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랴오닝 번시 대법제자
【명혜망 2006년 7월27일】 얼마 전, 우리 지역에 사부님과 대법을 공격하는 악독한 표어가 나붙었다. 정법시기의 대법제자로서 대법을 수호하는 것은 매 대법제자의 신성한 책임이다. 대법에 대한 사악의 박해와 세인을 독해시키는 현상에 대하여 나는 수련을 비기는 중에서 나와 동수 사이의 차이를 찾고자 한다. 이를 통해 나와 비슷한 문제를 갖고 있는 동수들께서는 가급적 빨리 따라오길 바라는 마음이므로 적절치 못한 곳이 있다면 동수들께서 자비롭게 지적해주시기 바란다.
2006년 6월 말의 어느 날, 나는 한 동수의 집으로 갔으며 그 때는 이미 거의 저녁 9시가 된 시간이었다. 수련생은 부부가 모두 대법제자이다. 여자 동수분이 나에게, “망계공원 3번가의 문 두 곳에 사부님과 대법을 공격하는 악독한 표어가 씌어져 있어서 우리들 세 명은 붉은 색 페인트로 그것을 처리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표어 주위에 몇몇 이상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우리는 그들이 함정을 파고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대법제자들을 체포하려는 사람들인 것으로 생각하고 우리 세 명은 단지 주위에서 2시간가량 빙빙돌다가 돌아왔는데 지금 오는 길입니다. 우리 서로 동수들에게 알려 발정념합시다!” 라고 말하였다. 나도 그때 동수와 마찬가지로 법에 서서 인식하지 않았고 내일이 되면 가보겠다고 생각했다.
이튿날 저녁, 나는 한 동수와 함께 망계공원으로 갔다. 이토록 창궐하게 사부님과 대법을 공격하는 표어를 보고 나는 그것을 손으로 문질렀으나 지워지지 않아 함께간 동수에게 내일 저녁 붉은 페인트를 사서 함께 그것을 처리하자고 하였다. 다음날 저녁, 나는 동수에게 전화를 하였는데 수련생은, “바깥에 큰 비가 내리고 있으니 저는 가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도 가지 마시죠.” 라고 말하였다. 그리하여 우리들은 누구도 가지 않았다. 수련생이 가지 않는다고 나도 가지 말아야 하는가? 수련은 바로 자신을 수련하는 것으로 무엇때문에 정정당당하게 가서 법을 수호하지 못한단 말인가? 자신에게 아직도 두려운 마음이 있다는 것을 설명하며 아직도 근본적으로 사부님과 법을 믿지 않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사부님께서는 경문 《길》에서, ‘법을 배우고 수련하는 것은 개인적인 일이다. 하지만 흔히 많은 수련생은 늘 다른 사람을 본보기로 삼고 있으며 다른 사람이 어떻게 하면 자신도 곧 어떻게 한다. 이것은 속인 중에서 양성된 좋지 못한 행위이다.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본보기가 없으며 개개인이 걷고 있는 길은 모두 다르다. 왜냐하면 개개인의 기초가 같지 않고, 각종 집착심의 대소가 같지 않고, 생명의 특징이 같지 않고, 속인 중에서의 사업이 같지 않으며, 가정환경이 같지 않은 등등의 요소가 개개인의 수련의 길이 같지 않고, 집착심을 버리는 상태가 같지 않고, 고비를 넘기는 크고 작음이 같지 않음을 조성하였다. 그러므로 표현상에서 다른 사람이 닦아놓은 길을 찾기가 어려우며 편차(便車)에 편승하기란 더욱 불가능하다. 만약 정말로 닦아놓은 길과 순풍차(順風車)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 또한 결코 수련이 아니다.’, ‘현재 대법제자가 바로 정법시기에 처해 있다. 낡은 세력의 표현은 대법제자에 대한 가장 근본적이고 가장 엄격한 고험(考驗)을 조성하였다. 되는가 안되는가 하는 것은 대법에 대한 것과 개개 대법제자가 자신에 대해 능히 책임질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실천이고, 사악을 타파하는 속에서 능히 걸어나와 대법을 실증할 수 있는가 없는가는 생(生)과 사(死)의 견증(見證)으로 되었고, 능히 정법시기 대법제자들이 원만할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검증으로 되었으며, 또한 인간과 신(神)의 구별로 되었다. 대법제자를 놓고 말하면, 법을 수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면 역사의 오늘 정말로 사악이 대법을 박해하는 것이 나타났고 박해에 대하여 대법제자들은 기필코 나와서 법을 실증(證實)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수련생은 다른 사람이 걸어나와 법을 실증하는 것을 보고 자신도 따라 나섰고, 다른 사람이 나오지 않은 것을 보게 되자 자신도 나오지 않았으며’, ‘마난(魔難) 앞에서 어떻게 하는가는 모두 자신이 깨달아야 한다. 매차례 제고가 바로 자신이 증오(證悟)한 과위가 승화된 것이다.’, ‘한 대법제자가 걷고있는 길은 바로 한 부의 휘황한 역사로서, 이 한 부의 역사는 반드시 자신이 증오(證悟)하여 창설하는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정법시기의 대법제자로서 평소에 법공부도 적지 않게 하였으며, 또한 대법을 수호하고 대법을 실증하며 세가지 일을 잘해야 함을 알고 있다. 그러나 사악이 대법을 박해하였을 때 나는 대법을 수호하는 직책을 다하였는가? 나는 자신의 수련원만의 길을 잘 걸었단 말인가?
사부님께서 《착실하게 수련》에서 ‘법을 배우고 법을 얻어 배움을 비기고 수련을 비기나니 일마다 대조하여 할 수 있음이 수련이노라.’ 라고 말씀하셨다. 이와 동시에, 번시 지역의 수많은 대법제자들은 이 소식을 들은 후 모두 같지 않은 층차로부터 걸어 나왔다. 그 중 나이든 한 수련생은 이 소식을 들은 후 가장 먼저 생각한 일념이 바로 ‘나는 신이다. 사악이 이곳에서 대법을 박해하고 세인을 독해시키는 것을 절대 허락할 수 없다. 사부님께서 제자를 가지하시길 바라며 제가 가서 그것을 처리하겠습니다.’ 라는 것이었다. 그녀는 바로 마켓에 가서 페인트를 사왔으며 수련생이 가르쳐준 지점으로 가서 닦기 시작하였지만 경찰이 있건 없건 함정을 파고 기다리는 사람이 있건 없건 상관하지 않고, 이러한 인간의 관념조차도 없었다. 어떤 사람이 무엇때문에 닦고 있느냐고 묻자 그녀는 태연하게 “버려야 해요, 버려야 해요.” 라고 말하였다. 옆에 있던 사람이 “당신들 파룬궁은 정말 대단해요. 벌써 악당의 표어를 닦아내야 했습니다. 지금 국민들은 모두 악당을 욕하고 있는데 누가 그것들의 선전을 믿겠습니까!” 라고 말하였다. 어떤 사람은 “당신들은 알고 있습니까? 이 표어를 쓴 사람은 사람들이 알까봐 두려워하고 있어요. 그러므로 모두 저녁에 사람이 없을때 남몰래 합니다. 사악한 당이 당신들을 두려워하지 결코 당신들이 사악한 당을 두려워해서는 안됩니다.” 라고 말하였다.
또 두 명의 동수들은 이튿날 소식을 들은 후 저녁에 휘발유로 표어를 닦아버렸다. 어떤 수련생은 이 소식을 재빨리 명혜망으로 발송하여 더욱 많은 동수들이 정법 중으로 걸어 나오도록 하였다. 어떤 수련생은 테이프로 문구를 만들어 악인들에게 악한 짓을 중단하도록 경고하였다. 약 일주일 후 더욱 많은 동수들이 걸어 나왔으며 이지적으로 지혜롭게 사부님과 대법을 공격하는 모든 악독한 표어를 철저하게 닦아버리거나 제거해버렸다.
정의와 사악의 대전 중에서 나는 대법의 바른 마당이 이미 사악을 철저하게 눌러버렸다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되었다. 사악은 이미 발붙일 곳이 없게 되었으며 대법제자들의 정념정행, 정체적인 승화와 정체적인 제고 및 서로 잘 협조하는 것은 철저하게 사악을 제거하고 소거하는 관건이다. 마치 사부님께서 《경언》중에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만약 당신들 사람마다 모두 내심으로부터 법을 인식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비로소 끝없는 위력의 법의 체현, 강대한 불법의 인간세상에서의 재현이다!’
이 일을 통해 나는 자신과 동수들 사이에 수련 중의 거리가 존재하며 인간과 신의 일념의 차이가 존재함을 보게 되었다. 같은 한가지 일이 나타나더라도 어떤 동수들은 이를 진상을 똑바로 알리고 중생을 구도하며 사악을 깨끗이 제거하는 좋은 기회로 여기며 동시에 안을 향해 찾고 자신의 수련 중의 부족함과 본 지역 수련 중에 존재하는 문제를 찾아내는 좋은 기회로 여기지만, 어떤 수련생들 그리고 개별적인 지역과 일부의 협조자들은 오히려 또 무슨 긴장시킬 사건이 나타났다고 생각하고 있다. 일부분 동수들은 여전히 기다림에 의거하고 바라보는데만 의거하며 심지어 사악이 이러한 방식으로서 대법제자를 체포하며 표어 옆에 몰래 카메라가 설치되었기에 절대로 그러한 곳으로 가서는 안된다고 전하고 있다. 또 어떤 동수들은 이때에 진상 자료를 감히 만들지 못하고 있으며 동수들 사이에 접촉을 하지 못하게 하고 심지어 동수들간의 교류를 취소시키기도 하고 있다.
수련은 엄숙한 것이다. 대법제자가 일체의 집착을 제거할 수 있는지 없는지, 천백년동안 골수 속에서 형성된 사람의 이치와 표면의 이 껍데기를 제거할 수 있는지 없는지, 일체의 두려운 마음과 사람의 관념을 제거해버릴 수 있는지 없는지, 정법시기의 대법제자의 표준에 도달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매 하나의 진수제자들 앞에 놓여진 엄숙한 과제이다. 사부님께서는 《최후일수록 더욱 정진해야 한다》 중에서 ‘나는 당신들이 명백해진 후에 재빨리 따라 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당신들이 능히 이 가장 위대한 신의 길에서 굽은길[彎路]을 적게 걷고, 자신의 장래에 유감을 남기지 않으며, 층차의 거리를 벌어지게 하지 않을 수 있다면, 이것이야 말로 나와 당신들 내지 당신들을 기대하는 중생들의 바람[願望]이다.’ 라고 말씀하셨다.
동수들이여, 우리함께 마음을 조용히하고 법을 스승으로 모시며 안을 향해 찾고 수련 중의 근본 집착을 찾아내며 더욱더 열심히 세가지 일을 잘하고 사부님의 자비로운 구도를 소중히 여기며 수련의 이 만고기연을 소중히 합시다. 정념정행하고 사부님께서 매 하나의 대법제자에게 배치하여 주신 수련원만의 길을 잘 걷도록 합시다.
문장완성 : 2006년 7월 25일
문장발송 : 2006년 7월 27일
문장갱신 : 2006년 7월 26일 16:00:15
문장분류 : [제자절차]
원문출처 : http://www.minghui.ca/mh/articles/2006/7/27/13407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