내려 놓고 시계를 보니 1분밖에 남지 않은 것이었다. 그당시 나는 아주 큰 진동을 느꼈다.

만약 이 가부좌가 나의 수련 과정의 전부였다면 나는 중도에서 포기한 것이 되고 만다. 그런데 이렇게 중도 포기한 것이 최후 결속과 겨우 1분 차이일 뿐이다 ! 내가 어찌 뼈저린 후회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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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좌는 구체적인 수련과정과 마찬가지이다. 연공음악의 길고 짧음은 고정되어 있는 것으로서 사부님께서 정하신 것이다. 우리가 60분을 다하는 것은 우리의 목표이다. (당연히 먼저 60분에 도달하길 요구하며, 도달한 후에는 이 과정에서 잡념을 없애고 청정무위에 도달해야 한다) 그러나 가부좌를 하면서, 더구나 제인하여 심도있게 입정한 후 만약 마음이 조용해지지 않고 또 연공음악의 소절을 세지 않았다면, 가부좌한 시간이 얼만큼 되었는지 판단하기가 아주 어렵다. 끝날 시간이 얼만큼 남았는지 많이 알고 싶고, 계속 앉아 있겠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사실 본신의 포기로 볼 수 있는바, 신심을 포기했고 참을성을 포기한 것이다.

수련도 마찬가지이다. 사부님은 처음부터 이미 우리의 수련의 길을 배치해 놓으셨다. 최후까지 걸어가면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바로 원만이다. 그러나 우리가 난중(難中)에 있을 때면 심성을 파악하기가 아주 힘들며, 더구나 거대한 고통과 시달림을 당할 때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수련이 언제면 끝나겠는가?’하고 생각할 것이며, 난을 넘기지 못할 때면 심지어 의심을 하면서 사부님께서는 일찍부터 결속 된다고 말씀하시지 않으셨는가? 이렇게 여러 해가 지났는데도 어찌하여 아직도 결속되지 않고 있는가? 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이미 수련의 의지와 대법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동요된 것이다.

우리는 미혹속에서 수련하므로 어둠 속에 무엇을 직면하고 있는지 모르며, 수련의 최후 결속 시간을 모른다. 이때에 자신의 인내력과 사부, 법에 대한 신심 부족으로 중도에서 포기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 포기가 가능하게 수련 결속 1분전에 발생할 수도 있다. 수련의 최종 목적은 무엇인가? 수련 성취하여 원만하는 것이 아닌가? 만약 대법수련을 이렇게 오래한 사람이 일관적으로 일념을 지키지 못하면 지금까지의 수련이 죄다 헛된 것으로 되어 버려 진상이 크게 나타날 때 뼈저린 후회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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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의 길은 사실 세 가지 일을 하는 무수한 시간으로 조성된 것이다. 만약 우리가 매 한 시간마다 자신에 대한 요구를 늦춘다면, 다음 번에 미봉하려고 생각한다면 아마 더는 기회가 다시는 없을 것이다. 만약 우리가 진정으로 수련의 매 일분이 너무나 보귀하고 또한 중요하다고 인식할 수 있다면 누구나 다 신으로 수련될 수 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수련이 괜찮게 된 수련자를 속인으로 떨어 뜨릴 수도 있다. 수련의 매 한 단계의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고, 매 단계의 시간마다 모두 사부님, 법의 표준에 따라 자신을 요구한다면, 그렇다면 최후에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필연적으로 공성 원만일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매 단계에서 시간의 부족과 유감이 쌓여 최종에는 뼈저린 후회를 할 것이다!

수련은 참으로 대단히 엄숙하고, 대단히 신성한 일로써 약간의 과장과 거짓이 섞여도 안 된다. 이전의 개인수련 단계에서 표면으로는 아주 잘한 것 같았지만 그러나 나는 연공을 좀처럼 지속적으로 견지한 적이 없었고, 후에 와서는 거의 연공을 하지 않았는데 최후에 사악에게 박해당할 때까지였다. 수련은 남에게 보이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며, 그것은 실제적이고 착실하게 진정으로 안을 향해 자신을 닦는 과정이다. 추호도 가짜와 표면적인 문장이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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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말씀하셨다. “상사가 도를 들음에 근면히 행하고, 중사가 도를 들음에 있는 듯 없는 듯하며, 하사가 도를 들음에 대소하거니, 웃지 않으면 도라고 할 수 없도다.”

수련하는 과정에서 자신에 대한 요구가 엄격하지 않고, 이만하면 됐다고 여긴다면 바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중사’ 로서 이렇게 하면 수련 성취하기가 아주 어려울 것이다. 다른 사람이 자꾸 독촉해야만 좀 하는 척 하고 환경이 조금만 나빠지면 정진하지 않는다. 지금은 단체 연공, 큰 범위의 단체 법공부를 할 수 있는 환경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정진하지 않으면 첫째, 감독하는 사람이 없고, 둘째, 다른 사람이 알수도 없을 것이다. 이는 사실 다른 사람을 속여 넘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해치고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당신의 수련이 얼마나 잘 되고, 오성이 얼마나 높다고 느끼든지 관계없이 그건 모두 당신의 진정한 수련 층차를 대표하지 못하며, 진실한 정황은 오직 사부님께서만 가장 똑똑히 알고 계신다. 기실 이런 것에 대해 사부님께서는 법에서 일찌기 여러 번 말씀하셨다. 그러나 나의 가장 깊은 곳은 바로 이 집착에 의해 장애를 받고 있다. 오늘 내가 이 점에서 깨우치게 된 것은 사부님의 자비하신 점화이다. 왜냐하면 현 단계의 시간에 이런 상황이 출현하는 것은 아주 보편적이어서, 계속 이대로 나아간다면 아주 위험하기 때문이다. 나는 편안함을 추구하고 고생을 두려워하는 것이 엄청 큰 집착이며, 나의 수련의 길에서 엄청나게 큰 장애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어떤 때는 돌파하기 아주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 용기를 잃을 때도 있다.

오늘 우연히 사부님의 경문 《청성》을 읽게 되었다. “수련생으로서, 당신이 사부의 요구에 따라하지 않는다면, 틀림없이 간단한 일이 아니다. 낡은 세력은 모든 대법제자에 대하여 그것들의 것을 한 세트 배치하였는데, 만약 대법제자가 사부의 요구에 따라 하지 않는다면, 바로 틀림없이 낡은 세력의 배치에 따라 하고 있는 것이다.”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하는 것만이 비로소 대법제자가 법을 실증하고 있으며, 자신을 수립하고 있는 것으로, 비로소 진정한 대법제자이다.”

나는 불현듯이 놀라서 깨어났다. 이것은 참으로 하나의 엄숙한 문제인 바, 이는 사부님의 요구대로 하느냐 안 하느냐 하는 문제이며, 또한 낡은 세력의 배치를 승인하느냐 안 하느냐 하는 문제이다. 나는 불현듯이 깨달았다. 나자신이 고생을 두려워하고 안일을 추구하는 집착 때문에 사부님의 요구에 도달할 수 없으면, 낡은 세력은 이 집착을 이용할 것이며, 나로 하여금 더 잘할 수 없게끔 할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 자책을 더 많이 하게 할 것이며, 용기를 잃게 하여 법에 대한 나의 바른 믿음을 파괴할 것인 즉, 나의 최종 목적인 수련성취함을 파괴하는 목적에 도달할 것이다. 그야말로 대단히 엄숙할 뿐더러 엄준한 것이다!

그러나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법은 일체 집착을 타파할 수 있고, 법은 일체 사악한 것을 타파할 수 있으며, 법은 일체 거짓말을 제거해 버릴 수 있고, 법은 정념을 확고하게 할 수 있다.” 《교란을 배제하자, 2000년 7월 5일》

내가 이전에 잘했든 못했든 상관없이 그러나 지금은 이런 인연이 있어 대법 속에서 수련하고 있으므로 나는 꼭 잘해야 한다. “당신이 씬씽을 제고 하기만 하면 곧 넘을 수 있는데 당신 자신이 넘으려 하지 않을까봐 걱정이지 넘으려 한다면 곧 넘어 갈 수 있다.” 『전법륜』대법으로 수련하는 사람은 마치 용광로 쇠물 속의 나무조각처럼 순간적으로 없어지며 개변된다. 이 법은 크기 때문에 능히 순간적으로 우주 천체를 재조직 할 수 있는데 작고도 작은 사람속에 있는 고만한 집착이 다 무엇인가?

“바로 이렇게 바른 믿음(正信)의 일념을, 누가 이 정념을 지켜낼 수 있으면, 누가 최후까지 걸어갈 수 있으며, 누가 대법이 만든 위대한 신이 될 수 있다.” 《미국서부국제법회 설법》

층차가 제한되어 인식이 부족하므로 부당한 곳은 동수께서 아낌없이 지적해 주기 바란다.

문장발표 : 2006년 8월 13일
문장위치 :http://minghui.ca/mh/articles/2006/8/13/135229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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