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Alexis(프랑스)
[명혜망 2006년 5월22일] 존경하는 사부님, 그리고 동수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프랑스에서 온 Alexis 라고 합니다. 저는 이번 법회를 통해 서로 교류하고 공동제고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유럽이 정법시기에 더 나은 정체를 이루어내길 바랍니다.
저는 금년 2월에 파리에서 있었던 신년갈라를 참여하면서 그 속에서 찾아낸 집착을 여러분들과 같이 교류하고자 합니다.
– 파리 신년갈라를 참여하면서 얻은 감수
이번 신년갈라 때 내가 갈라 사회자로 맡게된 점을 매우 행운스럽게 생각한다. 갈라가 끝나고 어떤 동수들은 사회를 참 잘 보았다고 하며, 그 중에 어떤 사람은 나에게 심득교류를 쓸 것을 건의했다. 그 분은 좋은 사회자가 되는 것은 갈라 준비과정의 수련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나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는 나로 하여금 더욱 엄숙한 태도로 준비과정의 실제상황을 점검하게 하였고, 그 속에서 드러낸 표현과 그 과정에서 나타난 세세한 부분에서의 사람마음을 더욱 잘 발견할 수 있었다. 오늘 나는 그 마음의 주요원인은 ‘사람의 관념’과 ‘신심부족’에서 비롯된 것임을 발견할 수 있었다.
2005년 파리 신년갈라를 개최할 의향을 제기했을 때, 나는 장소 서배에 나섰다. 그때 어떤 사람은 천명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는 홀을 빌릴 것을 주장했고, 어떤 사람은 큰 무대가 있는 더욱 큰 장소를 원했다. 여러가지 의논이 제기될 때 나는 우리는 미국 동수들과 달리 많은 인력을 보유하고 있지도 않고, 이 짧은 시간 내에 마음이 얼마든지 있다고 하더라도 힘이 닿지 않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떤 때, 협조와 조율을 위한 회의가 있으면 때로는 상당히 좋지 않은 분위기 속에서 견딜 수가 없었다. 동수지간에 서로 다른 의견을 경청하지 못하고, 쇠뿔에 파고드는 것을 보고, 나는 이 소중한 시간을 서로 모순된 팀의 토론속에서 흘려 보내는 것이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다른 대법일을 해야 한다는 핑계로 되도록 이런 자리를 피했다. 그때는 정말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내가 공헌할 수 있는 작업팀의 회의를 참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당시 자신을 되돌아보면 겉으로 보기엔 아주 이성적인 판단인것 같지만 근본 상에서는 어떤 상화롭고 안일한 수련환경을 찾았던 것이다.
2005년 12월 갈라 공연장이 파리회의센타로 결정됐다. 4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엄청나게 큰 홀이었다. 그런데 우리의 준비시간은 50일도 채 남지 않았었다. 짧은 시간에 우리는 마케팅을 비롯한 스폰서 서배, 공연 프로그램 선정, 티켓판매 등 할 일들이 너무도 많았다.
사실 이는 내가 다시 갈라를 위해 일역을 담당하고, 더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었다. 하지만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작업을 놓고, 나는 원래의 생각을 고수했다. 나는 그들에게 ‘현실적으로 힘든 일’ 이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그러나 대답은 ‘그래도 하겠다.’는 것이었다. 이 일은 많은 돈을 필요로 하기에 갈라 공연에 대한 나의 태도는 썩 내키지 않은 마음이었다. 그래서 가끔 깨알만큼의 협조를 주었을 뿐, 더 많은 책임감을 가지고 임하지 않았기에 동수들의 부담을 들어주지 못했다. 내가 언제나 드는 핑계는 속인의 직업 특성상 여행을 자주 다녀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실상 나는 정법노정이 바로 미래의 결과이고, 그것은 나의 관념과 상관없이 표면에서만 인식되는 그런 현상이 아니라는 것을 보아냈다. 근본상 내가 추구하는 ‘더욱 효율적인’ 작업을 찾는 행위는 사실 중생구도를 위한 생각이 아니었고, 그것은 더욱 ‘안일’한 방식으로 중생을 구도하려고 했던 마음이었다.
‘신심’은 무엇이고 ‘깨달음’은 무엇을 말하는가. 나는 일하는 과정에서 여전히 전공의 기틀이 있어야 일을 할 수 있다는 사람의 관념을 부둥켜 안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미래 각자가 정법을 한다는 기점과 거리가 먼 것이었다.
– 남은 것이야말로 순금이다.
좀 전에 ‘안일’이라고 한 말을 기억할 것이다. 과거 몇년 동안 나는 가정과 직장의 변동으로 이 문제를 유난히 중요하게 보아왔다. 이 역시 갈라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잘 하지 못한 원인이기도 하다.
수련 전에는 싱글로 있어, 직장 업무를 잘 수행하는 것 외에는 다른 사회적 책임이 없었다. 그래서 대부분 시간을 대법일과 활동참가, 그리고 법학습에 할애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나의 생활환경도 크게 변했다. 자신을 돌보는 것 외에 아무런 외적 부담이 없는 데로부터 이제는 속인이 추구하는 모든 생활환경이 주어져, 가정은 물론이고 아이도 생겼고, 좋은 직장도 얻었다.
책임이 많아진 것도 사실인데다 수련의 근본문제와도 부딪히게 되었다. 말하자면 전에 했던 일은 어려운 환경에서 그걸 헤쳐 나가면서 완성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런 일은 많은 물질 이익을 포기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었다. 그와 반대로 지금은 속인이 추구하는 생활환경에서 수련하는데, 시간이 자유롭지 못하고, 처리해야 할 허다한 일이 놓여 있어 예전처럼 그렇게 일할 수 있을가? 안일의 마음으로 영향 받지 않을가? 라는 생각을 하게 하였다.
이전과 다른 나의 모습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처음에는 자기에 대한 엄격한 요구가 점점 느슨해지면서 글쓰기와 연설하는 걸로만 대법일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고생에 대한 감당능력이 점점 차해졌고, 깨달음도 적어졌고, 차츰 피곤함도 느끼고, 속인의 일에 더 치중하게 되었다. 더욱 엄중한 결과는 이 전례 없는 정법시기에 더욱 소극적이게 변했다는 것이었다.
이런 마음으로 사물을 보니, 수련자 지간의 회의 토론도 성과 없이 헛수고 하는 것처럼 보이고, 행동 표현에서도 그리 숭고하고 규칙적이지 못했다. 마치 우리가 간난신고를 거쳐 바다를 넘어야만 우리와 관련되는 방대한 천체 중생을 구할 수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관건적 시기에 나는 용맹정진하지 못했을뿐더러 오히려 시간을 낭비하며 이리 재고 저리 재면서 지름길을 찾으려고 주위를 살폈다.
다시 갈라의 주제를 놓고 비교해 보자. 팀 성원들 사이에서 표현이 그리 좋지 않은 수련자들을 포함해 모두 만고를 극복하고, 주저함이 없이 열심히 파리 갈라를 위해 뛰었다. 그래서 오늘날 여러분들이 볼 수 있는 휘황한 성과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속인의 어떠한 조직도 2개월 안에 그렇게 큰 홀에서 그러한 수준의 공연을 할 수는 없다. 더우기 주최측에서는 이런 경험을 해본 적이 없다고 했고, 우리의 갈라 추진 팀원들도 온종일 직장을 다니면서 그 외 남은 시간에만 진행 작업에 몰두할 수 있었다.
물론 모든 일에 있어서 완벽하게 처리된 것은 아니며 더욱 잘해야 하는 부분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들에게서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고, 걸음을 멈추지 않으면 기적이 나타난다.’ 라는 것을 배웠다.
이번기회로 나는 엄숙한 자세로 자신를 되돌아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어 감사하게 생각한다. 비록 이 수성한 자리에서 더욱 아름다운 언어와 표현을 드릴 수는 없지만 나의 경험을 통해 동수들에게 서로 제고하는 촉진작용이 있기를 바란다.
더욱 열심히 할 수 있기를 나는 바란다. 그리고 천백년래 뼈속깊이 배인 속인의 관념 안에서 뛰쳐나오고, 정법시기의 막바지에 더욱 잘하며, 무조건 중생을 구도하는 우리의 사전 서약을 완성하길 바란다.
이 자리를 빌어 동수들에게 문안 인사를 드리며, 동시에 사부님의 자비고도에 감사하는 마음을 전한다.
(2006년 유럽 법륜대법심득교류회 원고)
문장완성 : 2006년 5월21일
문장발표 : 2006년 5월22일
문장갱신 : 2006년 5월22일
원문위치 : http://www.minghui.ca/mh/articles/2006/5/22/128464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