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타이완 대법제자
【명혜망 2006년 6월 24일】수련이 덜 되어서 “남록(藍綠)의식에 집착” 했고 이 부분에 대해 많은 타이완 수련생들은 체험을 발표했다. 모두들 “개인수련”의 문제이지 “남록의 문제”가 아님을 알았으며 이를 똑똑히 인식함으로써 개인수련의 잘못된 곳에서 쉽게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한 가지 문제를 제기하여 타이완수련생들과 더 깊이 분석해 보려고 한다. “왜 이렇듯 많은 수련생들에게 수련이 안 된 문제가 나타난단 말인가? 타이완의 수련환경에 문제가 나타난 것은 아닌가?”
개인이 관찰한 바에 의하면 현재 타이완의 정체적 수련환경이 이전보다는 아주 크게 달라졌다.
1.단체 법공부
과거 단체 법공부는 정말로 수련생들 자신의 수련의 심득을 진솔하게 말할 수 있었다. 비록 모두 생활상의 사소한 일들이었지만, 그 속에서 착실하게 수련 제고함은 사람을 감동시켰다. 왜냐하면 이런 것들은 모두 매 개인들이 부딪힐 수 있는 정황이기 때문이었다. 다른 수련생들이 수련인의 심태로 하나의 관, 하나의 난을 지나가는 것을 보면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진정으로 차이를 찾게 했다.
현재의 단체 법공부는 어떠한가? 정법의 노정에 따라 갈수록 많이 진상 알리는 일들이 펼쳐지고 이는 정법시기 대법제자들이 해야 할 일들이다. 그러나 만약 신수련생들의 인원수가 상당한 비례를 차지한다면 신수련생의 수련 제고를 충분히 고려해야 하지 않겠는가?
사실상 이 과정 중에 많은 신수련생들이 점차적으로 단체 법공부 환경 속으로 들어오고 있다. 그러나 만약 단체 법공부의 수련심득 교류가 점차적으로 사업보고, 활동보고, 사업소조보고, 매체보고, 재료구입 사항을 전달하는 것으로 바뀐다면(법공부의 시간은 여전히 유지되는 것 외에) 또 단체 법공부 시간 혹은 법공부 이후 수련생들은 서로 간에 각종 재료 비용을 건넨다거나 하는 등등이면, 만약 자신이 신수련생이라고 했을 때 위에서 형용한 단체 법공부 환경에 참석했을 때 어떤 감수가 있을 것이며, 또 그것을 어떤 식으로 이해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단체 법공부하는 중에 모두 노수련생이 발언하고 신수련생일수록 침묵함을 발견할 수 있다. 노수련생이 거침없이 이야기하는 것 중의 절반은 진상사업의 일들인 즉 신수련생이 토론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까? 일상 수련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을 때 신수련생이 감히 그의 “속인문제”를 제기할 수 있겠는가?
대법은 정토(淨土)인데 왜 신수련생은 우리 이 곳의 단체 법공부 환경에서 진언(眞言)을 토할 수 없는가?
– 말하게 되면 “너무나 기본적인 문제와 견해”라고 남들이 웃을까 봐 두려워한다.
– 말하게 되면 “법에 있지 않다” “집에 가서 법공부를 많이 하라”는 말을 들을까 봐 두려워한다.
– 말하게 되면 여러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화제와 다르기에 “이는 당신 개인의 깨달아야 할 부분이다”라고 말할까 봐 두려워한다.
– 어떠한 항목의 일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것이 알려지면 “정법노정에 따라가지 못한다”란 말을 들을까 봐 두려워한다.
이러한 환경은 신수련생의 법에서 제고할 수 있는 것을 도와주는 작용을 일으킬 수 없다.
2. 연공장
예전의 연공장은 아침 일찍 일어나 연공하고, 연공한 후 시간이 있는 사람들은 남아서 법공부하고 수련심득을 교류했다. 지금은 교류시간을 수련생들이 각종 활동, 항목에 참여하도록 격려하고 대법사업, 활동을 예고하는 시간으로 변했다.
“단체 연공”과 “단체 법공부”는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남겨 주신, 대법이 전해지는 형식이고 목적은 수련생들에게 양호한 수련환경이 있어 신수련생을 빨리 제고시키기 위함이다. 오늘날 노수련생들의 법에 대한 단호함과 정법 일에 대한 투입을 생각해 보면, 지난날 법공부와 교류를 통해 단호한 기초를 다진 것이 아닌가? 오늘날의 신수련생들에겐 이전처럼 제고할 수 있는 환경이 있는가?
물론 사람의 연분이 다르고 법을 얻은 시기와 법을 얻은 후의 경력은 다소 다르다. 이는 피면할 수 없다. 모두들 대법을 얻었다면 반드시 스스로 노력하고 정진해야 한다. 신수련생에게 주는 환경이 일부 지역에서는 조금 좋을 수 있고 일부 지역에서는 조금 차할 것이지만 전반적으로 보면 역시 우리가 시간이 흐를수록 일을 하는 것만 중시하고 수련을 느슨히 한 것이다. 또한 신수련생이 끊임없이 들어오고 그들은 더욱 좋은 수련을 하여 성숙하자면 어떠한 환경이 필요한가를 느끼지 못했다. 후에 들어온 신수련생들이 보기엔 수련의 환경이 이미 이러하므로 별 다른 것을 느끼지 못하고 단체 법공부가 바로 이런 형식이라고 느낀다. 그러나 법을 읽은 후 책을 한 켠에 놓고 전면적으로 대법일을 이야기하는 환경으로 돌아가는데, 이는 오히려 신수련생에게 법에서 법을 인식하고 수련하여 심성을 제고함에 있어 아주 큰 난제를 준다.
아마도 여러분들은 신수련생이 빨리 정법 노정에 따라올 것을 조급하게 바라고 있는바, 실제로 아주 많은 대법일에 인원수가 모자라다 보니 그들을 직접 제 위치로 밀어주려고 희망한다. 그러나 법에서 인식하기 이전에 얼마나 큰 효과가 있을까? 법에 대한 인식은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 내에 똑똑해질 수 있는가? 아마도 신수련생도 대법일에 참여해야 하지만 아직도 “속인이 대법일을 하는” 상태에 멈춰있지 않는가? 문제에 부딪히면 법에서 인식하고 수련인의 사상으로 대할 수 있는가?
신수련생이 아직도 마음 속으로 그의 병, 그의 자녀, 그의 생활에서의 일체 순조롭지 못한 일들을 걱정하고 있을 때 이런 문제들은 아직 해결하지 않고, 법에서 제고하여 이런 곤혹들을 해결하지 못하면 대법이 사람 마음을 바로 잡는 신기한 효력이 나타나지 않는 바 어찌 급히 서두를 수 있단 말인가?
여러분들이 다함께 이 문제를 중시하길 바라고 또한 단체 법공부와 단체 연공의 실질을 되돌리기 바란다. 사부님께서 우리더러 어떻게 하라고 하셨으면 우리는 견지해 나가야 하며 천추만대 지속되어야 하며 이는 수련생이 수련 제고되는 보장이다. 우리는 우선 자신이 법에서 인식을 제고하고 안을 향해 많이 찾아야 하는데 이렇게 해야 만이 수련에서, 대법 일을 하는 데서 머리가 청성하여 속인의 층차로 빠지지 않으며 더욱이 속인의 층차에 오랫동안 머무르면서 자신은 이를 모르는 현상을 피면할 수 있다. 동시에 우리는 진정으로 신수련생을 선하게 대해야 하고 반드시 신수련생을 헤아려 주는 각도에서 출발해야지 그들을 “새로운 인원수”로 여기고 개발하고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그들이 하루 빨리 법 속에서 자신을 수련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도록 이런 환경을 보존해 주어야 한다.
이상의 말들은 개인의 인식이므로 적절치 못한 곳이 있으면 동수들이 시정해 주기 바란다.
문장완성:2006년 06월 23일
문장발표:2006년 06월 24일
문장갱신:2006년 06월 23일 21:22:21
원문위치: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6/6/24/131219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