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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량이 큰만큼 자비도 크다

글/ 무명

[명혜망 2006년 5월 23일] 목표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마치 바다 위의 등대를 향해 오직 등대불이 밝혀져 있는 곳을 따라 가야만 비로소 피안에 도달할 수 있다. 만약 등대의 도항이 없어서 오늘은 동으로, 내일은 서쪽으로 방향을 잡지 못하고 출발한다면 어찌 목적지에까지 도달할 수 있겠는가? 큰 뜻이 있는 속인들도 항상 변함없는 마음을 가진채 고생을 이겨낸다. 판중앤(范仲淹)이 “먼저 천하의 짐을 덜고 나중에 천하의 낙을 누린다.” 라고 한 천고의 명구를 써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천하의 일을 자기의 임무로 삼았으므로 자연히 정직함과 고상한 품격을 지니게 되었고, 능히 선타후아(先他後我), 대공무사(大公無私)할 수 있었으며 세속을 초월하는 경지에 이를 수 있었다.

나는 수련하는 몇 사람에게 무엇 때문에 불(佛)을 배우는지 물었더니 어떤 사람은 인간세상이 너무나 고통스러워 해답을 구하기 위함이라고 말했고, 또 어떤 사람은 수불(修佛)하면 부처님의 보호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으며 반면에 목표가 명확치 못하거나 뜻이 분명하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사실 이 질문에 대해서는 모두가 진지하게 생각해 볼 만한 것으로 이것은 근원상에서 문제이다. 오직 기점을 바로 잡아야만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고 수련이 비로소 바른 길을 걸을 수 있다. 때문에 근본 기틀을 잘 잡아야 하므로 소소한 일에 마음을 두어서는 안 된다.

최근 들어 나자신에게 남아있는 많은 집착과, 심성의 한계로 인해 강한 정념을 내보내지 못했다. 그로 인해 인해 얻고 잃은 문제에서 화가 날때는 씩씩거리며 분쟁 속에서 빠져 나오지 못했다. 그 원인은 마음이 속인 중에 있기 때문인지라 고비를 넘기 어렵고 집착으로 대하니 당연 고달프고 힘들어졌다. 사실 스스로 나자신을 속인 중에 위치를 정하고, 거기에다 동그라미를 그려놓고 감옥으로 삼았던 것이다. 우리가 그 속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에는 사물의 본질을 보기 힘들지만 일단 뛰쳐나오게 되면 곧 확연이 드러나게 된다.

우리의 목표는 당연히 홍대하고 고상해야 한다. 중생을 구도하고 성불하려는 소원이 진정 있을 때 인간의 은원(恩怨)과 집착은 보잘것 없이 되어버리며, 세상의 이익도 수련인의 앞에서는 한 푼의 가치도 없다. 왜냐하면 당신의 마음은 이미 중생을 위한 것이고 당신의 경지는 이미 삼계를 넘어섰는바 속인의 일체가 어떻게 당신을 제약할 수 있겠는가? 우리의 용량이 얼마나 크면 우리의 지혜, 자비도 그만큼 크다.

문장성문 : 2006년 5월 22일
문장발표 : 2006년 5월 23일
문장갱신 : 2006년 5월 23일 01:50:45
원문위치: http://minghui.ca/mh/articles/2006/5/23/128555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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