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고난 속에서도 뜻을 굽히지 않았다

글/대륙대법제자

【명혜망 2006년 7월 10일】나는 1998년에 법을 얻었고 올해 나이는 58세이다. 그때 당시 내가 처음 《전법륜》을 들고 단번에 2번을 보았는데 마음 속의 그 기쁨이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으며 격동되어 손이 떨렸다. 1999년 사악은 하늘땅을 뒤덮듯이 요언날조와 비방을 하였으며 거짓말은 먹장구름마냥 하늘을 뒤덮었다. 나에게는 오직 하나의 생각만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북경에 가서 도리를 따지자는 것이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들을 위해 그토록 많은 것을 감당하셨는데 제자로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나는 2001년 신정 때 천안문광장에서 현수막 두 개를 펼쳤으며 이로 인해 세뇌반으로 잡혀갔다. 세뇌반에서 나온 후 나는 떠돌아다니는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진상을 알리고 법을 실증하는 가운데서 나는 끊임없이 자신을 수련하였으며 이로 인해 의지는 더욱 강해졌다. 고생스러웠던가, 고생스럽지 않았던가? 고생스러웠다. 혼자 고독한 나날을 보낼 때의 그 적막감, 50여세의 사람이 비바람 속에서, 암흑 속에서 그리고 어려움 속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집 생각이 나서가 아니라 자신의 오성이 차해서 울었고 법공부를 깊이 하지 못해 진상 알리기를 잘 하지 못해서 울었다. 한 번은 물을 마시고 싶어서 가게주인에게 물을 한잔 얻어 마시려고 하였지만 가게주인은 나에게 황련을 달인 물을 주면서 나더러 마시라고 하였다. ‘정말 쓰구나!’ 그러나 씀 속에 낙이 있었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양몰이를 해주었고, 소몰이군도 되어 주었으며 당나귀에게 풀을 뜯기기도 하였다. 땅을 갈아엎었고 옥수수를 수확하였으며 가을걷이를 하였고 또 어린이들에게 수업도 하였다. 길가의 웅덩이에서 쪽잠을 잤었고 벽돌로 쌓여진 틈 사이에서도 잤던 적이 있었다. 하루 밤 하루 낮 길을 가면서 수많은 선량한 사람들을 만난 적이 있었고 또한 나를 고발했던 악인을 만난 적이 있었으며 강도를 만난 적도 있었다. 장기간에 형성되었던 두려운 마음, 게으른 버릇, 체면을 지키려는 마음, 더러움을 두려워하는 마음 등은 진상을 알리는 과정 중에서 깨끗하게 폭로되었다. 동시에 이토록 어려웠던 나날 속에서 천천히 제거해버렸다. 자신을 수련인으로 여기고 농가에 가서 그들을 도와 일을 했으며 그들에게 밥도 지어주었다. 자신의 회화기능을 이용하여 사람들에게 초상화를 그려주면서도 돈을 받지 않았고 대신 밥 한 그릇만 주면 되었다.

매번 절망적인 상태에 이르면 마음 속에서 “목숨을 내걸자, 뭐가 대단하다고.”라는 일념이 생겼다. 내가 집착심을 내려놓으면 항상 안 될 것 같다가도 살 길이 생겼는데 이때면 어떤 사람이 나더러 그의 집에 가서 지내도록 하였고 또 어떤 사람은 주동적으로 나에게 먹을 것을 주었다.

처음으로 산 속에 들어갔을 때 나는 망연자실하였다. 산 속에는 친구도 없었고 아는 사람도 없었으며 돈도 한 푼 없는데 어디에서 자고 무엇을 먹는단 말인가? 이후의 길을 어떻게 가야 하는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나는 시종 물러서지 않고 농민들에게 진상을 알렸으며 사부님이 나의 곁에 있다는 것을 확고히 믿었다. 심산 속에서 혼자 걸어도 하나도 두렵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나는 어두움을 두려워했고 야수를 두려워했다. 그러나 나는 사부님께서 바로 나의 신변에 계신다는 것을 확고하게 믿었기에 두려워하지 않았다.

나는 바로 이렇게 가가호호를 돌아다니며 진상을 알렸다. 그러면서도 우선 자신에게 좋은 사람이 되도록 요구하였으며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모두 잘하도록 요구하였다.

한번은 작은 산골에 도착하였다. 마을은 크지 않았으나 마을 사람들은 모두 사찰에 가서 향을 피우고 절을 하였다. 내가 찾아 들어간 집의 여주인은 사찰의 주지였다. 남편은 중공의 거짓말에 속은 사람이었는데 내가 대법수련자라는 것을 알고는 중공의 TV방송에서 방송했던 거짓말들을 그대로 나에게 말하였다. 이 집에는 두 내외만 살고 있었는데 마침 가을이어서 매우 바쁘게 보내고 있었다. 나는 그들을 도와 먹을 물을 길어오고 밥을 지었으며 밭에 가서 아가위열매를 이고 날랐다. 무슨 일이든 발 벗고 나서서 도왔다.

며칠간의 생활을 통해 그들은 내가 좋은 사람임을 확신하였다. 그리하여 나는 그들에게 대법이 박해받고 있는 진상을 알려주었고 TV에서 방영된 거짓말들을 폭로하였다. 저녁에 나는 그들에게 《전법륜》의 “논어”를 읽어 주었고 그들에게 《전법륜》책을 주어 읽도록 하였다. 남편은 “이 책의 글씨가 왜 보면 볼수록 큽니까! 왜 보면 볼수록 더 보고 싶나요!”라고 말하였다. 그들은 진상을 알게 되었고 내가 수련자임을 알게 되었다. 여주인은 “수련자는 절반이 신이라 저도 수련하고 싶어요.”라고 말하였다. 그리하여 나는 그들에게 “불이법문”의 내용을 말해주었다. 이튿날 마을 사람들이 그들더러 사찰에 가서 회의에 참석하라고 했으나 그녀는 구실을 찾아서 미루었다.

또 한 번은 이름도 모르는 산촌의 학교에서 발생한 일이다. 나는 교장에게 교실에서 하룻밤 자려고 하니 허락해 달라고 하였다. 이 교장은 바로 자신의 거실을 나에게 양보하였으며 또한 나더러 학교의 교실마다 글을 써달라고 하였다. 나는 응낙을 하였으며 3일 후에 다 완성하였다. 그리고는 마을에서 농민들에게 진상을 알려 주었다. 저녁이 되자 마을의 사람이 나에게 “우리는 보고를 하지 않았지만 어떤 사람은 보고를 했습니다.”라고 말해주었다. 동시에 사부님께서도 나에게 점화를 해 주셨다. 아침 4, 5시에 마을 사람들의 도움 하에 나는 마을을 떠났다. 가는 길에 나의 걸음걸이는 나는 듯이 빨랐다. 이때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하여 나는 산비탈에 있는 마을에서 비를 피했다. 비가 멎고 산등성을 넘자마자 경찰차 한 대가 내가 있었던 마을을 향해 달려갔다. 정말로 위험했군! 사부님께서 또 나를 구해주셨다!

이 한 단락 시간에 나는 인연을 맺었던 수많은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렸으며 나의 몸에서도 수많은 신기한 일들이 발생했다. 생활은 비록 고생스러웠으나 고생 속에 낙이 있었다.

2001년 12월의 어느 하루, 나는 집으로 가는 길에 들어섰다. 갑자기 매우 큰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수많은 중생들을 훼멸시켰다!” 이 소리를 듣고 나는 깜짝 놀랐다. 진정한 후 자세히 생각해보니, 내가 진상을 알리는 목적은 사람을 구하는 것인데 만약 나쁜 일을 하였다면 사부님께서 나를 보호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쁜 일을 한 사람을 보호하지 않을 것이다 라고 생각하였다. 나는 이것이 사악한 생명임을 즉각 감지하고 하늘을 향해 “너희들이 말끝마다 사부님을 돕는다고 말하고 있는데 사실은 근본상 그렇지 않다. 너희들이야말로 중생들을 훼멸시키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이때 나는 《전법륜》을 펼치고 사부님의 사진을 보았는데 사부님께서는 나를 향해 웃고 계셨다. 나는 내가 옳았음을 알았다.

2002년 나는 집착심으로 인해 꼭 모 지역에 가서 진상자료를 나눠주려고 하였다. 그리하여 동수와 함께 가는 길에서 순찰을 하는 차량과 부딪쳐 붙잡혀 들어갔으며 불법적으로 간수소에 감금되었다. 이 인간지옥에서 줄곧 3년이나 갇혀 있었으며 동수에게 누를 끼쳤다. 이는 침통한 교훈이었다.

박해 중에서 수련생은 심장에 극도의 고통을 느끼게 되어 나는 간수소 소장에게 가족을 만나게 해달라고 요구하였다. 죄수들은 불가능하다고 말하면서 법정에 서지 않는 한 가족을 만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나는 죄수의 말을 중단하고 계속 수련생이 가족을 만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하였다. 죄수는 불가능하다고 말한 일이었지만 수련생은 끝내 가족을 만나게 되었다. 죄수는 “대법제자의 말은 에너지가 있는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몇 년 동안 줄곧 우리는 사악과 협조하지 않았으며 우리의 사인이나 사진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리하여 우리를 노교소로 보내어 여러 가지로 박해하려고 했지만 우리에게 탄로되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악경들의 죄악을 폭로하였고 또한 우리에게 사진을 찍으려고 했던 사람에게 우리의 사진을 찍는 것은 우리에 대한 박해의 승급이라는 사실과 이 일에 참여한 모든 사람은 악보를 받게 될 것이라는 도리를 알도록 하였다. 이를 안 그는 주동적으로 우리에게 사진을 찍으려던 일을 포기하였다.

우리가 동수(같은 방에 있지 않음)에게 준 음식을 경찰이 빼앗아 가서 3개월 동안 돌려주지 않았기에 나는 그에게 돌려달라고 하였다. 나는 선한 마음에 기초하여 사람을 구원하는 심태로 그들에게 도리를 따졌다. “대법수련은 우리의 신앙이다. 물건은 마땅히 우리에게 돌려주어야 한다.”라고 그에게 알려주었다. 죄수들은 “그들이 물건을 가져가는 것은 우리 여기에서 아주 흔한 일인데 고만한 물건은 당신들에게 돌려주지 않을 것이요.”라고 말하였다. 우리는 선에 기초하고 사람을 구원하는 심태를 유지하였다. 마지막에 경찰은 그대로 우리에게 돌려주면서 “고맙습니다.”라고 말하였다. 죄수들은 “그녀는 당신들의 사부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라고 말하였다.

이 3년 간, 우리는 법공부, 법을 외우기, 법을 베껴 쓰기, 법을 실증하기, 진상을 알리기 등을 통해 한패 또 한패의 죄수들에게 진상을 알도록 하였다. 그들은 너도나도 친인들에게 편지로 “파룬궁은 좋은 것입니다. 중공의 거짓말을 믿지 마십시오.”라고 알려 주었다.

우리는 매일 오후 동수들과 함께 “파룬따파하오”란 노래를 불렀는데 죄수들도 따라서 불렀다. “파룬따파하오”의 노래는 다른 공간에서 사악으로 하여금 간담이 서늘하게 하였으며 중생들로 하여금 점차 마음 속으로 선을 향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하였다.

박해 중에서 나는 박해를 받아 온몸이 경련을 일으켰다. 나는 박해를 승인하지 않았으며 정념을 발하여 사악의 요소들을 깨끗이 제거하였다. 동시에 자신의 원인을 찾았다. 이렇게 사부님의 보호 하에 그리고 대법법리의 지도하에 나는 한 차례 또 한 차례 생사관을 넘겼다.

우리가 출옥하던 그날 간수소의 경찰은 “출옥한 후 그들에게 당신들을 감금한 것은 잘못이라고 가르쳐줘요. 당신들을 3년이나 감금시켰는데도 그토록 확고하니, 우리는 배우지는 않았지만 만약 배웠다면 아마도 당신들과 같을지도 몰라요.”라고 말하였다.

집으로 돌아오니 봉급도 받았다. 원래의 봉급도 나에게 주었다. 동수들은 나에게 어떻게 가서 봉급을 받아 왔는지를 말해달라고 하였다. 나는 그들에게 자주 가서 봉급을 달라고 하지 않았지만 그들에게 진상을 알렸고 봉급은 마땅히 나에게 주어야 하는 것이라고 알려주었다고 동수들에게 말하였다. 나는 새로운 환경에서 더욱 법공부를 잘 할 것이며 정법수련의 길에서 정진하고 정념정행할 것이며 시간을 다투어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원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대법제자의 책임이다!

문장완성: 2006년 7월 9일
문장발표: 2006년 7월 10일
문장갱신: 2006년 7월 9일 22:56:20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출처: http://www.minghui.ca/mh/articles/2006/7/10/132606.html

ⓒ 2024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