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천천(대만)
[명혜망 2006년 7월 8일] 인간세상에서 발생되는 모든 일은 거의 전생의 인연관계와 무관하지 않다. 예를 들어 오늘 누가 당신을 한 대 때렸다든가, 욕을 한번 했다든가, 그것은 전생에 그 사람에게 빚진 것이고 응당 이생에 갚아야 하는 것이다.
우리 딸은 중학교에 들어가서부터 화를 잘 내는 성격으로 변해 도무지 다른 사람의 비평을 듣지 않는다. 옛날에는 매번 동생이 그녀를 괴롭혔는데 지금은 오히려 동생을 못 살게 군다. 보통 나는 이런 일에 참견하지 않지만 모순이 생긴 만큼 둘이 제고를 하기 위해서나, 업력의 전화 관계도 있지 않나 생각했다. 그런데 모순이 너무 심화되어 해결이 안 될 때는 내가 개입하지 않아도 안 된다.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은 원래 교육자체가 힘들다. 그때가 되면 한창 꿈과 환상이 많은 시기이고, 연애소설이나 보고 속박이 아닌 자유를 좋아한다. 우리 딸이 나에 대한 원망이 바로 그것이다. “엄마는… 나 이제 컸단 말이에요. 어릴 때처럼 무엇이나 다 엄마 말만 듣고 싶지 않아요.” 아이의 심지가 걱정하지 않을 만큼 성숙되었으면 물론 그것 또한 나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 시기의 아이들은 조금만 느슨하게 다루었다 하면 행동에 편차가 생기기 쉽다. 말해도 먹혀들어가지 않고, 욕해도 안 되고……. 나에게 있어 아이들이 가져다주는 심성수련은 정말 큰 고험이라 할 수 있다.
어떤 때는 애들 때문에 화에 못 이겨 수련자답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런데 몇 번 이런 경험을 하고 나니, 그런 화는 절대 문제의 근본을 해결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당시는 아마 겉으로는 어른의 권위에 맞서지 못하겠지만 마음속으로는 원망을 품으며 이빨까지 갈고 있을 것이다. 나는 수련자이다. 그러면 나라고 전생에 아이에게 빚을 지지 않았겠는가? 그렇다면 그것은 선해(善解)되어야 할 인연이 아닌가? 나도 전생에는 그 애에게 그런 식으로 괴롭혔을 지도 모른다! 그냥 엉덩이를 툭툭 털고 가면 다 인가? 인간세상의 이런 인연관계를 깨달았으면 응당 그것을 선한 마음으로, 자비로 녹여버려야 되지 않는가? 나는 딸에게 성실하고, 선량하고, 참을성 있는 좋은 아이가 되라고 요구하는데 정작 나는 그 표준에 도달했는가? 대부분 도달했을지언정 모순이 격화될 때는 아직 그 심성 관을 넘지 못한다. 그러다가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때는 몽둥이로 한번 대게 혼내주고 싶다.
겉으로는 확실히 아이가 잘못했고, 말을 안 들었을 수 있다. 하지만 법으로 가늠해보면 모순이 있을 때는 꼭 내가 수련해야 할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나와 아이 사이에 전생의 어떤 악연을 선해하는 것일 수도 있고, 또 하나는 아이가 나의 거울인양 나의 부족함을 비추어 주는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아이가 나를 제고시키는 것일 수도 있다. 아무튼 어떤 각도에서 봐도 내가 악으로 악을 제약하고자 하는 것은 잘못된 방법이다.
강제로는 절대 사람의 마음을 개변시킬 수 없다는 것을 나는 믿는바 오직 이 사람이 본질적으로 스스로 잘못을 알고, 반성하고 고치려고 해야만 된다. 그럼 나는 더 넓은 마음으로 아이를 포용해야 하지 않는가. ‘진선인’을 가지고 아이를 감화시키는 것 말이다. 아이가 말을 듣지 않거나 착하지 않을 때는 먼저 자기의 부족한 점을 찾고, 아이의 마음속 얘기를 들어봐야 한다. 내가 아이에게 잔소리를 너무 많이 했는지, 정이 너무 많아서인지, 어떤 것도 내려놓지 못하면 사실은 아이가 생각하건 데는 자유롭게 발휘할 공간이 없는 것 마냥 느낄 수 있다.
‘진, 선, 인’은 좋고 나쁜 사람을 가늠하는 유일한 표준이다.(전법륜) ‘진선인’을 나의 행동 기준으로 삼는다면 아이도 ‘진선인’의 표준으로 탄탄대로를 향하게 인도해야 한다.
문장완성 : 2006년 7월 6일
문장발표 : 2006년 7월 8일
문장갱신 : 2006년 7월 7일
원문위치 : http://www.minghui.ca/mh/articles/2006/7/8/13233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