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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교 지역사회에 영화를 매개로 진상을 했던 심득

글/오타와 레이스충

【명혜망 2006년 6월 2일】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여러 동수님들 안녕하십니까!
1997년에 법을 얻은 후 많은 이득을 보았으며 대법의 박대정심과 사람으로서의 진정한 목적을 알게 되었다. 자연히 속인의 영화, TV에 대해 흥미가 없어졌을 뿐 아니라 볼 시간도 없었다. 그러나 2001년 어느 날 가족과 함께 현지에 있는 화교영화클럽에서 방영하는 유료 영화를 보러 갔다.

영화를 볼 때 나는 무엇을 보고 있는지 몰랐고 보고 난 후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러나 대강당에 가득찬 3,4백명의 중국인들을 보았을 때 이렇게 생각했다. “내가 매일 점심시간에 국회산에 가서 사람들에게 진상자료를 배포하고 얼굴을 마주하고 진상을 알리지만 어쩌다 중국인을 만나도 몇 마디도 못하고 가버리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만약 강당에 이렇게 많은 중국인들이 모두 정신을 집중하고 파룬궁의 진상프로를 본다면 그들에게는 얼마나 큰 복일까!”

이튿날 나는 영화클럽의 한 책임자에게 전화로 상담을 했다. 그들에게 다음 영화는 관람객에게 무료 영화 관람을 할 수 있도록 한다면 그 비용은 내가 다 감당하겠다. 그 대신 두 편의 영화를 상영하는 사이에 파룬궁의 진상 내용을 반드시 포함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조건을 제시했더니 주인을 구두로 동의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즉시 현지 화교신문 등 매체를 통해 이번 주 토요일에 무료로 영화를 방영한다는 소식을 실었고 또한 각종 준비에 들어갔다. 그러나 영화를 상영하는 전 날, 클럽의 다른 한 책임자가 동업인 3사람 중에서 한 명이 죽어도 협조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그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그 동업자가 파룬궁을 좋아하지 않는데, 그가 XX기공을 연마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매번 파룬궁수련생이 그의 영화관에 나타나면 그 사람의 공이 곧바로 흩어지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그 당시 나는 정말로 즐거웠지만 한편으로는 또 조급했다. 즐거운 것은 속인도 사부님께서 《정진요지(2)》에서 말씀하신 “대법제자의 정념은 위력이 있다”를 목격하였기 때문이다.

조급해진 것은, 우리 광고가 이미 나갔는데 어떻게 내일 몇 백명의 관객을 상대로 사실을 설명한단 말인가? 우리 대법제자들은 반드시 신용이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 당시 나는 조급한 상태에서 갑자기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어릴 때부터 나는 각종 기계설비를 만지기 좋아했는데 혹시 오늘날 정법을 위해 준비한 것이 아닌가? 우리는 왜 속인에 의지해야 하는가? 하여 우리는 그날로 한 전기자재 회사에 가서 영화를 방영하는 설비를 샀다. 나는 그 가게주인에게 파룬궁은 무엇이고, 중공이 왜 파룬궁을 박해하고, 우리는 왜 영화를 돌려서 진상을 알리려고 하는지를 설명했다. 가게주인은 듣고난 뒤 파룬궁에 대해 아주 동정을 표하면서 우리가 하는 일이 맞다고 했다. 후에 오타와 대기원이 창간된 후 이 가게주인은 또 대기원에 그들의 광고를 실었다.

설비를 사온 후 집에서 영화를 방영하는 전 과정이 익숙해지도록 연습을 했다.

드디어 영화를 상영하는 토요일, 우리는 오타와 화교지역에서 첫 번째 무료영화상영 활동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350석의 대학 강당은 빈 자리가 없었고 복도에도 사람이 가득 서 있었다. 그들은 돈 하나 들이지 않고 영화를 통해 중화무술기공의 박대정심을 볼 수 있었다. 더욱 큰 행운은 그들은 체계적으로 “톈안먼 분신자살”의 진상을 보았다는 것이다. 몇 백 명의 사람들 중 거의 한 사람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

그 날부터 5년 동안 특별한 경우만 없으면 우리는 매 2주일 마다 한차례씩 무료영화상영 활동을 멈춘 적이 없었다. 현재까지 우리는 이미 100여 차례에 걸쳐 영화를 상영했다. 매 번 관람객이 많을 때는 사백여 명, 적을 때는 열명에서 스무여 명이었다. 우리는 거의 대법제자가 만든 모든 진상프로를 방영했다. 《9평공산당》을 포함하여 많이 보여주어야 할 프로는 중복하여 상영했다. 영화는 세심하게 선별했고, 광고도 신경쓰면서 속인 마음에 따라 대법진상프로를 삽입했기 때문에 우리가 운영한 무료영화는 오타와 화교지역에서 생각지도 않은 효과를 얻었는 바 악당의 거짓말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뿌려진 독약을 제거했다. 홍대한 연공장면을 방영할 때 관중들 속에서 감탄사가 나오는 것을 늘 들을 수 있었다. 중공이 파룬궁수련생을 잔혹하게 박해하는 프로를 방영할 때 관중들 속에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도 늘 볼 수 있었다. 영화가 끝난 후면 항상 우리에게 파룬궁수련을 어떻게 할 수 있는지 문의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어떤 사람은 수련의 길에 들어서기도 하였다. 어떤 사람은 비록 파룬궁수련을 하지 않지만 대법에 대해 존경의 마음이 생기거나 혹은 대법을 위해 직언을 하였고 또한 우리가 영화를 상영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우리가 처음 영화상영을 시작 했을 때 관중들 속에는 캐나다에 온지 얼마 안 되는 대륙이민이 있었는데, 대륙에서 중공이 독해한 선전을 완전히 믿고 있었다. 그녀는 처음으로 대륙 중공이 선전하는 것과 같지 않은 파룬궁과 파룬궁수련생을 본 후 감촉이 아주 깊었다. 파룬궁수련생 매개인 모두 그렇게 선량하고 상화롭게 느껴지며 중공이 선전한 것과 정반대였다. 집에 돌아온 후 급히 사이트에 올라 파룬궁의 진상을 요해했다. 그후 그녀가 조심스럽게 파룬궁수련생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수련생의 열정적인 태도와 신용을 지키는 행동은 그녀로 하여금 경계심을 내려놓게 했으며 이로부터 그녀는 단호한 대법수련생이 되었다.

몇 년동안 우리가 상영한 영화는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파룬궁에 대한 중국인의 견해를 개변하고 있었다. 한 번은 내가 어느 중문학교에서 신당인TV가 캐나다에 신설되는 것을 지지하는 서명을 받고 있었다. 어느 대륙이민이 서명을 하면서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들 파룬궁은 우리 화교지역사회에 좋은 일을 했어요!” 나는 그에게 어떤 면에서 그러냐고 물었다. 그는 “당신들은 오랫동안 우리를 위해 무료로 영화를 방영하였어요.” 이어서 주위의 많은 화교들도 서명했다. 신당인TV 전 세계 화교 신년갈라를 방영한 후 많은 사람들이 다가와 위성접수기 구입과 설치에 대해 문의했다.

몬트리얼과 오타와의 대기원 신문은 동일한 판면이다. 가끔 먼 곳에 있는 몬트리얼에 사는 화교는 대기원신문에서 우리의 무료영화소식을 접하고는 특별히 2시간동안 차를 몰고 영화를 보러 왔다. 또 몬트리얼의 화교들은 현지 파룬궁수련생을 향해 원망하며 말했다. “당신들은 어찌하여 몬트리얼에서도 정기적으로 무료영화를 방영해 주지 않습니까? 오타와의 무료영화소식을 보면 우리도 너무 보고 싶어요.”

우리는 매 번 영화광고를 모두 현지 화교사이트에 올렸는데 이것 또한 우리에게 진상을 알리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가끔 영화광고가 나간 후 일부 사람들은 “가지 말라! 그들은 파룬궁이다!”고 리플을 달았다. 우리가 반응하기도 전에 항상 다른 관람객들이 우리를 대신해 진상을 알렸다. “파룬궁이 뭐 어때서? 이 몇 해동안 어느 단체가 우리를 위해 무료영화를 보여 주었는가?”

공산당에게 무섭게 당한 사람들은 사이트에서 이렇게 말한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국가안전국 사람들이 우리의 모습을 녹화하거나 혹은 파룬궁에서 우리를 녹화하지 않는가 하는 것이 좀 두렵다.” 그러면 이어서 한 사람이 이렇게 위안한다. “괜찮다. 나는 여러 번 가봤다!”

평소 거리에서 진상자료를 배포하면 다수의 화교들은 받지 않거나 감히 받으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가 영화관 문앞에 놓아 둔 VCD등 진상자료는 아주 잘 가져간다.

사부님께서는 《2004년 뉴욕국제법회설법》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실 만약 당신들의 생각이 아주 바르다면, 거리를 거닐고 당신의 도시에서 생활하는 가운데 주변의 일체 환경을 모두 깨끗이 청리할 수 있다. 당신의 존재가 바로 중생을 구도하는 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한 번은 우리가 강당을 바꿨더니 보안요원은 컴퓨터에서 우리 이름을 찾지 못했는지 아무리 사정해도 강당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그는 예전에 근거없이 문을 열어주었더니 시설을 도난 당했는바 이로 인해 일자리를 잃고 싶지 않다고 했다. 나는 그의 어려움을 충분히 이해하고는 되돌아가서 컴퓨터에서 예약한 서류를 한 장 인쇄해 오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그는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내가 미처 나를 소개도 하기 전에 “내가 보기엔 당신은 좋은 사람 같아요. 나는 당신을 믿어요.”라고 했다. 이어서 그는 문을 열어주었고 이로 인해 영화 상영시간은 지체되지 않았다.

어느날 저녁 영화를 상영하기 전 행동이 특별한 한 노인이 왔다. 그 선생은 나에게 말하기를, 당신의 선하고 자비로운 모습을 보니 당신은 믿을 만한 사람 같다고 했다. 이어서 그는 자신이 모모모 라고 했다. 원래 그는 이름 있는 신문기자이자 작가였다. 그는 나에게 《9평 공산당》은 정말 잘 썼고 대단하다고 했다. “당신은 아는지요? 그 당시 공산당은 많은 작가로 구성된 작가팀을 특별히 만들었는데 아주 오랫동안 일하여 겨우 ‘9평소공’을 써 냈어요. 그것들의 ‘9평’은 당신들의 ‘9평’과 비교할 수 없어요. 당신들 파룬궁 수련생 중에는 인재가 많아요!” 나는 영화가 시작되지 않은 틈을 이용하여 그가 제기한 물음에 대답했다. 그러나 그는 가기 전에 연락처를 남기지 않았다. 그러나 두 번째로 영화보러 왔을 때 그는 아주 즐겁게 그의 연락처를 남겨주었고 또한 금후에 기회가 있으면 우리의 세미나에 참가하고 대기원에 투고할 것이라고 하였다.

진상을 알게 된 화교들은 자각적이나 비자각적으로 우리를 도와 진상을 알렸다. 자주 오는 한 관중은 늘 일찍 와서 내가 바쁘게 설비를 설치할 때 그는 다른 관중들에게 파룬궁이 박해당한 정황을 소개했다. 한 번은 그가 나에게 다음에 잊지 말고 《9평공산당》을 가져오라고 했다. 그것은 그가 북경에 돌아가 동창생 모임에 참가할 때 그의 친구들에게 주려고 하였다. 북경에서 돌아온 후 그는 우리의 영화상영관에 와서, 북경에 있는 많은 동창생들이 이미 “9평”을 받고 읽었기에 그는 할수없이 그들에게 몇 권만 주었다고 했다.

몇 년간 영화를 상영하는 과정에서 수시로 각 방면의 교란에 부딪쳤다. 그러나 사악한 교란은 우리를 제지하지 못했고, 반대로 더 한층 진상을 알리도록 촉진했고, 더 한층 우리의 심성을 제고시켰고, 우리 수련생의 대법과 사부님에 대한 단호한 믿음을 강화시켰다.

가끔 오타와의 날씨가 좋지않은 날 밤은 영화를 취소하자고 건의하는 사람들이 늘 있었다. 그러나 나는 한 사람이 오더라도 진상을 요해했다면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가장 적게 올 때도 최소한 10명에서 20명의 진상을 알고자 하는 용감한 관중들이 있었다. 5년동안 광풍 폭우, 눈비를 마다하고 우리는 단 한차례의 기회도 놓치지 않았다.
어느 토요일 아침 나는 정공을 연마한 후 명혜망을 보기 시작했다. 한 수련생이 심득체험 교류에서 대법을 수련한 후 얼마 안 가서 근시안경을 벗어버렸다는 글을 보았다. 나는 내가 이미 이렇게 몇 년을 수련했으니 아마 나도 근시안경이 필요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런 집착심이 이끌어서 나는 근시안경을 벗어버렸다. 안경을 벗자마자 곧바로 머리가 어지럽고 속이 메슥거리며 구토가 났다. 갈수록 더욱 심해져 몇 분 뒤에는 의자에 앉을 수 조차 없었다. 할수없이 비틀거리며 침대에 돌아가 누웠다. 이는 내가 97년부터 수련을 시작한 후 첫번째의 “병업”반응이었다. 사부님께서는 《2003년 정월 대보름 설법》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어떠한 마음이 일든지 모두 당신으로 하여금 중도에서 훼멸되게 할 것이다!” 아이쿠, 내가 어찌 사부님의 말씀을 또 잊었단 말인가?

처음에 우리가 영화를 상영할 때는 몇 명의 수련생만 참가했다. 다른 수련생의 시간을 되도록 적게 점유하기 위해 우리는 설비를 정비하였고 지금은 운반, 설치, 상영 등 전반 과정에 수련생 한 명만 필요했다. 그날 밤도 영화상영을 할 예정이었다. 우리가 일찍 광고를 해놓은 상태였기에 나는 할수없이 다른 동수에게 연락을 취하여 준비를 하게 했다. 비록 수련생이 망설임없이 대답했지만 나중에 나는 그가 아주 중요한 항목을 맡고 있으며, 또 영화상영에 익숙하지 않을 뿐더러, 나자신의 고비를 넘는 것 때문에 다른 동수의 정법항목을 지체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끝내 그의 도움을 받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그날 밤의 영화상영을 취소하면 안 되었는데, 진상을 요해하러 온 관람객들을 실망시킬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마음 속으로 낡은 세력에게 말했다. “나의 수련 중의 누락은 나의 사부님께서 상관하시고, 나는 내가 마땅히 감당해야 할 어려움을 감당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내가 누락이 있다고 하여 네가 오늘밤 영화상영으로 진상을 알리는 정법활동을 교란한다면 너는 존재할 가치가 없다.”

나는 끊임없이 발정념을 했다. 일어날 수 없으면 침대에 누워 마음 속으로 발정념을 했다. 후에 점차적으로 일어나 앉아서 발정념하고 법공부를 했으며, 일어설 수 있으면 일어서서 동공을 연마했다. 마침 사부님의 2005년 샌프란시스코설법에서 말씀하신 “어찌되었든 간에 당신이 정념정행 한다면 넘기지 못할 관은 없다.”와 같았다. 그날 나는 하루종일 음식을 먹지 못했지만 그날 밤 상영하기전에는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았다. 나는 몇 백명의 화교들이 진지하게 진상프로를 보고 있는 것을 보면서 눈시울이 붉어졌다. 사부님께서 또 한 번 중생에게 기회를 주신데 감사를 드립니다.

얼마 전에 우리는 화교지역에서 《수탉이 알을 낳다》란 속인영화를 방영했다. 비록 수탉이 알을 낳는 것을 보지 못했지만 그날 밤 나는 오히려 더 큰 기적을 목격했다. 그날 일체 설비를 준비해 놓고 10분이면 곧 영화상영이 시작되는 그 시점에 나는 노토북 전원선을 가져오지 않았음을 발견했다. 영화상영 시간은 대략 2시간 반이고 노트북의 건전지는 평소에 겨우 한시반 반정도 쓸 수 있었다. 그 당시 나 혼자서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관람석에는 내가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어 몸을 뺄수가 없었다. 또 마침 그날 장소를 다른 곳으로 바꾸었기 때문에 전화를 걸어 아내에게 전원선을 가져오라고 해도 그녀는 내가 말한 영화강당의 위치를 알아듣지 못했다. 나는 마음 속으로 끊임없이 발정념하며 사부님의 가지를 빌었다. 적당한 시기에 내가 부탁할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나 집에 한번 갔다 오려고 했으나 그날 밤 내가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오지 않았다. 그 당시 나 또한 다른 동수한테 번거로움을 준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나 자신의 소흘로 조성된 번거로움은 마땅히 내가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영화를 상영하는 내내 나는 끊임없이 발정념을 했고 수시로 컴퓨터 건전지의 지시등을 지켜보았다. 나는 영화를 상영하는 중도에 건전지 지시등이 절반가량의 전기량을 표시하면 조용히 집에 갔다고 오려고 했다. 결과 여러분들이 모두 알아맞췄을텐데 영화가 끝날 때까지 컴퓨터 지시등은 여전히 충분한 전기량을 표시하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추운 오타와 시외는 칠흑같았고 길에는 거의 차량이 없었다. 나는 고독하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정법의 길에서 사부님께서 시시각각 모두 제자의 곁에 계시기 때문이다.

사부님께 감사 드립니다! 여러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2006년 캐나다 법회 발언고)

문장완성:2006년 05월 31일
원문위치: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6/6/2/129333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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