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대륙대법제자
【명혜망 2006년 8월 4일】최근 며칠간 명혜망에는 모(某) 시 대법제자 정체(整體)에 존재하는 문제, 수련생을 구원하는 등의 방면에서 표현된 마비감, 정체의식의 부족 등을 분석한 글들이 올라왔다. 마침 내 주변의 A수련생이 그 지역에 있고, 현지 상황이 문장에서 말한 것처럼 그렇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우리는 이 일을 이야기하면서 어떻게 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았다. 나는 당시 A동수에게 그 지역에 가서 잘 협조하도록 고무격려함과 아울러 자신의 일부 생각들을 말했다. A동수 역시 이런 소원이 있었기 때문에 그는 곧 그 시에 가서 현지 동수들과 교류를 했다.
며칠 후 A수련생은 아주 의기소침해져서 돌아왔다. 원인은 현지 동수들이 그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그에게 많은 문제가 존재한다고 트집을 잡았다는 것이다. 나는 그의 말을 듣고 난 후 역시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지역은 정말로 뒤떨어져 있구나, 이렇게 많은 문제들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의식조차 하지 못하다니? 다른 사람이 지적하는데 어째서 받아들이고 안을 향해 찾지 못할까?’
나는 당시 여전히 이 지역에 대한 책임감을 느껴 또 B수련생을 찾았다. 그녀는 A수련생을 잘 알고 있었고 또한 그 지역 동수들과도 접촉이 있었기에 그녀에게 그들을 찾아가서 이야기해보고 오해를 풀어달라고 했다. 나 자신은 발정념으로 동수들 사이의 간격을 깨끗이 제거하며 대법제자들이 최대한 빨리 정체를 이룰 수 있기를 원했다. 그러나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고 누가 가도 모두 벽에 부딪쳤다. 나는 그제서에 비로소 마음을 조용히 하고 이 일을 생각해보았고 내가 뭔가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정황을 알지도 못하면서 동수들을 보내 내 생각에 따라 협조하게 했으니 일종 억지로 하는 요소가 있었던 것이다.
다음날 사부님의 《미국수도법회설법》이 발표되었다. 반복적으로 사부님의 설법을 학습하자 나는 갑자기 활연히 깨달을 수 있었다. 내게 장기간 존재해온 문제이자 우리 많은 수련생들이 장기간 깨닫지 못하는 문제였다. 바로 문제에 부딪히면 종종 그 속에 빠져 들어가서 문제를 말하며 일이 닥쳐서야 일을 논하는 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문제가 있는 것을 보면 종종 다른 사람에게 문제를 지적하는데 빠져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이 제고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사유 상에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근본적으로 말하자면 여전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지 이런 문제를 이용하여 자신에게 존재하는 문제를 해결하고 자신의 마음을 닦아버리지 못한 것이다. 비록 우리는 서도 다른 시기에 모두 문제에 부딪히면 자신을 찾고 자신을 닦을 수 있겠지만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많은 정황 하에서 우선 자신을 생각하고 자신의 문제를 찾지 못하면서 여전히 우선 다른 사람을 찾고 그런 후에야 비로소 자신을 찾으려 하거나 심지어 자신을 찾을 생각조차도 하지 못한다.
내 인식은 이렇다. 자신이 일찍이 일에 부딪혀 안을 향해 찾을 수 있었다고 하여 곧 자신이 안을 향해 찾을 수 있다고 여겨서는 안 되며, 이로부터 자신의 수련을 느슨히 해선 안 된다. 왜냐하면 수련이 잘된 부분은 끊임없이 격리되며 남아 있는 사람이 수련하고 있기 때문에 여전히 늘 자신을 찾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부님께서는 《미국수도법회설법》 중에서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수련은 바로 자신을 수련하는 것이라, 어떠한 상태가 나타나든지 막론하고 모두 자신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대법제자가 어떠한 일을 할 때 어려움이 있어 고려할 필요가 있을 때면 모두 자신 이 방면에서부터 찾아야 하며 대법제자와 정법이 필요로 하는 환경상태에 순응해야 한다. 문제가 나타나면 자신이 법리와 비틀어진 것이다.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찾아보고, 이 비틀어진 것을 풀어주고 정리해야 한다. 가장 좋은 방식은 바로 어떤 일에 부딪히면, 앞으로 맞받아 내밀거나 앞으로 맞부딪치며 앞으로 쫓아가면서 해결하지 말고, 마음을 내려놓고 한 걸음 물러서서 해결하는 것이다. (박수) 일만 있으면 당신이 맞는가 내가 맞는가 하면서, 이것은 당신의 문제이고 이것은 그의 문제이며 내가 한 것은 어떠어떠하다고 하는데, 보기에는 마치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조금도 해결하지 못한다. 보기에는 아주 이지적이지만 사실 조금도 이지적이지 않다. 뒤로 한 걸음 물러서서 마음을 완전히 내려놓고 문제를 사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냉정하고 온화하게 이 모순 속에서 물러나와 이 모순을 보아야만 비로소 진정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
문장 앞에서 언급한 일은 마치 나 자신과 직접적으로는 아무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이고 나 역시 그들과 직접적인 접촉이 없었지만 지금 보자면 주요한 것은 자신의 문제이다. 비록 나의 소원은 좋은 것이었지만 그러나 자신의 사로(思路)는 법리(法理)와 비틀어졌고 자신을 찾지 못했으며 여전히 이렇게 비틀어진 정황 하에서 앞으로 맞부딪쳤으니 모순이 곧 두드러지게 되어 문제를 아예 해결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법학습을 통하여 나는 전보다 더 깊은 체득을 할 수 있었다. 왜 우리는 시시각각 자신을 찾아야하는가? 왜냐하면 수련은 본질상 바로 자신의 제고이며, 기왕에 자신의 제고가 제1위적인 것이라면 그럼 어떠한 일에 부딪히던지 막론하고 모두 자신의 제고를 위해 사용해야 하며 그렇다면 당연히 반드시 자신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이는 수련인이라면 반드시 청성(淸醒)하게 인식해야 할 문제이다. 수련이란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만 비로소 수련으로 칠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만 자신의 수련에 대해 책임지는 것인지 명백해야 한다.
일에 부딪혀 안을 향해 찾아야만 비로소 법에 있는 것이며 이는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신 수련에서 가장 직접적이고 가장 빠른 방법인데 어찌 잃어버릴 수 있겠는가? 일에 부딪혀서야 일을 논하고 일을 쫓아가면서 일을 해결하고 앞으로 맞받아치는데 실제로는 여전히 자신의 견해를 고집하는 것이다. 겉보기에는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쇠뿔을 파고드는 것이다. 우리가 한 걸음 물러서서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다면 사실상 자신의 시야를 넓히고 자신의 용량을 확장시킨 것이며 자신의 지혜를 증가시키고 사상경지를 제고한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비로소 확실하고 확실한 것이며 이것이야말로 비로소 수련인에게 마땅히 있어야할 상태로서 이것이야말로 사부님께서 바라시는 것이다.
이런 상태 하에서 정말이지 ‘한걸음 물러서니 끝없이 넓은 경지가 있다’는 것이 되며 어떤 문제든지 모두 해결할 수 있다. 왜냐하면 당신이 제고했기 때문에 이 일 속에 있지 않고 우주의 특성에 부합하여 바른(正) 요소의 가지를 얻을 수 있으며 씬씽(心性)층차가 제고되어 당신 층차 이하의 일에 대해 당신이 무소불능(無所不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상은 개인의 체득이니 타당하지 못한 곳은 지적해주기 바란다.
문장완성 : 2006년 8월 2일
문장발표 : 2006년 8월 4일
문장갱신 : 2006년 8월 4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06/8/4/134655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